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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의 여자들>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여자들 - 고종석의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9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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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관계의 틀 속에 몰아넣지 않아도, 마음을 주게 되는 사람들이 있다. 실제하는 인물이건, 과거에 실존했던 인물이건, 책이나 영화 속에서 창조된 인물이건 그렇게 동의하고, 감동하고, 응원하고, 박수치고, 기도하고, 따라 울게 되는 사람들. 그들을 나는 [굿바이의 시너지스트들]이라고 이름 붙였다. 그리고 후일 내가 혹여라도 꿈 꾸는 일을 할 수 있게 되면, 그들을 자랑스럽게 세상에 선보이리라 다짐했었다. 물론, 삽질의 대가인 내가 하는 일이 다 그렇지만, 거의 이미 알려진 사람들이고, 또한 이미 알려진 사람들에 의해 알려진 사람들이라는, 실로 앞으로 내가 하겠다고 다짐한 작업이 뻘짓에 머무를 것,이라는 한계를 태생 이전에 갖고 있지만 말이다. 새삼 내 삶에 있어 비극을 넘은 희극이 이것 뿐이겠는가.

책을 읽기 전, 고종석도 그러했으리라 짐작했지만, 작가는 [그녀들]을 선정하는데 있어, 적어도 나보다는 공정했음을 가늠할 수 있었다. 들머리에 놓인 그의 말, "그 삶이 흥미롭다고 판단되면, 나는 펜을 들이댔다." 가 단서였다면 단서였다. 그렇지만, 명민한 작가는 "내가 자이노파일이긴 하지만, 거기에도 편애는 있으니까, 그 선택은, 당연히, 인물의 중요도가 아니라 내 취향과 변덕을 반영하고 있다."라고 기술한다. 고종석이 [굿바이의 시너지스트]라는 사실이 이 대목에서 다시 한 번 자랑스럽다. 왜냐하면 편애는 그의 솔직한 고백이자, 그가 관념론자라고 아니라는 것을 반증하는 대목이 아닐까,라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 또한 나의 심한 편애지만 말이다. 

그가 더듬은 서른네 사람의 여자들은, 때론 그의 상찬이 지나치다 싶은 여인들도 있고, 매우 답갑지 않은 여인들도 있으며, 어떤 부분 작가의 미감이 이 정도로 좁았나,싶기도 했지만, 하여튼 로자 룩셈부르크, 오리아나 팔라치, 라 파시오나리아, 아룬다티 로이, 마리 블롱드, 로자 파크스, 클라라 체트킨, 시몬 베유, 강금실 등은 작가도 그렇게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뜨거운 불구덩이에서 녹여지고, 얻어맞은 만큼 그 크기를 넓히고, 차갑게 식어서는 은은한 빛과 소리를 멀리까지 전하며, 화려하지는 않지만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쓰임을 지속할 수 있다는 맥락에서 방짜 유기와 닮아 있었다. 이제와서야 그 아름다움과 쓰임을 절감하는 방짜처럼, 내게도 한 번은 뜨거웠던 그녀들, 여전히 놓을 수 없는 그녀들을 다시 만나 기쁘고 안쓰러웠다. 

다시 [굿바이의 시너지스트들]로 돌아가, 나는 고종석의 글을 매우 아끼는 사람이다. 글을 아낀다는 것은 그의 생각을 아끼고, 배우고, 흉내내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서얼단상]이 그랬고, [감염된 언어],[자유의 무늬],[언문세설],[국어의 풍경들]이 그랬다. 그 밖에도 그의 글은 뭐랄까, 근본주의자들과 멀어지려는 노력이, 중심을 잡으려는 의지가, 정중함을 잃지 않으려는 태도가, 그럼에도 어딘지 퇴폐적인 미감이 나와 맞았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거는 기대가 매번 컸고, 지금도 크다. 물론 내가 지금 그에게 거는 기대가 매번 컸다고 운을 띄우는 것은, 자수하는 바, 이 책이 그 기대의 영역을 벗어나 있다는 뜻일 것이다. 그럼에도 여느 작가에게 처럼 인색하지 않고, 경박한 삿대질을 자제하는 이유는, 안으로 굽은 팔을 밖으로 꺾기란 본인에게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가 라마 야드를 소개하는 대목에서 "야박하게 얘기하면, 그 현실주의와 이상주의의 결합은 가장 나쁜 의미의 실용주의, 기회주의인지도 모른다"라고 적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현실을 산다. 먹고 살아야 하고, 이름을 유지해야 하고, 다양한 활동을 통해 끊임없이 어디론가 나아가야 한다. 또한 실존으로서의 먹고 사는 일을 해결하면서, 실존으로서의 이름을 유지하며 어디론가 나아간다는 것이, 이 때의 방향성이라는 것이, 언제나 옳고 그름의 나침반을 들이댈 수 있는가, 하는 것은 잘 모르겠다. 인간은 그렇게 관념만을 지키기에는 너무 나약하거나 사악하고, 선명성을 따져 묻는 것도 상황에 따라 아둔하고 희극적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이 책에 대해 어떤 방향성도 선명성도 묻지 않을 것이다. 그저 그가 라마 야드를 서술한 문장이 그에게 돌아오지 않았으면, 그것으로 족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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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1 1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22 1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웽스북스 2009-12-21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언니의 리뷰는 좋아요. 어쩌면 고종석은 균형에 대한 강박적 근본주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언뜻 머리를 스쳤지요. ㅋㅋㅋㅋ

굿바이 2009-12-22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균형에 대한 강박적 근본주의라...그래, 그럴 수도 있겠다. 그리 생각하니, 우리는 모두 근본있는 사람들이었구나....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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