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무역,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거래>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공정무역,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거래 - 공정무역 따라 돌아본 13개 나라 공정한 사람들과의 4년간의 기록
박창순 외 지음 / 시대의창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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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공정무역은 1950년대 말 미국 텐사우전빌리지를 시작으로 1960년대 유럽에서 본격화되고, 1970년대와 80년대를 거치며 시장의 확대 및 국가간 긴밀한 연대가 구축되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에 접어들며 전세계적으로 공정무역의 홍보와 소비자 인식을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캠페인이 일어났다. 현재는 매년 5월 둘째주 토요일을 "공정무역의 날"로 선포하고 더 많은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상품과 그 취지를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으며, 슈퍼마켓과 같은 일반 유통 시장에 진출하여 본격적인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물론 전체 무역거래의 총량으로만 본다면 아직 적은 거래량(2005년 기준 전체 무역의 0.01%를 차지함)이지만, 공정무역의 가장 큰 시장인 유럽과 미국에서 FLO(공정무역 라벨 상품)라벨 상품의 소비증가율은 두 자리수에 달한다. 즉, 새로운 시장, 새로운 시작으로서 충분히 주목할 만하며, 또한 앞으로 발전할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미 개인적인 관심이 있었던 만큼, 이 책을 접했을 때 누구보다 반가웠다. 물론 내 반가움이 이 책을 읽는 즐거움을 빼앗을 것이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한 채 말이다. 책으로 돌아가 보자.

공정무역이란 정보와 기술력, 유통에 있어 이미 소외되어온 생산자에게 거래의 투명성과 존중, 공정한 무역 조건을 제공하여 지속가능한 생산 그리고 그들의 권리를 지켜주는 무역이다. 이를 위해서는 생산자, 공정무역 기구, 자원 봉사자와 활동가들, 적극적 소비자들, 심지어는 비윤리적 무역의 주체인 다국적 기업들의 역할마저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시장을 적극적으로 바꾸어 낼 힘을 지는 소비자들의 자발적 소비를 이끌어내는 일이 가장 시급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저자는 무엇에 주목했어야 하는 것일까? 과연, 책에서 매우 자주 읽을 수 있듯이, 어느 나라, 어느 도시를 가보니 공정무역으로 수혜받는 사람들이 생겼더라, 혹은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더라, 보기 좋더라, 여성들이 일자리를 얻었더라, 유럽은 소비자 인식이 우리보다 높더라, 그래서 부럽더라, 공정무역총회에 참석하고 이런 일정들을 수행했다, 어떤 단체의 누구와 만났다, 정도에 500쪽에 가까운 지면을 할애했어야 했을까? 저자의 노력을 폄하할 생각은 전혀 없지만, 이 책으로, 좀더 엄밀히 이렇게 쓰여진 책으로, 세상을 바꾸는 아름다운 거래,를 잘 보여줄 수 있었는지 적어도 나는 의문이다.   

예를 들어 보자. 내가 즐겨 마시는 한 잔의 커피 가격이 어떻게 결정되었기에 공정하지 못한 무역이라고 하는가. 밥값에 버금가는 가격을 치르며 구매하는 소비자 가격에 어떤 간섭이 있길래 커피재배 농가는 점점 더 가난해지고 심지어 아이들도 노동에 참여해야 하는지, 꽤 비싼 가격으로 구매하는 쵸콜릿에는 무슨 문제가 있길래 카카오 농가는 점점 대규모 플렌테이션으로 대체되고, 자작농들이 소작농으로 전락하며 아이들은 학교에 갈 수 없는 것인지, 한 장에 몇 만원을 호가하는 티셔츠들이 버젓이 팔리고 있는데, 어째서 인도의 목화 농가는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지 나는 궁금하다. 그런 궁금함 뒤에 숨어 있었던 의혹들이 해소되면 당연히 폭력적 무역구조와 다국적 기업들의 횡포가 드러날 것이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대안이 제시될 것이다. 또한 대안으로 제시된 공정무역의 성과가 아직은 미약하더라도 명쾌하게 제시된다면 소비자는 일회적 자선이 아닌 적극적 소비자로 변모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소비자를 변하게 하는 시장적인 접근은 필수사항이지만 말이다.   

그렇기에. 이 낭만적인(?) 한 편의 기행문을 읽으며, 나는 저자가, 또한 이 책의 편집자가 무슨 의도로 이 책을 출판했는지 여전히 모르겠다. 저자 본인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그래서 어떻게 조직을 구성하고 활동하겠다는 것인지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로 무조건 책 먼저 출간하는 일이 옳은가. 물론 저자는 훌륭하게 사회생활을 마친 한 개인으로서 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다고 했지만, 사회에 공헌하겠다는 진정성만으로 무엇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은 순진하다 못해 안쓰러운 일로 보일 수도 있다.  

더 나아가 이 책을 편집한 편집자는 공정무역에 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출간된 책에는 현지에서 찍은 조악한 사진자료를 아무런 감수도 하지 않은 듯 사용하고, 저자가 여행한 시점에는 사용되었더라도 현재는 쓰이지 않는 단체명(2009년 IFAT는 WFTO로 변경되었다)을 고집해서 사용할 이유가 있었다면, 최소한의 설명으로 혼동을 막으려는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국제적으로 교체되고 있는 FTO로고도 계속 옛날의 것을 고집하고 싶었다면, 최소한 현재 교체되고 있는 로고를 삽입할 정도의 성실함은 왜 찾아 볼 수 없는 것인가.  

물론 나의 불편함은 개인적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왕 [한국공정무역연합]이라는 이름으로, 물론 그것이 한국공정무역을 대표하는 것임이 아니라 할지라도, 활동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조금 더 현실적이고 체계적인 컨텐츠를 포함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실제적인 자료들은 국제공정무역기구(WFTO)를 비롯해 영국공정무역연합, 미국공정무역연합 등의 홈페이지를 참고했더라고 충분히 보완할 수 있는 문제다. 

커피 가격을 1달러라고 상정하면, 생산자에게 돌아가는 수입은 8센트다.(암스테르담 대학에서 발간한 보고서에 의하면) 즉, 소비자 가격의 10% 미치지 못한다. 50% 정도는 중간상과 다국적 기업에 돌아간다. 나머지는 소매상과 생산국의 세금등으로 흡수된다. 이런 구조가 가능한 이유는 철저히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채널을 차단하는 다국적기업의 노력때문이었다. 국제무역기구를 비롯해 여러 단체들은 이 비밀들을 폭로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소비자들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질 좋은 커피를 공정한 가격으로 구매하겠다는 것이다. 공정무역기구들은 중간상을 배제하여 유통 구조를 최소화하고, 국제시장에서 커피 최저가격을 책정해 놓음으로써, 생산량 증가로 가격 폭락이 오더라도 생산자에게 돌아갈 위험을 최소화 시켰다. 그리고 제품의 질을 유지하는 일에 힘썼다. 소비자들은 점점 공정무역 제품에 신뢰를 보냈다. 시장에서 공정무역상품은 제품 자체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다. 시장에서 선호된다는 것, 그것은 공정무역의 청신호이자, 공정무역이 살아남을 답이기도 하다. 저자 역시 책 말미에 유럽의 경우를 소개하며, 시장 지향적인 접근에 관심을 보였다. 그나마 반가운 대목이었다. 그러나, 저자나 편집자가 잊고 있는 것이 있다. 책도 마찬가지다. 좋은 의도로 서점에 나왔다고 책이 팔리거나 읽히지 않는다. 읽을 만 해야 읽히고 팔리는 것이다. 시장 지향적이라는 의미는 바로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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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0-01-25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신나는 공정무역여행. 이었어야했어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반가운 대목은 아무래도 구색인 것 같고....

굿바이 2010-01-26 11:35   좋아요 0 | URL
구색이 아니길 진심으로 바래.^^

가모가와 2010-01-25 14: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의도로 서점(또는 시장)에 나왔다고 ...팔리거나 읽히지 않는다. 읽을 만 해야 읽히고 (팔리만 해야) 팔리는 것이다. 시장지향적이라는 의미는 바로 이런 것이다."
이 서평이 공정무역이 나아가야 할 방향, 그 '시장지향'이라는 의미를 되새겨 주는 것 같으네요...

굿바이 2010-01-26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속가능한 소비,뒤에 숨겨진 매커니즘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이미 무역을 극복할 대안이 없는 경제구조에서 이왕이면 공정무역이 차지하는 비율이 더 많아졌으면 합니다. 그럴려면 당연히(?)시장에서 선택되어져야 하니까 '시장 지향적'일 수 밖에 없겠구나 싶은거죠.
 
정자전쟁 - 불륜, 성적 갈등, 침실의 각축전
로빈 베이커 지음, 이민아 옮김 / 이학사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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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전자에 무슨 일이  

모든 생물은 번식에 대한 강한 충동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거부할 수 없는 생명의 근본적인 특성이다. 육안으로 식별이 가능한 매우 작은 곤충에서부터 영장류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사생활은 치밀하게 계획되어 있으며, 전투적이고 심지어 치명적이기도 하다. 예를들어, 소아성애자(Pedophile)를 연상시키는 바다사자의 교미에서부터 아침드라마의 소재이자 가정 법원의 단골인 불륜남녀까지, 이들의 사생활은 기묘하기까지 하다.
이렇듯 동물이나 인간에게서 발견되는 비정상적인(?) 섹스와 파트너 바꾸기 놀이의 기저에는 어떤 저주가 내려진건지, 아니 더 근본적으로 인간들은 왜 그리 많은 시간과 노력을 섹스에 혹은 그와 연관된 일에 투자하는 것인지 궁금했다. 어려운 심리학보다 좀 더 낯뜨거운 진화생물학적인 관점에서. 

#. 화려한 수컷과 까다로운 암컷의 비열한 전술

신데렐라가 왕자를 만나 계모와 언니들에게 펀치를 날리는 장면은 눈물없이 볼 수 없는 명장면이다. 이런 예는 신데렐라를 위시하여 각종 공주님들과 미녀들, 그리고 오늘날 김삼순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녀들이 만나야만 했던 왕자, 미남 혹은 재벌 2세들은 언제나 [운명]이라는 포장지에 싸여 그녀들에게 배달되는데, 어떠한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쟁취한 그들의 사랑은 무지개를 뚝 떼어 놓은 것처럼 설레고 신묘한 것들이었다. 그리고 적어도 내 기억으로는 거기에 단 한 번의 침실도, 속옷 속의 상황도 적나라하게 묘사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녀들의 촉촉한 눈망울, 그리고 그들의 깊고 달콤한 눈빛 뒤에 몇 억 마리의 전투적 정자와 앙큼한 난자 한 마리가 지략 대결을 벌인다고 생각하니, 뭐랄까, '맙소사'랄까.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생명체라면 여지없이 자신의 유전자를 효과적으로 많이 남겨야 하는 숙명을 지니고 태어난다. 인간의 경우 이를 위해 섹스를 하고, 물론 인간의 경우 유희로서의 섹스가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할 수도 있다, 여튼 효과적인 섹스를 위해 전략적 행동이 필요하다. 간이 크다면, 수많은 아이들의 유전적 아버지가 될 수 있는 남성들은 자신과 똑같은 능력을 지닌 적, 즉 다른 남성으로부터 자신의 유전자를 지키기 위해 특별한 방식으로 정자를 발전시켰는데, 그것을 이책에서는 '정자전쟁'이라 부른다. '정자전쟁'은 말 그대로 가임기의 여성, 아내 혹은 애인,의 난자를 차지하기 위해  정자가 벌이는 눈물겨운 사투다. 승자인지 패자인지 9개월 뒤에도 확신할 수 없는 엽기적인 전쟁이지만 말이다. 

이에 반해 한 달에 한 번 밖에 포태할 수 없는 여성의 경우 양보다 질이 중요할 수 밖에 없다. 되도록 좋은 유전자,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있는 유전자를 식별하기 위해 고도의 탐색전을 실행하고, 기회가 포착되면 그것이 배우자가 아니더라도 관계를 갖는다는 것이 이 책의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즉, 짝짓기 시장에 나온 남성과 여성은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자신의 유전자에 더 좋은 유전자를 결합시킨 근사한 후세를 제작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 끝나지 않을 우리들의 가족사

끊임없는 외도와 배우자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우리의 조상들은 그 결과물로 으뜸 유전자를 물려받은 경쟁력있는 제자들을 이 땅에 남겼다. 남은 일은 니들이 알아서 해라,는 준엄한 명령을 숨겨놓은 채 말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음모를 알아차릴 수 없다. 이것은 고도의 기술로, 자신도 모르게 몸 속 어딘가에 숨겨진 암호로서, 조건이 주어지면 여타의 환상과 함께 작동되기 때문에 성공적으로 미션을 수행한 당사자도 자신의 행위에서 원인을 찾기 쉽지않다. 찾는다해도 로빈 베이커의 목소리를 빌리자면 '내 몸은 더이상 나만의 몸이 아니로세, 이는 세대와 세대를 연결하는 다리일 뿐이야.' 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저자도 언급했지만, 모든 것이 유전자의 탓이니까 어떤 행동도 정당하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런 발언은 오다가다 벼락을 맞을 확률만 높일 뿐이다.

저자는 필요 이상의 정자를 만들어 내는 남자의 몸을, 배란기를 숨기는 여자의 신체를 이해하기 위해 이 책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지 누구에게 면죄부를 주려함은 절대 아니다. 그러니 음흉한 미소는 당장 거두시라. 
나는 이 책을 다 읽은 지금도 까만 조약돌같은 그와 그녀의 눈동자에서 내가 믿고 있는 혹은 믿고 싶은 사랑을 읽고 싶다. 한 발 더 나아가 동요없는 마음을, 그것만으로 유지될 수 있는 가족사가 존재하기를 기대한다. 내 기대가 물거품이 되는 날이 온다 해도 결단코 그것을 정자와 난자의 문제로 돌리지 않을것이다. 하여 누군가의 기대를 저버리고 화학적 메세지에 충실했던 그, 혹은 그녀에게 가해질 나의 응징은 참으로 길고 무서우리라.
마지막으로 이 책을 덮으며 끝나지 않을 우리들의 모든 가족사에 그리고 모든 섹스에 평화가 깃들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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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오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건물 틈 어딘가에 쌓여있던 눈이었습니다. 눈이 녹아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게 다 무슨 상관이겠어요. 기다리던 소식이 올 것만 같았습니다. 전화가 오긴 왔었습니다. 후원금을 보내달라고 합니다. 새삼 무슨 소용이겠어요. 한파가 잠시 물러간 사이 따뜻한 기운이 몰려왔습니다. 반갑고 들뜬 마음에 달력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입춘은 2월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떻겠어요. 저는 잠시 둥둥 떠오르는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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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0-01-19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시간에우리는 잠시봄이라고좋아하고있었어요언니~ 저도 이시간에 어딘가에 일기를 쓰고 있었던 ㅋㅋ

굿바이 2010-01-19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른곳에서우리는 겨울도지나갈것이라고믿고있었구나웬디야~ 심심상인!ㅋㅋㅋ
 
마팔다 베스트 모음
끼노 지음, 조일아 옮김 / 아트나인(비앤비)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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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팔다>는 정치와 사회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시사만화다. 1964년 아르헨티나에서 태어난 호아낀의 연재만화 <마팔다>의 주인공인 우리의 마팔다양은, 복슬복슬한 새까만 머리 위에 빨간 리본을 얹고 만화보다 더 웃긴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삿대질을 하는, 시쳇말로 '빵꾸똥꾸'정도를 외쳐주시는 당찬 꼬마소녀다.

주인공이 꼬마소녀라는 점은 다른 여타의 시사만화와 비교해 볼 때, 훨씬 호소력있는 장치로 작동한다. 아이의 눈으로도 빤히 볼 수 있는 것들을 보지 못하는 어른들, 꼬마소녀가 지켜봐도 우스꽝스러운 정치꾼들, 마팔다의 눈치를 살살 살펴야 할 정도로 켕기는 구석이 너무 많은 우리들에게 '잘 하는 짓이다’라고 비웃어주시는 마팔다의 한마디는, 한 대 맞고 나면 아파도 너무 아프고 쪽팔려도 너무 쪽팔린 죽비인 셈이다 

 

꼬마 소녀 마팔다는 이 나라를 살릴려면 어디부터 손봐야 하나? 라는 듣기에도 민망한 근심을 하며, 지구본을 향해 대신 내가 어른이 될 때까지 조금 더 참고 버티겠다고 약속해줘. 라고 핑클 언니들의 애교 섞인 손가락질을 날리는 오지랖 넓은 박애주의자며, 정치를 가리켜 이 놀이는 팔짱 끼고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하면 되는 거야.라고 말하는 시니컬한 평론가이기도 하다. 그러니 어지간한 어른도 소녀의 따끔한 충고를 모른 척 하기 쉽지 않다.

마팔다의 우울하거나 화가 난 표정을 따라가며, 물론 가끔 비틀즈의 노래를 들으며 웃어줄 때도 있지만, 1960년대 머나먼 아르헨티나에서 그려진 만화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가슴에 와 닿는 것을 작가의 탁월한 능력이라고 아무 생각없이 칭찬해야 할지, 아니면 사람들이 사는 곳은 모조리 다 그렇더냐고 북망산에 묻힌 이주일선생의 콧소리를 흉내내며 허탈해야 하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그래도 굳이 초롱초롱 빛나는 눈빛으로 지구본을 쳐다보는 우리의 마팔다를 위무하자면, 아직은 삐뚤어진 것들을 바로잡으려 하는 어른들이 모조리 사라진 것은 아니고, 여전히 누군가는 바로잡아야 할 것들을 지적하고, 또 누군가는 그것들에 관하여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또 누군가는 바리케이드 앞을 지키고 있다고 살짝, 그것도 매우 조그맣게 말해주고 싶다.

마지막으로 마팔다와 절친한 친구 펠리페의 대화를 적는다. 나를 비롯해 쪽 팔리는 분들은 맘껏 화끈거리시라고 말이다.

펠리페 : 누구는 먹을 게 없어서 굶어 죽는데 누구는 무기 만드는 데 거금을 펑펑 쓰고! 정말 웃기는 세상이야!
마팔다 : 그래서 이런 말이 있잖아. 인생은 각본 없는 한 편의 코미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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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우 2010-01-18 0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인생은 각본없는 한편의 코미디이다'
하하, 굿바이님.
나의 코미디도 조금 화끈거렸습니다.

굿바이 2010-01-19 1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거의 매일, 불끈거리다 화끈거립니다.ㅋㅋㅋ
 

마을버스를 기다리는 한 15분 동안 얼마나 추웠는지 정신이 아득해졌다. 논현역 근처에 내려 다시 지하철로 거의 뛰었다. 뛰다가 나는 멈췄다. 

좌판도 아니고 땅바닥에 종이를 깔고 열쇠고리를 파는 모녀가 서있다. 털모자를 쓰고, 귀마개를 하고, 마스크를 쓰고, 오리털잠바를 입었다. 어린 딸은 내 조카 하연이만한 아이다. 다섯 살이나 되었을까. 나는 지나칠 수가 없다. 다가가자 아이는 눈만 보인다. 덜덜 떤다. 

말도 잘 나오지 않는다. 열쇠고리가 얼마냐고 나는 묻는다. 여자는 꽁꽁 얼었는지 발음도 부정확하다. 오백원이란다. 지갑을 뒤졌다. 삼만원이 잡힌다. 아이는 덜덜 떤다. 여자에게 삼만원을 건냈다. 그리고 오늘은 그만 들어가시라고 말했다. 그녀가 나를 본다.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집에 도착해 현관문을 열자 황군이 나를 보고 웃는다. 나는 펑펑 울었다. 울면서 말했다. 아이가 덜덜 떤다고, 이 추위에 아이가 어미랑 꽁꽁 얼어 열쇠고리를 판다고, 그래서 내가 가진, 삼만원을 줬다고, 황군이 잘했다고 한다. 그 모녀 오늘은 찜질방에서라도 잘 수 있겠네,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말한다. 너 사업 하지마라, 인권단체에서 일하지도 마라, 정치도 하지마라, 너는 그냥, 그냥, 아니다 몸이나 녹이자,라고 말한다. 알겠다고 했다. 그리고 미안하다고 했다. 삼만원이 남은 돈 전부였다고 했다. 황군이 말한다. 괜찮으니까, 그래, 귤 먹자,라고 한다.  

나는 못살겠다. 속상해서 못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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風流男兒 2010-01-14 19: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보는 저도 속상한 글을 보면 뭐라고 댓글을 남겨야 할지 모르긴 하지만,
그래도 일단 남기고 가요, 추운날 감기걸리시면 안됩니다 누나 ㅎ

굿바이 2010-01-15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워, 진환씨^^
진환씨도 감기 조심하고, 너무 무리해서 일하지 말고!

동우 2010-01-18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후니마미님도 글을 맛갈스레 참 잘 쓰시고.
굿바이님 역시 참 글을 잘 쓰신다는 말씀 아니 드릴수 없습니다.

........./"괜찮으니까,그래,귤 먹자."... / 나는 못살겠다. 속상해서 못살겠다.
사람의 심금을 건드립니다.

아이티의 참상.
굿바이님이 르포를 쓰신다면 지구인의 따뜻한 마음 더욱 동하게 하실듯.

굿바이 2010-01-19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니마미님 글은 따뜻하고 치우침이 없어 참 좋습니다. 동우님의 글은 일단 제가 가늠할 사이즈가 아니라서 뭐라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ㅜ.ㅜ
아이티가 겪고 있는 재난앞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고민입니다. 저와도 연관이 있는 아이들이 있는 곳인데, 그저 얼마의 성금만으로는 마음이 가라앉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