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에 대한 재발견


이창호가 지닌 덕목은 워낙 많아서 한두 가지로 정리되지 않는다. 인간적 품성, 승부사적 자질 어느 쪽을 막론하고 두루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번 상하이에서 치러진 제6회 농심배 최종라운드를 동행하면서 나는 그의 ‘전혀 새롭지 않은(?)’ 모습들을 ‘매우 새롭게’ 만나곤 했다. 이창호 캐릭터에 대한 내 나름의 복기(復棋) 과정이었다고나 할까. 때때로 그는 승부사라기보다 도인(道人) 쪽에 가까웠고, 대중적 인기인은커녕 수도승 같은 모습으로 내게 다가오곤 했다. 그 조용하기 그지없는 몸짓이 한 번 펼쳐질 때마다 5명의 자객(刺客)들은 차례로 쓰러져갔다. 외경(畏敬)과 두려움의 5일 간이었다.


<성실성>

금강산 대국 사흘 만에 또 한 번 반복된 외지 원정. 폭주에 가까운 스케줄이었다. 일정이 이렇게 밖에 안나오는 걸까. 한국기원 스케줄러를 향해 이창호는 분명히 하고 싶은 말이 있다. 하지만 그는 눈자위가 푸석푸석한 채로 가장 먼저 인천 공항에 나타났다. 그리고 묵묵히 비행기에 올랐다. 평소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생활방식 이지만 언제 어디서나 약속에 늦는 법이 없다. 절대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는다. 이번에도 예외 없이 그의 손에는 책 한 권이 들려있었다.


<근성>

첫날 대국에 앞서 오전에 열린 기자회견. 이창호 장쉬 등 오후에 대국할 당일 출전 기사들은 빠졌다. 마이크를 넘겨받은 한국 팀 김인 단장은 “우리 선수단이 포기한 모양이다”라며 탄식했다. 그 소식을 나중에 전해들은 이창호가 펄쩍 뛰었다. “그럴 순 없죠. 꼭 이기겠습니다.” 양처럼 순하기만 한 이창호의 손바닥엔 매(鳶)의 발톱이 숨겨져 있었다. 훗날 그는 ‘김국수님’의 자극 요법이 큰 힘이 됐다며 웃었다.


<자기 조절>

뒤로는 올 들어 1승 5패란 최악의 전적. 앞에 보이는 것은 5연승이란 태산 같은 짐. 그는 도착 직후부터 외부와의 접촉을 일체 차단했다. 동행했던 한국 팀 관계자들과 식사조차도 어울리지 않았다. 마음이 풀어질 수도 있고 부담감이 가중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으리라. 체력 비축의 의미도 강했다. 베이징서 사업을 하는 한 살 아래 동생 영호 씨가 날아와 형의 일거수일투족을 수발했다. 식사는 동생이 거의 매 끼를 사다 날라 해결했다. 호텔 방에서 가족들의 근황을 반찬삼아 함께 식사를 마치면 날이 어둑해지곤 했다. 형이 바둑판을 당겨놓는 동안 동생은 방을 치웠다.


<치밀함>

첫 날 도착 후 바둑판부터 요청했다. 그리곤 미리 준비해 온 다음 날 대적할 상대의 기보를 놓아보며 포석을 구상했다. 제한 시간 1시간짜리 준(準) 속기인 농심배는 사전 구상이 잘 맞아떨어지면 절반은 먹고 들어간다. 그는 이런 식으로 매일 밤늦게 까지 다음 ‘제물’감을 바둑판 위에 눕혀놓고 숙달된 조리사처럼 기보를 해부했다. 이 번 대회 기간 중 그가 거의 매 판에 걸쳐 초속기로 빠른 운석(運石)을 보인 이면엔 이 같은 비결(?)이 있었다.


<여유>

중국 기자들은 집요했다. 4명의 중, 일 기사들이 모두 탈락하고 21세의 애송이 왕시만을 남겼을 때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지금까지 처음 만나는 상대에겐 약한 모습을 보여 왔다. 혹시 그 전통대로 마지막 단계에서 무너지는 건 아닐까?” 이창호는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승부란 상대적인 것이다. 그리고 맞상대는 안 해봤어도 간접적으로 기질(棋質)을 파악할 수 있다.” 그 바둑은 이번 이창호의 5승 가운데 가장 편한 바둑 중 한 판이 됐다.


<극복력>

초1류 승부사가 되기 위한 조건은 2가지. 하나는 승부처를 찾아내는 동물적 후각이고, 또 하나는 승부처에서 자기 쪽으로 물줄기를 돌려내는 감각이다. 출국 비행기 안에서 이창호는 "농심배 우승을 하긴 해야겠는데, 그러려면 상하이에서의 첫 판, 즉 장쉬와의 대결이 결정적 승부처인 것 같다"고 했다.

그 바둑서 이창호는 초반 여유 있는 우세를 잡고도 갑자기 두 세 차례의 헛손질을 범해 미세한 형세까지 쫓겼다. 엄청난 부담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막판 혼신의 힘으로 결정타를 꽂아 넣는데 성공한다. 극적 5연승으로 대회가 끝난 뒤 그는 “장쉬와의 첫 판 고비를 넘은 뒤 둘째 판부터는 컨디션이 상승하고 있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었다”고 술회했다. 출국 직전 최철한에게 당한 3연패, 연 초 1승 5패로 몰렸던 난조는 그 뒤부터 급격히 물줄기를 돌렸다. 이창호만이 할 수 있는 위기 관리 능력이자 극복력이었다.


<소탈함-예의바름>

스타들에게 이른바 ‘팬’이란 사실 무섭고도 성가신 존재다. 특히 중국 내에서 이창호에 대한 인기는 일반의 상상을 훨씬 뛰어넘는다. 그는 가는 데마다 쫓겼다. 심지어는 시상식 도중에, 화장실 갈 때까지도 사인 부대는 강력한 공격을 감행하곤 했다. 그러나 이 번에도 역시 이창호의 찡그리거나 거절하는 모습은 한 번도 볼 수 없었다. 요즘에야 어디 사인으로 끝나던가? 디지틀 카메라를 내밀면 포즈도 취해줬다. 인천 공항 개선(凱旋) 후에도 팬이나 이창호나 전혀 달라짐 없이 똑같은 광경을 연출했다.


<꾸준함>

이상의 덕목들은 이창호란 이름의 시계 속 ‘부속 장치’같은 것 들이다. 앞서 열거한 ‘부속’들 가운데 빠진 것도 제법 있을지 모른다. 어찌됐건 이 시계는 지난 20년 간 해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수 십 년 간 계속 째깍거릴 것이 틀림없어 보인다. 중간에 잠시라도 쉰다면 그건 시계도 아니지. 이창호는 잠시 반짝했다가 한 동안 잠수해 버리고, 다시 나타나 한 바탕 소동을 벌이고 또 다시 사라지는 류의 기사와 구별된다. 그의 진짜 최대의 덕목은 바로 이 ‘꾸준함’이 아닐까.


‘난청지역’

과공(過恭)은 비례(非禮)라는 데 칭찬만하고 있을 순 없다. 그도 인간인지라 분명 부족한 점도 있는데, 이 기회를 빌려 마음먹고 흉도 좀 봐야겠다.

(1)절대로 튀지 않는다=어떤 경우에도 과도한 쇼 맨쉽을 피한다. 시상식 때 꽃다발을 높이 쳐든다든가, 하다못해 뛰쳐나온 응원단과 하이 파이브를 나눈다든가…하는 것은 그의 사전엔 없다. 답변도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상대는 훌륭한 기사입니다” 는 등 판에 박은 모범 답안뿐이다. 이세돌과 둘을 섞어 반죽한 뒤 다시 둘로 나눌 수 있으면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이런 거야 뭐 아무래도 좋다. 진짜 큰 문제는 다음 2번이다.

 

(2)이창호는 모기 띠?=인터뷰 할 때 그를 중심으로 한 반경 30센티 밖은 난청지역이다. 도대체 몇 데시벨 쯤 될까. 모기 소리보다 결코 더 크지 않다. 국제 대회 때면 한국 기자들만 애먹게 마련이어서 더욱 심각하다. 왜냐하면 이창호의 답변은 외국 기자들에겐 통역을 통해 우렁차게 전달되는데 반해(통역자만 애먹을 뿐이다), 한국 기자들은 ‘이창호의 한국말’을 직접 ‘해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 기간 동안에도 대국 직후 인터뷰를 앞두곤 '최전방’ 쟁탈전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그러나 이런 정도는 흉이라고 할 것도 못된다. 이창호에게 그런 약점이 애교에 불과하듯 이 글에서도 그냥 애교다. 중국에 머무는 동안, 이창호와 같은 나라 사람이란 사실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큰 자부심을 느끼게 되는지는 아는 사람만 안다. 그 것은 거의 축복 수준이다.

중국 바둑 팬 중엔 막무가내식 맹목적 국수주의자도 많지만 이창호를 진정으로 존경하고 응원하는 팬들도 적지 않다. 이번 대회가 한국의 대 역전 우승으로 끝난 뒤 중국 인터넷 사이트엔 “이창호의 5연승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그를 존경한다”는 댓글이 수도 없이 올라왔다.

체단주보 시에레이(謝銳)기자 같은 사람은 평소에도 이런 얘기를 한다. “이창호는 바둑에 관련된 일을 하는 모든 사람들의 희망이자 자존심이다. 이창호처럼 성실하고 겸손하며 노력하는 천재가 쉽게 무너진다면, 바둑 자체의 위상은 물론이고 바둑 종사자 모두가 엄청나게 초라해질 것이다. 그 때를 상상하면 소름이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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