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글)

                                      언니랑 같이 왔어요

                                                                 2학년 최소민

 

  오늘 언니랑 같이 왔다. 우리 반은 오늘 빨리 밥을 먹어서 언니 교실에 갔더니 이제 밥을 받고 있었다. 그래서 교장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는 스텐드로 가서 기다렸다. 갑자기 똥이 마려워서 같이 있던 천용이 보고

  “천용아, 내가 화장실에 갈 건데 가방하고 우산 좀 챙겨 줘.”

하고 화장실에 갔다. 그런데 똥을 누고 나오니 휴지가 없었다. 그래서 바지를 입고 조심조심 6학년 언니반으로 갔다. 6학년 5반에서 우리 언니가 나왔다. 교장 선생님께서 4교시만 하라고 해서 언니도 빨리 마치는 것이다. 그래서 언니한테 있었던 일을 말하니가 언니가 어디서 휴지를 갖고 왔다. 나는 내려와서 문구에서 500짜리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주환문구 쪽으로 내려가서 놀이터에서 조금 놀다가 집에 왔다. 정말정말 재미있었다. 이제 매일 방학될 동안 언니랑 같이 내려 올거다

 

* 이 일기를 읽고 한참을 속으로 웃었다. 차를 타고 오면서도 조심조심 걸어가는 소민이 모습이 생각나 혼자 쿡쿡 웃었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조선인 2005-09-09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멋. 일기라니욧! 인권침해에요.
그, 근데, 너무 재밌어요. 푸하하하하하하
 

  일주일 넘게 여행을 다녀왔더니 서재에 먼지가 앉았네

  싼 비행기 표를 구해 여행을 다녀왔더니 오는 날, 가는 날 ,경유하는 공항에서 진을 다 빼고

  일요일 밤 늦게  도착을 해서 월요일 수업 준비하려니 당체 적응이 안 된다

  월요일, 오전에는 여행 휴유증 때문에 힘들더니만 내리 3팀 수업을 하고 나니 쪼금 정신이 차려진다

 그래서  이런저런 이유로 수업을 빠진 아이들 보강 시간을 잡았다.

  화요일, 언제 여행을 다녀왔나 싶게 정신이 말짱해 진다. 오후시간에 보강 수업 한 팀하고 정규 수업하고

  내일 중간에 비는 시간 또 보강 수업을 잡았다. 

  수요일, 오늘은 완전히 예전의 생활 리듬을 되찾았다.

  걸어서 걸어서 낯선 도시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왔는데   배낭 여행이 체질인 모양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조선일보 -조용헌 살롱)

                                                                나의 글쓰기


  논술은 쉬운게 아니다 자기가 생각한 것의 반만이라도 말로 표현할 수 있으면 그 사람은 웅변가이고, 자기 말의 반만이라도 글로 표현할 수 있으면 문장가라고 생각한다. 말은 교육과 훈련을 받지 않아도 잘 할 수 있다. 학력이 없어도 말 잘하는 사람은 주변에 많다.

  그렇지만 글쓰기는 다르다. 집중적이 훈련이 있어야만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인제를 감별하는 기준인 신언서판(身言書判)에서 ‘서 (書)’를 집어넣은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닌가 싶다. '서‘는 서체 (書體)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넓게 보면 그 사람의 문장이다. 문장에는 그 사람의 기절적인 특성과 세계관이 녹아 있게 마련이다. 문화(文化)라고 하는 단어의 구성 자체가 문장, 즉 글쓰기와 떼어놓을 수 없다.

  나는 글을 슬 때마다 염두에 두는 규칙이 있다. ‘하나의 생각은 하나의 문장에 집어 넣는다.’(one idea one sentence)는 원칙이다. 개인적으로 짧은 문장을 선호하는 편이다. 짧아야 쉽게 읽힌다. 관계 대명사가 많이 들어가는 문장은 복잡해서 좋아하지 않는다. 타고난 체질에 불이 많아서 서론을 길게 이야기하는 사람을 만나면 중간에 말을 자르는 숩관이 있다. 결론만 말하라고 다그친다. 문장을 짧게 쓰려면 복잡한 내용을 압축하고 정리해야 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고. 잘못하게 섣부른 단정이나 결론에 빠질 수 있다

  ‘장타’보다는 숨이 짧은 ‘단타’ 문장을 좋아하다 보니 나와 비슷한 스타일로 글을 쓰는 문필가를 좋아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영국의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다. 와일드의 글은 관계대명사나 접속사가 별로 없이 짧아서 좋았다. 80년대 초반 대학 다닐 때 그의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 같은 작품을 읽으면서 알게 모르게 지도를 많이 받을 셈이다. 좋아하면 닮게 된다

  마음에 드는 작품이나 칼럼을 집중적으로 반복해서 읽는 것도 글쓰기의 한 방법이다. 그 때 주로 읽은 책들이 단문 위주의 칼럼이나 작품들이었다. 논술방식도 결국 자기 성격과 관련이 깊다. 논술의 지름길은 간단 명료하게 생각을 정리하는 훈련과도 관계가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지전거 탄 풍경, 아! 부러워라 -


  경주 시내권에 있는 유적지 답사를 나섰다가 만남 부러운 풍경들.

반월성터와 석빙고를 둘러보고 나오는 길에 만난 여대생과


  

황룡사지를 돌아보고 오는 길에 만난 황룡사지로 답사가는 대학생 연인들. 



  나는 자전거를 못탄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어느 소설책에 나오는 주인공이 창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자전거를 타고 휘파람을 불며 목장길을 달려가는 풍경을 묘사한 문장을 읽고 자전거를 배우기로 마음 먹었다. 작은 댁에는 오빠가 타고 다니는 자전거가 있어서 오빠를 꼬드겼다. 그래서 어느 휴일 자전거를 배우러 지금은 포장이 되었지만 그 때는 자갈길이었던 마을 위 잿길로 자전거를 끌고 나갔다. 처음에는 오빠가 자전거를 뒤에서 잡고 나는 슬슬 자전거 바퀴를 돌리며 타고 갔다. 그런데 갑자기 혼자 타 보라고 손을 놓았다. 그러면 어떻게든  바퀴를 힘차게 굴러 타고 가야 하는데 겁이 나서 “어어~” 하다가 그만 길 양쪽에 빗물이 흘러가게 파 놓은 고랑에 쳐박혔다. 그 다음은... 무릎을 다쳐 한 동안 고생했던 기억밖에는 없다. 그후, 제법 오랫동안 자전거 배울 생각을 안했다.


  그런데 경주 시내에 있는 유적들을 답사하려면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 편리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자전거를 다시 배워보기로 했다. 동생과 함께 동생 자전거를 끌고 집 가까이에 있는 중앙 고등학교에 갔다.일단 겁을 먹으면 균형을 잡을 수 없으니 겁 먹지 않고 타 보기로 했다. 동생이 자전거 뒤를 잡고 슬슬 자전거 바퀴를 돌리며 타다가 동생이 자전거를 놓았다. 그런데 이번에도 손 놓기가 바쁘게 옆으로 넘어지는거다. 앞으로 달릴 생각보다 다칠까봐 자꾸 옆으로 넘어지면서 한쪽 발로 땅을 딛고 자전거를 멈췄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동생이 애지중지 하던 자전거의 핸들을 거꾸로 돌려놓는 사고를 치고 결국 자전거 타는 걸 포기했다. 두손 두발 다 든 동생이 하는 말이 “그냥 버스 타고 다녀라.”였다.


  나는 자전거 타는 것을 배우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이 경주 시내에 있는 유적지를 자전거를 타고 돌아보는 거다. 캄보디아 씨엠립에 갔을 때도, 태국 고대 유적지 아유타야를 갔을 때도 자전거를 타고 천천히 유적을 돌아보는  대학생들이 얼마나 부러웠던지.


  아! 자전거 타고 싶어.


댓글(1)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6-05-18 22: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경주 여행기(3)

 쌈밥을 먹으려고 인터넷에서 쌈밥으로 유명한 삼포 쌈밥 집 위치를 찾아 갔는데 시간 빠듯해서 대릉원 앞에 있는 식당에서 대충 늦은 점심을 먹고 천마총이 있는 대릉원에 갔다. 대릉원은 신라의 왕족들의 무덤이 모여 사는 마을이다.



. 23기의 무덤이 모여있단단. 이 곳도 숲길이 아름답다. 들어가는 숲에는 다람쥐랑 청설모가 살고 있다. 청솔모는 사람이 와도 별로 겁내는 기색이 없다. 딴짓을 하고 있다가 사진을 찍으려고 가면 슬슬 피하면서 나무를 쪼르르 타고 오르락내리락 한다.천연덕스럽다.새소리를 들으며 만발한 배롱나무 숲을 지나 천마총에 갔다. 천마총은 무덤안에서 천마도가 그려진 말다래가 발견되어 붙여진 이름이란다. 무덤 안에 들어가니 복제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간장이 서늘해 질 것 같았는데 그냥 일반 박물관 전시관 들어갔다 나오는 것 같은 느낌 뿐 별다른 느낌은 없다. 천마총을 구경하고 미추왕릉으로 나오는 길에 나무 그늘에 앉아 이름없는 무덤들을 쳐다본다.



둥그란 젖무덤 같은 거대한 무덤위로 파란 하늘이 펼쳐져 있다. 머릿속에 있던 잡다한 생각들이 다 사라져 간다. 아름답다.

 시간을 보니 4시 30분, 분황사와 황룡사지를 돌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안압지를 다녀 오며 봤던 분황사 가는 길 도로 표지판을 생각하고 그 쪽으로 차를 몰았다. 10여분 남짓 걸린다. 바로 앞에 황룡사지 가는 길이 보인다. 표를 받는 곳에는 입장하는 시간이 제한 되어 있을 것 같아서 도로 분황사를 먼저 갔다. 들어서자 마자 우리 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모전석탑이 턱 버티고 섰다.



7층에서 9층정도의 규모로 추측된다는 데 지금은 3층만 남아있다. 보통 사찰에서 볼 수 있는 돌탑들은 화강암으로 쌓았던 것 같은데 특이하게 이탑은 안산암으로 쌓았단다. 분황사가 신라 7대 가람 중의 하나였다는데 둘러 보니 남아있는 건물들은 모전석탑과 약사여래상을 모셔놓은 보광전 건물 뿐이다. 모전석탑 안에는 눈을 감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부처님 한분이 앉아 계시고 그 양쪽 문 밖에는 인왕상이 지키고 있다. 사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탑들과 달라서 그런가 한참을 탑 앞에서 서성거리고 있으니 세월의 무게가 느껴진다. 담장 밑을 기웃기웃거리며 돌아보는데 건물의 기단부분이 제법 많이 널부러져 있다.


  분황사를 나와 황룡사지를 갔다. 밭 한가운데로 쭉 뻗은 길이 보인다. 자전거를 탈 줄 알면 자전거를 타고 들어갔으면 좋겠다.



황룡사지는 국가 제일의 사찰 자리를 오랫동안 지켰다는데 발굴 작업을 통해 확인된 자료에는 담장 안이 25.000여평에 이르고 출토된 유물만도 40,000여점에 이른단다. 지금 남아 있는 터 만도 만만찮다. 들어가는 길에 보니 여나무명의 답사객들이 보이더니만 내가 도착했을 때는 박물관 쪽으로 다 빠져 나가고 아무도 없다. 여기저기 남아있는 추춧돌을 둘러 보다가 한 주춧돌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시원한 바람이 들판 을 훑고 ,주춧돌만 남아있는 황룡사지를 훑고 지나간다.



그 옛날 몽고의 침입으로 황룡사가 불타기 전의 황룡사 모습을 상상해 본다. 세상 어디에도 찾을 수 없는 귀중한 보물 하나가 눈 앞에서 사라져 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