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웃는 집
법륜스님 지음 / 김영사 / 2009년 9월
평점 :
절판


원효대사의 유명한 해골 일화를 통해서 '일체유심조'라는 깨달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마음에서 비롯되고 인간의 행복은 마음의 조화라는 것을 모두 알고 있지만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그 유명한 진리를 모르는 듯 살아갑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혼자 사는 것이 아닌 바에야 인간관계에서 갈등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모든 인간관계의 기초이며 사회의 가장 기본 단위라고 할 수 있는 가족에서도 그 갈등은 존재합니다.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가장 친밀한 관계인 가족에서의 갈등은 행복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가장 가까운 관계이기 때문에 그 속에서의 갈등은 가장 큰 상처를 남기기 때문이지요.
이 세상 그 모든 갈등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관계인 가족간의 갈등을 해결하는 것은 그래서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이 책은 세상의 가장 기본적인 관계인 가족간의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법륜스님을 찾아와 갈등과 고민을 말하는 불자들을 위해 법륜스님이 대신 전해주는 부처님의 말씀입니다.
모든 갈등은 모든 것을 자기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자기 중심적인 사고의 결과입니다.
나를 기준으로 생각하고 상대는 상대를 중심으로 생각하다 보면 서로의 이해가 상충할 때 갈등이 생기는 것이죠.
그러니 나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마음을 버리고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는 마음을 가지면 갈등은 사라지는 것이죠.
상대방에게 양보하고 뭔가 손해를 보는 느낌이라고 생각하지만 결국엔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가족간의 갈등으로 인해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대신에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면 괴로움이 사라지니 자신도 행복해집니다.
결국 모든 것이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하는 원효대사의 '일체유심조'에 다름이 아닙니다.
우리는 행복해 지는 방법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그 실천을 못하고 있을 뿐이죠.
이 책을 읽으면서 다시한번 1000년전 원효대사의 커다란 깨달음이 가슴속에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좀 아쉬운 점이 있습니다.
법정스님의 '무소유'라는 책을 보면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면서도 전혀 종교적인 색채가 없습니다.
언제나 펼쳐보더라도 언제나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는 책이죠.
그런데 법정스님의 이 책은 법회의 법어들을 모아놓은 것이어서 그런지 종교적 색채가 진합니다.
저는 비록 종교를 믿지 않지만 불교에 조금 더 호의적인 사람인데 이 책의 종교적 색채는 마음에 걸립니다.
그 종교적 색채가 다시 이 책을 펼치기 조금 어렵게 만듭니다.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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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파라다이스
강지영 지음 / 씨네21북스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역시나 첫인상은 중요하다. 사람도 그렇고 소설도 그렇고 작가도 그렇다.
강지영이라는 작가를 [신문물 검역소]를 통해서 처음 접했기 때문에 [굿바이 파라다이스]에서 만난 강지영은
생전 처음 만나는 작가인 듯 낯설고 그녀의 이야기는 잔혹하고 끔직하다.
[신문물 검역소]의 재기발랄함에 빠져서 그녀의 사진까지 찾아보았던 내게
그녀의 잔인한 단편집 [굿바이 파라다이스]는 충격, 그 자체였다.
사진속에서 생글생글 웃고 있던 여류작가가 썼다고 하기에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피빛 진혼곡이다.

10편의 단편이 들어있는 이 단편집에는 모두 죽음이 등장한다.
단 한편만 제외하고는 진한 피빛으로 물들어 있고 그 죽음의 방식은 잔혹하다.
생글생글 웃고있던 사진속의 작가가 그런 표정으로 이렇게 잔인한 이야기를 천연덕스럽게 해댄다.
그리고는 작가 후기에서 그 모든 책임(?)을 애꿎은 외할머니에게 전가하고 있다. 
정말로 기가막히게 뻔뻔하게 야하고 끔찍하고 잔인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피가 낭자한 세상이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라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다.
갓 30을 넘었다는 작가의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녀가 바라보는 세상은 절망적이다.
천국보다는 지옥을 닮아가고 있는 세상, 잔인한 소설속 이야기 보다 더 끔찍한 세상의 모습을
야하고 잔인하고 끔찍한 이야기들로 시니컬하게 비판한다. 자신은 한발짝 물러서서 지켜보면서...

"다시 말씀드리지만 당신은 몇 시간 전 지옥에서 돌아왔습니다.
 환생이라는 걸 믿지 않으시나 보군요. 
 전생에 당신은 옳지 못한 일을 많이 저질렀습니다.
 그리고 죽어서 지옥에 떨어졌지요.
 죗값은 지옥에서 이미 치러졌습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당신이 지난 생이라고 기억하는 그곳이 바로 지옥이었습니다.
 이제 다음 생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착하게 사세요. 또 뵙죠."
-P. 263~264

책의 제목이기도 한 <굿바이 파라다이스>라는 단편에서 작가의 주제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대림역에서 지하철에 뛰어들어 자살한 행상에게 미지의 인물이 건네는 이 대사가 이 책의 주제입니다.
작가는 벌이 살지않는 벌집같은 쪽방이 있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면서 연쇄살인을 저지르는 살인마가 있고,
개들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우스운 자기 딸을 성폭행하는 아비가 있고, 손가락으로 사람을 죽이는 악플러가 있고,
상상할 수도 없는 잔혹함을 즐기는 두 얼굴의 새디스트들이 있고, 살아도 살아있지 못한 좀비같은 인생이 있는
이 세상이 지옥이라고 말한다. 우리 모두는 지난 생에 많은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에 그 벌을 받는 것이라고 한다.
어이없고 화가나는 작가의 맹렬한 비난이지만 그녀보다 10년을 더 살았다는 내가 도저히 그 비난에 변명할 수 없다.

세상은 이미 지옥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소설속에 나오는 죽음의 피해자들이 어쩌면 이 지옥에서 벗어난 행운아일지도 모른다.
잔혹함과 끔찍함이 낭자한 피빛으로 어우러지는 지옥같은 세상에 대한 진혼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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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만화책 - 캐릭터로 읽는 20세기 한국만화사, 한국만화 100년 특별기획
황민호 지음 / 가람기획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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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기억속에 만화방은 작은 일탈의 장소로 남아있다.
지금이나 그때나 만화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에
만화방은 언제나 부모님 몰래 들어가서 낄낄거리며 어린 시절의 스트레스를 풀어버리던 해우소였다.
그 만화방에서 동네 형들에게서 조금씩 세상을 배워갔고
만화속 주인공들은 유년의 나의 기억속에서 세상 누구보다도 나를 잘 이해해주는 친구였다.
그 시절 만화는 지금의 화려한 3D 그래픽이 동반된 애니메이션과는 다른 것이었다.
볼거리, 놀거리가 흔치 않던 시절에 만화방은 어린이들의 최고의 놀이터였고
그에 비례하여 동네 만화방은 학부모들의 최고의 골치거리였다.
나이가 들어 이제는 사라진 그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주는 책이 출간되었다.

고바우, 꺼벙이, 고인돌, 땡이, 독고탁, 이강토, 강가딘, 장독대, 둘리, 오혜성, 구영탄, 최강타....
나의 유년을 함께 했고 나의 청소년기에 세상에 대한 창을 제공했던 나의 벗들.
이제는 서점에서 찾아보기 힘들고 인터넷에서 조차 그 흔적을 더듬을 수 없게 된 그들.
꺼벙이의 엉뚱한 행동은 어린시절 내가 여러번 따라하다 부모님에 매를 벌었던 행동들이었고
독고탁의 기가막힌 마구를 던져 보겠다고 운동장 바닥에 수없이 넘어져야했고
이강토의 멋진 주먹과 슈퍼맨 같은 능력은 언제나 선망의 대상이어고
오혜성의 반항적인 눈빛과 엄지에 대한 순애보는 그대로 나의 청소년기 정체성으로 이어졌고
구영탄의 조금은 덜 떨어진 모습과 바보같은 순박함과 희생정신은 세상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만들어 주었다.
그들은 나에게 친구였고 나의 든든한 빽이었으며 나에게 세상을 가르쳐 준 스승이기도 했다.
책의 제목인 '내 인생의 만화책'은 제목 그대로의 의미를 나에게 부여한다.

70년애에서 80년대에 이르는 시기는 말 그대로 만화의 천국이었다.
어린시절 나의 유일한 호사였던 '보물섬'은 어머니가 공부 이외의 것으로 나에게 준 유일한 선물이었고
'소년동아', '영챔프'를 비롯한 수많은 소년잡지들과 그 속에 연재되었던 만화속 주인공들이 한국만화의 전성기를 만들었다.
TV 프로에서 만화가 선생님이 나와서 치솔로 사람얼굴을 그려내는 것을 보면서 신기해했던 기억은
나와 같은 시절을 살았던 동년배들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그림일 것이다.
지금은 인터넷의 발달로 '웹툰'이라는 이름으로 만화를 접하게 되고 일본만화들의 홍수속에 
그 시절을 주름잡던 출판만화는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만화방은 도서대여점으로 변해버렸다.
그와 함께 나의 추억속 주인공들도 하나 둘 자취를 감쳐버려 너무도 아쉬웠는데 이 책은 그들을 모두 살려내 주었다.
그들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나의 기억속에 유년의 추억들과 함께 지금도 살아있었음을 이 책을 통해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 친구들과의 유쾌한 재회는 이 책을 읽는 동안 나의 입가에 작은 미소를 남긴다. 진한 그리움과 함께....

요즘의 웹툰들을 보면 스토리의 부족을 느낀다.
하나의 장편으로 이어지는 스토리 보다는 짤막한 에피소드들의 나열로 순간의 웃음을 유도한다.
웹툰의 캐릭터들도 일관된 모습으로 긴 이야기를 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에피소드의 상황속에서 성격을 드러내는 단편적인 느낌이 강하다.
패스트푸드처럼 짧은 유통기간을 지닌 요즘 세대의 성격과 많이 닮아있다.
긴 호흡을 가지고 뚝배기같은 은근함을 가졌던, 그래서 긴 이야기를 풀어내던 그 시절의 만화가 그리워진다.
그래서 내가 '강풀'이라는 만화가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
인터넷 시대에 긴 호흡을 가지고 긴 이야기를 풀어내 진한 감동을 전하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강풀'같은 만화가들의 이러한 시도가 그 시대와 지금의 시대를 이어주는 가교의 역할을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한국만화의 미래는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

책을 읽으면서 다시 오혜성과 구영탄과 최강타를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인터넷 서점을 돌아 다녀도 그들을 만나기란 참 어려웠다.
다시 한번 '아마게돈'의 오혜성을 만나고 싶은데 이제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유년시절의 기억속에 살아 숨쉬고 있는 나의 오랜 친구들과의 유쾌한 재회뒤에 그들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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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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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서도 나는 한번도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았다.
기억이 미치는 가장 오래전부터 그 분의 호칭은 언제나 '울엄마'였다.
나이가 들어 머리가 굵어져도, 결혼을 해서 아버지가 되어서도 그렇게 온전히 '울엄마'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온전히 '울엄마'로 존재했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돌아가신 11월은 언제나 스산한 가을바람보다 시린 가슴속 상처에 대한 기억으로 슬픈 계절이다.
그런데 어쩌자고 이 계절에 나는 이 소설을 읽었단 말인다.
아물지 않은 상처에 짜디짠 소금을 뿌리듯 이렇게 가솜속에 생채기가 다시 살아날 걸 뻔히 알면서도....

베스트셀러를 싫어하는 병이 있는 내가 이 책을 미리 읽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조금 멀어지고 신드롬이라 불리는 현상이 가라앉을 즈음을 기다리다
이제서야 읽게 되었는데 그 시점이 하필이면 어머니를 보내드린 그 계절이라니....
어쩌면 그렇게 온몸으로 울부짖으며 보내드렸으면서도 서서히 잊어가고 있는 어머니가
하늘에서 나를 보시면서 괘씸한 생각에 이렇게 시간을 맞춰서 보내주신 소설인가 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라도 잠시나마 당신을 기억해 달라고... 망각속에 방치하지 말아달라고....

어느날 갑작스레 발생한 어머니의 실종.
항상 곁에 있었으나 그 존재감을 인지하지 않았던 가족들에게 갑작스레 닥친 어머니의 부재.
이런 저런 핑계로 이미 마음속에서 잃어버린지 오래인 어머니의 물리적인 부재는
미처 깨닫지 못한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과 위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다시 느끼게 한다.
딸의 시각에서, 아들의 시각에서, 그리고 남편의 시각에서 어머니의, 반려자의 부재를 바라보며
미처 말하지 못한 회한과 잘해주지 못한 일들에 대한 후회와 함부로 대한 일들에 대한 사죄가 고해성사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그 고해성사의 화자는 '너', '그', '당신'에게서 고해성사를 받는 성직자, 잘못을 용서하는 절대자처럼 서술된다.
그 '너', '그', '당신'의 자리에 '나'를 대입하면 온전히 나의 이야기가 되는 고해성사는 슬프고 눈물난다.
모든 것이 그렇듯 소중한 것은 그것이 부재했을 때에만 소중함을 알게된다.
소설을 통해 다시금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해도 시간이 지나면 원래의 소홀함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나마 잠시나마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는 존재가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슬픈을 미리 막을 수 있겠지만
나처럼 이미 그 대상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이 소설의 고해성사는 한마디 한마디 비수처럼 가슴에 꽂힌다.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고 하지만 자식도 부모를 가슴에 묻게 되는 것임을 난 미처 알지 못했다.
해마다 이 계절에 아무리 먹어도 배가 차지 않는 허기짐을 느끼는 나의 가슴엔 커다란 구멍이 뚫렸음을 이제는 안다.

나 자신이 '울엄마'의 아들이고 한 여자의 남편이고 한 아이의 아버지이기에
각자의 시각에서 쓰여지는 이 소설의 모든 고해성사들이 오롯이 나의 고해성사이다.
이미 나의 '울엄마'는 물리적으로 영원히 부재할 수 밖에 없지만 나에겐 아직 나의 아내와 나의 아들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소중함을 항상 잃어버리고 살아간다. 또 다시 가슴에 스스로 못을 박는 중 이다.
소설속 아버지가 어머니에 대해 반성하는 모든 행동이 내가 지금 아내에게 하는 행동과 똑같고
소설속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느끼는 미안함의 근원이 모두 나의 지금의 모습과 똑같다.
대체 어쩌려고 나는 이렇게 살고 있는가? 이제라도 반성을 해야겠다. 난 참 나쁜 놈이다.

어머니를 보내드리는 장례식 내내 눈물 한방울 나오지 않았다.
주변에서 상주가 눈물 한방울 안 흘린다고 수근대는 소리가 들렸어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울엄마'를 화장장으로 모시던 날 새벽에 모두들 잠들고 혼자 빈소를 지키며
우두커니 '울엄마'의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정사진에서 웃고있는 '울엄마'를 보고 있자니 어느 순간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한 두 방울로 시작된 나의 울음은 결국 통곡으로 바뀌었고 난 그렇게 한참을 울어야 했다.
내 생애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던 그날의 기억이 소설을 읽는 동안 되살아났다.
난 과연 '울엄마'를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언제나 보게 된 '울엄마'의 처녀적 사진이 참으로 생소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이리도 무심한 큰 아들을 '울엄마'는 지금도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을것이다. 안쓰러운 눈빛으로....

단지 엄마에 대한 소중함이 아니다.
나를 둘러싼 가족 모두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소설이다.
과연 베스트셀러가 될 수 밖에 없는 그런 소설이다. 작가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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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에 행진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억관 옮김 / 재인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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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부터 뒷골목의 생태를 온몸으로 겪으며 협박과 폭력을 수단으로 살아가는 요코야마.
일본 최고의 학교를 나와 최고의 회사에 입사하지만 '과집중증'으로 인해 고문관이 되어버린 미타.
돈밖에 모르고 돈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든 하는 아버지를 경멸하며 살아가는 치에.
우연히도 25살 동갑인 이들이 치에의 아버지의 돈 10억을 '꿀꺽'하기 위해 뭉쳤다.
우연에 우연이 겹쳐 뭉친 3인조에 일본의 야쿠자인 후루야와 중국의 도박장 전문 절도범들까지 엉키면서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속는 복마전 속에 10억을 향한 진흙탕 싸움이 시작된다.

책을 읽는 내내 우리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이 떠올랐다.
대책없는 청춘들의 대책없는 내지르기라는 점도 닮아있고
주인공들의 계획에 서로 다른 이해집단이 끼어들면서 좌충우돌하는 것도 비슷하다.
게다가 해피엔딩이라 해야할 지 뭔가 잘못되었다고 해야할 지 애매한 결말까지...
배경도 다르고 주인공들의 모습도 다르고 이야기의 전개과정도 다르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머리속에서 이 영화가 떠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읽은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들 중에 이 작품처럼 영화같은 이야기는 없었다.
'이라부 시리즈'는 요절복통할 만한 이라부의 기행속에서 카타르시스를 느꼈지만 영화같지는 않았고
<남쪽으로 튀어>는 아버지의 캐릭터가 무수한 웃음을 제공하지만 역시 영화화 하기엔 과장이 좀 심한 느낌이다.
<최악>과 이 소설 <한밤중의 행진>은 영화로 만들어도 충분한 정도의 소설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든다.
톡톡튀면서 살아있는 각각의 캐릭터와 서로가 물고 물리는 치밀한 이야기의 구성,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이야기의 전개와 박진감 넘치는 도심 속 자동차 추격전,
10억을 향한 등장인물들의 치밀한 두뇌싸움도 있으니 오락영화로서 최고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한편의 영화를 보듯 쉽게 몰입하여 즐겁게 읽어 나갈 수 있었다.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들 중에서 단연코 가장 높은 오락성을 가진 소설이다.

오쿠다 히데오는 추리소설 작가가 아니다. 
그러나 이 작품을 통해서 난 그가 추리소설을 쓰더라도 충분히 성공할 수 있으리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지막에 가서 일어나는 반전의 연속은 어떤 추리소설보다도 재미있었고
'툭' 던지듯이 뿌려놓은 작은 단서들이 그런 반전의 복선으로 작용하는 것을 보면
분명히 추리소설을 썼어도 독자들의 시선을 책에 고정시키는 마력을 발휘했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참에 그의 추리소설을 기대해보면 어떨까?
이라부처럼 대책없는 사고뭉치 탐정이 유쾌하게 사건을 풀어나가는 추리소설. 
상상만해도 정말 재미있을 것 같다. 오쿠다 선생님, 어떠신가요?

조금은 벗나가 버린 대책없는 청춘들의 대책없는 10억 탈취기.
한편의 영화를 보듯 재미있고 쉽게 읽어 나갈 수 있는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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