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공부하라 - 엄마가 꼭 알아야 할 성장 시기별 아들 특징과 교육법
데이비드 토마스.스티븐 제임스 지음 / 글담출판 / 2010년 10월
평점 :
절판


올해 초등학교 6학년이 되는 우리 아들을 보면 언제 저렇게 컸나?라는 생각이 든다.
마냥 어린애로 생각하는 부모의 생각과는 달리 어느새 아들은 서서히 남자가 되어간다.
지금까지 아들을 키우면서 제대로 된 교육서적이나 육아서적을 보지 않았다.
내 아이를 다른 사람이 제시하는 틀대로 키우기 싫었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이 책도 선물로 받지 않았다면 스스로 읽어 볼 생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내가 얼마나 무지한 부모였는지 깨닫는다.
'아이'가 아닌 '아들'을 제대로 키우기 위한 부모의 역할과 방법론.
이 책이 전하는 지식 보다 중요한 것은 아들에 대한 이해임을 알게 되었다.

여자아이와 달리 남자 아이들은 활동적이고 충동적이고 폭력적이다.
그런 아들의 특성을 그저 '사내아이이기 때문에'라고 치부했던 어리석음을 반성한다.
아들의 뇌가 딸의 뇌와 어떤 면에서 다른지, 그래서 어떤 결과를 나타내는지,
아들에게 적합합 학습방법은 무엇인지, 아들의 감성을 끌어내는 방법은 무엇인지,
각 성장단계별로 아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이고 부모의 역할은 무엇인지,
아들이 엄마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고 아빠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아들이 하나의 성인으로 자라나 독립하기까지 부모의 역할은 무엇인지 등.
단순히 자녀양육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아들'에게 특화된 양육방법을 제안한다.
이미 탐색기와 애정기를 거쳐 서서히 방황기로 접어드는 아들을 보면서
내가 지금까지 아버지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해 왔는지 반성하게 된다.

아들이 어릴때는 아무리 재잘거려도 일일이 답을 해 주려 노력했던 것 같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새 나 스스로 아들에게 어색함과 거리감을 느낀다.
아들은 아직 나에게 팔빵을 끼려하고 나의 모든 것을 따라하려 하는데
나는 어느새 아들이 다 컸다고 생각하고 스스로 답을 찾기를 원하고 있다.
난 내 아들이 어떤 성장단계에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던 무지한 부모였던 것 같다.
어느날 아들이 엄마에게 '아빠랑 있으면 얼마나 어색한지 알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말은 그저 웃고 넘겼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일종의 경고임을 알게 되었다.
이제라도 아들에게 좀 더 많은 것을 알려주고 좀 더 다가서은 아빠가 되어야 겠다.
이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 많은 반성을 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게 만든다.

아들의 행동이 이해가 안되고 왠지 아들에게 다가가기 힘든 부모라면
꼭 한번 이 책을 읽고 아들을 이해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추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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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매의 방
윤선미 지음 / 초록물고기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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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난 여자가 아니기 때문에 자매라는 관계의 특수성은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더욱 공감이 되기 힘들었지만 이야기가 쉬워서 쉽게 읽혔다.
자매의 이야기이지만 형제간의 관계로 대체하며 공감을 하려고 노력도 했다.
그런데 뭔가 많이 아쉽고 뭔가 많이 부족한 느낌이다. 

이혼했다는 자격지심에 다가오는 사랑마저 두려움과 거부감으로 반응하는 예희.
몸과 마음을 다해 불같이 타오르는 민희.
경찰 직분을 망각할 만큼 사랑에 올인하는 준기.
불같이 타오르는 사랑보다 자신의 성공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기태.
끝내 이혼할 수 없었던 재영.
다른 여자와 결혼하고 나서까지도 한 여자를 포기할 수 없었던 철웅.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상대를 이해하지 못한 채 집착하거나 사악하게 돌변하는 명길.

책의 뒷편에 나와있는 작가의 말중에서 일부분이다.
간단한 등장인물의 소개인 것처럼 느껴지는 이 부분이 소설의 전부이다.
전체 소설의 3분의 2 이상이 이 요약본 이상의 이야기는 없다.
중간 중간에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지만 요약본이 전부다.
처음에 이 요약분을 읽은 나의 경우에는 작가가 애써 만든 복선이 훤히 보인다.
나중에 무지막지한 반전으로 뒤통수를 쳐야 되는 부분이 대부분 예상이 된다.
게다가 누구나 읽으면 알 수 있을 정도의 히가시노 게이고 표절(?)이라니....
처음부터 끝까지 빤히 예상이 되는 이야기를 끝까지 읽은 것은 그나마 재미 때문이다.

소설의 가치를 재미에 두는 나에게 그나마 이 책이 최소한의 가치는 있다.
소소한 에피소드들의 전개가 빠르고 아침드라마 같은 내용들이 아기자기 하다.
아줌마들이 아침드라마에 열광하는 이유를 잘 모르는 나에게는 공감이 되지는 않지만
책장을 쉽게 넘길 수 있도록 하는 작가의 능력은 충분히 인정할 만한 가치이다.
다만 소설이라기 보다는 아침드라마의 대본이라는 생각이 더 든다. 실망이다.

갑자기 돌변하는 명길의 태도, 경찰의 직분을 망각하는 준기의 모습,
그러다가 갑자기 예희를 협박(?)하는 준기의 돌변,
결국 그렇게 끝날거면서 예희을 놓아주지 않았던 준기의 태도는
일관성이 떨어지면서 아무런 공감도 주지 않고 어이가 없을 뿐이다.
등장인물들의 행동 하나 하나에 일관성이가 개연성이 없으니 허무할 뿐이다.
어쩌면 내가 남자라서 여자들의 심리를 몰라서 그런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읽기에는 심리묘사도 그리 깊거나 예리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다.
이래저래 많이 아쉬운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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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백제 - 700년의 역사, 잃어버린 왕국!
대백제 다큐멘터리 제작팀 엮음 / 차림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에 패자의 역사는 지워져 버린다.
가장 가까운 조선 시대의 역사에서도 패자는 언제나 지워졌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 사료를 찾을 수도 없는 고대사의 경우는 더 심하다.
특히나 삼국이 치열한 전쟁을 벌였던 시기에 망국의 기록은 왜곡이 더해진다.
우리의 고대사를 연구하는데 가장 중요한 사료라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도
결국은 승자의 신라의 시각이거나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의 시각일 뿐이다.
그렇게 우리의 역사에서 철저하게 지워지고 왜곡된 역사사 바로 '백제'의 역사이다.
야비한 방식이지만 통일을 이룩한 신라의 역사는 승자의 역사로 화려하게 기록되고
비록 패자였지만 북방의 맹주였던 고구려의 역사 또한 영광의 역사로 기억되지만
백제라는 나라는 신라에 치이고 고구려에 당하는 불쌍한 소국의 이미지로 남아있다.
과연 그럴까? 이미 TV를 통해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이 있기에 이 책에 거는 기대가 컸다.

백제가 일본 천황가의 조상이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백제의 문화가 일본에 전해지고 그 문화가 지금의 한류의 뿌리임도 명백한 사실이다.
막연히 그렇다고 알고 있던 백제와 일본의 관계에 대한 실증적 추적이 책에 나와 있다.
백제가 꿈꾸었던 '불국토'의 꿈과 불교가 백제 문화에 끼친 영향.,
백제인들에게 있어서 불교라는 것이 어떻게 정신적 지주가 되어 그들의 삶에 영향을 주었는지
불교를 바탕으로 한 이상국가를 꿈꾸었던 백제의 꿈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백제 특유의 가람양식을 바탕으로 하는 수많은 대형 사찰에서 보여주는 건축술과
여러 유물들을 통해서 보여지는 시대를 앞서 간 백제의 금속공예기술과 예술들을 통해
그 당시 하이테크의 집합체였던 백제의 뛰어난 기술력이 주변국에 끼친 영향을 살펴본다.
이미 개국에서부터 해양국가를 꿈꾸었던 백제인들의 뛰어난 항해술과
그런 항애술을 바탕으로 대륙과 일본에 진출했던 해상왕국 백제의 모습도 보여준다.

지워버렸던, 그래서 지워져야만 했던 백제의 역사를 돌아본다는 점에서 책의 의미가 크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여러가지 있다.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겠지만...
어떤 역사절 사실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수없이 많은 근거들을 제시해야 한다.
그렴 면에서 이 책은 주장하고자 하는 내용을 받쳐줄 수 있는 사료적 근거가 미비하다.
예를들어 백제의 음악이 일본을 넘어 아시아 전역에 퍼져나갔을 거라는 추측 같은 것이다.
적어도 역사를 다룬다고 한다면 이런 추측은 없는게 낫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든다.
백제의 역사를 재평가 한다는 의도가 자칫 백제의 역사를 왜곡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전체적으로 주장을 펼치기에 너무도 빈약한 근거들로 인해 책의 신뢰성이 떨어진다.
어쩌면 TV 다큐멘터리로 보았을 때 보다 더 떨어지는 내용이 많을 것 같다.
적어도 다큐멘터리의 내용 보다는 많은 부분을 충실히 보충해 주었기를 바랬는데 많이 아쉽다.

아쉬운 점들은 어쩌면 고대사를 버려버린 지금에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일 수도 있다.
근거를 제시하려해도 제사할만한 기본이 될 사료 하나 없는 상황에서
이렇게 백제의 잃어버린 역사를 복원하려는 시도가 있었다는 것 자체로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 이 책은 아쉬움이 많지만 그만큼의 의미는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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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박범신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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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래 작가의 [허수아비춤]을 읽은 지 별로 오래되지 않아서
또 다른 대작가 박범신의 신작 [비지니스]를 읽었다.
자타공인 우리 문학계의 대가들이 이렇게 사회성 강한 소설들을 발표하는 것을 보면
지금 우리 사회의 모습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사실인 모양이다.
[허수아비춤]이 자본주의의 최상위층에서 군림하는 이들의 비열함을 그리고 있다면
이 소설은 그들의 군림 아래에서 조금 더 나아가기를 원하는 하위층의 처절함을 그린다.
지금 우리 사회의 자본주의라는 것이 얼마나 비인간적으로 흘러가고 있는지 말한다.
제목 그대로 '비지니스'라는 변명으로 정당화 되고 있는 모든 악행과 비윤리들,
그리고 그 속에서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수많은 소중한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베어있다.

신도시 개발로 이제는 가난한 사람들의 버려진 도시가 된 구도시에서
아이의 학원비를 벌기 위해 매춘을 하는 젊은 엄마와
개발이라는 미명아래 꿈이 짓밟혀버리고 아내도 잃어버린 채
신도시의 부유층의 비리들을 훔쳐내는 도둑이 되어버린 전직 형사.
구도시로 떨어진 누구에게나 한가지씩을 있을 상처를 가진 그들의 만남.
그들의 사연에는 '비지니스'로 포장된 자본주의의 무자비한 논리가 숨어있다.
'굶는 아이를 먹이기 위한 매춘은 해도 학원비를 위해 매춘을 하는 나라는 대한민국 뿐이다.'
라고 작가는 주장하며 우리시대의 잘못된 교육열이 가져오는 비인간성을 꼬집는다.
그러면서 그런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게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회에 대해서도 비꼰다.
우리 사회에서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이 전설이 된 것을 이미 오래전이지 않은가?
신도시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무자비한 개발이 가져오는 여러가지 문제에 대해서도 꼬집는다.
바다의 신음소리는 남자의 부인만 듣는 것이 아니다. 이미 자연은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다.
자본의 논리를 앞세워 그 속에 살고있는 인간에 대한 배려는 전혀 하지 않는다.
남자가 자신의 꿈을 일순간에 잃어버리는 과정도 그런 배려의 부족이 가져온 결과이다.
그 어떤 변명도 매춘과 도둑질을 정당화 할 수는 없지만 그 뒤에 숨은 사회라는 비수는
작가가 이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고 싶은 무서운 진실일 것이다.

자본주의의 폭력앞에 우리가 잃어가는 많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한순간 그녀가 목숨을 걸고 사랑했던 남편은 이제는 아무런 희망도 주지 못하고
자신의 몸을 팔아서라도 위하고 싶었던 아들도 어느 순간 아무 의미도 되지 못한다.
오히려 우연(?)히 만난 비슷한 상처를 지닌 남자가 그녀에게 새로운 삶을 보여주고
그 남자의 자폐아 아들이 잃어버린 모성을 회복하게 만들어 주는 계게가 된다.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에 대한 비판, 가족의 개념에 대한 새로운 해석은 거창하다.
작가는 단지 우리가 살아가면서 잃어가는 '사랑'이라는 감정과 '가족'이라는 관계,
어느새 족쇄가 되어버린 소중한 것들에 대한 회복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자본이라는 폭력 앞에서 우리가 결코 잃지 말아야 할 소중한 가치를 보여주고 있다.
'비지니스'라는 이름으로 우리 앞에 마수를 뻗어오는 자본의 폭력에 대항해서
끝까지 우리가 지켜야 할 '가족'이라는 가치의 회복을 보여주고 있다.
기존의 가족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그녀의 여정을 통해서
지금의 무너진 세계에서 벗어나 이전의 따뜻한 세계로의 복귀를 주장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고 쉽게 읽히는 책이다. 그러나 그 속의 이야기는 가볍지 않다.
수많은 변명으로 잃어버리고 있는 우리의 소중한 것에 대한 가치를 되새김할 수 있는 좋은 소설이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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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의 아버지
카렐 판 론 지음, 김지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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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사랑하던 애인이 죽은 지 10년.
아내의 친구이자 새로운 애인인 친구가 자신의 아이를 갖고 싶다고 한다.
그래서 찾아간 병원에서 '애초부터 불임'이라는 소식을 듣게 된 주인공.
그러나 그에게는 이미 13살 난 아들이 있다. 그 아이는 과연 누구의 아이인가?

자신에게 익숙했던 사랑, 자신이 끔찍하 사랑했던 여인이 배신자였다?
내가 온 정성으로 키운 아이, 내가 사랑으로 감싸주었던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니라고?
하루 아침에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모든 관계가 부정되어 버린 남자의 이야기.
도대체 어디서부터 꼬이기 시작한 것인지? 아이의 아빠는 누구인지?
자신이 소중하게 여겼던 모든 관계들을 되돌리기 위해 과거를 찾아 나서는 여정.
소설을 한 남자의 이 기가막히고 허탈한 여정을 1인칭 시점으로 따라간다.

그 여정에서 자신을 배신했다고 여겼던 애인은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돌아오고
자신의 아이가 아니었다고 실망했던 아이는 여전히 그의 아이임을 깨닫게 된다.
다가가기 어려울 정도로 소원했던 아버지는 자신과 같은 남자로 다가오고
그런 아버지를 견디며 살았던 어머니의 눈물이 새삼스럽게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가 사회 생활에서 맺는 관계라는 것이 어떤 하나의 사건으로 깨질 수 없음을,
모든 관계는 오랜 시간동안의 추억과 기억과 사랑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그래서 한 순간의 실수, 하나의 사건이 모든 것을 되돌리지 않음을 알게 해 준다.
소설을 우리가 살아가면서 맺는 모든 관계에 대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네덜란드라는 나라는 익숙하지 않은 문화가 너무나 많은 것 같다.
그 중에는 환경을 사랑하고 인간과 자연의 조화를 추구하는 공감이 가는 것도 많지만
우리나라의 도덕적 관념으로는 공감할 수 없는 성에 대한 개방성을 비롯한 많은 것들이 있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몇번이나 책을 놓고 싶게 만들었던 요인도 바로 이런 이질적인 문화이다.
포르노에서나 가능할 줄 알았던 1대 2의 섹스, 13살 아들의 첫 경험은 공감할 수 없고
아내의 장례식을 치룬 날 아내의 친구와 밤을 함께 보내는 상황은 이해할 수 없다.
심지어 마지막에 드러나는 반전마저도 공감도, 이해도 할 수 없는 낯설음이다.

중간 중간에 나오는 철학(?)적인  이야기들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다.
도대체 이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다.
마이클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 보다 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 부분의 지루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다. 어쩜 번역의 문제일까?

현재와 과거를 왔다 갔다 하는 구성도 이런 어지럼증에 도움을 준다.
문득 현재인가 싶으면 어느새 과거이고 과거인가 싶으면 또 다시 현재이다.
이 사건이 저 사건의 앞이었는지 뒤였는지 헷갈리기 시작하면 머리가 아프다.
게다가 뜬금없디 튀어나오는 대사들은 누구의 말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이 사람의 말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읽다보면 다른 사람의 말인 경우가 태반이다.
나의 난독성 때문인지 아니면 이것 역시 번역의 문제일까?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이해가 되고 공감이 가지만
그 주제를 이해하기 위해 따라가는 과정은 공감도 이해도 되지 않는 낯설음이다.
그래서 인내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끝까지 읽어나가기 쉽지 않은 소설이다.
무엇보다 소설은 쉽고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내 기준에서는
이 소설은 그리 높은 평점을 받을 수 없는 소설이다.
더욱이 뒷표지에 있는 홍보성 카피는 너무도 큰 과장이라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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