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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눕 - 상대를 꿰뚫어보는 힘
샘 고슬링 지음, 김선아 옮김, 황상민 감수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5월
평점 :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나서 사귀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해 보자.
당신은 그녀(그)에 대해, 그녀의 성격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알고 싶을 것이다.
사귀는 시간이 길어지고 그녀에 대해 많이 알게 될수록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진다.
그러던 어느날, 드디어 당신은 그녀의 집에 초대를 받게 된다. 그녀의 방을 보게 된다.
당신이 유능한 스누퍼라면 이것은 그녀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둘도 없는 기회가 된다.
스누퍼들은 그녀의 집에, 그녀의 방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단서들을 통해 그녀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이 책은 유능한 스누퍼가 될 수 있는 방법들과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왜곡된 단서들을 피해가는 방법을 설명한다.
스누핑이란 타인이 일상생활 속에서 흘려놓은 수많은 단서들을 바탕으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아내는 방법이다.
스누핑이 적용되는 가장 일상적인 분야는 '프로파일링'이라고 불리는 범죄심릭학이라고 할 수 있다.
불과 얼마 전에 있었던 김길태 사건을 통해서 보았듯이 유능한 스누퍼는 방을 보는 것만으로 대략의 모습까지 알아낼 수 있다.
내가 즐겨읽는 수많은 추리소설에 등장하는 형사들을 보면 아주 작은 단서에서 사건의 전말을 추리해 낸다.
물론 작가의 창작으로 이루어진 가상의 사건이지만 그런 추리의 과정에 논리적 근거를 제공하는 것도 스누핑과 관련되어 있다.
유능한 심리학자인 저자는 대학생 기숙사를 대상으로 하는 '침실연구'를 통해서 스누핑을 소개하고 있다.
외향성, 동조성, 개방성, 신경성, 성실성의 5가지 분류를 통해 사람들의 성격을 크게 구분하고
사무실이나 침실 등의 실제공간과 페이스북, 홈페이지 같은 가상의 공간,
심지어 그의 아이팟에 들어있는 음악들과 즐겨듣는 음악들의 리스트 등의 모든 흔적들을 통해
스누핑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성격이 5가지 분야에서 어느 정도의 성향을 나타내는지 분석한다.
그의 연구과정에서 행하는 실험들은 우리가 흔히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과 비슷한 결과를 나타내기도 하고
우리가 예상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런 모든 과정을 통해 올바른 스누핑을 위한 기준을 제시하고 스누핑에서 실수하기 쉬운 함정들을 피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다른 사람에 알고 싶어하는 것은 사회를 이루어 살아가는 인간들에게는 본능과도 같은 욕구이다.
그런 욕구를 충족하는데 스누핑은 유능한 도구가 된다.
그렇다고 스누핑이 단순한 호기심의 충족을 위한 도구에 지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서 나오는 예와 같이 스누핑과 건축학이 조화를 이루어 우리가 보다 편안한 휴식을 얻을 수도 있다.
스누핑의 응용분야는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기에 이 책은 매우 실용적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스누핑이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일상생활에서 우리도 모르게 흘리고 다니는 수많은 단서들이다.
역으로 말하면 이런 단서들을 의도적으로 조작하면 타인들에게 자신에 대한 판단을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에 의하면 노련한 스누퍼들은 그런 조작을 피해 그 사람의 실체에 다가가는 방법을 알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무의식적으로 흘리는 단서들을 통해 상대방의 실체에 접근하는 심리학적 방법론이 매우 흥미롭다.
꽤나 두꺼운 책이었고 주제가 가볍지도 않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롭게 읽어 나갈 수 있는 재미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나 자신을 스스로 스누핑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내가 살아가면서 나도 모르게 흘린 단서들을 조합하여 이 책의 방법론을 따라가면
정말로 무서울 정도로 나 자신에 대한 객관적인 자아상을 발견하게 된다.
그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자아상과 많은 차이가 있고 불만스러운 모습이다.
그래서 스스로를 반성하며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이 책을 다 읽고나니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 이 책의 서평을 부탁한 출판사가 어쩌면 나를 스누핑 한 것이 아닐까?
내가 블로그에 써 놓은 수많은 포스트를 통해서 어쩌면 나의 성향을 파악한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
만약 그랬다면 이 책의 서평을 부탁한 그 직원은 유능한 스누퍼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나에게 그렇게 재미있는 책이었다. 그래서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자신에 대해, 자신이 알고 싶은 누군가에 대해 좀 더 알고 싶다면 이 책은 반드시 읽어보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