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의 비극 - Mystery Best 1
엘러리 퀸 지음, 강호걸 옮김 / 해문출판사 / 2003년 7월
평점 :
품절


개인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소설들을 좋아한다.
초반부에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흘린 단서들,
혹은 초반부에 이미 부정되었던 사건의 내막들이
마지막에 가서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 퍼즐의 조각들로 묶이면서
예상치 못한 반전과 그 속에 담기는 인간의 모습을 잘 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읽고 나서 그 모든 게이고의 재능이 어쩌면
이 책 한 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하는 의문이 생겼다.
역시 세계 3대 추리소설이라는 명성이 허언이 아니었음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작품이다.

세상의 기준으로 부족한 것이 없으나 저주받은 피를 부여받은 해터집안.
해터집안의 가장인 '요크해터'(Y)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요크의 죽음 두달 후, 귀머거리에 장님인 그의 딸 루이자에 대한 독살미수사건이 발생하고
그로부터 2주 후 요크의 부인의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된다.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사건들 속에서 전직 배우출신 레인의 활약이 펼쳐진다.

이 소설의 가장 큰 매력은 물론 마지막의 충격적인 반전에 있다.
나의 경우 에필로그에 써 있는 '악마 하나는 사라졌지만 악마들은 남아있다'라는 문장을 보고서야
반전을 겨우 짐작할 수 있었지만 반전을 이끌어내는 논리적 추론은 불가능했다.
말 그대로 '아무도 예측할 수 없었던'  Y의 비극이 주는 충격은 너무나 크다.
논리적으로 추론이 가능한 상식적인 사람들의 범죄는 어떻게든 해결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논리적인 것이 하나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의 범죄는 해결이 쉽지 않다고 한다.
상식적인 추론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로 구성된 해터 집안에서 벌어지 범죄는 그래서 더욱 해결이 어렵다.
그런 상황에서 유일한 목격자는 귀머거리에 장님이고 탐정은 귀머거리이다.
이런 설정을 해 놓은 상태에서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작가의 능력은 이 소설의 가치는 높히고 있다.
이 소설이 왜 세계 3대 추리소설 중에 하나인지 마지막의 반전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일반적인 추리소설과는 달리 범인에 대한 처벌로 끝나지 않은 결론도 의미가 있다. 
또한 주인공 레인의 고뇌를 통해 드러나는 작가의 메시지도 강하다. 모든 것이 어우려져 멋진 작품이 나왔다.

반전의 매력에 더해 반전을 만들어가는 과정 또한 매력적이다.
범인은 이미 초반에 드러나 있었고 범인을 찾아낼 단서도 있었으며 단서에 따른 추론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단서와 추리들이 또다른 논리에 의해 부정되었는데 그것이 결국엔 수사의 발목을 잡는다.
범인의 트릭에 넘어간 것이 아니라 상식적으로 부정될 수 밖에 없었던 사건의 진상 자체가 트릭이 된다.
소설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문제는 동양의 성선설과 성악설의 논쟁과 맞닿아 있다.
악이란 인간의 선택의 문제이고 인간의 환경은 그런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 더욱 무섭게 느껴진다.
이미 발표된 지 80년이 되어가는 고전 속에서 지금의 우리가 꺠달아야 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소설은 이미 시대를 초월하는 명작으로서의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이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에서 나에게 실망을 안겨 준 해문출판사의 번역을 여전히 나아지지 않았다.
번역은 단순한 해석이 아니라 또 다른 창작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작업을 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이 책의 번역을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의 현재 직역과 전혀 차이가 안나는 수준이다. 
의역이나 창작이 전혀 없는 직역된 번역을 읽는 것은 인내심을 요구한다. 아쉽다.

그러나 번역의 문제를 충분히 견디고 남을 만큼의 매력을 가진 추리소설의 걸작임은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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