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동창회(1)




  내가 자란 곳은 지금은 드라마 촬영지로도, 아이들 환경 체험 학습장으로도 널리 알려 진 곳이지만 중학교 2학년이 될 때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작은 어촌 마을이었다. 배사업을 하고 있던 집은 여유가 있는 집이라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고등학교를 가고, 더러는 대학을 가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집 아이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대도시로 떠났다.

  내가 다닌 초등학교는 재를 한 번 넘으면 갈 수 있는 제법 가구수가 많은 마을에 있었다. 그 초등학교에는 우리 마을과 초등학교가 있던 마을과 그 마을에서 산 모퉁이 하나를 돌아가면 있는 작은 마을, 이렇게 세 마을 아이들이 다녔다.

 

  중, 고등학교를 함께 다녔던 아이들은 명절 때 집집마다 음식과 술을 거둬 바닷가나 도래솔 밭 가운데 둘러 앉아 놀기도 하고 머스마들 군대 갈 때 ‘입영전야’를 불러준다고 모이기도 해서 스물이 훨씬 넘을 때까지도 제법 연락을 하면서 지냈다. 그런데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또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도시로 나간 아이들, 특히 다른 마을 아이들은 거의 볼 기회가 없었다. 나와 친했던 덕자라는 아이는 초등학교가 있던 마을 옆 동네 아이였는데 초등학교 졸업후에는 한 번도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다가 몇 몇은 아예 집을 팔고 가족 모두가 도시로 이사를 나가 더더욱 볼 기회가 없었다. 이 후 우리 가족도 부산으로 이사를 왔지만 큰댁을 비롯한 친척이 모두 그 곳에 있고 아버지 산소 또한 그 곳에 있어 명절 때나 휴가 때는 내려갔다. 그렇지만 만날 수 없었던 동창들은 여전히 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올 봄에 남자 아이들만 해 오던 동창회를 올해부터 여자 아이들과 함께 하기로 했다고 동창회에 참석하라고 연락이 왔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나는 안 갔다. 동창회가 끝난 후 고향 친구가 오랜만에 만난 동창들 소식을 전해주며  “니가 보고 싶어하던 덕자 왔던데 가을에 할 때는 꼭 나온나.” 이랬다. 그 때보자며 잊고 지냈는데 이번에는 아예 두어달 전부터 계속 동창회 날을 상기를 시키며 나오라고 했다.  지금은 폐교가 될 만큼 작은 학교라 동창이래봤자 다 합해도 30명도 채 안되는데 되도록이면 동창회 할 때 다 모여야 된다는 것이다. 그 때가 하필 내 생일이어서 이 친구는 생일 핑계를 대며 생일 밥 맛있는 거 사 줄테니 꼭 나오라고 했다. 이리저리 핑계를 대다가 더 이상 거절하다가는 이 친구랑도 서먹해 질 것 같아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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