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패자부활전은 아니지만,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지는 새해의 첫날이 오고 있으니, 2011년의 첫날 안부를 전하지 못했던 그대들, 안녕하시오. 그리고 행복하시오.
2.
허수경의 시집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을 읽는다. 읽고 또 읽는다,가 정확한 표현이겠다.
10년을 더 살아내면 저런 시를 쓸 수 있을까, 아니다,라는 것을 아는 나도 제법 철이 들었다.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시간이 제법 많이 연소되어야만 알 수 있는 것들도 있지만, 불연소된 시간에서도 알아지는 것이 있으니, 나는 그것이 철(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3.
냉장고를 가득 채웠다. 저 많은 채소와 고기로 무엇을 할 지 나도 궁금하다.
허수경시인은 썼다.
"난 존재를 안고 있는 허당이었어요" 라고
나도 쓴다.
"난 식재를 안고 있는 허둥이었어요" 라고
시를 더듬으며 느꼈던 휑-함을, 냉장고를 더듬으며 퀭-하게 느낀다.
4.
어쩌면 허수경시인의 시를 읽으며 나는 무슨 말이든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저도, 저도, 그것을 알아요, 아-아-아 그 마음을 알아요,라고 끼어들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럴 수 없음을 실시간 깨닫는다. 나는 모른다. 나와 다른 그녀의 말뚝을.
5.
나에 대해 조금이라도 아는 바가 있는 당신들이 말한다. 아이를 키워보지 않았으니 어떻게 알겠느냐고, 철이 들려면 아직 멀었노라고. 음. 나는 아직 모르고, 여전히 멀었다는 것은 기꺼이 동의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내게 결핍마저 없겠는가,하면 그것은 아니다.
허수경시인이 썼다.
"울지마, 라고 누군가 희망의 말을 하면
웃기지 마, 라고 누군가 침을 뱉었어"
나도 쓴다.
"웃지마, 라고 누군가에게 부탁의 말을 하면
웃기지 마, 라고 누군가 침을 뱉었어"
6.
시인에 대해, 시에 대해, 그리고 그 시를 밤새 읽는 나에 대해 쓰고 싶었지만
함구하고 만다.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의 이야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