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우리 조상들은 섣달 그믐날

솟대에 볍씨 주머니를 매달아 새해 풍년이

들기를 기원했다네요


저는

저 솟대에 기쁨이랑 행복이랑 좋은 일들이랑

투명 주머니에  듬뿍 넣어 매달아 놓았어요

 

제 서재를 방문 하는 모든 분들에게

새해 좋은 일 풍년 들길 기원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초등학교 동창회(2)


  동창회 앞 날 저녁, 묘사 가는 차량들로 차가 밀려 늦게서야 식당하는 친구 집에 도착했다. 오랜 만에 만난 친구는 집 앞에 나와서 “문디 가수나 뭣이 그래 바쁘노. 오랜만이다.”이러면서 팔을 벌린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남자 동창 1명이랑 여자 동창 한명이 와 있다. 반갑다.  


남자 동창은 내일 일이 있다고 오늘 동창들 얼굴보러 왔단다. 이 남자 동창은 초등학교 다닐 때 한 주먹 하던 애였다. 우리 마을로 가려면 이 아이가 살고 있던 윗 마을을 지나 재를 넘어 가야 하는데 얼마나 우리를 괴롭히던지. 그런데 커 갈수록 아이가 순해 지더니 지금도 착하게(?) 잘 살고 있다. 하는 일이 건축 쪽 일이라 손이 많이 거칠다. 악수 할 때 거친 손을 부끄러워 하길래 “무용가 강수정씨 발 못봤나. 열심히 자기 일 하며 사는 사람 손이 제일 아름다운 손이다. 내가 디카폰에 찌어서 인터넷에 올려주께.” 이랬더니 씩 웃는다. 동창인 사촌 오빠 결혼식에서 보고 거의 10년만에 만났는데도 하나도 낯설지가 않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하나둘 동창들이 도착을 한다. 내일 12시에 동창회를 하는데 고향에 부모님이나 형제들이 있는 아이들은 미리 내려와서 연락을 받고 온 것이다. 밤 깊은 줄 모르고 이야기를 한다. 나는 언니랑 형부가 기다리고 있어서 큰 언니 집으로 갔다.

  동창회 날, 거의 새벽이 될 때까지 큰 언니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고 늦게 일어나서 그래도 목욕은 하고 가야 될 것 같아서 목욕하고 가니 1시다. 오기로 한 동창들은 거의 왔다. 28명 중에서 열대여섯명이 모였다. 몇 명은 어디 살고 있는지 연락조차 되지 않아서, 몇몇은 묘사다 집안 행사다 해서 이번에 못 왔단다.

  중년에 접어든 친구들인데 군살도 별로 없고 멋있다. 얼핏 밖에서 보면 잘 못 알아볼 만큼 얼굴이 변한 아이들도 있지만 자세히 보니 어릴적 얼굴이 그대로다. 세상에 뿌리를 제대로 내리고 사는 친구는 친구대로 우여곡절이 많은 친구는 친구대로 만나니 반갑다. 그런데 내가 보고 싶어 하던 덕자는 못온단다. 문디 가스나.


  우리가 ‘박일준’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던 친구도 왔다. 이 친구는 사는게 녹녹찮은 눈치다. 한창 때 생긴 것도 혼혈 가수 박일준과 닮았지만 노래도 박일준 뺨치게 잘 불러서 친구들과 놀 때 분위기 메이커였다. 노는 것은 여전한데 그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던 듯 하다. 한 여자 동창은 얼굴을 거의 다 뜯어 고쳤다. 이 친구는 참으로 조숙하고 말이 없던 아이였는데 세월따라 참 많이도 변했다. 지금은 아들 하나 데리고 혼자 당차게 살아가고 있단다. 학교 다닐 때 공부도 그런대로 잘했던 아이답게 정신이 제법 깨어 있다. 그리고는 다들 고만고만하게 잘 살아가고 있는 눈치다.

  동창회가 끝나고 먼 길 가야할 친구들은 서둘러 가고 고향 가까운 곳에 살고 있는 친구들과 부산 팀,마산 팀들은 헤어지기가 아쉬워서 친구 식당으로 갔다. 거기서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놀다가 돌아오는 길, 헤어지기가 아쉬워서 손을 몇 번이나 붙든다. 봄에 동창회를 하고 헤어질 때 여자 친구들끼리는 너무 아쉬워서 부둥켜 안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는데 이번에는 담담하다. 그래도 아쉽다.  


  “겨울 따시게 보내고 봄에 보자.” 이 말을 하려는데 목에 걸려 안 나온다.

  사는게 녹녹찮은 친구들도 고만고만 살아가는 친구들도 다들 큰 풍파없이 잘 살아갔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초등학교 동창회(1)




  내가 자란 곳은 지금은 드라마 촬영지로도, 아이들 환경 체험 학습장으로도 널리 알려 진 곳이지만 중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작은 어촌 마을이었다. 배사업을 하고 있던 집은 여유가 있는 집이라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가고, 더러는 대학을 가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집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대도시로 떠났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재를 한 번 넘으면 갈 수 있는 제법 가구수가 많은 마을에 있었다. 그 초등학교에는 우리 마을과 초등학교가 있던 마을과 그 마을에서 산 모퉁이 하나를 돌아가면 있는 작은 마을, 이렇게 세 마을 아이들이 다녔다.

 

  중, 고등학교를 함께 다녔던 아이들은 명절 때 집집마다 음식과 술을 거둬 바닷가나 도래솔 밭 가운데 둘러 앉아 놀기도 하고 머스마들 군대 갈 때 ‘입영전야’를 불러준다고 모이기도 해서 스물이 훨씬 넘을 때까지도 제법 연락을 하면서 지냈다. 그런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또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도시로 나간 아이들, 특히 다른 마을 아이들은 거의 볼 기회가 없었다. 나와 친했던 덕자라는 아이는 초등학교가 있던 마을 옆 동네 아이였는데 초등학교 졸업후에는 한 번도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다가 몇 몇은 아예 집을 팔고 가족 모두가 도시로 이사를 나가 더더욱 볼 기회가 없었다. 이 후 우리 가족도 부산으로 이사를 왔지만 큰댁을 비롯한 친척이 모두 그 곳에 있고 아버지 산소 또한 그 곳에 있어 명절 때나 휴가 때는 내려갔다. 그렇지만 만날 수 없었던 동창들은 여전히 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올 봄에 남자 아이들만 해 오던 동창회를 올해부터 여자 아이들과 함께 하기로 했다고 동창회에 참석하라고 연락이 왔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나는 안 갔다. 동창회가 끝난 후 고향 친구가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 소식을 전해주며  “니가 보고 싶어하던 덕자 왔던데 가을에 할 때는 꼭 나온나.” 이랬다. 그 때보자며 잊고 지냈는데 이번에는 아예 두어달 전부터 계속 동창회 날을 상기를 시키며 나오라고 했다.  지금은 폐교가 될 만큼 작은 학교라 동창이래봤자 다 합해도 30명도 채 안되는데 되도록이면 동창회 할 때 다 모여야 된다는 것이다. 그 때가 하필 내 생일이어서 이 친구는 생일 핑계를 대며 생일 밥 맛있는 거 사 줄테니 꼭 나오라고 했다. 이리저리 핑계를 대다가 더 이상 거절하다가는 이 친구랑도 서먹해 질 것 같아 가기로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고속철 천성산 구간’통과를 놓고 환경단체와 철도공단간의 지루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수경 스님을 비롯한 환경문제에 관심을 가진 분들의 목숨건 투쟁으로 잠시 주춤하는 듯 하더니 경부 고속철 경남 양산 천성산 구간 공사 재개 여부에 대한 법원의 선고(15일 예정)를 앞두고 공사를 반대하며 도룡뇽 소송을 낸 원고측 입장과 공사 재개를 주장하는 피고측 입장이 팽팽이 맞서며 서로의 입장을 알리는 여러 가지 행사를 벌이고 있다.

  도룡뇽 소송을 낸 원고측은 원고측 대로 그동안의 반대 서명 운동과 더불어 ‘도룡뇽 소송 승소를 기원하는 미사도 드리고 1000마리 도룡뇽 자수(한땀한땀 수놓은 것)를 앞세우고 행진하는 ’도룡뇽의 함성 퍼레이드‘ 행사를 가지기도 하고.만약 재판 결과가 ’공사 재개‘로 나와도 ’공사 중지‘를 계속 관철한다는 입장이고,

  철도공단측은 천성산의 터널 공법은 훼손되는 산림면적이 일반 토목공사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고 습지등 지표면의 생태에 영향이 미치지 않는다“는 주장으로 천성산 외의 구간을 통과 할 경우 재산. 자연피해가 더욱 커진다는 주장을 하며 팽팽이 맞서고 있고.

  답답하다. 대한 민국에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천성산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면 좋을까?

  수경스님을 비롯한 종교인들의 3보 1배 국토 종단을 보면서 저렇게 목숨 건 투쟁을 하며 천성산을 지키려고 하는 까닭이 뭘까? 단순히 천성산 곳곳에 살고 있는 수많은 생물들과 천성산에 기대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뿐 만아니라 천성산이 거기 있으므로 우리는 돈으로 헤아릴 수 없는 많은 혜택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파괴를 막아야 한다는 정도 이상의 깊은 뜻이 있을 것이다

  얼마 후면 쌍방 입장의 조정을 거쳐 도룡뇽 소송 결과가 나올 것이다. 그 결과가 고속철 공사재개로 마무리 된다면 이것을 시작으로 앞으로 또 얼마나 많은 산들이 자연이 경제논리에 의해 파괴될지 걱정스럽다.

자연을 파괴하기는 쉬워도 그것을 복원하는데는 몇 백배의 시간이 돈이 들텐데.

  어떻게 하면 천성산을 살릴 수 있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글샘들의 가을 나들이-

  선생님들마다 학생들 수업 시작 시간이나 끝나는 시간이 달라서 밥 한 번 같이 먹기도 쉽지가 않다. 그런데 이번 주 수요일 모처럼 점심 시간을 이용해서 사무실과 가까운 곳에 있는 부산 시장 관사로 나들이를 갔다.

  황령산 올라가는 길에 있는 두부마을에 들러 점심을 먹었다. 두부전골과 녹두전을 먹었다. 두부전골과 함께 나온 음식은 깔끔하고 맛있다. 그런데 후식으로 먹은 녹두전은 두껍고 맛이 없다.



  두부마을에서 아래로 내려와 동여고 뒤편에 있는 부산시장 관사에 갔다. 오전 7시부터 5시까지 개방한단다. 관사로 올라가는 길은 해송이 가로수다. 산책로를 빙 돌아 잔디밭 있는 곳으로 오는 길에 있는 입구가 예쁜 화장실이 있다. 화장실 앞에 담쟁이 몇 개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화장실 입구 돌담에 담쟁이가 그린 그림

관사 앞 잔디밭에 서서 독사진(?)도 찍고, 짝을 지어 폼을 잡고 사진도 찍었다.

  “2004년 가을을 남기자.”는 말에 관광차 타고 여행 온 아주머니들처럼 쭉 서서 단체 사진도 찍었다.


황령산 꼭대기에 돌탑도 참 이쁘다는데 수업 하러 갈 시간이 다 됐다. 담에 가족들과 함께 돌탑도,관사도 둘러보기로 하고 내려오는 길, 빛 바랜 낙엽들이 흘러다닌다. 거리 곳곳에 가을이 저물어 가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