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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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어서도 나는 한번도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았다.
기억이 미치는 가장 오래전부터 그 분의 호칭은 언제나 '울엄마'였다.
나이가 들어 머리가 굵어져도, 결혼을 해서 아버지가 되어서도 그렇게 온전히 '울엄마'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그렇게 온전히 '울엄마'로 존재했던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돌아가신 11월은 언제나 스산한 가을바람보다 시린 가슴속 상처에 대한 기억으로 슬픈 계절이다.
그런데 어쩌자고 이 계절에 나는 이 소설을 읽었단 말인다.
아물지 않은 상처에 짜디짠 소금을 뿌리듯 이렇게 가솜속에 생채기가 다시 살아날 걸 뻔히 알면서도....

베스트셀러를 싫어하는 병이 있는 내가 이 책을 미리 읽지 않은 것은 당연하다.
사람들의 시선에서 조금 멀어지고 신드롬이라 불리는 현상이 가라앉을 즈음을 기다리다
이제서야 읽게 되었는데 그 시점이 하필이면 어머니를 보내드린 그 계절이라니....
어쩌면 그렇게 온몸으로 울부짖으며 보내드렸으면서도 서서히 잊어가고 있는 어머니가
하늘에서 나를 보시면서 괘씸한 생각에 이렇게 시간을 맞춰서 보내주신 소설인가 보다.
이 책을 읽으면서라도 잠시나마 당신을 기억해 달라고... 망각속에 방치하지 말아달라고....

어느날 갑작스레 발생한 어머니의 실종.
항상 곁에 있었으나 그 존재감을 인지하지 않았던 가족들에게 갑작스레 닥친 어머니의 부재.
이런 저런 핑계로 이미 마음속에서 잃어버린지 오래인 어머니의 물리적인 부재는
미처 깨닫지 못한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과 위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다시 느끼게 한다.
딸의 시각에서, 아들의 시각에서, 그리고 남편의 시각에서 어머니의, 반려자의 부재를 바라보며
미처 말하지 못한 회한과 잘해주지 못한 일들에 대한 후회와 함부로 대한 일들에 대한 사죄가 고해성사처럼 펼쳐진다.
그리고 그 고해성사의 화자는 '너', '그', '당신'에게서 고해성사를 받는 성직자, 잘못을 용서하는 절대자처럼 서술된다.
그 '너', '그', '당신'의 자리에 '나'를 대입하면 온전히 나의 이야기가 되는 고해성사는 슬프고 눈물난다.
모든 것이 그렇듯 소중한 것은 그것이 부재했을 때에만 소중함을 알게된다.
소설을 통해 다시금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해도 시간이 지나면 원래의 소홀함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나마 잠시나마 소중함을 깨달을 수 있는 존재가 살아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슬픈을 미리 막을 수 있겠지만
나처럼 이미 그 대상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이 소설의 고해성사는 한마디 한마디 비수처럼 가슴에 꽂힌다.
부모는 자식을 가슴에 묻는다고 하지만 자식도 부모를 가슴에 묻게 되는 것임을 난 미처 알지 못했다.
해마다 이 계절에 아무리 먹어도 배가 차지 않는 허기짐을 느끼는 나의 가슴엔 커다란 구멍이 뚫렸음을 이제는 안다.

나 자신이 '울엄마'의 아들이고 한 여자의 남편이고 한 아이의 아버지이기에
각자의 시각에서 쓰여지는 이 소설의 모든 고해성사들이 오롯이 나의 고해성사이다.
이미 나의 '울엄마'는 물리적으로 영원히 부재할 수 밖에 없지만 나에겐 아직 나의 아내와 나의 아들이 있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소중함을 항상 잃어버리고 살아간다. 또 다시 가슴에 스스로 못을 박는 중 이다.
소설속 아버지가 어머니에 대해 반성하는 모든 행동이 내가 지금 아내에게 하는 행동과 똑같고
소설속 어머니가 자식들에게 느끼는 미안함의 근원이 모두 나의 지금의 모습과 똑같다.
대체 어쩌려고 나는 이렇게 살고 있는가? 이제라도 반성을 해야겠다. 난 참 나쁜 놈이다.

어머니를 보내드리는 장례식 내내 눈물 한방울 나오지 않았다.
주변에서 상주가 눈물 한방울 안 흘린다고 수근대는 소리가 들렸어도 눈물이 나지 않았다.
'울엄마'를 화장장으로 모시던 날 새벽에 모두들 잠들고 혼자 빈소를 지키며
우두커니 '울엄마'의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영정사진에서 웃고있는 '울엄마'를 보고 있자니 어느 순간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한 두 방울로 시작된 나의 울음은 결국 통곡으로 바뀌었고 난 그렇게 한참을 울어야 했다.
내 생애 가장 많은 눈물을 흘렸던 그날의 기억이 소설을 읽는 동안 되살아났다.
난 과연 '울엄마'를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언제나 보게 된 '울엄마'의 처녀적 사진이 참으로 생소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이리도 무심한 큰 아들을 '울엄마'는 지금도 하늘에서 지켜보고 있을것이다. 안쓰러운 눈빛으로....

단지 엄마에 대한 소중함이 아니다.
나를 둘러싼 가족 모두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는 소설이다.
과연 베스트셀러가 될 수 밖에 없는 그런 소설이다. 작가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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