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지도 - 어느 불평꾼의 기발한 세계일주
에릭 와이너 지음, 김승욱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8년 9월
절판


탄소가 없었다면 우리도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탄소는 모든 생명체의 기반이다. 그 생명체가 행복하든 불행하든 탄소는 또한 카멜레온 같은 원자이기도 하다. 탄소를 서로 단단히 맞물리게 배열하면 다이아몬드가 된다. 아무렇게나 헝클어놓으면 검댕이가 된다. 배열 방법이 이렇게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낸다.
장소도 똑같다. 각각의 장소에 존재하는 여러 특징보다는 그것을 어떤 비율로 어떻게 배열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배열 방법에 따라 스위스가 되기도 하고 몰도바가 되기도 한다. 균형을 제대로 잡는 게 중요하다. 카타르는 돈은 지나치게 많고 문화는 부족하다. 카타르는 지금 돈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
아이슬란드는 아직 행복해질 권리가 없는 나라인데 행복하다. 균형을 제대로 맞춘 덕분이다. 작은 나라이지만 분위기는 국제적이다. 어둡지만 밝다. 효율적이지만 느긋하다..... 이 나라를 하나로 묶어주는 건 문화다. 문화가 이렇게 커다란 차이를 만들어낸다.-4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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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본능 - 마음은 어떻게 언어를 만드는가
스티븐 핀커 지음, 김한영 외 옮김 / 소소 / 2004년 6월
절판


인간의 유전적 변이의 85%는 동일한 민족집단, 부족 또는 국가에 속하는 한 사람과 다른 사람 사이의 차이점들로 구성된다. 다른 8%는 민족집단 간의 차이이며, 단지 7%만이 ‘인종’들 간의 차이이다.-626쪽

인종은 말 그대로 가죽 한 꺼풀의 차이이지만, 그것을 인식하는 사람들이 외적인 차이로부터 내적인 차이를 일반화하는 한 자연은 그들을 속여서 인종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도록 만든다.
-6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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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 안의 신 - 진화론 시대의 종교에 대하여
존 호트 지음, 김윤성 옮김 / 지식의숲(넥서스) / 2005년 11월
절판


과학은 우주가 시간 속에서 펼쳐지는 끝없는 과정이며, 따라서 새로움에 대해 열려 있으면서 동시에 일관성을 지니기에 충분할 만큼 법칙적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과학의 추상을 넘어서 좀 더 근본의 차원에서 읽을 때에만, 우주가 그 궁극의 깊이에서 종교적 희망에 넓은 길을 열어 주는 광대한 약속을 담고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 더욱이 이는 신을 저 멀리 떨어진 제1 원인이라고 보는 생각이 일반적으로 제시하는 것보다도 더 긴밀하게 신이 우주적 진화에 관여한다고 이해하는 관점이기도 하다.
-147~8쪽

가장 진정한 신앙은 기대할 수 없는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복받은 이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바로 신의 약속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성서의 다양한 역사적·종교적 층위를 꾸준히 가로지르는 것은 바로 가장 중요하고 실제적인 것은 저 앞에,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미래에 놓여 있다는 끊임없는 주제다. 과거와 현재는 미래의 약속으로 채워지기 때문에 의미를 지닌다. 심지어 우리를 절망에 빠뜨리는 현재의 상황들도 놀라운 구원의 결과를 담고 있을 수 있다.-149~150쪽

진화론은 과학의 세계에서 탄생했으며, 과학의 세계에서 모든 우연적인 놀라움은 결국 이미 알려져 있는 물리 법칙들로 예측할 있는 뻔한 결과로 '환원'된다. 반대로 예측 불가능할 정도로 새로울 수 있다는 생각으로 가득 찬 의식에서 솟아난다. 성서가 말하는 신은 미래의 영역으로부터 세계 속으로 들어오는 신, 언제나 우리의 시시한 예측 능력을 초월하는 약속을 하고 이를 이행하는 신이다.....

-151~152쪽

따라서 인간은 동물이나 식물과 달리 종종 자신이 세계에 딱 들어맞지 않은 어긋난 존재 같다는 통렬한 느낌을 갖게 된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단지 실제적인 것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더 많은 가능성에, 약속을 적응해 가도록 되어 있는 이유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미래를 향해 영원히 열려 있는 세계에 유전적으로 맞닿아 있다.-302쪽

예수가 자신이 신의 선택을 받았음을 알았을 때에도 '종'의 신분으로 낮아지기를 마다하지 않았으며, 십자가의 처형으로 이루어질 가장 비천한 죽음을 평생 기꺼이 감내했다는 사실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필립비 2:5~11). 이와 똑같은 정신에서,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그리스도와 함께 한다는 것은 (적어도 성 바오로의 가르침을 따르자면) 소외되고 낯선 존재들을 향해, 그 무엇에도 속하지 못한 존재들을 향해 자신의 삶을 기꺼이 열어 두는 아픔을 감내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외계 존재와의 만남이 이루어진다면, 그 후로 '그리스도에게 속한다.'는 것은 전보다 더 철저한 포괄성 속에서 다양한 지적 세계들에 우리 자신을 열고, 이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369쪽

한스 요나스(Hans Jonas)는 가장 원시적인 형태의 대사 활동을 하는 생명체조차 다소 기초적인 방식으로나마 자신을 무생물적인 환경 속으로 사라져 버리게 하는 위험을 극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한다고 지적한다.-373쪽

종교는 생명, 특히 분투하고 탐험하는 지적 생명의 표현임을 알 수 있다. 내가 제시할 수 있는 한에서 말하자면, 종교는 지적 생명체가 벌이는 가장 강인한 분투다. 지구상의 모든 종교적 분투는 일종의 '길 찾기', 즉 우리를 가장 감내하기 버거운 생명의 한계를 너머로 데려다 줄 그런 통로를 찾는 모색이라 할 수 있다.-37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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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학 오디세이 3 미학 오디세이 20주년 기념판 3
진중권 지음 / 휴머니스트 / 2004년 3월
구판절판


사물은 신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었다. 언어의 타락은 사물의 타락이다. 이 타락에서 사물을 구하려면 아담의 언어를 되살려야 한다. -103쪽

침묵하는 사물들 속에서 저 근원적 언어의 흔적을 다시 보고, 그 이름을 다시 불러주어야 한다. 사물은 문자가 아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신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다. 때문에 글자처럼 읽을 수가 있다. 이렇게 "결코 씌어지지 않은 것을 읽는" 것이 벤야민의 과제다. 그는 사물의 소리 없는 목소리를 듣고 그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그것을 죽음의 상태에서 구원하려 한다. 이것이 이른바 '구제비평'이다.
현대 예술에는 '형식'만 남았다. 내용이 없기에 예술은 말을 잃은 듯이 보인다. 하지만 내용이 없다고 언어적 본질이 없는 것은 아니다. 비평은 '형식' 속에서 언어적 본질을 보고, 그것을 인간의 언어로 옮겨 그 안에 담긴 진리를 구제한다. 더 이상 아름답지 않은 현대예술의 형식에서 아담의 눈은 추할 대로 추해진 사회의 상태를 본다. -104쪽

갈가리 찢겨진 형식에서 아담의 귀는 커질 대로 커진 인간의 고통을 듣는다. 이렇게 비평은 아담의 눈과 귀가 되어 말을 잃은 예술에 말을 되돌려준다. 말을 잃은 현대 예술은 우리에게 불현듯 자기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어떤 '깨달음'을 준다.
'토라'가 사본들 속에 흩어져 내리듯이, 신의 말씀도 사물들 속으로 흩어져 내린다. 사물의 이름을 부르던 아담처럼 비평은 사물들의 이름을 불러준다. 번역을 통해 "신의 말씀의 궁극적 명료함"으로 상승하듯이, 비평 역시 사물의 소리 없는 목소리를 인간의 언어로 옮김으로써 근원으로 상승한다. 사물 속으로 흩어진 말씀의 파편들을 마치 밤하늘의 별처럼 서로 연결시켜 배열할 때, 이 속에서 창조의 근원적 말씀이 불현듯 별자리가 되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번개처럼 스쳐가는 깨달음. 세속적 계시라 할까?
-10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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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텍스트에 의미가 있는가? - 포스트모던 시대의 성경 해석학
케빈 J. 밴후저 지음, 김재영 옮김, 강영안 교수 추천 / IVP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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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스트모던시대의 성경해석학이란 부제가 말하듯 해체주의 등이 주장하듯
텍스트 읽기가 자기를 비추는 텅 빈 자리인 언어적 우상이 아니라
의미로 가득 찬 언어적 초상이라고 한다.

    텍스트가 열어 주는 생각의 방향을 인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삶을 다르게
바라보도록 의무를 지우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자는 어떻게 텍스트의 의미의 최
선의 반응을 할 수 있는지의 문제를 놓고 씨름을 하게 된다. 그러한 씨름은 자기
자신과의 씨름이며 동시에 그 텍스트를 통해 나를 읽어 간다는 의미와의 씨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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