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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팔천 - 나도 사람이 되고 싶다
이상각 지음 / 서해문집 / 2011년 3월
평점 :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신분에 대한 의식이 남아있던 기억이 난다.
'천방지축마골피'하는 성을 가진 친구들에게 '상놈'이라고 놀렸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신분제도라는 것이 이성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인식이 퍼진건 최근의 일이다.
지금은 사극에서 나타나는 신분제도와 적서차별에 대한 불합리함을 인정하지만
불과 100여년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엄연한 신분제도가 존재하는 나라였다.
이 책은그런 신분제도 중에서도 최하층을 형성했던 천민들의 이야기이다.
역사 자체가 승자의 기록이고 양반의 기록이기 때문에 평민들의 기록도 보기 힘든데
하물려 역사에서 천민들의 기록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의 생활에서 찾아본다면 민속촌의 모든 전통들이 천민들의 일이었다.
노비, 백정, 기생, 공장, 백정, 승려, 무당, 상여꾼 등 조선팔천의 이야기를 들여다 보면
정치적인 이유와 유교에 대한 숭배로 인해 천민으로 떨어져야 했던 승려,무당을 제외하면
모두 실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나 양반들의 손으로 하기 싫었던 일들을 했던 이들이다.
지배층은 양반들이었다고 하겠지만 실제로 조선 사회를 움직이게 한 것은 바로 이들이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한줌도 안되는 양반들에 의해서 강요되었던 신분제도.
그 최하층에서 사람대접도 받지 못했던 그들의 삶을 생각해보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이 책은 조선의 8대 천민들을 주제로 그들의 생성과정과 천민으로 떨어지게 되는 과정,
그들이 등장하는 몇 안되는 역사의 기록들을 보여주고 그들이 계승한 전통문화를 보여준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민속사의 대부분이 그들의 일상의 기록임을 알려준다.
어떤 역사관을 주입하기 보다는 역사 속에서 천민들의 이야기를 발굴해 내서 알려준다.
그래서 이 책은 교양역사서이기는 하지만 역사서의 범주에 넣기에 애매한 책이기도 하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그들의 삶과 그들이 역사에 남겨놓은 흔적들을 따라가는 과정이 재미있다.
조선이라는 사회가 양반들의 온갖 악행으로 일반인들이 고통을 받았던 사회임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알려지는 사건들을 보면 그들의 악행이 상상을 초월했음에 치가 떨린다.
노비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한 가족을 생이별 시키는 일도 마다하지 않았던 비인륜적 처사들과
불교의 핵심교리인 '살생을 금한다'를 어기게 하면서 백정의 일을 승려에게 부과했던 치사함들,
자신들의 기득권에 위협이 되자 '향약'을 통해 상여꾼들을 천민으로 만들어 버리는 비열함 등.
정말 한 줌도 안되는 양반들의 행태가 부끄러움을 넘어 분노를 가지게 만든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오직 지금의 우리가 우리의 상황에 맞춰 판단하는 것일 뿐이다.
신분제도라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시대에 살았더라면 그 모든것이 정당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사회라는 것이 공통으로 받아들이는 가치관과 도덕관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가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가치관이 과연 옳은 것인지 새삼 생각하게 만든다.
그와 동시에 우리 사회가 잘못된 가치관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지 않도록 지적하고 감시해야 함을 깨닫는다.
역사를 통해 뭔가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