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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장 습격사건 - 엽기발랄 오쿠다 히데오 포복절도 야구장 견문록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동아일보사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공중그네]로 우리나라에도 많은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작가 오쿠다히데오.처음 접한 그의 작품들이 주는 충격이 지금도 선하다. 결코 일반적인 작가의 생각으로는 나올 수 없는 이야기들을 아무럼 꺼리낌없이 시원스럽게 써 내려간 문체도 매력이었지만 '이라부'라는 인물을 통해 드러내는 세상에 대한 연민과 세상의 상식을 과감하게 깨뜨리는 역발상의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실제로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한 대리만족을 느끼게 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그래서 난 이 작가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우리나라에서 프로야구가 시작된 것이 1982년. 내가 국민학교 5학년 때 였다. 포항에서 살고있던 나는 삼성이 아닌 MBC 청룡을 좋아했다. 그러나 1984년 기적같은 우승을 거둔 롯데에 반해 그 이후 20년이 넘는 기간 롯데의 광팬을 자처하며 살았다. 지금의 아내와 가장 많은 데이트를 했던 곳도 사직구장이었다. 그래서 이제 야구는 나의 삶의 좋은 친구가 되어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와 내 삶의 좋은 친구가 만났다. 오쿠다 히데오의 야구장 견문록인 이 책은 그래서 나에게 구매욕구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한 책이었다. 비록 내가 기대했던 요절복통할 만한 웃음도 없고 야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결코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매력이 담겨있는 책이다. 또한 특별한 날에 가끔씩 관람하는 야구가 아닌 그네들의 생활속에 동화되어가는 일본의 야구문화가 한없이 부러워지는 책이기도 하다.
대학교 때 사직구장에서 롯데자이언츠를 1년동안 따라다니는 노부부를 본 적이 있다. 이미 사회에서의 역할을 마치고 은퇴한 후 내가 좋아하는 야구팀을 따라다니며 여유를 즐기는 그들의 모습이 한없이 부러웠다. 나도 언젠가는 꼭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런 일을 오쿠다 히데오의 견문록을 통해 대신 경험할 수 있었다. 대도시의 유명한 구장에서 벌어지는 유명한 팀들과의 대결이 아닌 지방 소도시에서 벌어지는 하위팀들, 2군들, OB들의 경기를 쫓아다니는 이야기를 통해 스포츠가 아닌 생활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그들의 야구문화가 정말 부러워졌다. 또한 지방의 야구장을 다니면서 야구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방의 문화와 음식, 사람들과 영화관 등 소도시가 가진 매력을 작가 특유의 재기발랄하면서도 거침없는 문체로 보여주고 있다. 내가 만약 일본에 살고 있었다면 당장에 신칸센을 타거나 비행기를 타고 가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대도시의 한복판에서 여유없이 살아가는 작가가 가장 지치고 힘들 때 훌쩍 떠나버린 야구장 여행을 통해 삶의 여유를 찾고 생활의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모습에 나도 조금은 편해지는 것을 느낀다. 영화, 마사지, 음식... 조금은 호화로운 호텔과 모처럼 자신에게 허락하는 사치까지... 부러움이 가득한 시선으로 그의 여행을 따라가는 여정이 즐거웠다. 젊음과 패기를 지녔으나 경제적 여유가 없는 20대의 무대뽀적인 여행과는 사뭇 다른 경제적 여유를 동반한 40대의 여행은 지금의 내 나이와 같은 느낌과 같은 감성이 있기에 더욱 동감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야구장을 따라다니는 작가가 사람들이 많은 것을 싫어한다는 것은 아이러니일 수도 있지만 축제같은 분위기가 좋을 뿐 사람들과의 부대낌을 싫어하는 느낌은 나도 어느 정도 공감이 간다.
눈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 평화공원에서 작가가 내뱉은 반미적인 발언이다. 물론 미국의 패권주의가 잘못이라는 것은 나도 동의하는 생각이지만 문제는 원폭의 책임을 미국에 돌리는 부분이다. 일본의 지식인층이라고 할 수 있는 오쿠다히데오 마저 원폭의 책임을 전적으로 미국으로 넘기는 부분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원폭의 책임은 물론 직접적인 가해자인 미국의 책임도 있지만 스스로 제국주의의 망령에 빠져 국민들을 전쟁으로 몰고갔던, 아시아 전체를 살생의 장으로 만들었던 그 시대 일본의 지도자들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반성하지 못하는 일본이라는 민족. 전후 60년이 지나도 조금도 변하지 않는 잘못된 피해의식의 단면을 본 것 같아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일본의 야구팀, 일본의 야구선수가 나와서 아쉽다. 우리도 우리의 야구팀, 우리의 야구선수가 등장하는 이런 에세이집 하나 정도는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롯데 자이언츠의 광팬이 하나 써 준다면 얼마든지 구매할 용의가 있는데... 아니면 이 참에 내가 한번 끄적거려 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