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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홀 - 도시를 삼키는 거대한 구멍
이재익 지음 / 황소북스 / 2011년 7월
평점 :
해외토픽을 보다보면 도심 한가운데 거대한 구멍이 생긴 사진을 볼 때가 있다. 마치 거대한 펀치로 땅을 드러낸 것처럼 완전한 원형의 구멍이 뚫린 사진을 보면 도저히 현실이라고 믿기 어렵다. 지구 내부의 지층에 구멍이 생기면서 그 위쪽에 있는 지표면에 구멍이 생기는 현상을 '씽크홀'이라고 부른다. Sink Hole. 말 그대로 아래로 내려간 구멍이다. 그 현상이 서울 대도심 한가운데인 강남역에서 벌어진다면? 그 구멍으로 교보빌딩 전체가 순식간에 꺼져 버린다면?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을 소재로 한 소설이 바로 이 소설이다. 123층짜리 546미터의 건물이 한 순간에 거대한 구멍쏙으로 빠져버리는 재난에 내던져진 사람들의 이야기. 어떤가? 궁금해서 못견딜것 같지 않은가? 일단 작가가 나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하는데는 완벽히 성공했다.
시저스그룹의 양미자 회장이 온힘을 다해 만든 시저스타워. 123층 546미터의 건물은 최첨단 기술과 초호화 인테리어가 모두 동원된 현대 자본주의의 바벨탑과 같은 건물이다. 소설은 씽크홀 사건이 발생하기 1주일 전부터 시작된다. 양회장의 아들이자 정형외과 의사인 동호는 어느날 꽃집에서 일하는 민주를 우연히 만나고 우연한 사건이 연속되면서 서서히 운명이라 느끼게 된다. 민주도 동호에게 호감을 느끼지만 사소한 오해와 지난 사랑의 상처로 받아들이지 못하다 시저스타워가 오픈하기 전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자신을 형처럼 지내던 처남을 잃고 방황하는 혁. 사고 이후로 아내와도 떨어져 지내며 가끔씩 딸을 만나는 것이 가장 행복한 남자. 아내 영희가 시저스타워에 새로 꽃집을 오픈한다. 민주는 그 꽃집에서 일한다. 아내에게 화해를 청하러 갔다가 구박만 받고 돌아선 그는 시저스타워를 떠나지 못한다. 드디어 오픈식이 있던 날. 갑자기 타워는 깊이 1500미터의 구멍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민주와 영희, 그리고 혁의 딸 안나는 건물과 함께 매몰된다. 구조대도 접근할 수 없는 상황.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 혁과 동호가 구멍속으로 들어간다.
전형적인 재난 블록버스터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이야기이다. 이제 막 사랑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사랑하면서도 미워하는 오래된 부부도 있다. 그들이 거대한 재난 앞에서 잃을 수 없는, 혹은 잊고 살았던 사랑을 다시 찾아가는 내용도 뻔한 전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을 처음부터 끝까지 손에서 놓을 수 없는 재미를 준다. 대부분의 헐리웃 재난영화를 보면서 첫 장면에서 결말을 예상하면서도 중간 중간에 손에 땀을 쥐고 보듯이 이 소설도 처음 몇 페이지에서 결말을 쉽게 예상할 수 있으면서도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저절로 책장이 넘겨지는 소설이다. 등장인물을 최소화해서 에피소드를 간소화하고 그 결과 이야기의 스피드를 높혔다.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에 치중하지 않고 사건의 흐름에 촛점을 맞춰서 전개해 나간다. 처음부터 결과를 예상하고 읽으면 그 과정에서 등장인물들의 행동 하나 하나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저러면 안되는데...' 또는 '빨리 나가!' 등의 말을 마음속으로 하게 된다. 마치 TV드라마를 보면서 하나 하나 참견하는 아줌마가 된 기분이랄까? 너무 전형적이어서 실망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재미있는 소설이다. 아이러니 하다.
작가 보다는 '컬투쇼' PD로 더 알려진 이재익 작가는 [서울대 야구부의 영광]에서 보여주었던 스토리텔링 능력을 이 소설에서도 어김없이 보여준다. 어렵지 않게 이야기 하면서도 인간의 탐욕과 악마적 본성에 대한 비판을 놓치지 않는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여지는 '돈의 논리'에 대해 비판하고 세상은 선한 의지로만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선한 사람이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성공한 사람이 선한 논리를 만들어 내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말한다. 재난의 현장에서 구조의 손길조차 자본의 순서라는 것은 작가가 전하고 싶은 메세지를 보여주는 설정이다. 현대 자본주의의 총아라는 초고층 마천루를 거대한 구멍속으로 밀어넣어 버리는 설정은 지구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는 주제를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재미와 의미,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이재익 작가는 언제나 성공한다. 그래서 그의 소설이 좋다.
충무로가 이 이야기를 놓칠리 없다고 생각한다. 조만간에 영화화 소식이 들려올 것으로 기대한다. 혼자서 캐스팅을 해 가면서 읽었다. 반듯하고 능력있는 전형적인 모범생이지만 나름의 강인함을 가진 동호는 하정우, 수수하고 당찬 매력을 지닌 민주는 요즘 내가 주목하고 있는 박민영, 과묵하고 강인하지만 내면의 상처를 가진 혁은 최민식, 혁이 안쓰러우면서도 원망스러운 영희는 김윤진 정도면 어떨까?라는 생각. 영화는 해운대 이상의 블록버스터 영화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원작이 너무나 재미있으니까. 다만 재난에 촛점을 맟추지 않고 사람에 촛점을 맟출수만 있다면.
소설을 재난을 말하지만 작가는 재난 속에 던져진 사람들을 이야기 한다. 극한 상황에 던져진 그들에게 기적은 오직 그들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고 있다. 재미와 의미 두가지를 모두 원한다면 이 소설을 권한다. 마지막 늦더위를 시원하게 날려버릴 소설을 찾는다면 이 책을 강력히 추천한다. 강추 !!!
P.S : 우리나라는 지질학상으로 씽크홀 현상이 나타날 확률이 지극히 낮다고 한다. 미리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