엔젤과 크레테 - 힐데군스트 폰 미텐메츠가 쓴 차모니아의 동화
발터 뫼르스 지음, 전은경 옮김 / 들녘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제목만 보아도 그림형제의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서 모티브를 따왔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일종의 패러디라고 해야 할까?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아무리 평범한 이야기라 하더라도 발터 뫼르스의 손을 거쳐 '차모니아'라는 장소로 옮겨지면 환상적이고 무시무시한 모험이야기로 변신하고 만다. 하물며 그 유명한 '헨젤과 그레텔'을 모티브로 따 왔으니 발터뫼르스의 차모니아에서 그 이야기가 어떻게 변신할 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차모니아판 '헨젤과 그레텔'의 주인공은 부모님과 함께 휴가를 떠나 알록곰들이 운영하는 '큰 숲'으로 놀러온 쌍둥이 '페른하헨(차모니아의 난쟁이족)' 오누이다. 오빠와 여동생이 아닌 쌍둥이 남매. 선천적으로 낙천적인 성격의 페른하헨인 '엔젤'과 '크레텔'은 관광객들에게 공개되지 않은 '큰 숲'의 위험지역으로 한발짝 떼어놓는다. 원작에서 빵부스러기를 남기듯 자신들이 따 모은 딸기나무를 떨어뜨리면서... 그러나 오누이가 떨어뜨린 딸기나무는 땅꼬마도깨비가 모두 가져가 버리고 숲속에서 길을 잃은 오누이는 상상하지도 못한 위험에 처하며 결코 잊을 수 없는 모험을 떠나게 된다.

그림형제의 '헨젤과 그레텔'은 기아상태에 빠져 자식마저 버려야 했던 중세유럽의 암울한 시대상이 반영된 작품이다. 그래서 조금은 슬프고 우울한 분위기를 띠게 되었다. 발터뫼르스는 이 이야기를 누구도 가보지 못한 '차모니아'의 '큰 숲'의 금지구역으로 가져와서 기발한 상상력으로 새로운 모험담으로 바꾸어 놓았다. 선천적으로 낙천적이고 호기심이 갛안 페른하헨들을 주인공으로 삼아서 무섭고 기괴한 숲의 세계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모험의 세계로 바뀔 수 있도록 하였다. 실제로 '차모니아'라는 대륙이 있다면 꼭 한번 방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개성이 강한 수많은 종족들이 등장하여 이야기를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방향으로 틀어버리고 우리는 전혀 알 수 없는 '차모니아'의 수많은 전설들을 차용하여 스토리의 반전을 꾀하고 있다. 그래서 책을 읽는 동안 다음엔 어떤 인물이 등장하여 어떤 이야기를 펼쳐놓을까? 하는 기대감에 흥분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발터뫼르스 소설의 매력은 역시 삽화를 떼어놓을 수 없다. 만화가 출신의 작가답게 소설의 모든 삽화를 직접 그린다는 작가는 이번에도 글로 설명하기엔 부족한 차모니아의 종족들과 등장인물들, 신비한 숲속의 모습 등을 흑백의 삽화로 묘사해 두었다. 오로지 펜을 사용하여 그린다는 삽화는 간결한 느낌이지만 '차모니아'의 신비로움을 보여주기엔 전현 부족함이 없고 오직 검은색 하나로만 그려진 흑백의 삽화만으로도 독자의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여 마치 올컬러로 그려진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일종의 그림동화를 보는 느낌이라고 할까? 어른들을 위한 그림동화. 책의 묘사로는 상상하기가 힘든 장면들에 대해서도 삽화는 충분한 보충설명을 해 준다. 책을 다 읽고 난 후에 삽화만을 다시 보게 될 정도로 그림 자체의 매력이 있다. 그래서 그의 책은 언제나 삽화가 기대된다.

그의 다른 작품들과 다른 시도가 하나 있다. 바로 '미텐메츠식 여담'이다. 이야기의 흐름과는 전혀 상관없이 발터뫼르스가 원작자라고 주장(?)하는 공룡작가 미텐메츠가 자신의 기분이 내키는 때에 자신의 기분이 내키는 말을 지껄이는 일종의 넋두리? 혹은 스트레스 해소용 잡담? 아무튼 뜬금없이 끼어들어 대책없이 지껄인다. 그런데 그 지껄임이 너무 재미있다. 지금까지의 소설의 형식에서 오로지 주석의 형태로만 내용에 관여해야했던 작가가 방금 쓴 장면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말한다거나 창작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토로한다거나 하는 식의 여담이 끼어들어서 소설 자체가 하나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작가가 독자에게 들려주는 듯한 생동감을 넣어준다. 완성되어 활자로 박힌 책의 형태에 살아 숨쉬는 생동감을 전해주는 방식으로 충분히 차용해 볼 만한 형식이 아닌가 한다. 새로운 시도인데 그 시도의 참신함과 그 효과는 나에게는 긍정적으로 느껴진다.

발터뫼르스의 작품을 읽는 재미는 작가가 차모니아에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여러 동식물들의 이름들과 문학작품들의 제목에서 보여지는 작가의 장난기 가득한 말장난들도 빠질 수 없다. 특히 이번 소설에서는 알록곰들의 색깔을 묘사한 부분이 있는데 거의 2페이지에 가까운 정도로 파란색을 묘사한 부분이라던가 미텐메츠식 여담에 나오는 차모이나 문학작품들의 제목들에서 그런 말장난들이 두드러진다. 말장난이라고 그냥 건너뛰기엔 그 속에 담긴 작가의 유머가 아깝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그 부분만 몇번씩 반복해서 읽게 된다. 참 묘한 매력을 지닌 부분이다.

'차모니아'라는 대륙이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러나 발터뫼르스의 뻔뻔하기까지 한 차모니아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우리가 전혀 알지 못하는 다른 차원에 실제로 그런 대륙이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알록곰들이 지키는 큰 숲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엔젤과 크레테가 마녀에게 쫓기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 어쩌면 발터뫼르스는 우리들 몰래 차원의 벽을 넘어 실제로 그곳에 가본 경험을 이야기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그의 소설은 재미있다. 방학을 맞은 아이들 뿐만 아니라 마흔을 바라보는 내가 읽어도 충분히 재미있는 판타지 모험소설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