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는 수많은 관계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관계들 가운데서 가장 기초적인 관계가 '가족'이다. 가장 기초적이지만 가장 끈끈한 관계라고 말하는 '가족'.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끈끈함이라는 것을 실제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가? 말로만, 그저 세속의 관점으로만 '끈끈해야만 하는 관계'로 보인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온 가족이 한 식탁에 마주앉는 시간이 하루에 몇분이나 되는가? 오히려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관계가 있는 상황에서 가족이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무역업을 하는 김상호의 가정이 있다. 김상호는 아내 진영옥을 만나 재혼을 했다. 전처와의 사이에서 큰딸 김은성과 아들 김혜성을 두었고 진영옥에게서 작은 딸 김유지를 얻었다. 재혼한 가정에서 큰딸은 떨어져 혼자 지내고 아들은 집의 2층에서 혼자 지낸다. 아내는 헤어진 옛연인을 몰래 만나고 작은 딸은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을 잃어버리고 살아간다. 자신은 가족들 모두에게 밝힐 수 없는 비밀을 지니고 있다. 한 집에서 모여 살기는 하지만, 혹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있기는 하지만 이들은 서로에게 끈끈함을 가지지 않고 있다. 경제적인 가장으로서 김상호를 끈으로 느슨하게 묶여있을 뿐...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가족의 관계에 작은 딸 김유지의 실종이라는 폭탄이 떨어지면서 가족을 지키기 위한 스스로의 싸움이 시작된다. 소설을 읽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우리 가족은 이렇치는 않다는 위안(?)을 가지게 되고 나 역시 그렇다. 그러나 조금만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족의 모습이 이 가족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경제위기라는 이유로 회사에 발목이 잡힌 아버지들은 매일 늦게 퇴근하고 맞벌이를 나선 엄마도 부재한다. 삐뚤어진 교육열의 희생양이 된 아이들은 하루종일 학원에 휘둘리고 저녁 또는 밤이 되서야 집에 돌아온다. 부모의 부재속에 아이들을 홀로 방치된 채 가족간의 소통은 점점 더 힘들어지는 것이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소설속에 나오는 김상호의 가족과 지금 우리사회의 가족의 모습은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이 소설은 더 섬뜩하다. 소설속의 이야기가 언젠가는 우리들의, 나 자신의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소름이 끼친다. 재혼 가정의 부조화, 이방인(소설에서는 화교지만 현실에서는 더 많을 것 같다)에 대한 우리 사회의 차별과 따돌림, 가정에서 방치되어 삐뚤어진 방식으로 스트레스를 푸는 아이들, 아이들이 스스로의 가치관을 키우도록 돕지 못하는 사회, 장기밀매라는 반인륜적인 사건이 벌어지고 있는 무서운 세상 등. 소설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은 많지만 깊지는 않다. 소설속에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비추고 있지만 작가가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회의 어둠이 아니라 가족의 붕괴와 그 속에서 함께 허물어져 가는 가족 구성원들의 절망을 그리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주제는 가족이다. 결국 아이의 실종은 경찰의 손에서 풀리게 된다. 그럼 애초에 왜 그들은 경찰에 의지할 수 없었는가? 김상호는 자신이 경찰에 떳떳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진영옥은 자신이 가족에게 떳떳하지 못했기 때문이고, 김혜성은 스스로 가족의 일원이 아니었기 때문이고 김은성은 자신이 김유지에게 떳떳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변명(?)들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이 가족이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니가 뭘 알어?' 혹은 '당신은 몰라도 돼!' 라는 생각으로 말하지 못한 비밀들 때문이다. 모두가 상처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서로의 상처를 드러내고 가족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김유지가 집을 떠나 '하울링'을 만나러 가는 이유도 가족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정할 수 없었기 때문에 가족 밖에서 스스로의 상처를 보듬으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모든 것은 소통의 부재에서 시작된 것이다. 세상은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력의 의미가 행복의 절대기준으로 자리잡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부모의 부재와 아이들의 방치로 인한 가족의 해체는 점점 더 가속도가 붙는 현실이다. 이런 현실에서 무너지는 가족을 지키기위한 최소한의 조치는 무엇인가? 작가는 그것이 바로 소통이라 말한다. 돌아온 김유지를 통해 김은성이 진영옥의 상처를 엿보고 김상호의 투옥을 보면 진영옥이 김상호의 힘겨움을 알고 김유지의 부재를 통해 스스로가 가족에서 역할을 해야함을 깨달은 김혜성의 모습이 어우려져서 마지막에가서는 조금은 더 정상적으로 보이는 가족의 모습을 보여주는 에필로그를 보면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다. 추리소설의 형태를 빌러왔기 때문에 읽는 내내 지루함이 없었다. 재미와 의도의 균형을 적절히 맞춘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