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장 습격사건 - 엽기발랄 오쿠다 히데오 포복절도 야구장 견문록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동아일보사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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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그네]로 우리나라에도 많은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작가 오쿠다히데오.처음 접한 그의 작품들이 주는 충격이 지금도 선하다. 결코 일반적인 작가의 생각으로는 나올 수 없는 이야기들을 아무럼 꺼리낌없이 시원스럽게 써 내려간 문체도 매력이었지만 '이라부'라는 인물을 통해 드러내는 세상에 대한 연민과 세상의 상식을 과감하게 깨뜨리는 역발상의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실제로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한 대리만족을 느끼게 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한다. 그래서 난 이 작가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우리나라에서 프로야구가 시작된 것이 1982년. 내가 국민학교 5학년 때 였다. 포항에서 살고있던 나는 삼성이 아닌 MBC 청룡을 좋아했다. 그러나 1984년 기적같은 우승을 거둔 롯데에 반해 그 이후 20년이 넘는 기간 롯데의 광팬을 자처하며 살았다. 지금의 아내와 가장 많은 데이트를 했던 곳도 사직구장이었다. 그래서 이제 야구는 나의 삶의 좋은 친구가 되어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와 내 삶의 좋은 친구가 만났다. 오쿠다 히데오의 야구장 견문록인 이 책은 그래서 나에게 구매욕구를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한 책이었다. 비록 내가 기대했던 요절복통할 만한 웃음도 없고 야구에 대한 이야기가 많은 것은 아니지만 결코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매력이 담겨있는 책이다. 또한 특별한 날에 가끔씩 관람하는 야구가 아닌 그네들의 생활속에 동화되어가는 일본의 야구문화가 한없이 부러워지는 책이기도 하다. 

대학교 때 사직구장에서 롯데자이언츠를 1년동안 따라다니는 노부부를 본 적이 있다. 이미 사회에서의 역할을 마치고 은퇴한 후 내가 좋아하는 야구팀을 따라다니며 여유를 즐기는 그들의 모습이 한없이 부러웠다. 나도 언젠가는 꼭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런 일을 오쿠다 히데오의 견문록을 통해 대신 경험할 수 있었다. 대도시의 유명한 구장에서 벌어지는 유명한 팀들과의 대결이 아닌 지방 소도시에서 벌어지는 하위팀들, 2군들, OB들의 경기를 쫓아다니는 이야기를 통해 스포츠가 아닌 생활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그들의 야구문화가 정말 부러워졌다. 또한 지방의 야구장을 다니면서 야구를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지방의 문화와 음식, 사람들과 영화관 등 소도시가 가진 매력을 작가 특유의 재기발랄하면서도 거침없는 문체로 보여주고 있다. 내가 만약 일본에 살고 있었다면 당장에 신칸센을 타거나 비행기를 타고 가보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대도시의 한복판에서 여유없이 살아가는 작가가 가장 지치고 힘들 때 훌쩍 떠나버린 야구장 여행을 통해 삶의 여유를 찾고 생활의 스트레스를 풀어내는 모습에 나도 조금은 편해지는 것을 느낀다. 영화, 마사지, 음식... 조금은 호화로운 호텔과 모처럼 자신에게 허락하는 사치까지... 부러움이 가득한 시선으로 그의 여행을 따라가는 여정이 즐거웠다. 젊음과 패기를 지녔으나 경제적 여유가 없는 20대의 무대뽀적인 여행과는 사뭇 다른 경제적 여유를 동반한 40대의 여행은 지금의 내 나이와 같은 느낌과 같은 감성이 있기에 더욱 동감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야구장을 따라다니는 작가가 사람들이 많은 것을 싫어한다는 것은 아이러니일 수도 있지만 축제같은 분위기가 좋을 뿐 사람들과의 부대낌을 싫어하는 느낌은 나도 어느 정도 공감이 간다. 

눈에 걸리는 부분이 있다. 평화공원에서 작가가 내뱉은 반미적인 발언이다. 물론 미국의 패권주의가 잘못이라는 것은 나도 동의하는 생각이지만 문제는 원폭의 책임을 미국에 돌리는 부분이다. 일본의 지식인층이라고 할 수 있는 오쿠다히데오 마저 원폭의 책임을 전적으로 미국으로 넘기는 부분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내가 생각하는 원폭의 책임은 물론 직접적인 가해자인 미국의 책임도 있지만 스스로 제국주의의 망령에 빠져 국민들을 전쟁으로 몰고갔던, 아시아 전체를 살생의 장으로 만들었던 그 시대 일본의 지도자들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반성하지 못하는 일본이라는 민족. 전후 60년이 지나도 조금도 변하지 않는 잘못된 피해의식의 단면을 본 것 같아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일본의 야구팀, 일본의 야구선수가 나와서 아쉽다. 우리도 우리의 야구팀, 우리의 야구선수가 등장하는 이런 에세이집 하나 정도는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특히 내가 좋아하는 롯데 자이언츠의 광팬이 하나 써 준다면 얼마든지 구매할 용의가 있는데... 아니면 이 참에 내가 한번 끄적거려 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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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추억
이정명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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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색 바탕의 동화적인 느낌의 그림으로 채워진 책을 받아들고 한참동안 기억을 더듬어야 했다. 한참 기억을 더듬고 나서야 '아! 이정명 작가의 신작 가제본이벤트로 읽은 그 책이었구나'라는 자각을 했다. 그랬다. 오로지 이정명 이라는 작가의 이름만 믿고 용기를 내어 도전했다가 기대하지도 않은 당첨에 기뻐했고 받아 본 가제본을 읽고 너무나 행복해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제 그 책이 정식으로 출간되어 작가의 친필싸인과 함께 나에게 배달된 것이었다. 개인적으로 생애 처음으로 작가의 친필싸인본을 받은 것이어서 더욱 기뻤다. 그리고 내가 읽은 가제본과 다른것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최대한 빨리 읽어내려갔다.

[뿌리깊은 나무], [바람의 화원] 등 우리 역사를 배경으로 하는 팩션장르에서 최고의 인지도와 인기를 자랑하는 이정명 작가의 신작이 '뉴아일랜드'와 '침니랜드'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맥코이라는 외국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았다는 것은 전혀 뜻밖의 설정이었다. 최고의 연기를 보인 연기자가 이미지 변신을 위해 고심하듯이 역사팩션이라는 장르에서 최고의 위치에 오른 작가가 자신의 발목을 잡을 지도 모르는 한정된 장르를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의 산물이라고 느껴져서 그의 시도를 응원하게 된다.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경찰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소설은 추리소설이라기 보다는 범죄소설에 가깝다. 이야기의 전개가 빠르고 긴장감이 넘치기 때문에 독자가 쉽게 몰입할 수 있다. 그러나 형식의 대중성과 가벼움에 비해 이야기가 담고 있는 내용은 결코 가볍게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독자가 생각해야할 것을 많이 남기고 있는 것이다. 개발과 발전이라는 미명아래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보편적인 미안함, 자신도 모르게 깊이 새겨진 트라우마와 그에게 조정당하는 인간의 기억에 대한 이야기까지... 무엇보다 이 소설의 전반을 흐르는 것은 인간의 기억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알고있는 기억이라는 것이 실제로는 우리의 뇌가 만들어낸 가짜일 수도 있다는 것이 최근 뇌과학분야의 연구결과라고 하니 어쩌면 우리는 우리의 기억에 속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럼 우리가 우리의 기억을 만드는 것일까? 아니면 우리의 기억이 우리를 만들고 있는 것일까? 

소설의 전반에 흐르는 또다른 배경인 안개의 의미도 나름 생각해 본다. '뉴아일랜드'라는 지역은 개발과 발전의 상징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그곳은 우리가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기꺼이 기억하고자 하는 기억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반대로 '침니랜드'는 우리가 의식적으로 기억하지 않으려고 하는 기억, 부끄럽고 아픈 기억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두 장소를 아우르는 짙은 안개라는 것은 결국 기억을 선택하고자하는 인간의 의지가 아닐까? 결국 우리가 선택한 기억이 우리의 모습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물론 우리가 아무리 잊으려 하는 기억도 언젠가 우리의 발목을 잡는 덫이 될지도 모르지만....

안개에 둘러싸인 배경으로 인해 전체적으로 몽환적인 느낌이 강한 소설이다. 게다가 인간의 기억이라는 소재로 인해 어렵기도 하다 그러나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었기 때문에 쉽게 몰입할 수 있어서 읽기에 어려운 느낌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정명이라는 작가의 새로운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는 소설이다. 그리고 재미있다. 마지막 반전은 충분히 뒤통수를 때리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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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 지음, 최인자 옮김, 제인 오스틴 / 해냄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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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에서 이 책을 보는 순간 오직 한가지 이유로 [오만과 편견]이라는 소설을 읽게 되었다. 바로 이 소설을 읽고 싶다는 강한 욕구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고전 소설의 하나이면서 이미 여러차례 영화로도 만들어져 흥행에 성공했던 초대현 고전 걸작소설에 감히 무엄하게도 좀비를 투입시킨 작가의 당돌함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전에 읽었어야 했던 명작소설을 아직도 읽지 못했다는 민망함도 있었지만 이 책에 대한 궁금증이 너무도 컸기 때문에 내가 [오만과 편견]을 읽은 이유는 오직 이 책 한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오만과 편견]을 읽으면서 느꼈던 만족감 못지 않게 이 소설이 만들어 낸 새로운 이야기의 매력은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줄거리는 원작을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등장인물, 사건, 이야기의 전개방향에서 사소한 대사 하나까지 원작의 틀을 벗어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조금 지루할 것 같지만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감히 입에 담지 못할 것들'의 활약으로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게 읽어나갈 수 있다. 미국에서 성공하고 있는 패러디 영화들을 보면서 전혀 공감하지 못했기에 패러디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던 내가 패러디 소설인 이 책을 읽으면서 패러디 문화의 매력을 충분히 느꼈다고 할 수 있다. 분명 똑같은 대사이지만 좀비들의 활약으로 얼마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지, 좀비 사냥꾼으로 변신한 엘리자베스가 얼마나 매력적일 수 있는지, 좀비들의 공격으로 황폐화 된 영국이라는 배경이 원작을 얼마나 더 활기차게 만들 수 있는지... 패러디 문학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을 모두 가진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고전이라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나 몇 백년 전의 작품들을 읽어 나가는 것이 현재의 독자들에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번역가가 번역을 한다 하더라도 지금의 시대와 맞지않는 그 시대의 가치관, 언어, 생활방식 등을 현대인들이 이해하게 만들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전이 배척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 재기발랄한 패러디 소설 한권이 전해주는 의미는 매우 크다. 지금의 내가 그렇듯 잘 만든 패러디 소설은 원작을 찾아보게 만들게 된다. 또한 어렵고 힘든 원작을 쉽고 재미있게 간추리고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 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미 생명력을 다한 느낌의 고전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마치 오래되어 낡아빠진 가구를 리모델링 해서 새것과 같은 멋과 고전의 매력을 모두 간직한 새로운 가구로 만들어 내듯이 고전의 명작이라 일컬어지는 [오만과 편견]에 좀비를 투입하는 상상력으로 고전의 매력과 현대적 재미를 모두 가진 매력적인 소설이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좀비의 역할이 거의 전무하다 시피하고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모습에 아쉬움도 있고 어설프게 동양의 무술을 18세기 영국으로 끌어들이려다 보니 다소 유치해 보이는 모습이 있고 동양에 대한 작가의 조금은 삐뚤어진 시각이 눈에 걸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원작에서 얄밉게 보이던 인물들을 좀비의 습격으로 죽여 버리거나 불구로 만들어 버리고 때로는 결투를 통해 실컷 두드려 패는 장면들은 원작의 아쉬움을 달래주기도 한다. 물론 그 대상의 선정이 작가의 일방적인 판단에 의해서 이기는 하지만... 

하고 많은 존재 중에서 하필 좀비를 투입한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물론 작가는 아무런 의도가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독자의 입장에서는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감히 내 나름대로 판단해 보건데 산것도 죽은 것도 아닌 좀비라는 존재가 흔히는 명작이라 불리는 고전문학의 현주소와 닮아있다는 느낌이다. 말 그대로 좀비같은 존재로 남아있는 고전이라는 장르에 실제로 좀비를 투입해 되살려보고자 했던 노력. 그 노력의 결과가 바로 이 소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물론 오로지 나만의 작각일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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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 - 개정증보판 한 권으로 읽는 실록 시리즈 2
박영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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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신라의 삼국통일을 위대한 사건으로 배웠다. 그때나 지금이나 학교의 역사교육은 한심한 수준이었으니 어느 선생님도 신라의 통일이 가지는 다른 의미는 설명해 주지 못했다. 나이가 들어 스스로 교양역사서를 읽기 시작하면서 신라의 통일이 가지는 반민족성과 한심하기 짝이 없는 삼국통일의 전말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나에게 누군가 우리 역사에서 가장 아쉬운 순간이 무엇인가 묻는다면 이제는 주저없이 신라의 삼국통일을 말한다. 그런 의미에서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야말로 우리민족 최초의 자주적 통일이라는 점에서 커다란 의미를 가지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의 역사는 우리에게 버려진 역사가 되어 버렸다. 고려의 도읍이었던 개성이 북한에 있는 관계로 고려의 대부분 유적들도 북한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쉽게 접하기 어려웠고 조선에 비해 고려의 역사를 기록한 사서도 거의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고려라는 왕조를 잊은 채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나 역시도 학생시절에 고려의 역사에 대해서는 깜깜했던 기억밖에 없다. 왕건-강감찬-무신의난-몽고항쟁-위화도 회군 정도만 알고 있을 뿐 이었다. 그래서 내 기억속에 전혀 남아있지 않은 고려의 역사를 알고 싶은 생각에 이 책을 읽게 되었다.

후삼국의 통일과정에서 시작된 책은 초기 왕권을 둘러싼 어지러운 투쟁과 중국의 혼란기를 이겨나가는 고려의 실리적인 외교정책들, 120여년간의 평화로운 시기와 무인정권의 시기, 몽고의 침입과 항쟁, 친원파의 기승과 공민왕의 개혁, 그리고 위화도 회군과 조선의 건국에 이르기 까지 고려의 역사를 아우르고 있다. 그 중에는 내가 희미하게 나마 기억하고 있는 것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내용이 생소한 것이었다. 고려의 관직도 생소했고 근친끼리 결혼하는 왕실의 풍습도 낮설었다. 그래서 읽어나가기가 쉽지 않는 역사서였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내가 고려라는 왕조에 대해 얼마나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는지, 지금의 윤리의식으로 그 시대를 평가하는 나의 어리석음이 얼마나 많이 고려의 역사를 평가절하하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드라마 <태조 왕건>이나 <천추태후>에서 본 것과 완전히 다른 실제 역사, 작가의 창작이라는 왜곡을 거치지 않은 날것의 역사를 알 수 있었다는 것도 수확이었다. 그 시대 사람들의 생각대로 판단하고 그 시대 윤리의식에 의거하여 판단하기가 쉽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그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나름의 노력을 해 보았다는 점도 좋은 경험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어려운 책이다.

일단 그 흔한 유적사진, 영정사진 하나 없이 글로만 빽빽하게 쓰여진 500여 페이지의 책은 일반인들이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책이 다루고 있는 것이 생소한 고려의 역사이니 더 어려울 수 밖에. 이 책이 정통 역사서를 표방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교양역사서로 출간된 것이라면 좀 더 쉽게 쓸 수 있었어야 한다. 일반인들은 고려의 왕들의 가족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차라리 시대의 굵직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보다 재미있게 시대를 서술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물론 이 책은 집에 두고두고 소장했다가 고려의 역사가 궁금해질 때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참고서는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쉽게 접근하고 읽어내기엔 너무 딱딱하고 많은 분량이다. 개인적으로 교양역사서를 좋아하는 입장에서도 이런데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이 이 책을 접한다면 역사에 대한 편견을 더 깊게 만들 수 있다는 우려도 든다. 한마디로 너무 딱딱하고 어렵다. 

작가가 고려에 대한 편견을 없애려고 그렇게 노력을 하건만 나의 편견이 사라지지 않는 것 또한 문제이다. 물론 독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문제는 순전히 독자의 몫이라 하더라도 독자의 동의를 끌어내지 못한 것은 작가의 설득력이 부족한 탓도 있다. 나에게 아직도 후삼국의 통일은 왕건이 아닌 견훤의 몫이어야 했다는 생각이 강하고 그렇지 않다면 왕건이 아닌 궁예가 통일을 했어야 했다는 생각이 강하다. 또한 고려의 중립외교는 실리를  취했다기 보다는 강대국의 눈치를 보았다는 느낌이 여전하고 몽고에게 정복되지 않은 유일한 국가라는 자부심은 일찌감치 그들에게 항복해 버린 소국의 비애, 정복할 가치조차 주지 못한 약소국의 넋두리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아직 고려는 나에게 다가오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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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역습
허수정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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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판 명탐정 홈즈

이 작가의 전작을 읽지 못했다. 그래서 박명준이라는 인물을 처음 접한 나로서는 소설에서 10년전 사건이라고 나오는 이야기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읽는 내내 그 10년전의 사건이 궁금했었다. 전작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 나오는 인물들에 적응하기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 조선판 명탐정 홈즈라고 할 만한 명준의 뛰어난 통찰력과 날카로운 추리에 몰입해서 빠져 나올 수 없었다. 너무도 쉽게 읽었고 너무도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조선의 명탐정을 만들어준 작가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들을 좋아하고 그가 창조해 낸 가가와 유가와를 비롯한 멋진 형사들에 열광했던 나이기에 우리도 이렇게 멋진 탐정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은 하나의 축복이었다. 그만큼 명준의 캐릭터는 매력적이다.

기억하는 전쟁... 잊혀진 사람들

조선이 개국하고 정확히 200년 만에 일어난 '조일전쟁(임진왜란이라는 말로는 그 전쟁의 규모를 나타내기엔 많이 부족하다)'은 그 시대 동아시아 정세에 커다란 영향을 준 전쟁이었다. 개국 초기 조선의 기상은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 속에 사라진 지 오래이고 중국의 보호 아래 장기간 유지된 평화는 조선을 문약한 나라로 만들었다. 그 상황에서 망국적인 당쟁까지 발생한 조선은 오랜 전쟁으로 무장된 일본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고 조선의 운명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 전 세계 전쟁사 어디에서도 비교대상을 찾을 수 없는 이순신이라는 영웅의 기적같은 활약들과 권율을 중심으로 한 육군들의 선전, 자신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명나라의 전략적인 개입으로 조선은 기사회생했고 우리는 이순신이라는 영웅과 함께 그 전쟁의 기억을 오늘날도 되새기고 있다. 그러나 그 기나긴 전쟁의 기록속에 우리가 잊고지낸 이들이 있다. 수없이 죽어간 민초들은 제외한다 하더라도 자신들의 조국을 버리고 조선에 귀순하여 조선을 지켜내는데 힘을 보탠 '항왜'들에 대한 기록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다. 이 소설은 그 항왜들 중 한 사람인 '린'이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지우려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팩션에 추리를 더하다 !!!

정통사극이 사라지고 퓨전사극들이 TV를 점령하면서 역사소설에도 팩션의 바람이 분 지는 오래 되었다. 대부분의 팩션들은 역사의 한 순간에 주목하면서 '만약 이랬다면?'이라는 가정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거기엔 종종 살인사건들이 개입되기 때문에 추리소설의 형태를 띈 팩션들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팩션들이 사건의 추리에 중점을 두기 보다는 자신들이 설정한 가정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에 추리소설의 재미가 반감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 소설은 그런 아쉬움을 확실히 풀어주는 소설이다. 자신이 설정한 가정을 '책 속의 책' 형태로 봉인하고 살인사건의 해결에 중점을 두어서 본격적인 추리형 팩션을 완성했다. 책의 3분의 2 이상을 사건의 해결에 중점을 두었다. 거기에 군데 군데 깔아놓은 단서들과 순간 순간 뒤집어 내는 소소한 반전과 마지막의 커다란 반전까지 가진 완벽한 추리소설의 형태를 지닌다. 박명준이라는 걸출한 인물을 통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따라가며 자연스레 자신이 말하고자 했던 바를 전달하고 있다. 영리하다고 할 수 있겠다.

아쉬운 마케팅

책의 재미나 의미에 비해 마케팅의 아쉬움은 남는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의 감정은 추리소설 쪽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는 느낌인데 마케팅은 추리를 이어나가기 위해, 혹은 추리의 단서로 사용하기 위해 사용한 '히데요시 이야기'라는 책 속의 책에 중점을 두어 마치 책의 내용이 '히데요시 이야기'의 내용인 듯한 착각이 들게 만든다. 물론 작가의 집필의도가 '항왜'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겠다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책의 내용을 보았을 때 '항왜'들의 이야기는 소재에 가깝다는 느낌이다. 한 가지 더 태클을 걸자면 제목이 왜 '제국의 역습' 인지도 잘 모르겠다. '제국'이라는 것이 조선을 말하는 것인지 일본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명나라를 말하는 것인지... '역습'이라는 것이 '린'을 이용한 작전을 말하는 것인지 '린'이 들고간 가짜 정보를 말하는 것인지... 다소 주제와 벗어난 느낌이 든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추리형 팩션으로 보면 최고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마케팅에서 강조하는 '항왜'의 이야기를 생각한다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다. 결국 이 소설은 추리형 팩션으로 읽어야 참 맛을 알 수 있는 소설이다. 

덧.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고 싶어졌다. 특히 명준이 나온다는 '왕의 밀사'는 꼭 한번 읽고 싶어졌다. 명준이라는 캐릭터가 그처럼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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