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이 있어 우리는 행복하다

독일 월드컵 본선진출 주역
쿠웨이트시티=최보윤기자 spica@chosun.com
입력 : 2005.06.10 03:16 05' / 수정 : 2005.06.10 03:21 54'
 

 

여드름 투성이의 스무 살 청년은 거울을 보면 스스로 “못생겼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하지만 9일 새벽 잠을 설쳐가며 한국이 독일 월드컵 아시아최종예선에서 쿠웨이트를 4대0으로 꺾는 모습을 지켜본 국민들에겐 축구대표팀 막내 박주영은 그 누구보다 멋지고 아름다운 청년이었다.


▲ '소년의 꿈'이 마침내 현실이 됐다. 지난 1996년 대구 반야월초등학교 5학년이던 박주영(가운데 10번)이 대구시민운동장에서 열린 한 축구대회 결승전에서 상대 선수들을 제치고 드리블 하고 있다. /스포츠하우스 제공
◆ 무뚝뚝한 골잡이

경기가 끝난 뒤 한국 선수들끼리 어깨동무를 한 채 노래를 부르고 깡충깡충 뛸 때, 일등공신 박주영은 그 자리에 없었다. 경기 MVP로 뽑혀 상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상품을 손에 들고 터덜터덜 걸어가는데, 얼굴은 예의 그 무표정 그대로다.

“기분 좋고요. 골 넣은 거보다도 월드컵 나갈 수 있게 된 게 무엇보다 좋았고요. 꼭 이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는데요. 수비 뒷공간으로 파고든 게 먹힌 거 같고요….”


▲ 자전거를 타고 있는 '꼬마' 박주영. /조선일보 DB
그의 말대로라면 정말 뛸 듯이 기뻐, 목소리라도 들떠야 하는데 이거 참 담담하다. 선배들이 덥석 껴안으며 토닥거리고, 코칭 스태프진이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을 해도 처진 눈인사로 살짝 답례를 할 뿐이다. 야스퍼트 피지컬 코치는 뭐가 그리도 예쁜지 냉큼 달려가서 ‘굿잡(good job)’이라며 그를 얼싸안기까지 한다. 이번에도 역시 살짝 띤 미소가 전부다. 하지만 사석에서 또래들을 만나면 ‘수돗물 쏟아지듯’ 수다를 늘어놓는 게 박주영의 또 다른 일면이다.

그가 환하게 웃을 때는 역시 공과 함께 그라운드를 누빌 때다. 이제 그렇게도 좋아하는 축구를 또 하게 생겼다. 10일부터 네덜란드에서 열리는 세계청소년(20세 이하) 선수권대회에 참가한다. 박주영은 9일 쿠웨이트에서 곧바로 현지 한국청소년대표팀에 합류했다. “워낙 호흡이 잘 맞는 친구들이라, 경기하는 데는 문제 없을 것 같고요. 대표팀에서 하던 대로 똑같이만 하면 잘 될 거 같은데요.” 박주영이 내던지는 당찬 출사표다.

◆ 부드러움과 스피드로 승부

겨우 20살. 그러나 이미 한국 축구의 미래로 우뚝 서버린 자랑스런 청년. 그에게 공이 가면 안심이 된다. IQ 150의 머리에서 나오는 지능적인 플레이, 표범이 먹이 낚아채듯 기회를 놓치지 않는 능력, 반박자 빠른 슈팅, 성실한 훈련자세…. 이회택, 차범근, 최순호, 황선홍, 최용수 등등 역대 스트라이커들이 체격과 파워를 바탕으로 했다면 박주영은 부드러움과 스피드로 상대를 제압한다. 100m 달리기 기록이 12초. 공격수로서 최상위권은 아니지만, 박주영은 그냥 달릴 때나 공을 드리블하며 달릴 때나 속도가 똑같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1m82, 71㎏의 체격은 가냘퍼 보이기까지 한다. 본프레레 감독이 “훅 불면 날아갈 것 같다”고 발탁을 꺼렸을 정도였다. 하지만 박주영은 A매치 2경기 연속 풀타임을 완벽하게 소화해 내며 주위의 우려를 깨끗이 씻어냈다. 불필요한 체력소모를 하지 않는 영리한 플레이가 그 비결이다. 또 하나의 강점은 큰 부상이 없었다는 것. 대표팀 최주영 의무팀장은 “주영이 몸은 믿기지 않을 만큼 깨끗하다”고 했다.


▲ 캐리커처=이철원기자
◆ 미니홈피서 싸이질도 열심

1985년 7월 10일생, 축구화 사이즈 265~270㎜, 수면시간 6시간, 자주 가는 곳 PC방, 이상형 ‘기도할 때 모습 예쁜 여자’, 성격의 단점 ‘잘 삐침’, 싫어하는 말 “교회 뭐할라구 가노”….

박주영의 팬이라면 그에 대한 시시콜콜한 얘기를 알아내기가 그리 어렵지 않다. 박주영이 직접 자신의 팬클럽에 100문100답을 통해 올려놓았기 때문이다. 두 살 위의 누나가 주는 ‘도토리’를 갖고 자신의 미니홈피(www.cyworld.com/cyp10)에서 ‘싸이질’도 열심히 하는 신세대다.

대구에서 교회를 다닐 때 만난 한 살 연상의 여자친구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지난 4월 24일 프로축구 대전과의 경기에서 골 세러모니로 속옷에 ‘굼벵이’ 그림을 그린 것에 대해 “별명이 굼벵이인 여자친구에게 사랑고백을 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었다. 각종 광고 모델로도 인기가 높은 박주영의 한 달 용돈은 50만원. 그저 이것 저것 사먹는 데 쓰는 정도다. 골을 넣은 뒤 기도 세러모니를 빼놓지 않는 박주영의 장래 희망은 ‘축구 선교사’다.

◆ 박주영 축구의 비밀

대구 반야월초등학교 4학년 때 선수 생활을 시작한 박주영은 자신만의 비법으로 축구를 색다르게 익혀나갔다. 첫 번째 비밀은 ‘맨발 축구’. 축구화를 잃어버려 맨발로 축구를 해야 했던 적이 있는데, 그 덕분에 세심한 볼 터치의 감을 잡았다. 이후로도 가끔씩 맨발 축구로 볼 감각을 점검한다. 두 번째 비밀은 ‘시장통 축구’. 사람이 많은 공간에서 돌파력을 높이기 위해 어렸을 때부터 사람들이 많이 모여드는 재래시장에서 드리블 연습을 했다. 세 번째는 ‘놀이축구’. 항상 볼과 함께했던 박주영은 길을 걷다가도 벽에 붙여진 포스터에 축구공을 명중시키는 놀이로 슈팅의 정확도를 길렀다. 초등학교 때부터 쓰기 시작한 일기는 지금껏 빠짐없이 쓰고 있다. 박주영은 A4 용지 반만한 크기의 일기장에 신앙과 축구로 가득찬 하루하루를 정리해가고 있다.

 

’마침내 터진 아름다운 발의 축포’

’순둥이’ 박지성이 본프레레호 데뷔골을 작렬하며 독일행 축포에 대미를 장식했다.

박지성은 9일 새벽 쿠웨이트시티 가즈마스타디움에서 열린 쿠웨이트와의 2006독일월드컵 아시아지역 A조 최종예선 5차전에서 후반 16분 팀 승리에 디딤돌을 놓는 4번째 골을 작렬하며 독일행 진출을 자축했다.

특히 박지성이 기록한 본프레레호 마수걸이골은 지난 2002년 박지성이 포르투갈을 격침시킨 결승골을 연상시키는 그림 같은 골.

당시 박지성은 페널티지역 오른쪽에서 포르투갈의 미드필더 콘세이상을 제치고 트레핑, 강력한 오른발 슛으로 그물을 출렁이며 한국의 16강행을 결정지은 바 있었다.

전반 초반에 다소 몸이 덜 풀린듯 움직임이 밋밋했던 박지성은 전반 중반 이후 특유의 빠른 발과 다이내믹한 몸동작으로 상대 수비수를 농락하며 한국 공격을 조율해 나갔다.

도우미로서 강철체력을 과시하던 박지성이 가장 빛나던 순간은 후반 16분.

박지성은 빠른 발을 이용해 상대 오른쪽 진영을 돌파 수비수 한 명을 가볍게 제치고 페널티지역 오른쪽 구석에서 중앙에 있던 이동국에게 패스하는 듯 하다가 오른발로 슈팅, 네트를 갈랐다.

최근 잉글랜드 명문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부터 공식적인 이적 제의를 받은 박지성은 이날 자신의 이름에 걸맞은 움직임으로 국내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것.

특히 네티즌들로부터 ’굳은살로 가득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발’이란 찬사를 받으며 최근 ’발’로 화제의 주인공이 된 박지성은 그 굳은살 가득한 발로 가장 아름다운 슛을 터뜨리며 본프레레호 마수걸이 골이라는 그림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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