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드 세트 - 전2권 - 가난한 성자들 조드
김형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류 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지녔던 몽고제국.

그 제국을 세운 '칭기스칸' 테무진의 이야기는 수없이 반복된 소재이다.

그러나 소설 [조드] 처럼 태무진의 이야기를 초원에서 접근한 소설을 보지 못했다.

중세시대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푸른 군대'의 '늑대 병법'의 근원을 찾아간 여정.

근대화란 명목하에 평가절하 되어야 했던 유목민들이 꿈꾸던 이상향의 세계.

작가가 10개월간 유목민들과 함께 뒹굴며 함께 써내려간 한편의 장편 서사시이다.

 

'작은 몽골'의 왕족이었으나 아버지의 죽음이후 권력투쟁에서 밀려 초원에 버려진 태무진.

초원에서의 삶이 버려진 가족에게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이 책을 읽고서야 처음 알았다.

겨우 연명을 하며 살아가던 태무진이 보오르추, 젤메 등의 친구들을 얻으면서

세상에 대한 각성을 하고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모습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영웅들이 나오는 대부분의 소설들과 비슷한 얼개를 지니고 있는 소설이지만 다른 소설이다.

대부분의 영웅담들이 한명의 주인공의 삶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지만

이 소설을 태무진의 삶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유목민들의 삶을 쫓아가고 있다.

태무진이 나라를 세우고 초원을 평정하는 과정은 개인적인 복수나 욕망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라

푸른 하늘의 뜻을 섬기고 유목민들이 차별없이 살아가는 이상적인 세상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설의 중심은 푸른하늘을 섬기며 자신들에게 허락된 것만을 취하는 유목민들의 삶에 맞춰져 있다.

'조드'로 대변되는 하늘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며 허락된 것 이상을 욕심내지 않는 유목민의 삶.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통해 하늘의 뜻을 따르고 죽을 때 푸른하늘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삶.

그들에게 푸른하늘이 의미하는 것이 그대로 칭기스칸의 '푸른 군대'의 DNA에 새겨져 있다.

 

초원의 강자는 사자도 호랑이도 아닌 늑대이다.

인간에게 길들여지는 개의 삶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경쟁을 하는 늑대의 삶.

태무진이 초원에 버려져 비참하게 살아가면서 터득한 늑대의 삶과 지혜가 '늑대병법'에 녹아든다.

지금의 우리에게 늑대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지만 늑대의 참모습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초원의 유목민들도 늑대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늑대를 자신들의 삶과 일치 시키고 있었다.

몽골족의 시조신화에서도 늑대는 강하고 의리있고 뜻을 굽히지 않는 강인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지금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늑대의 모습이 아니라 초원의 유목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늑대는 멋있다.

소설에서 태무진의 친구이자 숙적으로 등장하는 '자무카'의 모습이 늑대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그래서 태무진은 결국 자무카를 미워할 수 없었고 끝까지 그를 품으려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의 작가는 시인이다. 그래서 소설의 문구들이 모두가 시의 한 구절 같다.

언어를 다듬고 깎으며 정성을 들이는 시인의 버릇이 소설 속 문장 하나하나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래서 처음 읽을 때는 은유적인 표현들이 넘쳐나는 시같은 문체에 당황하게 된다.

그러나 서서히 그 문체에 적응이 되어가면 기존의 소설에서 느낄 수 없는 묘한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한편의 장대한 서사시를 읽는 기분이 들게 만든다.

그러나 너무 시적이다 보니 직설적인 소설체에 익숙한 나같은 사람에게는 다소 어렵게도 느껴진다.

소설의 내용이 너무 재미있고 유목민들의 삶이 새롭게 느껴지지만 시적인 문체에 다소 막히는 느낌이다.

그래도 전체적인 느낌은 아름답고 유려한 우리글의 멋스러움이 시인의 노력에 의해 반짝반짝 빛난다.

 

문명의 승자는 유목민이 아니라 정착민의 몫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유목민들을 문명에 뒤쳐져서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다면 이 소설을 읽어보라. 유목민들과 그들의 삶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 얼마나 무지한지 알 수 있다.

오늘날 지구상의 인간이 만들어낸 온갖 사회문제, 환경문제, 불평등의 문제들이 유목민들의 삶으로 보면

얼마나 말도 안되게 어이없는 문제들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문명의 승자는 정착인이 아니라 유목민이다. 강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다에는 악어가 살지
파비오 제다 지음, 이현경 옮김 / 마시멜로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10살 남자아이가 어느날 눈을 떴을 때 홀로 남겨진 것을 알게 된다.

게다가 아이가 남겨진 곳은 자신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낯선 땅.

이제 혼자서 살아남아야 하는 아이의 길고 험난한 여정을 시작된다.

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는 이 책은 그러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야기다.

탈레반의 강압통치와 종교적, 인종적 차별을 피해 살아 남아야 하는 여정.

무려 7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5개 국가를 건너 간 길고 긴 여정을 따라간다.

 

아프칸 소년 에나이아트는 흡족하지 않지만 평화로운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가 트럭을 운전하다 죽고 그 일을 시킨 사람들은 소년을 노예로 데려가려 한다.

소년의 엄마는 소년을 파키스탄으로 탈출 시키고 소년은 홀로 살아 남아야 하는 여정을 시작한다.

파키스탄에서 이란, 터키, 그리스를 거쳐 이탈리아에 이르는 7년여의 긴 여정은

자신의 의지대로 살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피하고 말 그대로 생존하기 위한 여정이다.

험난한 산을 한 달에 걸쳐 넘어서기도 하고 고무보트 하나에 의지하여 바다를 건너기도 한다.

도저히 10대 소년이 견뎌내기 힘들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기나긴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소년의 처지를 악용하는 사람들도 있고 소년을 선의로 도와주는 고마운 이들도 있다.

악어의 눈물 이야기에 나오듯이 소년의 눈에 비친 세상의 사람들은 악하기도 하고 선하기도 하다.

소년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세상도 선과 악이 공존하는 악어들이 넘치는 세상이기도 하다.

제목에 나오는 악어의 의미를 나름대로 생각해 보면서 소년을 응원하는 자신을 확인하게 된다.

 

소년의 처지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욕하면서 보았지만 우리 사회에도 그런 편견이 남아있다.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불법체류자의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착취를 당하고 있는지는 알려져 있다.

나 스스로도 우리와 피부색이 다른 사람을 보면 편안한 시선을 줄 수 없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소설에 나오는 나쁜 사람들을 욕하기 전에 타인을 대하는 스스로의 자세를 반성하게 된다.

내가 편견이 가득한 시선을 던지는 이들이 어쩌면 소설 속 주인공과 같은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세상은 논리나 정의로 이루어지닌 않는 험난한 바다다.

그 바다를 건너 가는 것은 각자의 몫이지만 그 속에서도 정직과 우직함을 잃지 않고 살아간다면

소설 속 에나이아트에게 다가 온 행운과 같은 보답이 기다리고 있다고 믿으며 살아갈 수 있다면 행복하지 않을까?

에나이아트의 여정을 따라가다 보면 지금 우리가 가진 여건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세상이 힘들고 사는 것이 불행하다고 느껴진다면 이 책을 통해 생각을 바꿔 보기를 권한다. 추천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노우맨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7
요 네스뵈 지음, 노진선 옮김 / 비채 / 201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밀레니엄] 시리즈를 읽으면서 처음 북유럽의 소설을 접했다.

처음에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어려워서 해매다가 나중에 완전 몰입했던 대단한 시리즈.

그 후 넬리 노어하우스의 [백설공주에게 죽음을], [너무 친한 친구들]을 읽으면서 좋았었다.

그리고 다시 [밀레니엄]의 스티그라르손의 뒤를 잇는다는 새로운 작가 요네스뵈를 만났다.

그를 만나는 첫 작품은 그의 명성을 만들어 준 '해리홀레' 시리즈의 7번째 작품 [스노우맨].

전 유럽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30여개국으로 번역되어 출판된 대단한 스릴러라고 하는 작품.

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의 감상은 작품에 대한 평가가 과장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늘한 스릴러.

 

우리 아들이 어렸을 때 아이들이 필수로 보는 '스노우맨'이라는 비디오가 있었다.

거기에 나오는 스노우맨을 차가운 외피와 다른 따뜻한 마음을 가진 착하고 친숙한 캐릭터였는데

이 소설에서 나오는 스노우맨은 누구보다 잔혹하고 차가운 피를 가진 연쇄살인마의 별명이다.

너무도 친숙했던 눈사람을 잔혹한 살인마로 둔갑시킨 작가에게 비난을 퍼부어야 할까?

이제는 더 이상 눈사람을 보면 낭만적인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을 수는 없게 되어 버렸다.

특히나 그 눈사람이 길 쪽이 아니라 우리 집 쪽을 향하고 있다면 공포에 사로잡힐 것 같다.

비록 나는 남자이고 스노우맨의 범행대상이 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조건을 가지고 있지만.

 

유럽에서 자신의 아버지가 친아버지가 아닌 경우가 20%에 달한다는 통계를 뉴스에서 본 적이 있다.

모든 사람들이 친자확인을 하지 않는다는 것과 친자확인을 하는 사람은 의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면

뉴스에서 말하는 통계는 자극적인 면만을 부각시킨 전형적인 낚시성 기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뉴스가 전하는 것은 성에 대한 개방적인 사고가 가져온 유럽의 가정파괴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속 스노우맨은 부부의 눈이 아닌 그들 사이에 태어난 죄없는 아이의 시선에서 그 현상을 이해하고 있다.

자신이 믿던 세계가 어느 순간 와르를 무너져 내리는 경험은 아이가 감당하기엔 너무나도 힘든 것이다.

또한 그 경험이 유발시킨 유전병이 정한 유한한 운명은 그의 광적인 행동에 합리화를 부여하기에 충분하다.

유교 문화의 흔적으로 아직은 가정을 지키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와 사뭇 다르게 느껴지지만

점점 더 개방적으로 변화는 성에 대한 의식, 성 윤리의 변화가 조만간 우리 사회에도 이런 문제를 안길 수 있다.

작가가 소설에서 말하고자 했던 것은 사회 시스템의 붕괴와 가정의 파괴 속에 점점 고독해지는 개인의 모습이다.

스노우맨이나 해리홀레, 카트리네 브라트가 보여주는 인간상은 현대인의 고독을 보여주는 다양한 스펙트럼이다.

 

해리홀레 시리즈는 유럽에서는 대단히 유명하다고 한다. 이 소설을 그 중에 7번째 소설이다.

총 9편의 시리즈가 나왔고 그 중에서도 다른 시리즈와의 연관성이 적으면서도 가장 흥미로운 소설이라고 한다.

해리홀레 시리즈에 입문하기에는 딱 맞는 소설이라고 한다. 아마도 계속 번역되어서 나오지 않을까?

시리즈의 주인공 해리홀레의 모습은 남자인 내가 봐도 꽤나 매력적이다. 여자라면 한번쯤 반할것 같은 캐릭터다.

샤프하고 말끔한 신사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먼 상처받은 짐승 같지만 날카로운 눈빛을 지닌 마초적인 캐릭터.

점점 연성화 되어가고 있는 남성성에 반기를 들 듯 경찰이라는 조직에 반기를 들면서도 나름 적응하는 문제 형사.

다른 시리즈를 읽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판단하기 쉽지 않지만 시리즈 다른 작품들에서도 충분히 매력적일 것 같다.

해리홀레라는 형사의 매력만으로도 시리즈 전체를 이끌어가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다.

 

620 페이지라는 분량이 주는 압박감은 책을 들기 어렵게 만든다.

시리즈의 7번째이기 때문에 해리홀레나 그의 연인 라켈, 그녀의 아들 올리그에 대한 설명도 부족하다.

그래서 초반에는 소설을 읽어 나가기가 쉽지않고 사건의 진행도 빠르지 않아서 다소 지루하기도 하다.

그러나 중반을 넘어서서 해리홀레와 숨어있는 스노우맨의 대결이 본격화 되면 읽는 소설에 가속이 붙는다.

나 같은 경우도 초반 300페이지를 읽는데는 3일정도 걸렸는데 후반 300페이지는 하루만에 읽었다.

후반으로 갈수록 몰입도가 높아지면서 이야기의 속도고 빨라지고 소설의 재미가 증폭된다. 재미있다.

북유럽의 서늘한 감성을 뼈 속 까지 느낄 수 있는 잘 만들어진 스릴러다. 강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게임의 왕 미스터리 소년추격전 1
한상운 지음 / 톨 / 2012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의 세계는 그런 물리적인 힘이 아닌 인터넷 네트워크가 지배하는 세상이다.

인터넷의 선의적 목적과는 상관없이 수많은 부작용이 발생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최근 학교폭력의 원흉으로 지목되면서 수많은 규제가 게임산업의 숨통을 조이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게임을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려 한다는 비난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지금의 온라인 게임에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우리의 아이들이 PC방에서 만나는 세계는 과연 어떤 곳이며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학교에서 왕따는 아니지만 그림자 수준의 존재감을 지니고 있는 태식.

자신의 학교에 다니는 아이돌 여자애의 주목을 끌고 싶어서 판타지온라인이라는 게임을 시작한다.

그러나 결국 그 여자애는 게임에 관심이 없고 자신의 노력은 한심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렇게 조용히 게임마저 포기하려 하는 순간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은 바램을 갖게된다.

우연히 발견한 게임의 버그로 인해 갖게 된 자신의 캐릭터의 보잘것 없는 능력을 바탕으로

게임에서 절대 죽을 수 없도록 설정된 지옥의 수문장 용을 죽이는 대담한 계획을 세우게 된다.

별로 없는 자신의 친구들과 함께 용을 죽이는데 성공하지만 그 후에 상상도 못할 사건에 휘말리게 된다.

 

이 소설은 태식이라는 한 찌질한(?) 고등학생이 자존감을 회복해 나가는 전형적인 성장소설이다.

뭐 하나 특출한 것 없이 일진에게 얻어맞고 공부도 잘 못하고 자신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아이.

자의식이 가장 강할 수 밖에 없는 시기에 그런 자의식과는 동떨어진 존재감에 방황하는 아이.

태식이 게임을 통해 스스로의 자존감을 회복하고 자신의 위치에 맞는 자의식을 형성하는 과정은

대부분의 성장소설이 가지는 전형적인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소설의 또 다른 부분은 아이들이 용을 잡고 난 이후에 아이들에게 벌어지는 상상초월의 사건들에 담겨 있다.

점점 인기가 사그러져 가는 게임을 어떻게든 되살려야 하는 게임업체 CEO 중경,

판타지온라인을 근거지로 아이템 거래로 돈을 벌어온 전직 조폭 출신의 훈남길드의 수장 인투더레인,

훈남길드의 일원이었다가 자신의 길드릉 따로 만들어 훈남길드와 서버를 양분하는 인맥길드의 수장 사또딸보.

아이들의 세계로 생각되어지는 게임의 세계에 돈 냄새를 맡고 뛰어든 어른들의 진흙탕 싸움은 씁쓸하다.

게임을 아이들의 것으로만 인식하는 것도 문제가 있는 인식이지만 게임에 인생을 거는 그들의 모습도 지저분하다.

온라인 게임의 시초와 그 의도는 이미 잊혀진 지 오래이고 이제는 돈 냄새를 맡고 덤비는 욕망의 구렁텅이일 뿐이다.

게임이라는 여가활동이 돈이라는 인간의 욕망과 만났을 때 얼마나 저급하게 몰락할 수 있는 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아이들이 용을 죽인 의도는 그들에게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용을 죽인 아이들을 자신들의 욕망에 이용하면 그 뿐이다.

그런 어른들의 모습은 같은 어른인 내가 다 부끄러워질 정도로 추잡하고 비열하고 저급하다. 그저 창피할 뿐이다.

 

태식이 온라인 게임에서 만나는 모습, PC방 알바를 하면서 만나는 세상을 보면 아찔하기까지 하다.

지금 내 아이는 어떤 세상을 만나고 있을까? PC방에 보내놓고 방관하는 부모들은 그들이 만나는 세상을 알고 있을까?

PC방이 아이들의 여가를 위한 장소가 아니게 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세상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온라인 게임의 세상에 돈을 쫓아 몰려드는 어른들이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 정도로 심각할 줄은 알 지 못했다.

내가 모른 사이 내 아이가 만나는 세상이 이렇게 망가져 있을 줄은 알 지 못했다. 내 아이가 만나는 세상이 무섭다.

 

나는 아이를 PC방에 보내지 않는다. 온라인게임도 시키지 않는다. 대신 아이와 함께 TV 게임을 한다.

게임의 최초 의도인 여가활동 이상은 아이에게 허락하지 않는다. 그것도 되도록이면 함께 하려고 노력한다.

소설을 읽으면서 나의 이런 조치가 나름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물론 최선을 아닐 것이다.

아이들만의 세상에 우리 아이가 끼어들지 못할까 겁이 나기도 한다. 그러나 아이들이 만나는 세상이 무섭다.

 

그렇다고 이 소설이 온라인 게임의 단점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스스로의 자의식을 통제하지 못하는 태식의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순기능도 보여준다.

결국 모든 것은 내 아이가 스스로를 통제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게임 뿐 아니라 어디라도 빠질 수 있는 질풍노도의 시기에 스스로를 통제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하기 때문이다.

특히나 지금처럼 온 세상이 온갖 정보로 넘쳐나고 있는 시대에 스스로가 정보를 취합할 수 있는 통제력은 중요하다.

소설을 읽으면서 내 아이에게 내가 해 주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작가는 '소설은 번역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세상의 모습을 소설로 번역해 주는 것이라고 한다.

그의 말대로 이 소설은 내가 안다고 생각했지만 전혀 모르던 세상의 모습을 제대로 번역해 주고 있다.

아이들이 읽으면 성장소설로 최고이고 어른들이 읽으면 아이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소설이다. 강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리5구의 여인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무협영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이 있다.

'사부를 죽인 원수', '아버지를 죽인 원수', 혹은 '가문의 원수' 등.

무협영화의 주제는 대동소이한 권선징악이고 주인공의 사적인 복수가 이야기의 중심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는 최소한의 질서유지를 위해서 사적인 복수는 철저히 통제된다.

물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사적인 복수를 행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고는 하지만

그 테두리에서 하는 복수라는 것은 그 한계가 있어서 언제나 만족을 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어떤 일들에 대해 복수를 꿈꾼다. 성인군자가 아니라면 말이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복수를 꿈꾸는 이들은 초자연적인 존재, 판타지에 기대하기도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 해리처럼 절망의 끝자락에 선 사람이라면 더욱 더.

[빅 픽처], [위험한 관계], [모멘트]의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의 신작은 기대 이상이었다.

이전까지의 작품들은 현실세계에 발을 디디고 현실에서 있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이 소설에서는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어 현실에서 불가능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현실의 한계를 벗어나 자칫 황당해 보일 수 있는 이야기에 그는 단순하지 않은 주제를 담았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타인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정당한 것인가?

자신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자신과 관련된 일들에 의해 우리가 가져야 할 자책감의 한계는 어디인가?

가볍지 않은 주제를 시종일관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전개해 나가는 제대로 재미있는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그의 여러 소설들 중에서 단연 최고라고 손가락을 치켜들 수 있는 소설이다.

그렇기에 이미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하지 않는가? 확실히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는 소설이다.

잘나가는 대학교수였지만 제자와의 한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고 프랑스로 쫓겨난 해리.

뒤늦게 모든 것의 배후에 학장과 전처의 계략이 있었음을 알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파리에 도착해서 최악의 공간에서 최악의 인물들과 생활하게 된 해리는 어느날 마지트를 만난다.

동료 교수의 소개로 참석한 파티에서 발코니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그녀에게 그는 빠져든다.

그녀와 만나면서 해리의 주변은 점점 꼬여가고 그의 생활은 점점 더 궁지에 몰리게 된다.

그러나 그 때 마다 해리의 생활을 방해하던 이들이 사고로 다치거나 살해당하게 된다.

당연히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리게 된 해리는 점점 더 궁지에 빠지고

마지트의 정체는 점점 더 알 수 없는 혼란함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과연 그녀의 정체는 무엇인가? 해리는 어떻게 궁지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까?

작가는 마지트의 정체를 초자연적이고 환상적인 무엇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마지트의 정체를 해리가 가지고 있던 죄책감과 좌절로 보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알 지 못하는 내면의 존재가 존재한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존재가.

자신의 상황이 절망적이고 아무런 빛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빠지게 되면 비로소 볼 수 있는 존재.

소설 속 마지트는 해리에게 존재하는 그런 내면의 존재가 형상화 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마지트의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믿게되는 모든 사건들이 실제로는 우연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그런 우연들이 하나의 운명으로 해리를 이끌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운명론적 세계관이 아닐까?

서양 문화에 자주 등장하는 수호천사라는 것도 어쩌면 그런 존재들에 대한 형상화가 아닐까?

다만 착하기만 한 수호천사가 아니라 소설 속 마지트와 같은 지독한 소유욕을 가진 존재도 있을 수 있다.

소설을 읽는 내내 기욤뮈소의 소설들이 생각나서 마지막 결론은 다르기를 기대했다.

만약 마지막 결말까지 기욤뮈소의 소설들의 색깔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대단히 큰 실망을 했을 것이다.

다행히 더글라스 케네디는 그만의 스타일로 이야기를 풀어냈고 그 방식이 나에게 제대로 통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운명론적 사고와 궤를 같이 하면서도 현실에서 발을 떼지 않는 이야기.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인 재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운명에 대한 사색을 놓치지 않는 대단한 소설이다. 강추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