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화려함과 명성을 꿈꾸는 시절이 있다. 세계적인 영화배우를 꿈꾸기도 하고 세계최고의 모델을 꿈꾸기도 하고 세계 최고의 갑부를 꿈꾸기도 한다. 흔히들 말하는 ’슈퍼클래스’를 한번쯤 꿈꾸지 않는 이들은 없다. 그런 꿈을 이룬 사람들도, 아직 꿈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아직도 꿈을 쫓고 사는 사람들도, 그리고 이미 그런 꿈은 접어버린 채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매년 프랑스의 작은 마을인 ’칸’에서 열리는 영화제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 화려함에 대한 찬미이다. 꿈을 이룬 ’슈퍼클래스’는 자신이 꿈을 이루었음을 과시하는 무대이고 꿈을 쫓고 있는 이들은 자신의 쫓고 있는 꿈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무대이고 평범한 삶으로 돌아간 이들에게는 한 때 동경했던 꿈에 대한 아련한 기억을 되새기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한번쯤은 꿈꾸었을 화려함과 명성이 최고의 수준까지 도달한 곳. 그곳이 바로 ’칸’이었고 코엘료가 이곳을 이야기의 무대로 삼은 것은 지극히 영리한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화려함과 명성의 꼭대기에 올라서야 그 높이만큼 길어지고 깊어진 그림자를 똑똑히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랑을 잃어버린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자신의 뜻과는 무관하게 밀어넣어졌던 지독한 전쟁에서 살아남았고 그의 전부가 되어버린 사랑을 만났고 구체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체계가 자리잡기 시작한 변화의 시기에 자신의 꿈을 이루어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2년전 그의 전부였던 사랑은 아무말없이 그의 곁을 떠나버렸고 남겨진 그는 그녀가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다. 세계의 모든 허상들이 모이는 화려한 ’칸’에서 그는 그녀에게 자신의 사랑이 여전히 유효함을 알리는 메세지를 전달하겠다는 한가지 목적을 위해 수많은 세계들을 파괴하기 시작한다. 사랑을 잃어버린 한 남자가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기 위해 벌이는 24시간의 사건을 따라가는 형식을 취하는 이 소설은 그래서 ’추리소설’, 혹은 ’스릴러’라는 장르로 대변될 수 있는 소설이다. 그러나 작가가 서문에서 분명히 밝히고 있듯이 이 소설은 절대로 ’추리소설’이나 ’스릴러’가 아니다. 인간의 욕망이 원하는 화려함과 명성의 깊은 덫이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주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성찰이 있고 지독하리만큼 깊은 한 남자의 사랑이 있고 꿈을 쫓아가는 이들의 뜨거운 삶이 있다. 인간의 욕망이 쌓아올린 이른바 ’슈퍼클래스’라는 이들의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불나방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달려나가는 인간군상이 걸려드는 수많은 덫들과 결국 허무할 수 밖에 없는 그 끝에 대한 비극적 종착을 보여줌과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희망’이라는 것을 가질 수 있는 것은 결국 ’사랑’이라는 주제를 이야기 하기 위해 살인이라는 조금은 자극적인 소재를 택했을 뿐 절대로 ’추리소설’이 될 수 없는 소설이다. 추리소설의 기법들을 차용해서 독자의 몰입감을 높히고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 긴장감의 끈을 놓치 못하게 만든 코엘료의 멋진 트릭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무거운 주제에 비해서 상당한 재미를 준다. <연금술사>에서 코엘료는 ’꿈을 이루기 위해 무언가를 희생해야 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꿈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는 ’꿈을 이루기 위해 넌 무엇을 희생할 것인가? 어디까지 버릴 수 있는가? 그렇다면 과연 네가 쫓고 있는 꿈이란 것은 진정 그럴가치가 있는 것인가? 그 꿈이란 것이 너의 욕망이 빚어낸 거대한 허상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닌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있다.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은 독자 스스로의 몫이고 그 답을 통해서 얻는 삶에 대한 작은 깨달음은 코엘료가 이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주고자 하는 작은 선물이다. 그의 선물을 받을지 말지는 온전히 독자의 선택에 달린 것이다. 결국 남자는 혼자 남는다. 그가 원하는 바를 모두 이루었고 결국 완전범죄를 성공했다. 그러나 그는 혼자였다. 반면에 여자 모델은 화려함의 정점에 오를 수 있는 기회를 버리고 그의 연인에게 돌아갔다. 세상의 시각에서 그녀는 실패했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의 곁에는 그의 연인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성공하고 혼자남은 남자의 선택과 실패했으나 둘이 남은 여자 모델의 선택. 진정한 승자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판단하는 몫은 온전히 독자에게 남겨진 숙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