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파리5구의 여인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2년 1월
평점 :
무협영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이 있다.
'사부를 죽인 원수', '아버지를 죽인 원수', 혹은 '가문의 원수' 등.
무협영화의 주제는 대동소이한 권선징악이고 주인공의 사적인 복수가 이야기의 중심이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는 최소한의 질서유지를 위해서 사적인 복수는 철저히 통제된다.
물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사적인 복수를 행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고는 하지만
그 테두리에서 하는 복수라는 것은 그 한계가 있어서 언제나 만족을 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어떤 일들에 대해 복수를 꿈꾼다. 성인군자가 아니라면 말이다.
현실에서 불가능한 복수를 꿈꾸는 이들은 초자연적인 존재, 판타지에 기대하기도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 해리처럼 절망의 끝자락에 선 사람이라면 더욱 더.
[빅 픽처], [위험한 관계], [모멘트]의 작가 더글라스 케네디의 신작은 기대 이상이었다.
이전까지의 작품들은 현실세계에 발을 디디고 현실에서 있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이 소설에서는 현실의 한계를 뛰어넘어 현실에서 불가능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현실의 한계를 벗어나 자칫 황당해 보일 수 있는 이야기에 그는 단순하지 않은 주제를 담았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타인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은 정당한 것인가?
자신의 주위에서 일어나는 자신과 관련된 일들에 의해 우리가 가져야 할 자책감의 한계는 어디인가?
가볍지 않은 주제를 시종일관 흥미진진한 이야기로 전개해 나가는 제대로 재미있는 소설이다.
개인적으로 그의 여러 소설들 중에서 단연 최고라고 손가락을 치켜들 수 있는 소설이다.
그렇기에 이미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하지 않는가? 확실히 영화로 만들어도 손색이 없는 소설이다.
잘나가는 대학교수였지만 제자와의 한순간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고 프랑스로 쫓겨난 해리.
뒤늦게 모든 것의 배후에 학장과 전처의 계략이 있었음을 알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파리에 도착해서 최악의 공간에서 최악의 인물들과 생활하게 된 해리는 어느날 마지트를 만난다.
동료 교수의 소개로 참석한 파티에서 발코니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그녀에게 그는 빠져든다.
그녀와 만나면서 해리의 주변은 점점 꼬여가고 그의 생활은 점점 더 궁지에 몰리게 된다.
그러나 그 때 마다 해리의 생활을 방해하던 이들이 사고로 다치거나 살해당하게 된다.
당연히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몰리게 된 해리는 점점 더 궁지에 빠지고
마지트의 정체는 점점 더 알 수 없는 혼란함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과연 그녀의 정체는 무엇인가? 해리는 어떻게 궁지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까?
작가는 마지트의 정체를 초자연적이고 환상적인 무엇으로 그리고 있다.
그러나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마지트의 정체를 해리가 가지고 있던 죄책감과 좌절로 보게 되었다.
누구에게나 자신이 알 지 못하는 내면의 존재가 존재한다.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존재가.
자신의 상황이 절망적이고 아무런 빛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빠지게 되면 비로소 볼 수 있는 존재.
소설 속 마지트는 해리에게 존재하는 그런 내면의 존재가 형상화 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마지트의 능력이라고 생각하고 믿게되는 모든 사건들이 실제로는 우연일 수 있는 것이다.
다만 그런 우연들이 하나의 운명으로 해리를 이끌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운명론적 세계관이 아닐까?
서양 문화에 자주 등장하는 수호천사라는 것도 어쩌면 그런 존재들에 대한 형상화가 아닐까?
다만 착하기만 한 수호천사가 아니라 소설 속 마지트와 같은 지독한 소유욕을 가진 존재도 있을 수 있다.
소설을 읽는 내내 기욤뮈소의 소설들이 생각나서 마지막 결론은 다르기를 기대했다.
만약 마지막 결말까지 기욤뮈소의 소설들의 색깔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대단히 큰 실망을 했을 것이다.
다행히 더글라스 케네디는 그만의 스타일로 이야기를 풀어냈고 그 방식이 나에게 제대로 통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운명론적 사고와 궤를 같이 하면서도 현실에서 발을 떼지 않는 이야기.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인 재미를 잃지 않으면서도 운명에 대한 사색을 놓치지 않는 대단한 소설이다. 강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