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이스트
스티브 로페즈 지음, 박산호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스포일러와 같이 영화를 세세히 설명해주는 친절함(?) 때문에 영화소개 프로그램을 보지 않은 지 몇 년이나 지났다. 그러나 얼마 전 우연히 보게 된 영화소개 프로그램에서 내 주목을 끌었던 영화가 바로 '솔로이스트' 였다. 클래식에 전혀 관심도 없고(솔직히 클래식을 들으면 잠을 자는 경우가 태반이다. ^^) 음악에도 문외한 이지만 영화의 내용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고 난 후 서점에서 원작이라는 이 책을 본 후 바로 인터넷으로 주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책은 쓸쓸함이 찾아들기 시작하는 이 계절에 너무도 포근하고 따뜻한 감성을 전해 주었다. 보물을 하나 건진 듯한 기분이랄까....

 칼럼리스트인 로페즈는 어느날 우연히 도심 한복판 터널에서 줄이 2개 밖에 남지 않은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나다니엘을 보게 된다. 범상하지 않은 그의 연주와 노숙자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의 공손하고 우아한 태도에 이끌린 로페즈는 나다니엘을 소재로 칼럼을 쓸 생각을 하게 된다. 범상치 않은 연주실력은 과연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나다니엘은 20대 초반에 줄리어드에 장학금을 받고 다니던 천재 음악가였던 것이다. 장래가 총망되던 그가 어느날 갑자기 찾아 온 정신분열증이라는 질병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고 거리에서 노숙하는 악사로 전락해 버린 것이었다. 나다니엘의 과거를 알게 된 로페즈는 그의 과거를 추적하기 시작하고 그것들을 칼럼으로 쓰게 된다. 그의 칼럼은 전 미국인의 감성을 자극하고 나다니엘이 살고 있는 스키드 로의 처참한 현실에 애써 눈을 감았던 이들의 반성을 이끌어 내어 작은 기적을 만들게 된다.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다. 이 책은 실화이다.

 더럽고 냄새나고 불쾌한 존재. 서울역에만 가 보아도 수많은 노숙자들이 있다. 그들은 대부분 '행려병'이라고 하는 일종의 정신병을 가지고 있다. 우리 사회처럼 정신병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넘쳐나는 곳에서 그들의 삶이란, 그들의 과거란 아무의 관심도 끌 수 없는 그들만의 기억일 뿐 이다. 지금의 그들의 모습에 우리가 던지는 한 마디의 욕설로 무시할 수 없는 삶이 그들에게 있었음을, 우리의 작은 관심과 노력이 그들에게 그런 삶을 조그이나마 회복하게 만들 수 있음은 우리는 알지 못한다. 이 책에서 로페즈가 보여주는 것은 헌신이나 봉사가 아니다. 그저 나다니엘을 한 사람의 친구로 대해주고 지켜봐 주는 것. 그에게 친구로서 도움을 주는 것 만으로 그가 만든 기적은 대단한 것이다.

 나다니엘에게 로페즈는 최고의 행운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결국 더 큰 보답을 받은 것은 어쩌면 로페즈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는 나다니엘을 통해 의미를 잃고 슬럼프에 빠졌던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자신의 역할에 대한 만족감을 되찾았고 자신의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알게 되었으며 타인을 도우면서 얻을 수 있는 마음의 보물을 경험할 수 있었다. 또한 진정한 우정의 의미를 통해 자신의 가치가 더 높아짐을 경험할 수 있었다. 나다니엘 또한 로페즈의 선의를 통해 잃어야만 했던 과거에 대해 조금이나마 회복할 기회를 얻었고 스스로의 벽 안에서 한 걸음 나올 수 있었다. 그들의 만남은 어쩌면 하늘이 두 사람 모두에게 선사한 최고의 선물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정신병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은 너무도 가혹하다. 그들도 단지 아플 뿐인데... 감기나 몸살처럼 정신이 아플 뿐인데... 그들에 대한 이해를 우리가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라는 반성을 해 본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동정이나 내가 그들에게 무언가를 베푼다는 우쭐함으로는 그들에게 다가설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동정이나 베품이 아니다. 그저 그들도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인격체로 지켜봐 주는 것. 그에게 친구가 되어주는 것. 우리는 결코 그들보다 잘난 인간이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로페즈가 나다니엘을 '아이어스 씨'라고 불러 주었을 때에야 그들의 관계가 정상이 될 수 있었을을 기억해야 한다.

 서서히 차가움이 묻어나는 바람이 스쳐가는 시절에 따뜻한 커피와 함께 읽을 만한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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