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만과 편견, 그리고 좀비
세스 그레이엄 스미스 지음, 최인자 옮김, 제인 오스틴 / 해냄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서점에서 이 책을 보는 순간 오직 한가지 이유로 [오만과 편견]이라는 소설을 읽게 되었다. 바로 이 소설을 읽고 싶다는 강한 욕구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고전 소설의 하나이면서 이미 여러차례 영화로도 만들어져 흥행에 성공했던 초대현 고전 걸작소설에 감히 무엄하게도 좀비를 투입시킨 작가의 당돌함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이미 오래전에 읽었어야 했던 명작소설을 아직도 읽지 못했다는 민망함도 있었지만 이 책에 대한 궁금증이 너무도 컸기 때문에 내가 [오만과 편견]을 읽은 이유는 오직 이 책 한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오만과 편견]을 읽으면서 느꼈던 만족감 못지 않게 이 소설이 만들어 낸 새로운 이야기의 매력은 나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줄거리는 원작을 한치도 벗어나지 않는다. 등장인물, 사건, 이야기의 전개방향에서 사소한 대사 하나까지 원작의 틀을 벗어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래서 조금 지루할 것 같지만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감히 입에 담지 못할 것들'의 활약으로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게 읽어나갈 수 있다. 미국에서 성공하고 있는 패러디 영화들을 보면서 전혀 공감하지 못했기에 패러디라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던 내가 패러디 소설인 이 책을 읽으면서 패러디 문화의 매력을 충분히 느꼈다고 할 수 있다. 분명 똑같은 대사이지만 좀비들의 활약으로 얼마나 의미가 달라질 수 있는지, 좀비 사냥꾼으로 변신한 엘리자베스가 얼마나 매력적일 수 있는지, 좀비들의 공격으로 황폐화 된 영국이라는 배경이 원작을 얼마나 더 활기차게 만들 수 있는지... 패러디 문학이 가질 수 있는 매력을 모두 가진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고전이라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한다. 그러나 몇 백년 전의 작품들을 읽어 나가는 것이 현재의 독자들에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번역가가 번역을 한다 하더라도 지금의 시대와 맞지않는 그 시대의 가치관, 언어, 생활방식 등을 현대인들이 이해하게 만들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전이 배척되고 있는 지금의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 재기발랄한 패러디 소설 한권이 전해주는 의미는 매우 크다. 지금의 내가 그렇듯 잘 만든 패러디 소설은 원작을 찾아보게 만들게 된다. 또한 어렵고 힘든 원작을 쉽고 재미있게 간추리고 작가의 상상력으로 재구성 해 나가는 과정에서 이미 생명력을 다한 느낌의 고전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마치 오래되어 낡아빠진 가구를 리모델링 해서 새것과 같은 멋과 고전의 매력을 모두 간직한 새로운 가구로 만들어 내듯이 고전의 명작이라 일컬어지는 [오만과 편견]에 좀비를 투입하는 상상력으로 고전의 매력과 현대적 재미를 모두 가진 매력적인 소설이 탄생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좀비의 역할이 거의 전무하다 시피하고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하는 모습에 아쉬움도 있고 어설프게 동양의 무술을 18세기 영국으로 끌어들이려다 보니 다소 유치해 보이는 모습이 있고 동양에 대한 작가의 조금은 삐뚤어진 시각이 눈에 걸리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원작에서 얄밉게 보이던 인물들을 좀비의 습격으로 죽여 버리거나 불구로 만들어 버리고 때로는 결투를 통해 실컷 두드려 패는 장면들은 원작의 아쉬움을 달래주기도 한다. 물론 그 대상의 선정이 작가의 일방적인 판단에 의해서 이기는 하지만... 

하고 많은 존재 중에서 하필 좀비를 투입한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물론 작가는 아무런 의도가 없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독자의 입장에서는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욕심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감히 내 나름대로 판단해 보건데 산것도 죽은 것도 아닌 좀비라는 존재가 흔히는 명작이라 불리는 고전문학의 현주소와 닮아있다는 느낌이다. 말 그대로 좀비같은 존재로 남아있는 고전이라는 장르에 실제로 좀비를 투입해 되살려보고자 했던 노력. 그 노력의 결과가 바로 이 소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물론 오로지 나만의 작각일지도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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