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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외인종 잔혹사 - 제14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주원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박정희를 민족의 영웅으로 생각하고 '똘이장군'과 정확히 일치하는 반공의식을 지닌 보수꼴통이라 불리우는 퇴역장교 장영달.
외국계 글로벌 기업의 비정규직으로 있으면서 명품중독에 빠져 카드 돌려막기로 세상을 버티고 있는 비정규직 윤마리아.
자본주의의 세상에서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위해 노력하다 실패하여 낙오된 채 시간을 견디고 있는 노숙자 김중혁.
학생이라는 신분은 이미 오래전에 버려버리고 나름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변명으로 살아가는 게임중독의 최악의 10대 가무.
세상의 시각에서 절대로 함께 숨쉬는 인종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을 말 그대로 버려진 '열외인종'들이
자본주의의 거대한 용광로인 서울의 한복판, 그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코엑스'에 한날 한시에 모인다.
퇴역장교는 자신의 투철한 반공의식에 따른 소영웅주의의 실현을 위해,
비정규직은 자신을 정규직으로 이끌어 주고 자신의 상황을 일거에 바꾸어 줄 기적같은 인연을 위해,
게임에 빠진 10대는 게임 속에서만 분출할 수 밖에 없었던 원인모를 분노를 표출하고 게임포인트 2만점을 얻기 위해,
노숙자는 노숙자들 중에 메시아가 등장하여 그들에게 살만한 세상을 되돌려주는 혁명을 일으킨다는 예언서의 실현을 보기 위해...
각자의 사연에 따라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세상에서 열외된 인종들이 한 날 한 시에 한 장소에 모이면서 현실인지 아닌지 판단할 수 없는 기막힌 테러의 한복판에 서게 된다.
서울시내 한복판, 번화와 발전과 자본주의의 상징인 '코엑스'에서 발생한
양머리 인간들의 어처구니없는 인질극을 소재로 한 소설이 우리나라에서 출간되었다는 것 자체가 쇼킹이다.
내가 인지하고 있는 한국 문학계에서 이런 소재가 소설로 나온다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우리나라의 문학도 조금은 유연해졌다는 생각에 나의 불온한 선입견이 조금은 해소된 느낌이다.
그리고 이 기가막히게 황당한 소재를 가지고 능수능란하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작가의 솜씨가 신인으로 믿기 힘들 정도다.
물론 내가 문학을 아는 것도 아니고 프로의 능력은 손톱만큼도 가지고 있지 않은 순순한 독자이기 때문에
문학적인 평가나 문체에 대한 평가, 문학계에서 보는 시각들에 대해 말할 자격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독자의 입장에서 이런 소재로 이런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를 만난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기쁨이고 행운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한 거지?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
논리적이고 이해되는 스토리에 익숙해진 독자들이 던질 수 있는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하나도 없다.
애초에 이런 질문들에 대한 대답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는 듯이 처음부터 끝까지 황당하기만 하다.
황당하여서 실제일 수 없는 이야기를 너무도 뻔뻔하게 실제인 듯 이야기하는 작가의 당당함에 기가질려서
어느새 이 모든 사건들이 실제로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일까?라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렇게 뻔뻔하게 이야기를 풀어내고는 마지막에 가서 그 뻔뻔함 그대로 제대로 된 봉합도 하지 않는다.
흡사 일단 열어놓고 보니 손댈 수 없는 암덩어리를 발견한 듯 서둘러 도망쳐버리는 작가의 무책임함에 어이가 없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작가의 어이없고 뻔뻔한 태도가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무서운 곳으로 변한 것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엄습해 온다.
어느새 우리는 소설속의 무자비한 폭력이 두렵지 않고
소설속 무자비한 테러가 있을 수도 있는 그런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흔히들 '묻지마 범죄'라고 불리는 것들이 너무도 흔해져 버린 세상이다.
우리는 어쩌면 아무런 대상도 없는 분노를 안고 살아가는 시한폭탄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자본주의 세상에 적응하며 나름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하는 우리이지만
속으로는 무자비한 폭력을 무기로 하는 무차별적인 분노를 찬고 살아가오 있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을 그런 우리의 분노를 대신 폭발시켜주어서 왠지모를 통쾌함을 느끼게 해준다.
이런 소설... 우리의 정신 건강에 참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