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설턴트 - 2010년 제6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회사 3부작
임성순 지음 / 은행나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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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 컨설턴트라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 
그는 회사를 위해 사람들을 구조조정하지만 구조조정의 대상은 죽음이다.
그가 하는 일은 죽음이 필요한 사람에게 완벽한 시나리오를 제공하는 일.
누군가의 죽음이 필요한 사람이 회사에 의뢰하면 그는 완벽한 시나리오를 제공한다.
일종의 청부살인이지만 세상에 노출되는 사망원인은 자살, 사고사, 혹은 지병에 의한 사망.
그 누구도 의심을 하지않는 완전범죄를 위한 시나리오를 제공하는 킬러가 그의 직업이다.
처음에 읽을 때 이게 정말 가능한가?라는 의구심을 가지게 되지만
작가의 뛰어난 글솜씨 때문인지 이 세상 어딘가에는 이런 조직과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 생각이 점점 커져서 버스에서 내 옆에서 피곤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아저씨가 
혹시나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은 아닐까?라는 피해망상적인 비약에까지 이르게 한다.
그만큼 작가의 글솜씨와 치밀한 구성이 강한 설득력을 지니게 되고 이야기에 흠뻑 빠지게 만든다.

소설의 주인공의 직업이 실제로 존재하는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 직업이 있던 없던 간에 우리가 행하는 모든 행동들이 타인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한 사람의 죽음에는 수많은 원인이 있고 그 원인들을 제공하는 것은 결국 그와 부대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소설의 주인공이 제공하는 완벽한 시나리오를 제공하는 역할은 크게는 우리 사회가
작게는 우리와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내 주변의 사람들이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작가는 날이면 날마다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사고들과 자살소식을 접하면서 이 소설을 기획했는지도 모른다.
수없이 반복되고 있는 사고들과 자살들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나와는 상관없다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과연 이렇게 아무런 죄의식 없이 살아가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라는 의문에서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무거운 질문을 쉽게 읽히는 소설의 형태로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블러드 다이아몬드’라는 영화를 통해서 다이아몬드와 아프리카 내전의 관계를 알게 된 경험이 있다.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이른바 ’공정무역’이라는 것을 통해서도 그런 문제를 다시한번 깨닫게 된다.
인간의 만들어 낸 자본주의의 그늘에서 고통받는 사람들과 그들의 고통으로 편하게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소설은 ’콩고’라는 공간과 ’탄탈’이라는 소재를 통해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
그런 일깨움 속에 기독교적 원죄의 의미를 자본주의에 대입하여 지금의 우리 사회를 비추고 있다.
존재 자체가 죄악이 되는 지금의 자본주의의 세상에서 나 역시 아프리카의 누군가를 죽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 깨달음을 얻는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소설 속 주인공 처럼 그저 ’어쩔 수 없다’는 변명만 할 뿐.
그런데 어쩌자고 작가는 이런 사실을 굳이 알려줄려고 했을까?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어쩔 수 없다는 변명으로 얼버무리더라도 알 건 알아야 한다는 의미일까? 아직은 모르겠다.
그러나 최소한 이 책을 읽기 전에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했던 것과는 조금은 내 시각이 달라졌다.
어떤 점에서 달라졌다고 꼭 집어 말할 수 없지만 달라진 것은 분명하다. 그것이 작가의 의도일까?
소설에 처음부터 나오는 '구조는 조정되지 않는다'는 문장만 머리속에 박혀있다.

내용의 심각함과는 달리 소설 자체의 재미는 대단하다.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는 작가의 이력에 걸맞게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재미가 있다.
추리소설의 기법을 적용하여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의 직업과는 달리 인간적(?)인 주인공의 사랑이야기가 들어가서 애절하기도 하고
그가 만드는 완벽한 시나리오는 섬뜩하기도 하며 회사의 능력에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한 마디로 영화 몇 편은 본 듯한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멋진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소설의 미덕은 재미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소설은 내게 정말로 대박이다.
재미도 있고 거기에 의미도 있으니 이 이상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내게는 걸작이다.

올해 읽은 소설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소설이다. 대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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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눕 - 상대를 꿰뚫어보는 힘
샘 고슬링 지음, 김선아 옮김, 황상민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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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서 사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해 보자.
당신은 그녀(그)에 대해, 그녀의 성격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을 것이다.
사귀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녀에 대해 많이 알게 될수록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진다.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당신은 그녀의 집에 초대를 받게 된다. 그녀의 방을 보게 된다.
당신이 유능한 스누퍼라면 이것은 그녀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가 된다.
스누퍼들은 그녀의 집에, 그녀의 방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단서들을 통해 그녀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유능한 스누퍼가 될 수 있는 방법들과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왜곡된 단서들을 피해가는 방법을 설명한다.

스누핑이란 타인이 일상생활 속에서 흘려놓은 수많은 단서들을 바탕으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아내는 방법이다.
스누핑이 적용되는 가장 일상적인 분야는 '프로파일링'이라고 불리는 범죄심릭학이라고 할 수 있다.
불과 얼마 전에 있었던 김길태 사건을 통해서 보았듯이 유능한 스누퍼는 방을 보는 것만으로 대략의 모습까지 알아낼 수 있다.
내가 즐겨읽는 수많은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형사들을 보면 아주 작은 단서에서 사건의 전말을 추리해 낸다.
물론 작가의 창작으로 이루어진 가상의 사건이지만 그런 추리의 과정에 논리적 근거를 제공하는 것도 스누핑과 관련되어 있다.

유능한 심리학자인 저자는 대학생 기숙사를 대상으로 하는 '침실연구'를 통해서 스누핑을 소개하고 있다.
외향성, 동조성, 개방성, 신경성, 성실성의 5가지 분류를 통해 사람들의 성격을 크게 구분하고
사무실이나 침실 등의 실제공간과 페이스북, 홈페이지 같은 가상의 공간,
심지어 그의 아이팟에 들어있는 음악들과 즐겨듣는 음악들의 리스트 등의 모든 흔적들을 통해
스누핑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성격이 5가지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성향을 나타내는지 분석한다.
그의 연구과정에서 행하는 실험들은 우리가 흔히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과 비슷한 결과를 나타내기도 하고
우리가 예상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모든 과정을 통해 올바른 스누핑을 위한 기준을 제시하고 스누핑에서 실수하기 쉬운 함정들을 피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다른 사람에 알고 싶어하는 것은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는 인간들에게는 본능과도 같은 욕구이다.
그런 욕구를 충족하는데 스누핑은 유능한 도구가 된다.
그렇다고 스누핑이 단순한 호기심의 충족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나오는 예와 같이 스누핑과 건축학이 조화를 이루어 우리가 보다 편안한 휴식을 얻을 수도 있다.
스누핑의 응용분야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기에 이 책은 매우 실용적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스누핑이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우리도 모르게 흘리고 다니는 수많은 단서들이다.
역으로 말하면 이런 단서들을 의도적으로 조작하면 타인들에게 자신에 대한 판단을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에 의하면 노련한 스누퍼들은 그런 조작을 피해 그 사람의 실체에 다가가는 방법을 알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무의식적으로 흘리는 단서들을 통해 상대방의 실체에 접근하는 심리학적 방법론이 매우 흥미롭다.
꽤나 두꺼운 책이었고 주제가 가볍지도 않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롭게 읽어 나갈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을 스스로 스누핑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내가 살아가면서 나도 모르게 흘린 단서들을 조합하여 이 책의 방법론을 따라가면
정말로 무서울 정도로 나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자아상을 발견하게 된다.
그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자아상과 많은 차이가 있고 불만스러운 모습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반성하며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이 책을 다 읽고나니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 이 책의 서평을 부탁한 출판사가 어쩌면 나를 스누핑 한 것이 아닐까?
 내가 블로그에 써 놓은 수많은 포스트를 통해서 어쩌면 나의 성향을 파악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
만약 그랬다면 이 책의 서평을 부탁한 그 직원은 유능한 스누퍼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나에게 그렇게 재미있는 책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자신에 대해, 자신이 알고 싶은 누군가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면 이 책은 반드시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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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가 바보들에게 - 우리시대의 성자 김수환 추기경, 우리 영혼에 깊은 울림을 주는 잠언들 김수환 추기경 잠언집 1
알퐁소(장혜민) 옮김, 김수환 글 / 산호와진주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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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신론자 입니다.
종교는 인간의 의식이 만들어 낸 허상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석가탄신일도 크리스마스도 휴일 이상의 의미는 없습니다.
그 중에서도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더 강합니다.
너무나 독선적인 세계관과 극성스러운 선교활동은 보기 싫으니까요.
종교지도자들의 잠언집들은 나에게는 종교라는 벽 때문에 접하기 힘든 분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교를 떠나서 모두에게 가르침을 주는 큰 스승들은 있습니다.
얼마전 열반하신 '법정스님'이 그러하며 이 책의 주인공인 '김수환 추기경'도 그러합니다.

작년 초 추기경님이 하늘나라에 드셨을 때 명동성당 앞을 지나간 적이 있습니다.
내가 보기엔 왜 저럴까? 싶을 정도로 추기경님을 애도하는 사람들의 물결은 대단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추기경님이 생전에 보여주셨던 모습들이 결코 거짓된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종교라는 방패 뒤에 숨어서 정의를 외면하지 않고 당당히 한국의 민주화에 한 획을 그으셨던 분.
자신을 바보라고 칭하며 평생을 자신을 낮추며 살아가는 모습으로 모두에게 가르침을 주신 분.
생의 마지막 모습에서 조차 '고맙습니다, 사랑하세요'라는 말씀으로 또 다시 큰 가르침을 주신 분.
그 분의 주옥같은 가르침을 묶은 이 책을 그래서 두고 두고 읽어야 할 인생의 교과서 입니다.
'법정 스님'의 무소유가 시간이 지나고 내 삶의 지표가 되듯 이 책 또한 내 인생에 두고 두고 되새길 가르침입니다.

추기경님은 이 책을 통해서 '사랑'을 말하고 있습니다.
평생을 사랑을 추구하며 살아가신 모습 그대로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을 전합니다.
타인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봉사와 희생을 통해 스스로 바보가 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추기경님 자신이 이미 그런 바보의 삶을 살았고 우리에게도 그런 바보의 삶을 살아보라 권하고 있습니다.
나 자신이 추기경님의 가르침을 모두 따라할 수 없기에 어쩌면 나는 그런 바보마저 되기가 힘들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가치는 더욱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바보가 될 수는 없지만 바보가 되기위해 노력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고마운 책이기 때문입니다.

종교라는 벽 때문에 이 책을 이제서야 읽는 나 자신의 편협함에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종교적인 내용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것들이 가르침의 크기를 작게 만들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을 모두에게 자신있게 권합니다. 
이 책을 손에 드는 순간, 참된 인생을 살아가는 또 하나의 무기를 갖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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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의 비극 - Mystery Best 1
엘러리 퀸 지음, 강호걸 옮김 / 해문출판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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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들을 좋아한다.
초반부에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흘린 단서들,
혹은 초반부에 이미 부정되었던 사건의 내막들이
마지막에 가서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 퍼즐의 조각들로 묶이면서
예상치 못한 반전과 그 속에 담기는 인간의 모습을 잘 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 그 모든 게이고의 재능이 어쩌면
이 책 한 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하는 의문이 생겼다.
역시 세계 3대 추리소설이라는 명성이 허언이 아니었음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작품이다.

세상의 기준으로 부족한 것이 없으나 저주받은 피를 부여받은 해터집안.
해터집안의 가장인 '요크해터'(Y)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요크의 죽음 두달 후, 귀머거리에 장님인 그의 딸 루이자에 대한 독살미수사건이 발생하고
그로부터 2주 후 요크의 부인의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된다.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사건들 속에서 전직 배우출신 레인의 활약이 펼쳐진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물론 마지막의 충격적인 반전에 있다.
나의 경우 에필로그에 써 있는 '악마 하나는 사라졌지만 악마들은 남아있다'라는 문장을 보고서야
반전을 겨우 짐작할 수 있었지만 반전을 이끌어내는 논리적 추론은 불가능했다.
말 그대로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던'  Y의 비극이 주는 충격은 너무나 크다.
논리적으로 추론이 가능한 상식적인 사람들의 범죄는 어떻게든 해결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논리적인 것이 하나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의 범죄는 해결이 쉽지 않다고 한다.
상식적인 추론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로 구성된 해터 집안에서 벌어지 범죄는 그래서 더욱 해결이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유일한 목격자는 귀머거리에 장님이고 탐정은 귀머거리이다.
이런 설정을 해 놓은 상태에서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작가의 능력은 이 소설의 가치는 높히고 있다.
이 소설이 왜 세계 3대 추리소설 중에 하나인지 마지막의 반전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일반적인 추리소설과는 달리 범인에 대한 처벌로 끝나지 않은 결론도 의미가 있다. 
또한 주인공 레인의 고뇌를 통해 드러나는 작가의 메시지도 강하다. 모든 것이 어우려져 멋진 작품이 나왔다.

반전의 매력에 더해 반전을 만들어가는 과정 또한 매력적이다.
범인은 이미 초반에 드러나 있었고 범인을 찾아낼 단서도 있었으며 단서에 따른 추론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단서와 추리들이 또다른 논리에 의해 부정되었는데 그것이 결국엔 수사의 발목을 잡는다.
범인의 트릭에 넘어간 것이 아니라 상식적으로 부정될 수 밖에 없었던 사건의 진상 자체가 트릭이 된다.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문제는 동양의 성선설과 성악설의 논쟁과 맞닿아 있다.
악이란 인간의 선택의 문제이고 인간의 환경은 그런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더욱 무섭게 느껴진다.
이미 발표된 지 80년이 되어가는 고전 속에서 지금의 우리가 꺠달아야 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이미 시대를 초월하는 명작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이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 나에게 실망을 안겨 준 해문출판사의 번역을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번역은 단순한 해석이 아니라 또 다른 창작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작업을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 책의 번역을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의 현재 직역과 전혀 차이가 안나는 수준이다. 
의역이나 창작이 전혀 없는 직역된 번역을 읽는 것은 인내심을 요구한다. 아쉽다.

그러나 번역의 문제를 충분히 견디고 남을 만큼의 매력을 가진 추리소설의 걸작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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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
김인숙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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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역사에서 두번의 반정이 있었으니 중종반정과 인조반정이 그것이다.
중종반정은 희대의 폭군이라는 '연산군'을 몰아낸 반정이라서 어느정도 명분이 있다면
인조반정은 정권에서 밀려난 서인세력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일으킨
명분이 없는 반정이었고 억지로 가져다 붙인 명분이 '명나라에 대한 의리' 였다.
이미 기울어져 가는 명나라에 대한 썩어빠진 사대를 명분으로 일어나 반정의 결과는
우리 역사상 가장 치욕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삼전도의 굴욕'이었고 소현은 그 피해자였다.

소현은 한 나라의 세자의 자격으로 적국의 볼모로 잡혀가는 치욕을 겪어야 했고 9년을 그리 살았다.
그리고 꿈에도 그리던 자신의 나라에 환국한 후 불과 한달여 만에 독살설 휘말린 의문의 죽음을 당한다.
얼마 전 최고의 히트를 기록했던 드라마 '추노'에서 잠깐 언급되었던 대로 소현을 따르는 이들은 많았다.
소현세자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서인세력과 그들의 소행에 눈을 감았던 인조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는 것이
어느정도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소현의 사후에 강빈과 자식들에게 가해진 가혹한 비극만 보더라도...
이 소성를 읽을 때의 기대는 그 시대의 정치적 상황과 그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는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런 정치적 상황이나 시대적 배경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하나도 언급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소설이 그리고 있는 것은 적국에서 외로워야 했던 소현의 마음이다.

아비의 반정의 명분이 명나라에 있음에 명을 거부하는 것은 자신의 현실도 거부하는 것이었지만
적국의 심장부에서 청나라에 충성을 보이지 않으면 자신의 환국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드러내놓고 청나라를 두둔하는 모습을 보이면 조선의 왕은 그를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 일국의 세자라는 자리가 주는 외로움의 깊이를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다.
온전히 혼자만 견뎌내어야 했던 그 깊은 외로움을 작가 특유의 치밀한 언어로 그리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을 대부분의 역사소설들 처럼 이성적이지 않고 지극히 감성적인 역사소설이다.
오래전에 읽은 김별아의 '미실'이라는 작품이 생각나게 만드는 소설이다. 두 소설 모두 감성적인 소설이기에.

소현의 이야기 속에 흔과 석경의 안타까운 사랑이 얽히며 더욱 더 감성적이게 만들고 있다.
조선의 왕족으로, 조선의 고위층의 아들로서 적국에 끌려오게 된 두 남녀의 사랑은 안타깝고 눈물난다.
그런 상황에서 서로에게 끌리는 감정을 거부하지 못한 그들의 심정이 이해가 가면서도 안타깝다.
결국의 비극으로 끝난 그들의 사랑은 어쩌면 그 시대 조선이 함께 껴안아야 할 또 다른 아픔일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인조를 정말로 못난 임금으로 인식하고 있다.
나의 개인적인 평가를 떠나 작가는 아들과 아비의 역사적 평가는 뒤로하고
임금과 세자가 아닌 가족으로서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 이것은 역사의 이야기가 아니라 가족의 이야기이다. 
안타깝고 어쩔 수 없었던 한 가족의 비극적인 이야기이다. 그래서 눈물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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