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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미
구병모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모든 생물은 바다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말은 우리도 태고의 언젠가는 물고기였던 기억이 DNA에 남아있다는 뜻이다.
소설의 주인공 '곤'은 이런 DNA적인 흔적에 '아가미'라는 형태적 흔적도 가지고 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아버지의 선택에 의해 죽음의 문턱에 이르러야 했던 그가
'아가미'라는 행태적 흔적이 원래부터 있던 것이었는지 죽음의 문턱에서 얻은 것인지는 모른다.
소설은 그렇게 세상에 버려진 '곤'이라는 인어왕자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물거품으로 사라진 인어공주의 비극과는 달리 슬프지만 비극은 아닌 현대판 인어왕자 이야기.
소설에서 곤의 부모에 대한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의 부모가 왜 이혼을 했는지, 그의 아버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마치 세상에 뚝 떨어지듯이 버려진 곤의 삶에 대한 이야기만 잔잔하게 이어질 뿐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부모의 품을 떠나 세상에 혼자서기를 시도하는 젊은이들의 이야기이다.
곤이 가진 아가미는 세상을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시련을 비유한다.
그 중에서도 누구나 의식하며 살아가는 타인의 시선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시이다.
곤이 아가미라는 태생적 한계를 벗어나 넓은 바다로 나아가는 모습은 성장을 의미한다.
그렇게 난 이 소설을 하나의 성장소설로 읽었다.
시종일관 조용하게 서술되는 이야기는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중간에 끊어짐이 없이 물이 흐르듯 흘러가는 이야기는 한 편의 아름다운 동화이다.
많은 인물들의 이야기가 어지럽게 얽혀있는 대단한 구성의 소설도 대단하지만
등장인물들을 최소화 시키고 이야기의 뼈대를 단순하 시킨 이 소설의 이야기도 매력있다.
현실에서는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이어서 어린시절 읽었던 예쁜 동화가 생각나기도 한다.
곤이 스스로를 숨기고 살아가는 모습에서 내가 차별적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사람들에 대한
뒤늦은 미안함과 내 자신의 미숙함에 얼굴이 살짝 달아 오르기도 했다.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처럼 조용히 가슴에 다가오는 동화같은 이야기.
슬프지만 아름다운, 그래서 더욱 매혹적인 소설이다. 추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