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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드 세트 - 전2권 - 가난한 성자들 ㅣ 조드
김형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2년 2월
평점 :
인류 역사상 가장 광대한 영토를 지녔던 몽고제국.
그 제국을 세운 '칭기스칸' 테무진의 이야기는 수없이 반복된 소재이다.
그러나 소설 [조드] 처럼 태무진의 이야기를 초원에서 접근한 소설을 보지 못했다.
중세시대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한 '푸른 군대'의 '늑대 병법'의 근원을 찾아간 여정.
근대화란 명목하에 평가절하 되어야 했던 유목민들이 꿈꾸던 이상향의 세계.
작가가 10개월간 유목민들과 함께 뒹굴며 함께 써내려간 한편의 장편 서사시이다.
'작은 몽골'의 왕족이었으나 아버지의 죽음이후 권력투쟁에서 밀려 초원에 버려진 태무진.
초원에서의 삶이 버려진 가족에게 얼마나 비참한 것인지 이 책을 읽고서야 처음 알았다.
겨우 연명을 하며 살아가던 태무진이 보오르추, 젤메 등의 친구들을 얻으면서
세상에 대한 각성을 하고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모습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영웅들이 나오는 대부분의 소설들과 비슷한 얼개를 지니고 있는 소설이지만 다른 소설이다.
대부분의 영웅담들이 한명의 주인공의 삶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지만
이 소설을 태무진의 삶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라 유목민들의 삶을 쫓아가고 있다.
태무진이 나라를 세우고 초원을 평정하는 과정은 개인적인 복수나 욕망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라
푸른 하늘의 뜻을 섬기고 유목민들이 차별없이 살아가는 이상적인 세상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설의 중심은 푸른하늘을 섬기며 자신들에게 허락된 것만을 취하는 유목민들의 삶에 맞춰져 있다.
'조드'로 대변되는 하늘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며 허락된 것 이상을 욕심내지 않는 유목민의 삶.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통해 하늘의 뜻을 따르고 죽을 때 푸른하늘로 돌아가기를 원하는 삶.
그들에게 푸른하늘이 의미하는 것이 그대로 칭기스칸의 '푸른 군대'의 DNA에 새겨져 있다.
초원의 강자는 사자도 호랑이도 아닌 늑대이다.
인간에게 길들여지는 개의 삶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경쟁을 하는 늑대의 삶.
태무진이 초원에 버려져 비참하게 살아가면서 터득한 늑대의 삶과 지혜가 '늑대병법'에 녹아든다.
지금의 우리에게 늑대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지만 늑대의 참모습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초원의 유목민들도 늑대를 부정적으로 보지 않고 오히려 늑대를 자신들의 삶과 일치 시키고 있었다.
몽골족의 시조신화에서도 늑대는 강하고 의리있고 뜻을 굽히지 않는 강인한 이미지로 남아있다.
지금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늑대의 모습이 아니라 초원의 유목민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늑대는 멋있다.
소설에서 태무진의 친구이자 숙적으로 등장하는 '자무카'의 모습이 늑대의 모습과 많이 닮아있다.
그래서 태무진은 결국 자무카를 미워할 수 없었고 끝까지 그를 품으려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의 작가는 시인이다. 그래서 소설의 문구들이 모두가 시의 한 구절 같다.
언어를 다듬고 깎으며 정성을 들이는 시인의 버릇이 소설 속 문장 하나하나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래서 처음 읽을 때는 은유적인 표현들이 넘쳐나는 시같은 문체에 당황하게 된다.
그러나 서서히 그 문체에 적응이 되어가면 기존의 소설에서 느낄 수 없는 묘한 매력을 발견하게 된다.
소설이라기 보다는 한편의 장대한 서사시를 읽는 기분이 들게 만든다.
그러나 너무 시적이다 보니 직설적인 소설체에 익숙한 나같은 사람에게는 다소 어렵게도 느껴진다.
소설의 내용이 너무 재미있고 유목민들의 삶이 새롭게 느껴지지만 시적인 문체에 다소 막히는 느낌이다.
그래도 전체적인 느낌은 아름답고 유려한 우리글의 멋스러움이 시인의 노력에 의해 반짝반짝 빛난다.
문명의 승자는 유목민이 아니라 정착민의 몫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아직도 유목민들을 문명에 뒤쳐져서 사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렇다면 이 소설을 읽어보라. 유목민들과 그들의 삶에 대한 우리의 시각이 얼마나 무지한지 알 수 있다.
오늘날 지구상의 인간이 만들어낸 온갖 사회문제, 환경문제, 불평등의 문제들이 유목민들의 삶으로 보면
얼마나 말도 안되게 어이없는 문제들인지 깨닫게 될 것이다. 문명의 승자는 정착인이 아니라 유목민이다. 강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