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컨설턴트라는 직업을 가진 주인공. 그는 회사를 위해 사람들을 구조조정하지만 구조조정의 대상은 죽음이다. 그가 하는 일은 죽음이 필요한 사람에게 완벽한 시나리오를 제공하는 일. 누군가의 죽음이 필요한 사람이 회사에 의뢰하면 그는 완벽한 시나리오를 제공한다. 일종의 청부살인이지만 세상에 노출되는 사망원인은 자살, 사고사, 혹은 지병에 의한 사망. 그 누구도 의심을 하지않는 완전범죄를 위한 시나리오를 제공하는 킬러가 그의 직업이다. 처음에 읽을 때 이게 정말 가능한가?라는 의구심을 가지게 되지만 작가의 뛰어난 글솜씨 때문인지 이 세상 어딘가에는 이런 조직과 사람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 생각이 점점 커져서 버스에서 내 옆에서 피곤한 모습으로 잠들어 있는 아저씨가 혹시나 이런 직업을 가진 사람은 아닐까?라는 피해망상적인 비약에까지 이르게 한다. 그만큼 작가의 글솜씨와 치밀한 구성이 강한 설득력을 지니게 되고 이야기에 흠뻑 빠지게 만든다. 소설의 주인공의 직업이 실제로 존재하는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 직업이 있던 없던 간에 우리가 행하는 모든 행동들이 타인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한 사람의 죽음에는 수많은 원인이 있고 그 원인들을 제공하는 것은 결국 그와 부대끼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소설의 주인공이 제공하는 완벽한 시나리오를 제공하는 역할은 크게는 우리 사회가 작게는 우리와 매일 얼굴을 마주하고 있는 내 주변의 사람들이 대신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작가는 날이면 날마다 벌어지고 있는 수많은 사고들과 자살소식을 접하면서 이 소설을 기획했는지도 모른다. 수없이 반복되고 있는 사고들과 자살들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나와는 상관없다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고 과연 이렇게 아무런 죄의식 없이 살아가는 것이 정당한 것인가?라는 의문에서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런 무거운 질문을 쉽게 읽히는 소설의 형태로 우리에게 던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블러드 다이아몬드’라는 영화를 통해서 다이아몬드와 아프리카 내전의 관계를 알게 된 경험이 있다. 최근에 이슈가 되고 있는 이른바 ’공정무역’이라는 것을 통해서도 그런 문제를 다시한번 깨닫게 된다. 인간의 만들어 낸 자본주의의 그늘에서 고통받는 사람들과 그들의 고통으로 편하게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소설은 ’콩고’라는 공간과 ’탄탈’이라는 소재를 통해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 그런 일깨움 속에 기독교적 원죄의 의미를 자본주의에 대입하여 지금의 우리 사회를 비추고 있다. 존재 자체가 죄악이 되는 지금의 자본주의의 세상에서 나 역시 아프리카의 누군가를 죽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 깨달음을 얻는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소설 속 주인공 처럼 그저 ’어쩔 수 없다’는 변명만 할 뿐. 그런데 어쩌자고 작가는 이런 사실을 굳이 알려줄려고 했을까? 작가의 의도는 무엇일까? 어쩔 수 없다는 변명으로 얼버무리더라도 알 건 알아야 한다는 의미일까? 아직은 모르겠다. 그러나 최소한 이 책을 읽기 전에 아무것도 의식하지 못했던 것과는 조금은 내 시각이 달라졌다. 어떤 점에서 달라졌다고 꼭 집어 말할 수 없지만 달라진 것은 분명하다. 그것이 작가의 의도일까? 소설에 처음부터 나오는 '구조는 조정되지 않는다'는 문장만 머리속에 박혀있다. 내용의 심각함과는 달리 소설 자체의 재미는 대단하다.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했다는 작가의 이력에 걸맞게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재미가 있다. 추리소설의 기법을 적용하여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으며 그의 직업과는 달리 인간적(?)인 주인공의 사랑이야기가 들어가서 애절하기도 하고 그가 만드는 완벽한 시나리오는 섬뜩하기도 하며 회사의 능력에 소름이 끼치기도 한다. 한 마디로 영화 몇 편은 본 듯한 재미를 느끼게 해주는 멋진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소설의 미덕은 재미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소설은 내게 정말로 대박이다. 재미도 있고 거기에 의미도 있으니 이 이상 더 무엇을 바라겠는가? 내게는 걸작이다. 올해 읽은 소설 중에서 가장 재미있는 소설이다. 대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