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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삼촌 브루스 리 1
천명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1월
평점 :
뭐 이런 소설이 다 있어 !!!
처음 천명관의 [고래]를 읽었을 때 받은 느낌은 대단한 작가와의 만남이었다.
그 후 [고령화 가족]을 읽으면서 그의 열렬한 추종자가 되어 그의 신작을 기다렸다.
그래서 이 소설이 인터넷 서점에 연재되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일부러 외면했다.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완전히 끝난 후에 한꺼번에 읽고 싶은 욕망에 기다렸다.
꽤나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난 그의 신작은 기다림에 대한 확실한 보답을 해 주었다.
이 소설은 한 남자의 기구한 인생유전을 그리고 있다.
권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사는 집성촌 동천에 첩의 자식으로 굴러들어온 도운.
출생부터 서자라는 굴레에 매인 그의 집성촌에서의 삶은 시작부터 기구할 수 밖에 없었다.
그의 삶의 위안이 되었던 것은 오로지 하나, 이소룡 !!!
그 시대 대부분의 남자들이 그러했듯 이소룡의 모든 것을 따라하면 이소룡을 꿈꾼다.
그러나 삶이라 그리 녹녹하지 않고 인생이란 어떤 변수에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것이다.
그의 삶 또한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과 만남으로 꼬이기 시작한다.
이소룡의 무술처럼 단순하고 직선적인 삶을 꿈꾸던 그의 인생은 복잡한 곡선으로 꼬이기 시작한다.
그 꼬인 삶의 와중에서 그에게 한줄기 빛으로 나타난 여인은 충무로의 3류배우 원정이었다.
그의 삶은 우리나라의 정치적 상황에 맞물려 점점 더 꼬여가기 시작하고 고난으로 점철된다.
그런 그의 신산한 삶에서 원정은 바라보기만 할 수 있어도 행복한 삶의 등대같은 것이었다.
그의 삶이 꼬일수록 그녀의 존재는 더욱 더 간절하고 그녀와의 거리는 점점 더 멀어져간다.
운명이라는 말로도 이해할 수 없는 그의 기구한 삶이 그녀와의 인연을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
천명관 소설의 힘은 서사다.
[고래]도 그랬고 [고령화 가족]도 그랬고 이 소설도 그렇다.
그가 풀어내는 이야기는 한번도 짧은 적이 없었고 복잡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렇게 길고 복잡한 이야기들인데도 한 번 손에 들면 끝날때까지 놓을 수 없는 매력이 있다.
등장인물들이 특별하지도 않고 그들의 삶이 유별나지도 않은 사람들의 길고 긴 인생이야기.
그의 모든 소설의 매력은 그 이야기 자체에 있다. 도저히 빠져나갈수 없는 이야기의 마력이 있다.
이 소설에서도 도운의 인생여정을 따라가는 그의 서사는 한눈을 팔지 못하게 하는 힘이 있다.
도운의 인생을 따라 때로는 박장대소하고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안타까워 한다.
그렇게 그의 인생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책은 마지막을 향해가고 좀 더 길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나 이 소설의 이야기는 지금까지 읽은 그의 소설들 중에서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다.
초반에 박장대소 하다가 시대의 흐름에 휘말린 그의 삶에 분노하다가 그의 사랑에 안타까워 한다.
작가는 독자를 울렸다가 웃겼다가 화나게 만들다가 답답하게 만들더니 눈물이 쏟게 만든다.
독자를 자기가 원하는 대로 마음대로 조종하는 작가의 필력에 난 그저 휘말려 흘러갈 뿐이었다.
바로 옆에 있는 사람에게 조근조근 얘기하듯 말하는 그의 문체는 이번에도 최고다.
도운의 조카인 상구가 화자로 나와서 풀어가는 문체는 친구가 술자리에서 말하는 것 같다.
특히나 소설 속 상구의 나이대가 나와 비슷한 나이대라서 그런 느낌이 더 강했다.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약간의 욕설과 비속어도 들어가고 야리꾸리한 이야기들도 들어간다.
친구와 함께 배꼽 빠지게 웃고 담배가 생각나게 답답하고 침을 튀며 욕하고 괜히 코 끝이 찡해진다.
내가 천명관 작가의 소설에서 기대하는 가장 큰 부분도 이런 독특한 문제가 한 몫을 한다.
삼촌의 인생, 상구의 인생, 상구의 친구 종태의 인생은 참으로 꼬이고 꼬여 술자리 안주감으로 최고다.
친구와 술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를 책으로 옮겨 놓은 것 같은 그의 문체는 친숙함으로 다가온다.
'꿈을 이루지 못한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야. 더 이상 꿈을 꿀 수 없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지'
책 속에서 마사장에 도운에세 해 준 이 말이 소설의 주제를 한 문장으로 압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소룡을 꿈꾸었지만 이소룡이 될 수 없었던 삼촌이 거기에 멈출 수 밖에 없었던 삶이었는데
그의 또 다른 꿈인 원정을 향해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던 이 말이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일 것이다.
누구나 꿈을 꾸며 살지만 꿈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은 꿈을 꾸는 사람들에 비해 적을 수 밖에 없다.
꿈이라는 것은 한정되어 있는 것이기에 수요 공급의 법칙에 따라 꿈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이 더 많다.
그렇다고 우리는 좌절된 꿈을 안고 부끄러워하며 절망속에 살아야 하는가?
작가는 꿈을 이루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간직하는 것이라고 한다. 좌절하지 말고 계속 꿈을 꾸라고 한다.
기구하고 답답한 삶에서도 그런 우리의 인생을 지탱해 줄 수 있는 것은 가슴속에 간직한 꿈이라고 한다.
소설 속 주인공 도운에게 그것은 이소룡이었다가 끝내는 원정으로 귀결된다. 원정은 그의 꿈이다.
웃고 싶은가? 분노하고 싶은가? 안타까움에 눈물을 짓고 싶은가?
지금 당장 서점으로 달려가서 천명관 작가가 우리에게 전하는 이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라. 강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