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조선의 왕이로소이다 - 조선 왕 10명과의 불편한 대화
문효 지음 / 왕의서재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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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로 운이 좋아 인터파크의 새로운 전자책인 'Biscuit'의 체험단이 되어
처음으로 받아서 읽은 전자책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책은 '콩점이'라는 가상인물이 조선의 역대 왕들 중에서 논란의 중심이 된
총 10명의 왕들과 가상의 인터뷰를 진행하는 방식으로 조선의 역사를 말한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군주제를 채택하고 있었지만 중국의 황제와는 전혀 달랐다.
중국의 황제가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강력한 힘을 지녔던 것에 비해
조선의 왕은 특별한 존재가 아닌 모든 사대부들 중에서 1등 사대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래서 조선의 역사를 통해서 왕권과 신권의 대립은 모든 사건의 중심이 되었으며
결론적으로 왕권이 신권을 이겼던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조선의 왕은 불쌍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역사에서 절대로 용서받지 못할 왕들은 있게 마련이다.

나의 개인적인 역사관과 비슷하게 이 책의 작가도 '선조'와 '인조'는 그런 왕들이다.
그 외 조선의 기틀을 잡았으나 2차례 왕자의 난으로 오점을 남김 '태종'과
조선의 왕들 중에서 몇 안되는 성군의 정치를 했으나 단종을 죽인 오점을 남긴 '세조',
조광조를 기용한 개혁으로 반정공신들의 손에서 벗어나려 했으나 실패했던 '중종' 등
10명의 왕들의 입으로 듣는 조선의 역사와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해야만 했던 이유들,
조선의 역사를 관통하는 왕권과 신권의 대립과 그로인한 수많은 사건들을
알기쉽고 읽기 싶게 풀어 쓴 재미있는 교양역사서이다.

콩점이로 대별되는 작가가 조선의 왕들에게 던지는 질문들은 그들의 치세에서
가장 핵심이 될 수 있는 사건들이고 콩점이의 시선은 날카롭게 날이 서있다.
아무리 성군이라고 일컬어지는 영조와 정조에게도 그의 시선은 날카롭고
성군이라 말하는 그들의 정치도 결국엔 백성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왕권과 신권의 대립에서 자신들의 왕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결국 왕과 신하들의 끊임없는 대립의 틈바구니에서 백성들은 없었다고 말한다.
조선이 일본에서 국권을 빼앗기면서 맞이하는 최후도 결국은 그런 것이 원이이었다고 말한다.
지금의 정치인들이 꼭 한번은 읽으면서 가슴에 새겨 두어야 할 말들이 아닌가라는 생각이다.

역사의 가정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가정을 한다.
우리가 그런 가정을 하는 이유는 그 시대의 역사가 너무 아쉽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아쉬움, 그 시대 지도층의 잘못된 선택에 따른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 책의 왕들에게 콩점이가 따지는 그들의 잘못이 되풀이 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지금의 정치인들은 그래서 반드시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현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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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이다
성석제 지음 / 하늘연못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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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다 보면 혼자 알고 지내기엔 아쉬운 이야기들이 많다. 자신이 직접 겪은 황당하거나 씁쓸하거나 우스운 일들도 있고 친구나 이웃에게서 전해들은 이야기들도 있다. 우리가 모두 소설가가 아니고 글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이런 이야기들이 소설이나 수필의 형태로 발간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그런 부담이 없이 누구나 인터넷상에서 글을 올릴 수 있게 만든 것이 요즘 대세를 이루고 있는 싸이월드나 트위터, 블로그 같은 소셜네트워크이다. 소셜네트워크가 전 세계적으로 붐을 이루고 생활의 양식을 바꾼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고 욕구가 강하다는 뜻이다. 내가 비록 밥벌이로 인터넷을 사용하고 세상은 인터넷으로 돌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인터넷에 정이 가지 않는 사람들, 인터넷에 적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성석제의 신간인 [인간적이다]는 이런 소셜네트워크를 지면으로 끌어드린 것이라 할 수 있다.

250 페이지 남짓한 두께에 무려 49개의 이야기가 들어 있다. 어떤 것은 2장이 안되는 이야기도 있고 심지어 책의 뒷면에 전문이 실리는 이야기도 있다. 이런 짧은 이야기들의 나열은 언제 어디서나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내가 어디까지 읽었던가를 고민할 필요도 없이 이야기 중간에 읽는 것이 중단되는 위험도 없이. 또한 이야기 하나 하나에 위트와 재치가 넘쳐난다. 성석제라는 작가는 이름도 많이 들었고 TV에서도 얼굴을 본 기억이 있는데 그의 책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그의 재치넘치고 웃음을 유발하는 말빨에 강한 매력을 느낀다. 그렇다고 마냥 웃기기만 한 이야기도 아니다. 대부분이 웃음을 담고 있지만 그 속에서는 역설적으로 인간에 대한, 사회에 대한, 그리고 예의에 대한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는 문제들에 대한 작가의 깊은 생각이 담겨있다. 짧은 이야기에 잠깐 웃고나서 읽는 시간보다 조금 더 오래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이야기들이다.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도 있고 친구나 지인들에게 전해들은 이야기도 있다. 그 모든 이야기들이 소설의 제목처럼 모두 지극히 '인간적이다'. 특별한 사람들이 겪는 특별한 경험이 아닌 내가 당장 오늘 저녁에 겪을 수도 있는 이야기들. 그렇기에 더 공감이 가고 더 몰입하게 되는 이야기들. 고된 하루를 보내고 저녁 막걸리 집에 모여앉아 즐겁게 수다를 떨며 나누는 편안한 이야기들이다. 소설이 어떤 생각을 담아야 하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이 소설은 전혀 소설같지 않는 소설이다.  그러나 누구나 편하게 읽을 수 있고 잠깐 생각할 거리를 주는 것도 소설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소설은 딱 그런 취향에 들어맞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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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 법정 잠언집
법정(法頂) 지음, 류시화 엮음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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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스님이 열반에 드셨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오래전 읽었던 [무소유]가 생각났다.
아직도 내 서재에 꽂혀있고 가끔씩 마음을 비우고 싶어지면 손이 가는 책.
불혹의 나이에 아직도 철이 안 든 나와 어려서 철이없는 아들까지 2명의 남자들 때문에
하루도 속이 편할 날이 없는 내 마눌님도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 두고 읽는 책.
그러나 스님이 열반하시고 난 후 스님의 유지와는 다르게 돌아가는 세상의 모습에
실망하게 되고 그래서 더욱이 스님의 책은 더 이상 소유하려 하지 않았지만
불혹의 나이인 내가 꼭 읽어야 할 책인듯 생일선물로 손에 들어오게 되었다.

[무소유]의 스님은 아직은 젊은 수행자의 모습을 느끼게 했다면
이 책의 스님은 끊임없는 성찰로 인생의 깊이를 깨달은 부처를 닮아있다.
스님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붙들어야 할 가치가 담겨있다.
소유한다는 것은 거꾸로 소유를 당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무소유의 철학,
언제나 '너는 너의 생의 어디에 서 있는가?'라고 물으며 얻는 자기성찰과 
그 과정에서 얻어지는 온전한 자기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삶의 방식,
세상의 모든 만물에서 진실을 얻어낼 수 있는 진정한 명상의 힘과 침묵의 힘 등.
스님의 말씀처럼 '욕망을 채우려 하지 말고 가치를 추구하는 삶'을 위한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스님의 삶 자체가 무소유의 삶이었고 자연과 하나가 되는 삶이었기에
스님의 말씀들이 그대로 우리의 삶에 적용될 수는 없다는 것이 우리의 비극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대로 적용하기가 어렵다 하더라고 어떤 형태로는 우리의 삶에서 실천할 수도 있는 것들이다.
산속에 깊이 들어가지 않는다 해도 하루에 10분의 명상은 우리도 할 수 있는 것이고
말하고자 하는 욕망을 단 10초만 참고 자신의 생각을 숙성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도 가능하다.
하루에 한번씩 '너는 네 생의 어디에 서 있는가?'라고 묻는 자기성찰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스님의 말씀들은 공허한 이론이나 실천 불가능한 이상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서 충분히 실천할 수 있는 삶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지극히 도시적인 사람이다. 태어나서 한번도 도시를 벗어나 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자연을 즐긴다는 핑계로 훼손할 줄은 알지만 자연을 벗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TV와 휴대폰으로 대변되는 도시적이고 직선적이 삶에 익숙한 나머지 스님의 곡선적인 삶을 알지 못한다.
그러나 언제나 마음속에는 곡선적이고 여유로운 삶에 대한 동경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의 스님의 말씀들을 통해서 내가 동경하고 있는 삶의 단편들을 대신해 볼 수 있다.
비록 그런 삶을 살지는 못하지만 스님의 말씀을 통해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는 즐거운 경험을 얻는다.

책을 읽다보면 책의 내용에 따라 읽는 동안 내 얼굴의 표정이 드러나고 감정에 따라 심장이 뛴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 얼굴에 평온한 미소가 떠나지 않았고 내 마음은 고요한 호수같은 느낌이었다.
만원버스 안에서도 흔들리는 손잡이에 매달려서도 마음만을 평온할 수 있었다.
세상에 지쳐 힘든 사람들,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이 책은 추천할 만한 책이지만
그런 사람이 아니라도 그 누구에게나 책장속에 꽂아두고 언제든지 꺼내볼 수 있는 책이라고 추천할 수 있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귀한 보물을 하나 얻은 기분이다. 스님에게 고개숙여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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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모른다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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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회는 수많은 관계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관계들 가운데서 가장 기초적인 관계가 '가족'이다.
가장 기초적이지만 가장 끈끈한 관계라고 말하는 '가족'.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끈끈함이라는 것을
실제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가? 말로만, 그저 세속의 관점으로만 '끈끈해야만 하는 관계'로 보인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온 가족이 한 식탁에 마주앉는 시간이 하루에 몇분이나 되는가? 
오히려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관계가 있는 상황에서 가족이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무역업을 하는 김상호의 가정이 있다. 김상호는 아내 진영옥을 만나 재혼을 했다. 전처와의 사이에서
큰딸 김은성과 아들 김혜성을 두었고 진영옥에게서 작은 딸 김유지를 얻었다. 재혼한 가정에서 큰딸은
떨어져 혼자 지내고 아들은 집의 2층에서 혼자 지낸다. 아내는 헤어진 옛연인을 몰래 만나고 작은 딸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잃어버리고 살아간다. 자신은 가족들 모두에게 밝힐 수 없는 비밀을 지니고 있다.
한 집에서 모여 살기는 하지만, 혹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있기는 하지만 이들은 서로에게 끈끈함을
가지지 않고 있다. 경제적인 가장으로서 김상호를 끈으로 느슨하게 묶여있을 뿐...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가족의 관계에 작은 딸 김유지의 실종이라는 폭탄이 떨어지면서 가족을 지키기 위한 스스로의
싸움이 시작된다.

  소설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 가족은 이렇치는 않다는 위안(?)을 가지게 되고 나 역시 그렇다.
그러나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족의 모습이 이 가족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경제위기라는 이유로 회사에 발목이 잡힌 아버지들은 매일 늦게 퇴근하고 맞벌이를 나선 엄마도 부재한다.
삐뚤어진 교육열의 희생양이 된 아이들은 하루종일 학원에 휘둘리고 저녁 또는 밤이 되서야 집에 돌아온다.
부모의 부재속에 아이들을 홀로 방치된 채 가족간의 소통은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소설속에 나오는 김상호의 가족과 지금 우리사회의 가족의 모습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이 소설은 더 섬뜩하다.
소설속의 이야기가 언젠가는 우리들의, 나 자신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친다.

  재혼 가정의 부조화, 이방인(소설에서는 화교지만 현실에서는 더 많을 것 같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과 따돌림,
가정에서 방치되어 삐뚤어진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아이들, 아이들이 스스로의 가치관을 키우도록 돕지 못하는 사회,
장기밀매라는 반인륜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무서운 세상 등. 소설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은 많지만 깊지는 않다.
소설속에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비추고 있지만 작가가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회의 어둠이 아니라
가족의 붕괴와 그 속에서 함께 허물어져 가는 가족 구성원들의 절망을 그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제는 가족이다.

  결국 아이의 실종은 경찰의 손에서 풀리게 된다. 그럼 애초에 왜 그들은 경찰에 의지할 수 없었는가?
김상호는 자신이 경찰에 떳떳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진영옥은 자신이 가족에게 떳떳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김혜성은 스스로 가족의 일원이 아니었기 때문이고 김은성은 자신이 김유지에게 떳떳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변명(?)들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이 가족이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니가 뭘 알어?' 혹은 '당신은 몰라도 돼!' 라는 생각으로 말하지 못한 비밀들 때문이다.
모두가 상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서로의 상처를 드러내고 가족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유지가 집을 떠나 '하울링'을 만나러 가는 이유도 가족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가족 밖에서 스스로의 상처를 보듬으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것은 소통의 부재에서 시작된 것이다.

  세상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력의 의미가 행복의 절대기준으로 자리잡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부모의 부재와 아이들의 방치로 인한 가족의 해체는 점점 더 가속도가 붙는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무너지는 가족을 지키기위한 최소한의 조치는 무엇인가? 작가는 그것이 바로 소통이라 말한다.
돌아온 김유지를 통해 김은성이 진영옥의 상처를 엿보고 김상호의 투옥을 보면 진영옥이 김상호의 힘겨움을 알고
김유지의 부재를 통해 스스로가 가족에서 역할을 해야함을 깨달은 김혜성의 모습이 어우려져서
마지막에가서는 조금은 더 정상적으로 보이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는 에필로그를 보면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다.

  추리소설의 형태를 빌러왔기 때문에 읽는 내내 지루함이 없었다. 재미와 의도의 균형을 적절히 맞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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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다이스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임희근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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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언제나 그렇듯 그의 상상력은 예상을 뛰어넘어 내 뒤통수를 칩니다.
[개미]와 [타나토노트]-[천사들의 제국]-[신]으로 이어지는 시리즈,
그리고 [파피용], [아버지의 아버지], [뇌] 등의 장편들도 언제나 재미있지만
그의 단편들은 장편에서 느끼지 못했던 재미와 장편으로 발전시키지 못한
그의 상상력 덩어리들을 야생의 모습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매력이 있습니다.
이미 [나무]라는 단편집을 통해서 단편 작가로서의 능력을 보여준 바가 있기에
그의 신작이 단편집이라는 사실이 선택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단편소설은 '설익은 사과' 같은 느낌이 들어서 잘 읽지 않는데
그의 단편은 [나무]에서 이미 접해 보았기에 그런 선입견을 없앨 수 있었습니다.

[나무]에서 나오는 단편들, 그의 상상력들은 자신의 주변에서 소재를 찾습니다.
간혹 보다 큰 주제를 가진 단편들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소소한 일들에 대한 상상이었죠.
그에 비해 [파라다이스]의 상상력은 그 범위를 전 지구적, 나아가 전 우주적으로 발전 시킵니다.
첫번째 단편부터 환경오염이 심해져 위기에 처한 지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그런 상황에서 환경을 오염시키는 전기, 석유가 사라진 사회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습니다.
한번 휴가를 가기 위해서는 비행시간 내내 페달을 밟아야 하는 비행기가 나오는 식이죠.
그 외에도 한 사람의 야욕으로 핵전쟁의 위기에 처해 버린 지구의 이야기,
더 이상 번식이 되지 않아 나비를 매개로 한 식물과 같은 번식을 하게 되는 인류의 이야기,
거대 기업들이 국가의 경제력을 뛰어넘어 각자의 상표를 걸고 우주전쟁을 벌이는 이야기 등.
지구와 환경, 여성성의 위대함과 거대 자본의 폐혜 등의 다소 어려운 주제들을 지닌 단편들이 많습니다.
물론 지극히 개인적이고 다소 철학적인 주제들을 가진 단편들도 있지만 이번의 주제는 다소 어렵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제가 어렵다고 이야기가 재미가 없거나 따분하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따분하고 어려운 주제도 재미있는 이야기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그의 천재적 상상력이 있으니까요.

언제나 책을 읽으면서 이 책의 제목이 왜 이런 제목일까 생각해보는 버릇이 있습니다.
이 책의 제목은 왜 '파라다이스'일까요?
아마도 작가는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우리가 생각하는 파라다이스라는 말을 하고 싶었나 봅니다.
작가의 상상속에서 그려진 지구와 인간의 미래는 아무리 좋게 보아도 지금보다 나아보이지 않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런 상상속의 미래는 지금 우리의 작은 행동과 실천에 따라 현실이 될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지구와 환경에 대한 조금의 배려, 여성의 위대함에 대한 작은 생각, 
스스로가 스스로를 죽일 수 있는 무시무시한 핵무기에 대한 지구적인 견제 등,
우리의 작은 행동에 의해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파라다이스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작가가 어느 책에선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만약 우주에서 우리만이 유일한 존재라면, 우리가 모두 사라지면 우주는 어떻게 될지를 생각하면
너무나도 무섭다'는 의미의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많은 공감을 가지게 했던 그 문장을 이 소설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가 너무도 귀한 존재이며 우리가 사는 지구가 최고의 파라다이스임을 잊어서는 안되죠.
만약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파라다이스를 무너뜨린다면 전 우주가 어떤 모습일지... 정말 무섭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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