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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역습
허수정 지음 / 밀리언하우스 / 2009년 7월
평점 :
품절
조선판 명탐정 홈즈
이 작가의 전작을 읽지 못했다. 그래서 박명준이라는 인물을 처음 접한 나로서는 소설에서 10년전 사건이라고 나오는 이야기를 알지 못한다. 그래서 읽는 내내 그 10년전의 사건이 궁금했었다. 전작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에 나오는 인물들에 적응하기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책을 읽는 동안 조선판 명탐정 홈즈라고 할 만한 명준의 뛰어난 통찰력과 날카로운 추리에 몰입해서 빠져 나올 수 없었다. 너무도 쉽게 읽었고 너무도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조선의 명탐정을 만들어준 작가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들을 좋아하고 그가 창조해 낸 가가와 유가와를 비롯한 멋진 형사들에 열광했던 나이기에 우리도 이렇게 멋진 탐정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은 하나의 축복이었다. 그만큼 명준의 캐릭터는 매력적이다.
기억하는 전쟁... 잊혀진 사람들
조선이 개국하고 정확히 200년 만에 일어난 '조일전쟁(임진왜란이라는 말로는 그 전쟁의 규모를 나타내기엔 많이 부족하다)'은 그 시대 동아시아 정세에 커다란 영향을 준 전쟁이었다. 개국 초기 조선의 기상은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 속에 사라진 지 오래이고 중국의 보호 아래 장기간 유지된 평화는 조선을 문약한 나라로 만들었다. 그 상황에서 망국적인 당쟁까지 발생한 조선은 오랜 전쟁으로 무장된 일본을 상대하기엔 역부족이었고 조선의 운명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다. 전 세계 전쟁사 어디에서도 비교대상을 찾을 수 없는 이순신이라는 영웅의 기적같은 활약들과 권율을 중심으로 한 육군들의 선전, 자신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한 명나라의 전략적인 개입으로 조선은 기사회생했고 우리는 이순신이라는 영웅과 함께 그 전쟁의 기억을 오늘날도 되새기고 있다. 그러나 그 기나긴 전쟁의 기록속에 우리가 잊고지낸 이들이 있다. 수없이 죽어간 민초들은 제외한다 하더라도 자신들의 조국을 버리고 조선에 귀순하여 조선을 지켜내는데 힘을 보탠 '항왜'들에 대한 기록은 이미 없어진 지 오래다. 이 소설은 그 항왜들 중 한 사람인 '린'이라는 인물을 통해 우리가 애써 외면하고 지우려하는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팩션에 추리를 더하다 !!!
정통사극이 사라지고 퓨전사극들이 TV를 점령하면서 역사소설에도 팩션의 바람이 분 지는 오래 되었다. 대부분의 팩션들은 역사의 한 순간에 주목하면서 '만약 이랬다면?'이라는 가정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거기엔 종종 살인사건들이 개입되기 때문에 추리소설의 형태를 띈 팩션들이 많은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의 팩션들이 사건의 추리에 중점을 두기 보다는 자신들이 설정한 가정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때문에 추리소설의 재미가 반감되는 것이 사실이다. 이 소설은 그런 아쉬움을 확실히 풀어주는 소설이다. 자신이 설정한 가정을 '책 속의 책' 형태로 봉인하고 살인사건의 해결에 중점을 두어서 본격적인 추리형 팩션을 완성했다. 책의 3분의 2 이상을 사건의 해결에 중점을 두었다. 거기에 군데 군데 깔아놓은 단서들과 순간 순간 뒤집어 내는 소소한 반전과 마지막의 커다란 반전까지 가진 완벽한 추리소설의 형태를 지닌다. 박명준이라는 걸출한 인물을 통해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따라가며 자연스레 자신이 말하고자 했던 바를 전달하고 있다. 영리하다고 할 수 있겠다.
아쉬운 마케팅
책의 재미나 의미에 비해 마케팅의 아쉬움은 남는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의 감정은 추리소설 쪽에 무게를 두어야 한다는 느낌인데 마케팅은 추리를 이어나가기 위해, 혹은 추리의 단서로 사용하기 위해 사용한 '히데요시 이야기'라는 책 속의 책에 중점을 두어 마치 책의 내용이 '히데요시 이야기'의 내용인 듯한 착각이 들게 만든다. 물론 작가의 집필의도가 '항왜'들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겠다는 것이었다 하더라도 책의 내용을 보았을 때 '항왜'들의 이야기는 소재에 가깝다는 느낌이다. 한 가지 더 태클을 걸자면 제목이 왜 '제국의 역습' 인지도 잘 모르겠다. '제국'이라는 것이 조선을 말하는 것인지 일본을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명나라를 말하는 것인지... '역습'이라는 것이 '린'을 이용한 작전을 말하는 것인지 '린'이 들고간 가짜 정보를 말하는 것인지... 다소 주제와 벗어난 느낌이 든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추리형 팩션으로 보면 최고의 작품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마케팅에서 강조하는 '항왜'의 이야기를 생각한다면 아쉬움이 많이 남는 작품이다. 결국 이 소설은 추리형 팩션으로 읽어야 참 맛을 알 수 있는 소설이다.
덧. 이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고 싶어졌다. 특히 명준이 나온다는 '왕의 밀사'는 꼭 한번 읽고 싶어졌다. 명준이라는 캐릭터가 그처럼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