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월 초파일이 되기 며칠 전부터 어머니께서 망운암을 한번 다녀오자고 하셨다.
그 무렵에 제출해야할 과제가 많아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아서 감전동 이모랑 다녀 오시라고 했다. 그런데 사월초파일 할 일을 틈틈이 당겨 하고 바람도 쏘일겸 식구들 모두 같이 가자고 하셨다. 별난 딸을 둔 탓에 자식들에게 자기 생각을 강요하지 않으시는 어머니가 그렇게 말씀하시는데야.
토요일 저녁 늦게까지 월요일 수업할 활동지랑 제출할 과제물을 끝내고 새벽에 일어나 망운암 가는 버스를 탔다. 집 가까운 곳에 성각 스님이 운영하시는 원각선원 불교대학이 있어, 그 곳에서 무료셔틀 버스를 운영한다고 해서 그 차를 타고 갔다.
4월초만 해도 산야는 푸스므레한 빛을 띄고, 양지바른 언덕빼기에 복사꽃이 핀 정도였는데 5월의 산야는 초록 물결이 넘실댄다. 오길 잘했다. 공기가 달다.
남해대교를 건너 망운암 들어가는 길, 차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 정도의 임돈데 찾아오는 차들이 많다. 오르는 차와 내려오는 차가 마주치면 비켜설 데가 없다. 아래로 저수지가 내려다 보이는 벼랑에서 미니 버스 한 대를 만났다. 우리가 탄 버스가 뒤로 후진을 해야했다. 그런데 운전사가 풀 숲 우거진 곳이 도로와 연결된 평지인 줄 알고 계속 차를 벼랑쪽으로 몰았다. 마침 내려서 차를 인도하던 사람이 놀라 급하게 스톱을 외친다. 기사가 차에 탄 사람들에게 일단 다 내리란다. 내려서 보니 아찔한 광경이다. 겨우 내려오던 차를 보내고 또 차를 타고 한참을 올라간다. 오르는 길에 보니 길게 이어지는 능선에 철쭉꽃 밭이 제법 넓게 퍼져있다. 앞주에 이곳에서 철쭉제가 열렸단다.
어머니는 이모와 오래전에 이곳을 다녀온 적이 있다. 국제 신문 본사에서 불우이웃돕기 바자회를 할 때 망운암에 계시던 성각스님이 오셔서 법문하시는 것을 들으시고 이모랑 동생이랑 이 곳을 다녀왔다. 그 때 망운암에 대해 참 좋은 느낌을 받으셨는지 종종 가족들 모두 남해로 여행 겸 한번 다녀 왔으면 했었다. 그런데 이번에 와 보시고는 절 분위기가 참 많이 변했다고 안타까워 하셨다. 그 때는 남해읍에서 택시를 타고 와서 바위 계단을 한참 올라와 망운암에 도착할 만큼 힘들었어도 참 수더분하고 좋았는데 지금은 절 입구까지 길을 닦아놓아서 편리하기는 하지만 왠지 어수선하고 소담스런 맛이 덜하다고 하셨다. 나도 여기저기 산 허리가 잘려 있는 모습이 썩 좋아보이지는 않았다.
망운암에 도착한 시간이 9시 30분, 부산서 온 차는 2시에 출발한단다. 시간이 아주 많이 남았다. 부처님께 문안 인사를 드리고, 점심 겸 아침 공양을 하고 망운삼을 오르기로 했다.
망운암 옆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니 얼마 안가 망운산 정상과 관측봉 가는 길로 갈라진다. 망운산 정상도 코 앞이다. 정은이는 신발이 불편하다고 망운암에 있고, 엄마와 이모는 숲 속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와 이모부만 관측봉 가는 등선을 올랐다. 올라오면서 봤던 철쭉밭이 능선을 따라 늘어서 있다. 아름다운 산길이다. 800고지 이상 높은 산에서는 이번 주에 철쭉제가 열리는 곳이 많더니만 여기는 거의 꽃이 지고 남은 꽃도 빛이 바래가고 있다. 그래도 좋다.
(망운산 관측봉)
(관측봉에서 능선을 타고 관제탑 쪽으로 가는 아름다운 길)
옅은 안개가 낀 것 같은 날이라 관측봉에서 본 바다는 흐릿하다. 그래도 왼쪽으로 보이는 바다는 한려해상 국립공원 다운 면모를 아직은 지니고 있는 듯 하다. 그런데 오른쪽은 안 보고 싶다. 여천 화학단지인 모양이다. 바다 한가운데까지 석유화학 제품을 생산하는 각종 시설물들이 서 있다. 남해 바다가 청정해역이라는 말은 옛말 같다.
망운암을 갔다가 돌아오는 길, 버스 창문을 열고 달린다. 온통 마늘 밭이다. 남해는 마늘과 유자가 특산물이란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여행을 다녀오는 길, 특별할 것도 없는 시골길 조차 눈길을 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