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현대문화센터 세계명작시리즈 1
제인 오스틴 지음 / 현대문화센터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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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읽기의 어려움이란 그 시대의 용어와 그 시대의 사회상에 익숙해지지 않는 첫 부분의 당황스러움과 어색함에 기인한 바가 크다. 그래서 고전이란 접하기 힘든 것이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고전을 읽으라고 권하는 이유는 현대의 모습과는 다른 그 시대의 모습과 그 시대의 사회상을 접할 수 있는 흔하지 않는 기회이기도 하다. 따라서 몇 백년이 지난 고전이 그리고 있는 그 시대의 모습은 고전을 접하기 어렵게 만들면서 동시에 고전의 묘미를 느끼게 하는 양날의 칼과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너무도 유명한 제인 오스틴의 소설 ’오만과 편견’을 이 나이가 되어서야 읽게 된 가장 큰 장벽도 그런 시대상에 이해에 대한 자신감이었다. 이미 여러 번 영화화가 되었고 그 내용이 쉽게 풀어써진 책들도 많이 나와있지만 조금의 어려움을 감수하면서도 원서에 가까운 완역판을 읽은 것은 또한 그런 나의 자심감을 북돋우기 위한 오기였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200년이 지난 사랑이야기이고 그 시대의 결혼관과 연애관이 지금의 시대에서는 도저히 이해될 수 없는 것이기에 100% 공감을 느끼면서 읽어 내려갈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세월이 얼마나 지나갔다 하더라도 사랑에 빠지는 청춘들의 황홀하고 설레는 감정은 조금의 차이도 없고 실연에 아파하는 젊음의 상처도 다르지 않기에 거추장스럽고 과장된 표현들이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소설속에 나오는 사랑은 충분히 지금 시대에도 통할 수 있는 진실을 담고 있다. 어릴 때 부터 수많은 사람들의 섬김을 받아 자신도 모르는 상태에서 오만에 빠졌던 다아시의 태도를 바꾼 것도,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으로 타인에 대한 편견에 빠지기 쉬웠던 엘리자베스의 성격적 결함도 결국은 사랑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었기에 사랑의 힘은 불가능이 없다는 영원한 진리를 다시한번 깨닫게 해주는 소설이다.

200년 전의 세상에서 돈이나 가문이나 지위가 한 사람의 인생에, 사랑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진정 우정을 나누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절을 모른다는 주위의 평가를 받지 않기 위해 수많은 격식들을 차리는 모습은 지금에 와서 보기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마저 그 시대의 모습이다. 소설속에 나오는 엘리자베스가 가지고 있는 결혼관이나 연애관이 지금의 시각에서는 지극히 정상적인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시대에는 얼마나 과감한 것이었을지 상상하기 힘들다. 이렇듯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그 시대의 모습과 그 시대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것은 잠깐 동안 타임머신을 타고 그 시대를 여행한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그것이 바로 고전 읽기의 최고의 매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고 사랑의 얼굴은 결국 변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결국 사랑의 힘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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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같은 놈 - 역발상逆發想의 성공 프로젝트
왕경국.장윤철 지음 / 스타북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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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장르 중에서 유독 내가 싫어하는 장르가 소위 '자기계발서'라는 장르이다. 물론 자기계발서들에 나오는 내용들이 훌륭한 인생의 지침이 될 수 있고 실제로 책 한 권으로 자신의 인생을 바꾸었다는 말은 수없이 들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자기계발서의 대부분은 누구나 알고있는 사실의 정리 이외의 의미는 거의 없다는 생각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쳐 바라보지 못한 시각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책들도 많겠지만 대개의 경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고있는, 그러나 쉽게 실천하지 못하는 사실들을 작가가 원하는 주제에 따라 정리하고 나열하는 수준이 대부분이라는 생각이다. 실제로 내가 읽었던 몇개 안되는 자기계발서들도 그런 나의 인식을 깨주지는 못했다. 그래서 난 자기계발서를 싫어한다.

인터파크에서 선물로 이 책을 받았을 때 또 그렇고 그런 자기계발서일 것이라는 색안경이 끼워지는 건 그런 나의 불신 때문이었다. 일단 읽어나보자는 심정으로 책장을 넘기면서 그나마 읽을만 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이 책의 내용도 상식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작가의 주장을 독자에게 설득시키는 방법에서 점수를 줄 만 하다. 대부분의 자기계발서들이 똑같은 말을 이리저리 바꾸고 변경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독자들에게 주입하려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그런 모든 작업들을 생략한 채 역사상의 인물들의 숨겨진 일화들을 통해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실제로 어떻게 적용되었는지 실제적인 예를 들어줌으로써 구차한 설명들의 나열보다 훨씬 쉽게 독자의 동의를 끌어내고 있다. 마치 고등학교 때 영어교재였던 'Man-To-Man'의 단문독해를 보는 듯한 짧은 일화들을 통한 설득은 강한 힘으로 작용한다.

책의 주제는 대체로 처세술과 관련되어 있다. 흔히들 생각하고 있는 자존심과 체면의 개념에 대해 역발상적인 사고의 전환을 요구한다. 세상 사람들의 이목에서 소위 체면을 구긴다고 생각하는 것이 결국에는 보다 큰 성공으로 보다 큰 체면을 세워줄 수 있는 것임을 실제 인물들의 일화로 설명한다. 타인을 대한 방식에서 타인의 체면을 살려주는 것의 이로움과 타인의 잘못을 직접적으로 지적하지 않고 그들의 인격을 존중해 주는 대화술과 처세술, 자신의 자존심을 죽이면서 타인을 배려하는 자세로 대화를 이끌어가는 방법 등, 우리가 지금껏 알고있던 체면과 자존심에 대한 색다른 시각을 제시해 준다. 특히 자신의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사람, 주변 사람들로 부터 부러움의 대상이 되는 사람, 말하자면 '잘 나가는 능력있는 사람'들은 한번쯤 읽어보면서 자신의 태도를 점검해 볼 수 있는 자기계발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역시... 나에게 자기계발서는 별로 내키지 않는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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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역죄인, 역사의 법정에 서다 - 악의 획을 그은 인물들, 역사가 그들을 심판하다
배상열 지음 / 책우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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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는 '만약'이라는 가정이 없다. 그 시대의 선택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그 시대를 살아간 이들의 몫이고 후세의 사람들은 그들에 대한 평가를 할 수는 없지만 지나간 역사를 되돌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모든 이성적인 판단들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을 붙이고 싶은 순간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순간들에는 반드시 대한민국의 역사에 씻을 수 없는 죄악을 남긴 죄인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런 죄인들은 왕조국가에서 왕에게 반기를 들었던 대역죄인들 보다 훨씬 더 죄질이 무거운 이들이다. 그리고 그런 이들 중에는 그 시대를 이끌어가야 했던 왕과 왕족들의 모습이 많이 발견된다. 그러나 역사란 또한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에 그런 역사의 죄인들이 승자의 이름으로 칭송받는 경우가 많다. 이런 모순들에 대한 냉철한 시각과 그들의 범죄행위에 대한 논리적 기소를 통해 그들에게 단죄를 하고자하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연개소문을 역적으로 만들었던 영류왕은 연개소문에 의해 죽음을 당하는 것이 마땅한 역사의 죄인이었고 한창 재평가의 바람이 불고 있는 의자왕 역시 실책에 실책을 거듭한 역사의 죄인이다. 물론 의자왕의 경우는 기득권의 저항을 무너뜨리기 위한 무리수 이기에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지만... 삼국을 통일한 영웅으로 추앙받는 김춘추는 대한민국의 역사를 한반도로 국한시키는 최악의 죄악을 저지른 인물이며 드라마로 재평가를 시도하고 있는 천추태후 역시 절대로 변명이 불가한 죄악을 저지른 요부이다. 그리고 그 모든 죄악들을 왜곡하고 대한민국의 고대사를 말아먹은 <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은 그 누구보다 죄질이 무거운 범죄자이다. 그 외 조선을 통해 수많은 실책과 옹졸한 자기중심적 사고로 인해 역사에 수많은 죄악을 남긴 인물들의 죄상을 철저한 고증과 논리적 추론을 통해 통쾌하게 기소하고 있다. 작가가 지적하는 인물들에 대한 기소가 충분한 사유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두꺼움에 비해 쉽게 읽힐 수 있는 몰입도를 가지고 있다.

작가가 기소하는 인물들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도 나와 작가의 시선이 정확히 일치한다. 더욱이 최근 '대하사극'이라는 미명 아래 재평가와 명예회복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하는 '원균'이나 '천추태후', '문정왕후', '정난정' 같은 이들의 죄악이 얼마나 심각한 것이었는지에 대한 논죄와 그들의 재평가를 주장하는 이들의 근거가 얼마나 희박한 것인가에 대한 반박은 최근의 사극들을 보면서 느꼈던 개인적인 답답함마저 속 시원히 풀어주고 있어서 작가의 다른 작품들이 궁금해진다. 책의 마지막 후기를 통해 드러나는 작가의 성향도 나와 닮아있다. 전국민이 충격에 빠졌던 노무현 대통령의 억울한 서거를 보면서 사관의 역할을 하기로 마음먹고 지금의 상황이 못난 지도자들의 집권으로 망가져 버린 조선의 모습과 닮아있다는 시선은 내가 지금의 대한민국을 보는 시각과 정확히 일치하고 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책이었는데 기대 이상의 통쾌함을 전달해 준다. 조금씩 흥미를 잃어가던 역사서 읽기의 재미를 다시한번 일깨워 준 고마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소설을 많이 쓰는 작가답게 역사서라기 보다는 소설에 가까운 서술방식을 보여준다. 법정 드라마에서 많이 보았던 검사의 논고를 보는 듯한 느낌과 함께 그 시대의 상황에 대한 고증과 논리적 추론을 통해 얻은 지식을 쉽고 편한게 읽을 수 있는 문체로 설명하고 있어서 역사에 대한 기본지식이 부족하다고 느껴서 역사서에 쉽게 손을 못 대는 독자들도 쉽고 편한게 죄인들을 평가할 수 있게 해 준다. 역사의 법정에서 배심원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물론 죄인들의 입장을 변호할 변호사의 역할이 조금 부족하기는 하지만 사실 변명의 여지조차 별로 없어보이는 죄인들이기에 작가의 논고는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그리고 그 논고를 바탕으로 죄인들에게 형량을 부여할 역할은 전적으로 독자들에게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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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못 읽는 남자 - 실서증 없는 실독증
하워드 엥겔 지음, 배현 옮김 / 알마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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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하는 이벤트에서 처음 이 책을 접했을 때 부터 이 책의 첫장을 넘기기 전 까지 난 이 책이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필 작가에게서 '글을 읽는 능력'을 빼앗아간 고약한 상상력에 강한 호기심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책의 첫장을 읽으면서 나의 무식한 착각이 얼마나 부끄럽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닌 작가 자신의 생생한 경험을 기록한 '회고록'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읽지 못하는 작가'라는 것은 고약한 상상력의 문제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난 사건에 대한 당혹감의 표현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처음부터 나의 착각을 비웃으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작가이기에 앞서 열렬한 독서광이었던 주인공은 이미 10여권의 소설로 베스트셀러 작가로 등극한 사람이다. 어릴 때 부터 독서에 집착하고 요즘 흔히들 말하는 '활자중독'의 수준에 이른 이 노작가에게 어느날 닥친 '설서증 없는 실독증'은 말 그대로 재앙이다. 세상 그 무엇보다 끔찍한 재앙. 흡사 나 같은 컴쟁이를 인터넷이 전혀 통하지 않는 세상속으로 던져놓은 것과 같은 끔찍한 재앙. 이 책은 그런 재앙에 닥친 노작가가 자신의 장애를 극복하고 새로운 소설을 집필하기 까지의 투병기이다. 이는 곧 상상도 하지 못한 재앙에 닥친 한 인간이 스스로 재앙을 극복하고 자신의 위치로 돌아오기까지의 긴 여정의 기록이기도 하다.

잠자는 사이에 일어난 뇌졸증. 그리고 아무런 이상도 없던 아침에 신문을 보고서야 맞이하게 된 엄청난 재앙. 그 재앙 앞에서 주인공이 보여주는 침착함은 역시 세월이 쌓아올린 연륜의 힘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시작된 기나긴 투쟁. 차라리 글을 쓰는 능력마저 사라져 버렸다면 더 나았을 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머리속에 수많은 이야기가 남아있고 그것을 써내려갈 능력도 남아있는데 자신이 쓴 글을 읽지 못하는 상황의 답답함이란... 대부분의 환자들이 시각적인 독서를 거부하고 끝까지 시각적인 독서를 고집하는 노작가의 의지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리고 결국 그 의지력이 가져온 커다란 승리(새로운 신간의 발간)은 적잖은 감동을 선물한다. 작가의 노력만으로 이룬것이 아니라 많은 이들의 도움이 있었다는 것에서 또다른 감정을 느끼게 된다. 우리나라였다면 과연 이 작가의 신간을 볼 수가 있었을까?라는 조금은 서글픈 감정이.... 중간중간 나오는 작가의 자조적인 유머는 기나긴 재활의 과정을 버티게 한 커다란 무기가 되었을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역시 세월이 쌓아놓은 연륜과 여유의 힘은 대단하다.

아주 얇은 책이고 또한 쉽게 읽히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나는 또 한번 번역에 의심을 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역자의 말을 읽고나서야 뜻하지 않은 난독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정리된 글을 쓰기에는 아직 힘에 부치는 작가의 상태를 그대로 보여주고자 번역에서 손을 대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가의 질병이 완치란 불가능 하기 때문에 어쩌면 이 정도의 혼란이 당연한 것이 아닐까? 오히려 이것이 더 자연스러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독자의 입장에서 조금만 더 친절했으면 하는 바램 정도는 어쩔 수 없는 투정이다.

누구에게나 장애는 올 수 있다. 문제는 그것에 대응하는 우리의 자세일 것이다. 이 책에서 노작가가 보여주는 장애에 대응하는 자세는 아직은 젊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조금의 의지만 있으면 장애는 조금의 불편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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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1 - 개정판
정은궐 지음 / 파란(파란미디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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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입가경이란 이런 경우를 이르는 말일 것이다. 전편인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에서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겨우 결혼식을 하게 된 선준과 윤희. 그러나 짐작은 하되 진실을 알지 못하는 왕의 어이없는 성은(?)으로 나란히 규장각으로 발령이 나게 된 잘금 4인방. 지방의 한직으로 물러나 원래의 여자로 돌아가려 했던 윤희의 소망은 어이없이 무너지고 윤희의 비밀을 알게 된 우의정(선준의 아버지)의 분노로 인해 두 사람의 혼사는 중단된다. 그나마 왕이 하사한 선물에 의해 파혼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선준과 윤희를 떼어 놓으려는 우의정의 작전(?)이 진행되고 성균관은 차라리 쉬웠다고 느껴질 만큼 치열한 규장각 각신들의 생활 속에서 잘금4인방의 이야기는 전혀 예상치 못한 사건들로 인해 또다시 위기의 순간들을 맞게 된다.

전작인 <성균관...>을 읽은 사람이라면 80% 이상의 사람들이 주저없이 선택했을 거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재미있는 역사 로맨스 소설이다. <성균관...>이 조선시대 대학교라고 할 수 있는 성균관에서 일어나는 남장여자와 모범생 유생의 로맨스를 그렸다면 이제는 규장각 각신으로 들어가게 된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조선시대 관료사회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이미 아는 사람은 모두 알게 된 남장여자 윤희의 비밀이 들키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지고 조선의 중흥기라고 할 수 있는 정조시대, 개혁의 가장 큰 구심점이었던 규장각을 둘러 싼 기득권 세력과 개혁세력간의 갈등이 긴장감을 높혀준다. 여전히 개성이 넘쳐나는 잘금4인방의 캐릭터는 전혀 예상할 수 없는 많은 사건들을 만들고 그 해결과정에서 보여주는 심각한 당쟁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그리고 무엇보다 두 주인공, 선준과 윤희의 아슬아슬한 사랑이 시종일관 미소를 머금게 만든다.

서로간의 갈등으로 대립하기는 하지만 '악역'이 없는 소설이다. 선준과 윤희의 사랑을 방해하는 우의정도 결국은 선한 모습을 보여주고 청벽서와 홍벽서로 대립하는 관료들관의 대립도 악한 모습은 아니다. 서로가 서로를 죽이겠다며 달려드는 모습도 보이지 않고 죽일 듯 대립하던 사람들이 서로에게 애정을 보여주는 모습들도 결코 악인의 모습이 아니다. 결국 작가는 정조의 시대에서 흔히 악역일 수 밖에 없는 '노론'들도 결코 악인이 아니었음을, 그들과 대립했던 '소론'이나 '남인'들도 결코 악인이 아니었음을 말하는 듯 하다. 결국 그들도 자신의 자식들을 위하고 자신의 부인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가슴이 따뜻한 아버지이고 남편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역사에 미친 영향은 철저히 배제하고 자연인으로써 그들의 삶, 아무것도 하지 않고 무위도식하는 양반님네라고 지탄받는 그들의 평범한 일상을 파헤쳐서 그들에게 보다 따뜻한 시선을 던져주고 있다. 그래서 소설은 전체적으로 착한 사람들의 착한 이야기가 된다. 조금은 밋밋할 수 있지만 그래서 시종일관 미소를 머금게하는 소설일 것이다.

<성균관...>에서 아주 조금 모습을 비추던 정조의 모습이 <규장각...>에서는 본격적으로 드러난다. 말썽꾸러기 같은 짓궂은 장난을 걸기도 하고 자신을 둘러 싼 정치환경에 탄식하기도 하고 자신이 기대를 걸고 있는 신하들에 대한 무한한 애정을 보여주기도 한다. 때로는 그런 애정이 오히려 그들에게 방해(?)가 되기도 하지만... 윤희의 정체를 알고나서 '너는 어찌하여 나를 위해 사내로 태어나지 않고, 가랑을 위해 여인으로 태어났는가?'라고 탄식하는 장면이나 '그래도 여인은 믿을 수 없다. 내 어머니도 못 믿는데...'라는 독백에서는 정조의 인간적인 모습과 인재를 아끼는 모습들이 보여서 안타까움도 느껴진다. 천하의 난봉꾼이라고 생각했던 여림의 모습에서도 그의 숨겨진 능력을 발견해 내고 뻔히 홍벽서임을 알면서도 걸오를 보호하려 하며 자신의 아버지의 원수인 노론의 자식임에도 가랑에게 자신의 꿈을 거는 모습을 보며 비록 허구일지언정 정조라는 인물에 대한 새로운 애정이 솟아나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런 왕이, 이런 지도자가 있다면 우리의 삶도, 우리의 꿈도 조금은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4인방의 각각의 활약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이 소설은 전편에 비해 훨씬 더 재미있다. 보다 많은 이야기가 펼쳐질 수 있는 시리즈로서의 토대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쉽게도 작가는 더 이상의 속편은 없다고 한다. 이 아쉬움을 어찌할꼬? 마지막에 여운을 남긴 여운과 덕구의 이야기는 정녕 더 볼 수 없는 것일까? 작가에게 졸라보면 안될까? 여림과 덕구를 중심으로 한 '청나라 연행의 나날'이라던가 걸오와 다운을 중심으로 여인들의 이야기를 다룬 '규방 아낙들의 나날'이라던가... 이런 식의 속편은 나오면 안될까요? 특히 다운의 이야기는 정말 궁금해지네요. 과연 어떤 여인으로 커나가게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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