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함께한 900일간의 소풍
왕일민.유현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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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하나님께서 태초에 창조하신 아름다움과 순결함이 가득한 원초의 모습에서 벗어난 지 오래되었다. 아담의 원죄 이후, 인류는 계속해서 태초의 모습에서 변질되어 갔다.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사상, 교만과 위선의 팽배함.. 가난과 기근, 전쟁과 테러.. 자본주의 체제의 보편적 증가에 따른 인간경시문화.. 그리고 무엇보다 가정의 파괴에 따른 부모의 권위는 실추되었고.. 달라진 세상이 정상적인 것에 대해 자꾸만 다른 눈으로 보려고 하는 요상끔직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험악한 시대에 왕일민(王一民) 옹의 아름다운 일화는 무기력해지고 건조해진 이 세상의 효(孝)의 현실에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 시대의 마지막 효자', '효자왕'이라는 강렬한 닉네임이 따라붙는 중국인 왕일민과 102세를 일기로 작고한 그의 어머니가 함께한 대륙종단여행을 담은 논픽션인 『어머니와 함께한 900일간의 소풍』을 읽었다. 책의 두께가 얇은 편이며 글씨밀도도 여유가 있는 부담없는 분량이어서 제헌절휴무를 앞둔 여유로움에 편승하여 단한번에 완독할 수 있었다.

 

 제목부터 솔깃하다. '어떻게 74세 아들과 99세 어머니가 그 연세에 900일동안 여행을 할 수 있지?'하는 의구심과 중국 전역에 큰 충격과 감동을 불러일으킨 소위 孝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실화라는 점에 대한 기대심과 도전감이 믹서되어 첫장부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어머니. 세상구경 가실래요?"

기나긴 여정은 74세의 아들의 이 한마디로부터 시작했다.

 99세의 어머니는 서장(西藏)에 가길 원했다. 서장이 어디인가? 히말라야와 에베레스트 같은 높은 산맥과 빙하로 이루어진 고원의 남쪽, 하늘과 가장 가까운 땅. 세계 최대, 최고의 고원인 티베트에서도 '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곳이 아니던가? 두 모자가 사는 곳이 중국의 최북단 탑하(塔河)였으니 중국대륙의 끝에서 끝으로 여행을 떠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들은 이에 즉각 순종한다. 교통수단은 아들이 손수 만든 자전거수레였다. 동력은? 자전거니 응당 아들의 발이다. 이렇게해서 900일, 3만km에 걸친 두  모자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우리 살아가는 데에 눈물이 있어 행복한 웃음도 있는 것처럼, 사랑이 있어 이별도 있는 것처럼. 우리 가는 길에도 눈물이 있고 빗줄기 있지만 너른 들판과 가벼운 햇살과 살랑대는 바람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우리 사는 일, 마음먹은 것처럼 쉽진 않지만, 그래서 더 살아볼 만한 게 세상 아닌가.   <책 내용중, p39>


 

 쉬운 여행은 결코 아니었다. 예상은 했지만 오직 페달을 밟는 것으로 그 넓은 종국대륙을 종단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기쁨과 행복감이 원동력되어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수레 안에서 다양한 풍경과 사람들을 보며 기뻐하시는 어머님의 모습을 보면 이 세상의 주인이 된 것처럼 아들은 흐뭇했고 만족했다.

 

 동생이 있는 대도시 하얼빈을 지나 장춘, 심양, 진황, 북경, 석가장, 남경, 상해, 항주, 남창, 그리고 중국대륙의 최남단 해남에 이르기까지.. 폭우가 쏟아져 몸으로 다 받아낸 적도 있었고 잘 곳이 마땅치 않아 노숙을 하는 것도 다반사였다. 길을 잃어서 방황할 때도 있었고 어머님이 심하게 아파서 찢어지는 가슴을 억누르고 이성이 마비된 채 병원을 찾아 헤맨 적도 있었다. 언덕을 오르는 길을 만나 밧줄을 묶어 수레를 끄는 것이 절반이나 되었다. 포장되지 않는 도로나 산길을 지날 때면 덜컹거리는 수레때문에 어머님이 불편해하지 않으실까 몹시 마음에 걸리기도 하였다. 페달을 밟는 다리에 쥐가 나서 고통이 많았고 종종 발생하는 어머님의 불평과 원망이 속상할 때도 있었다. 어머님의 입맛이 없을 것을 걱정키도 했고 혹여나 긴 여정가운데 부족함은 없는 지 불편한 것은 없는 지 챙기는 것은 중요했다. 하지만 이러한 고난과 걱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어머님만 행복하며 기쁠 수 있다면, 그것이 전부였다.


나에겐 어머니와 나의 여행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가가 가장 중요했다. 어머니가 행복해하시는 모습이 내가 볼 수 있는 지상 최고의 행복이었고, 비록 한뎃잠을 자더라도 내게 가장 따뜻한 이불은 어머니의 행복이었으니, 그러니 나는 어머니가 행복해하시기만 한다면 세상 어디라도 좋았다.   <책 내용중, p110>

 

 

 어느새 여행 중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다. 북경에서 자전거수레를 타고 두 모자가 여행을 한다는 것이 흔치 않을 일이라며 세상에 알리고 싶다고 인터뷰를 한 여기자를 만난 이후부터다. 그 여기자는 그때의 취재를 다음날 뉴스방송에 보도했던 것이다. 방송을 통해 중국 전역으로 퍼진 이 아름다운 소풍은 자전거수레가 중국땅 가는 곳곳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과 격려와 감동을 이끌어냈다.

 

 중국대륙의 최남단인 해남에 도착했다. 그 사이 아들은 많이 지쳤고 어머님도 쇠잔해지셨다. 여행을 떠난 지 1년여가 훨씬 지났고 긴 여정가운데 몸도 마음도 적지 않이 지쳐있었던 것이다. 계속해서 주변사람들은 서장까지는 무리라고 말렸고 어머님의 건강을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하였다. 그 조언을 받아들여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여태까지 온 풍경을 다시본다는 것은 어머님께서 무료해할 수 있으니 다른 길로 되돌아가 어머님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드릴 작정이었다. 어머님은 서장에 못간다는 아들의 솔직한 얘기에 섭섭해 하지 않으셨고 아들과 함께 여행하는 그 자체가 행복감이라고 위안해 주셨다. 어느덧 아들의 눈에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해남에서 출발해 다시 되돌아가는 소풍이 시작되었다. 세인들과 관심과 격려는 계속해서 늘어만 갔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자전거수레를 보면 손을 흔들면서 찾아와 격려해주고 호기심으로 이것저것을 물어보기도 했다. 그런 세인들의 과한 관심과 접근으로 인해 여행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광주, 장사, 정주를 거쳐 청도에 다다르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방송제작진이 다큐멘터리 제작을 제안했다. 사양하였으나 세인들에게 좋은 귀감이 될 것이라는 거듭된 제안에 응하고 말았다. 일주일에 걸친 촬영이 끝나는동안 어머님의 기력은 더욱더 쇠잔해지셨다. 병원에게 링거를 맞고 있는 어머님의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팠다.

 

방송국 제작진들과 주변 사람들이 더이상의 여행은 불가능하며 더욱이 어머님을 위해서도 이제 그만 중단해야 한다고 조언해주었다. 방송국에서 비행기를 대절해주었고 하얼빈까지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었다. 생전 처음으로 타는 비행기에 어머니와 아들은 어린 아이처럼 신기해했다.

 

 하일번에 도착하여 동생네 집에서 여독을 풀 수 있었다.

 



척박한 삶을 살아온 한낱 촌부에 지나지 않지만, 살면서 점점 크게 깨닫는 것은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왜 그렇게 살아오지 못했을까. 여행을 하면서 나는 순간순간 내게 주어지는 모든 것을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늙고 병든 사람뿐만 아니라 흙 한 줌, 구부러진 나무, 가느다란 햇빛, 모난 돌멩이 하나까지도 말이다. 그 무엇도 기대하지 않고 계산하거나 짐작하지 않고, 내 눈앞에 있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일. 그것이 내 남은 생의 힘이 되어줄 것이었다.   <책 내용중, p139>

 

 

 2003년 12월 30일 오후 3시.

어머니는 백세 살 생신을 이틀 남겨두고 조용히 떠나셨다. 그리고 몇몇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너무 슬펐고 죽도록 슬펐고 미치도록 슬펐다. 하지만 어머님의 유언은 잊지 않았다. 유골을 서장에 뿌려달라는 어머님의 유언.

 

 어머님의 유언을 실행키 위해 다시 소풍을 시작한다. 이번에도 소풍의 주인공은 아들과 어머니다. 수레에 어머님의 유해를 실은 채 서장자치구 라싸로 두 번째 여정을 떠나는 것이다. 

 하얼빈을 떠나 심양 북경, 석가장, 태원, 서안, 난주, 서녕을 거쳐 라싸에 도착한다. 유골을 서장에 뿌려달라는 어머님과의 약속을 아들은 충실히 지킨 것이다.

  

 

 이 지구상에서 세 번째로 넓은 중국대륙을 도화지 삼아 탑하에서 시작하여 하일번, 장춘, 심양, 진황, 북경, 석가장, 남경, 상해, 항주, 남창, 해남, 광주, 장사, 정주, 청도, 제남, 하얼빈, 심양, 북경, 석가장, 태원, 서안, 난주, 서녕을 거쳐 어머님이 원했던 영원한 종착지인 서장에 이르는 장장 4만km의 그림을 그렸던 아들과 어머니의 소풍은 孝의 정신이 희미해진 이 시대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항상 어머니를 주어로 하는 문장을 만들려했고 어머님이 원하는 것, 어머님이 기뻐하는 것, 어머님이 행복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실행할 수 밖에 없었던 그의 고결한 孝의 정신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달라진 세상이 정상적인 나를 자꾸만 다른 눈으로 보려고 하는 것만 같았다. 내 행동이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우리의 여행이 그렇게 특별한 일인가? 기분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어머니가 기뻐하니 나도 기뻤다. <책 내용중, p75>

라고 고백하는 아들의 모습은 자신이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고 이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틀렸다는 것과 어머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그것이 孝의 본질이라는 점을 동시에 알려주고 있다.

 

 자전거수레의 페달을 밟으며 2년이 넘는 시간동안 40,000Km를 종단했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孝의 수단일 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통해 어머니를 기쁘고 행복하게 하고자 하는 孝의 본질을 목적삼은 아들의 강단과 용기에 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뒤 거울을 내 가슴 앞에 비추어 보았다. 소름돋음을 느꼈다. 달라진 세상에 너무 자연스럽게 녹아있던 내 자신의 모습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해야할 지 생각했다. '말투', '설겆이', '집안청소', '효도여행' 등의 다양한 단어들이 내 머릿속에서 일렁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깨달음은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는 孝의 본질이었다. 왕일민 옹이 보여준 孝에 대한 순수한 마음과 강단이 하나님의 십계명 5번과 융합되어 부모님에 대한 내 자신의 방향성을 정리해주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에 나 자신도 자전거수레 페달을 밟는 심정으로 어머니와 아버지를 수레에 태워 孝의 여행을 떠나보자는 도전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땅의 많은 자식들이여..

孝는 우리의 삶을, 우리의 가정을, 이 국가를, 이 지구를, 이 우주를 하나님이 만드신 본래 목적대로 되돌려 놓을 수 있는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그 위대하고 고결한 '孝'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한탄하고 불평한다. 그런 사람들은 자유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기 내면이 무정부 상태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정말 자유로운 사람들은 자기 내면의 규칙과 법률을 쫓아간다. 그것이 참된 자유다.

내 몸과 정신과 삶이 자유로운 것은 이상이 아닌 현실 안에 목적을 두고 그 목적을 위해 살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우리의 여행은 자유로웠다.

<책 내용중, p167>

 

돌아보면, 인생이란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린 그저 하루살이에 불과하지 않은가. 아무리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에 허망함이 느껴진다고 해도 그런 것에 무게를 두고 괴로워하지 않을 것이다. 하루를 살다 가는 것을 감사히 여기고 하루를 살다 죽는 하루살이처럼 나는 자연의 흐름 안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흘러갈 것이다. 그렇게 대자유인이 될 것이다.

<책 내용중,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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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다윗의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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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의 비밀을 안 최고의 부자 록펠러
이채윤 지음 / 미래사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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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한 인물을 평가하는데 있어 공과 과를 구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동일인물에 대한 확연하게 구분되는 아래 장단의 프로파일을 소개하면서 리뷰를 시작하고자 한다. 

미국 역사상 가장 냉혹한 사업가.
석유 회사 독점을 위해 경쟁업체 직원을 매수해 정보를 빼내고,
경쟁업체가 기업들과 판매 계약을 맺으면 터무니 없이 낮은 가격을 내놓아 계약을 취소하게 만드는 일들을 서슴치 않음.
도산위기에 놓인 경쟁업체를 인수하며 1881년 당시 미국에서 생산되는 석유의 95%를 독점 공급.
1913년  러드로라는 마을에서 열악한 노동환경을 견디지 못한 광부들이 파업을 일으켰는데, 회사의 무력 진압으로 50여 명이 숨지게 한 소위 '러드로 학살사건'.
 

인류 역사상 최고 부자(시대의 화폐가치를 환월할 경우 현재 세계 최고의 부자인 빌게이츠의 3배가 넘는 재산을 보유).
인류 역사상 가장 큰 규모와 과학적인 자선사업을 실행.
수많은 소외된 이들을 돌보며 교육 발전을 위해 천문학적인 금액을 쏟아 부음.
의학연구소와 재단을 포함하여 시카고대학 등 12개 종합대학과 12개의 단과대학, 4,928개의 교회를 지어 사회에 바침.
UN본부 건립시 자신의 토지를 국가에 헌납.
100년이 지나 4대에 이르는 작금까지 활발한 자선사업으로 세인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음.
 

 빨간 글씨로 표시한 이력과 파란 글씨로 표시한 이력의 상충에 머리가 아프지 않는가? 인류 역사상 최고의 부자인 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위의 프로파일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공과 사가 뚜렷이 구분되는 인물이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거의 100세에 가까운 그의 일생에서 전반부의 삶은 사업을 시작하여 회사를 확장하면서 앞만 보고 달려온 냉혹한 사업가였던 반면에 50세가 넘는 후반부의 삶은 소외된 계층을 돌아보고 수많은 학교와 교회를 설립한 아름다운 자선사업가였다. 그에 대한 공과 사는 오랜 시간이 지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모범적이고 훌륭한 부자, 최고로 빛나는 자선사업가라는 위인의 반열에 올라 세인들의 판단이 정리되기도 하였다. 

 『십일조의 비밀을 안 최고의 부자』는 바로 이 록펠러의 일생을 다루고 있다. 이미 록펠러와 관련하여 많은 연구 논문과 자서전이 발행된 바 있다. 『하나님의 황금』, 『존 D. 록펠러』, 『존 D. 록펠러: 미국 기업의 영웅 시대』 등의 연구 논문과 책들은 유명하다. 자서전의 경우도 그 유명한 록펠러 전기인 『타이탄』과 4대에 걸친 록펠러 가문의 스토리를 모두 다룬 『록펠러 가의 사람들』은 이미 세간에 잘 알려져 있기도 하다. 

 『십일조의 비밀을 안 최고의 부자』는 『삼성처럼 경영하라』의 저자 이채윤씨가 집필한 책이다. 어머니에 의해 철저한 기독교 교육을 받은 록펠러를 조명하고 있다. 태어난 배경에서부터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로부터 받은 철저한 신앙교육, 사업을 시작하며 동역자를 만나고 사업을 확장하여 석유왕이 되기까지.. 사실 여기까지의 삶은 정확히 록펠러 일생의 절반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1년밖에 살지 못한다는 사형선고를 받고 새로운 삶의 전환점을 겪게 되는 록펠러는 하나님께 뜨겁게 기도하여 수명이 연장되는 응답을 받게 되고 지금까지 돈을 벌기에만 급급했던 자신을 목도하면서 남은 일생은 소외되고 어려운 이들을 위해 돈을 쓰는데 급급한 삶으로 바뀌게 된다. 어쩌면 록펠러라는 인물이 그리는 두가지 상반된 이미지는 그의 인생의 전반부와 후반부가 상충된 삶을 살았다는 것에서 오는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책은 어머니의 철저한 신앙교육에 의해 록펠러가 성장했음을 설명하고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온 것을 강조하고 있다. 록펠러의 어머니니는 아들이 어렸을 때부터 다음 세 가지 약속을 지키게 했다고 한다.
1. 십일조 생활을 해야 한다.
2. 교회에 가면 맨 앞자리에 앉아 예배를 드린다.
3. 교회일에 순종하고 목사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다. 

 어렸을 때부터 이에 대한 어머니의 철저한 교육과 기도로 인해 록펠러는 어렸을 때부터 마지막 생을 마감할 때까지 단 한번도 십일조를 거르지 않았고 예배생활과 교회에서의 봉사와 헌신에 여념이 없는 삶을 살았다. 그리고 사업가로서 뛰어난 달란트를 발휘하여 1881년 당시 록펠러의 회사는 미국에서 95%라는 경이로운 시장지배력을 가지는 초일류기업이 되었다. 더욱이 50세가 넘어서 시작한 자선사업은 그 규모와 과학성에 있어서 획기적인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데 재산의 절반이상을 자선사업에 투자하여 소외된 계층에 대한 구제사업과 학교 건립을 통한 인재 양성에 기여하였다. 

 록펠러는 록펠러 의학연구소와 록펠러재단을 위시하여 시카고대학 등 12개 종합대학과 12개의 단과대학, 4,928개의 교회를 지어서 사회에 바쳤다. 그중 시카고대학은 설립 이래 100년 동안 70여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으며, 현직 교수 중 노벨상 수상자가 수십명이나 될 정도였다. 하지만 록펠러는 자신이 세운 그 많은 대학과 교회에 자신의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그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므로 자신은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다는 태도를 견지했던 것이다. 

 저자는 록펠러의 삶을 찬양으로 일관하되 책의 각 파트가 끝날 때마다 관련 성경말씀을 달아놓아 록펠러의 부와 성공이 철저한 하나님의 은혜에 기인했다는 것을 꾸준히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에서 저자는 여느 기독교 신자와는 달리 록펠러는 의무감에서 십일조를 드린 게 아니라 어떤 신념을 가지고 십일조를 드렸다고 언급한 뒤 록펠러가 드린 십일조가 하나님의 밭에 뿌려져서 싹을 틔우고 자라나 열매를 맺는 씨앗이었음을 부연한다. 

 이 책에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록펠러의 일생을 용비어천가조로 장점만을 부각했다는 것이다. '러드로 학살 사건'을 위시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독점사업가였던 록펠러의 단점과 오명도 함께 다뤘으면 독자가 록펠러를 천착하는데 균형감각 있게 접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계속 남는다.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에 대한 강한 도전을 불러 일으키는 좋은 책이라 평할 만 하다. 이 책은 신앙인 록펠러만을 철저히 다루고 있다. 그가 어머니로부터 어떤 신앙교육을 받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 철저한 십일조생활을 통하여 성경말씀 말라기 3장 10절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을 받아누려 인류 역사 이래 전무후무한 부자가 된 것에 대해 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십일조생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으로 책을 정리하고 있다. 단순하게 번 돈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정성껏 자신이 번 돈을 계산하고, 허튼 곳에 돈을 쓰지 않고, 씨앗을 뿌리는 마음으로 감사하며 기쁨으로 십일조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하늘의 밭에서 그 씨앗이 움트고 자라나 다른 곳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넘칠 만큼의 열매로 돌려준다는 것이다. 

 그렇다. 맞는 말이다. 십일조는 예수를 믿는 상당수의 신앙인들에게도 강단있게 결단하지 못하고 있는 하나님의 요구다. 이 땅의 많은 크리스챤은 세인들로부터 "어떻게 수입의 10분의 1을 헌금으로 드릴 수 있느냐?"는 그들의 이성과 상식의 언어에 유혹과 조소를 당하고 있고, 정작 자신의 마음속에서는 돈이라는 가장 극복하기 어려운 신앙생활의 시험거리에 번민하고 있다. 하지만 하나님의 원칙과 요구는 단호하다. 우리의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지금 시대에도 십일조 생활을 우리에게 명령하고 계시다. 그런면에서 40명이나 되는 직원을 두고 수입을 정확하게 계산해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모범을 보여주었고, 씨앗은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며 아무 곳에나 뿌리는 것이 아니라 가장 풍요로운 대지인 하늘에 뿌리는 것이라는 점을 인류에게 확연히 보여준 록펠러의 삶은 응당 존경받아야 할 용기 있는 신앙인의 모습이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라기 3장 10절> 

 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록펠러처럼 십일조의 비밀을 알고 이를 철저히 시행하여 하늘 문이 열리는 동시에 창고에 복의 복이 가득 쌓이기를 간절히 기도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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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다윗의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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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달리는 소녀
츠츠이 야스타카 지음, 김영주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전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보편적으로 일본소설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읽기 쉽다는 것과 굉장히 독특한 소재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일본 특유의 문화에서 연유하는 그 무언가가 일본소설에 반영되어 있다는 느낌이 항상 들곤 한다.

 

 츠츠이 야스타카의 『시간을 달리는 소녀』를 만나게 된 동기는 네이버 독서 카페인 '책좋사'에서 많은 회원들의 서평을 접하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일본소설을 썩 좋아하지 않는 터라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제목에서 오는 호기심과 카페회원들의 서평에 대한 잦은 노출이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던 원인이었던 것이다.

 

 하드커버가 덮고 있는 심플한 책이다. 이 책에 대한 배경지식이 카페 회원들의 몇몇 서평에 노출된 것 外에는 없던 터라 3개의 단편소설로 이루어진 소설집이라는 것과 본래 1960년대 쓰여진 책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사뭇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시공간 소설의 명작, 21세기에 화려하게 부활하다!」, 「NHK, 장편 드라마, 후지TV 단편, 장편 드라마, TBS 단편 드라마, 2회 연속 영화화 대히트, 만화책 발간, 애니메이션으로 리메이크된 메가톤급 화제작.」이라는 책의 띠지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포스는 읽기 전 내 머리 속에 호기심을 일렁케 하는데 일조했다. 개인적으로 책이든 영화든 SF공상과학류를 매우 좋아하기 때문에 충만한 기대감과 함께 책의 첫장을 넘길 수 있었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일 수 있으니 주의 바란다.

 

 표제작인 『시간을 달리는 소녀』는 주인공 여자소녀 요시야마 가즈코의 신비한 시간여행에 대한 이야기다.

 가즈코는 과학실 청소를 하다가 실험실에서 들리는 이상한 소리를 듣게 된다. 그곳에서 깨진 시험관에서 흘러 나온 액체로부터 라벤더 향의 달콤한 냄새를 맡고 의식을 잃는다. 의식에서 깨어난 후 바로 하루 전의 과거로 타임리프된 것을 알고 가즈코는 경악한다. 바로 어제의 일이 가즈코의 앞에서 그대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가즈코는 절친한 친구 가즈오와 로고에게 이 믿기지 않는 사실을 털어 놓는다. 가즈코의 얘기에 친구들은 시큰둥하지만 그날밤 가즈코가 얘기한 사건들이 정확하게 일어나는 것을 보고 경악의 대열에 합류할 수 밖에 없다. 평소 신뢰가 두터웠던 후쿠시마선생님에게 이 사실을 공유하며 해결책을 강구하기에 이른다. 이어서 반복되는 가즈코의 타임리프는 계속해서 과거로 가즈코의 삶을 돌리고 있다.

 빨리 원상황으로 회복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가즈코.. 몇 번에 걸친 시간이동을 경험하면서 맨 처음 자신이 의식을 잃은 과학실 청소시간으로 다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실험실 안에서 발생했던 소리를 주의깊게 숨어서 관찰하고 당시의 그 범인(?)과 조우한다. 충격의 충격을 얻은 가즈코.. 쉴새없이 달려왔던 시간이동 사건에 대한 판타지적 줄거리는 가즈코와 범인(?)과의 조우를 지나면서 서로간의 연민과 사랑의 싹을 발생시키고 있다.

 다시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온 가즈코.. 시간이동을 비롯한 신비한 체험들은 기억에 없다. 귀가하면서 어느 집에서 연유하는 라벤더 꽃향기를 맡으며 무언가 어렴풋한 기억과 상상이 가즈코의 머릿속을 혼란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

'언젠가, 누군가 멋진 사람이 내 앞에 나타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 사람은 나를 알고 있을 거야. 그리고 나도 그 사람을 알고 있을 거고...'

어떤 사람일지, 언제 나타날지, 그것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히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 멋진 사람과... 언젠가... 어디선가...

 

 『악몽』은 보다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중학교 2학년인 마사코와 다섯살의 남동생 요시오는 겁쟁이다. 마사코는 반야 가면만 보면 심장이 격렬하게 띄며 경악한다. 요시오는 밤에 화장실 갈 때마다 귀신이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며 그냥 오줌을 싸는 버릇이 있다. 마사코는 동생 요시오의 공포가 엄마와 아빠로부터 기인했다는 것을 알게되고 요시오가 공포에서 벗어나게끔 회복시킨다. 하지만 정작 마사코 자신의 고소공포증과 반야 가면에서 오는 의문 모를 공포감은 치유하지 못하고 있다.

 어느날 강렬한 악몽을 꾼 마사코는 절친한 친구인 분이치와 함께 어렴풋한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옛날 자신의 고향을 방문한다. 그곳에서 옛친구 에츠를 만나고 자신이 왜 높은 곳에서의 현기증과 반야 가면에 대한 공포가 발생할 수 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과거 기억을 완벽하게 되찾게 된다.

 과거의 모습을 회복한 마즈코는 집에 오는 길에 동생의 용기있는 모습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마지막 『The Other World』의 경우도 시간이동의 이야기다. 하지만 설정되는 미래는 훨씬 더 멀며 시간이동의 내용은 더 복잡하다.

 노부코는 귀가길에 항상 귀찮게 하는 불량학생 3명을 마주한다. 어느날 여김없이 불량한 애들과 만나게 되는데 옆에 함께 걷던 같은 반 우등생 시로가 불량학생들에게 대들다가 타격을 입는다. 내심 강한 모습을 보여주길 원했던 노부코는 불량애들한테 맞고도 담담한 시로가 이해되지 않는다. 노부코는 집에 와서도 시로의 무덤덤한 반응이 계속 신경이 쓰였고 시로의 몸상태가 걱정되어 전화하려는 순간.. 눈앞이 기우뚱 하고 흔들리더니 초점이 희미해졌다.

 그리고 대략 2천년이 지난 3921년의 도쿄시로 장면은 넘어간다. 베라트론 연구소의 시간양자학자 노부는 광자기 연구실험을 진행하다가 실패한다. 그러면서 큰 폭발이 발생한다. 그리고 다원우주와 동시존재라는 복잡한 과학적인 설명이 소개된다.

 다시 노부코의 집으로 시점이 옮겨가고 귀가길에서의 불량배들의 만남이라는 동일한 사건에서 예전과는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노부코는 경험한다. 어쩌면 노부코 자신이 과거 원했던 장면이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할 정도로 변화되었다.

 그리고 시점은 또 바뀐다. 이번에는 더 다른 세상으로 간 것 같다. 학생의 신분이 아니다. 없던 쌍커풀이 생기고 핸드백 안에는 커다란 백금 케이스의 콤팩트.. 전부 최고급품이다. 이게 정말 나일까?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보고 싸인을 해달라고 한다. 소설의 말미에 노부코는 외친다.

"싫어! 이젠 싫어! 싫으니까 나를 원래 세계로 돌여보내줘!"

 

 뭔가 짧고 갑작스럽게 몰아가는 이야기가 아쉽긴하지만 1960년대 쓰여진 내용임을 감안하면 그 놀라운 상상력과 소재설정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복잡한 시간이동에 대한 이야기를 매우 쉽게쉽게 풀어간다는 점이 좋다. 물론 말미의 이야기를 더욱 연장하면서 시간의 폭을 넓혀 한 권의 장편소설이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적지 않다.

 

 이미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일본소설은 보편적으로 읽기 수월하고 특이하다. 게다가 또 한가지 추가하자면 필름화할 수 있는 소재가 풍성하다. 즉 소설에서 만들어낸 작가의 상상력이 자연스럽게 영화화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는 느낌을 일본소설을 접하면서 자주 느낀다. 사실도 그렇지 않은가? 일본문학이 애니나 영화로, 더욱이 한국영화와 방송에까지 원작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다반사가 아니었던가? 영화라는 또다른 장르가 침투할 수 있는 공간성까지 확보하고 있는 일본작가들의 역량과 상상력이 부러울 뿐이다. 시간가는 줄 모르고 몰아쳐서 읽은 흥미있는 책이었던 만큼 신속하게 애니메이션도 만나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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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청와대에선 무슨 일이? - 권불십년
송국건 지음 / 네모북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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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가장 강력한 권력은 어디에서 분출할까? 쉽고 이상하고 싱거운 질문일 것이다. 열에 아홉은 대통령이라고 답을 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정치체제는 대통령중심제이며 헌법과 법률에 따라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과 국가원수로서 강력한 권한을 갖고 있다. 입법과 사법과 행정의 삼권이 독자적으로 분리된 삼권분립체제라고 하지만 단일헌법기관으로서 그 상징성과 영향력, 그리고 실질적인 권한을 확인하면 응당 대통령이 가장 강력한 권력의 핵심요체임은 부인할 수 없다. 사실 대한민국의 대통령제는 대통령중심제를 시행하고 있는 다른 여느나라의 그것과는 내용과 느낌이 다소 다른 면이 없지 않다.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를 거쳐 현 참여정부에 이르면서 많이 변화되었지만 제왕적이고 권위적인 대통령제에서 완벽하게 벗어낫다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시대가 분명 바뀌긴 바뀌었나보다. 청와대를, 엄밀히 말하면 대통령을, 그것도 현직 대통령과 관계된 상당수의 공적 사적 얘기를 묶어 정리하여 책으로 낼 수 있는 자유로운 표현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도대체 청와대에선 무슨 일이?'라는 제목은 솔깃하여 군침이 돌 지경이다. 이미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대한민국의 가장 강력한 권력창고가 청와대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며 이에 대한 세간의 관심과 선망 또한 당연한 것이다. 더욱이 최근의 대선정국과 맞물려서 정치에 관심이 있는 세인들에게 흥미있게 읽히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현역 최장기 청와대 출입기자가 보고 듣고 느끼고 취재한 것을 정리한 내용이다. 저자는 대통령의 업무를 위시해 개성, 성격, 업무스타일, 참모들, 친인척, 사생활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의 공적인 부분뿐만아니라 사적인 부분까지 자세하게 얘기하고 있다. 현직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하여 역대 대통령들과 관련하여 세인들에게 폭넓게 공개되지 않는 비화와 해프닝까지 낱낱이 알려주고 있다. 전현직 대통령은 물론이고 거론되는 인물들의 실명이 최대한 거론되고 있고 무엇보다 저자가 청와대출입기자생활을 하는동안 보고 듣고 확인된 내용, 즉 철저한 사실에 근거한 내용이기에 책에 쏠리는 흥미와 집중은 배가된다. 최대한 저자 자신의 사견을 배제하고 사실적인 설명을 다루고 있어 독자들이 역대 대통령들을 관찰하고 평가하는데 있어 균형감을 잃지 않게 하고 있기도 하다. 책 내용 중 종종 등장하는 대통령과 관련된 코믹한 에피소드들은 개콘이나 웃찾사 못지 않은 유머를 제공하기도 한다.

 

 내용의 비중을 보면 단연 현직 대통령인 노무현 대통령과 관계된 내용이 절반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그 외의 내용은 DJ, YS, 노태우, 전두환 대통령이 동일한 분량으로 채워져있으며 박정희 대통령과 이승만 대통령에 대해서는 많은 내용이 소개되지 못하고 있다. 최규하, 윤보선 대통령의 경우는 거의 거론되지 않고 있음은 물론이다. 저자가 6공화국 노태우 대통령 재임 시 처음으로 청와대기자로 활동했던 점을 감안하면 전두환 대통령 이전의 이야기는 취재기사 및 선배기자들로부터 정보를 얻어 기술할 수 밖에 없었음은 충분히 이해될만하다. 424p에 달하는 적지 않은 분량가운데 청와대에 대해 몰랐던 정보들과 매우 흥미로운 비화가 즐비한데 그 중 몇개 추려서 리뷰의 뒷부분에 발췌하겠다.

 

 아리랑TV 인선과정 해프닝에서 드러난 대통령 비서실의 파워를 시작으로 해서 마지막 대통령전용기인 공군1호기에 대한 설명까지 대통령과 그에 파생되는 수많은 관계를 소재로 하여 사실정보, 역사적 사건, 세간의 소문 등을 줄기차게 설명하고 있어 지루할 틈이 없다. 특히 뒷부분에 소개되는 노무현과 조선일보의 10년 전쟁, 즉 1990년초 통합민주당의 '노무현 대변인'과 조선일보간의 명예훼손 소송건의 1차 전쟁, 2001년의 '해양수산부 장관 노무현'의 선제공격으로 시작된 2차 전쟁, 대통령 취임 이후 '대통령 노무현'과 조선일보 사이 아직도 종료되지 않은 3차 전쟁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흥미의 압권이라 할 만하다. 간혹 발견되는 오탈자가 눈에 거슬리지만 인생을 탐구하는 깊이 있는 문학작품이 아니기때문에 그로 인한 집중력 저하와 스트레스 생성은 발생하지는 않는다. 저자가 알려주는 청와대 전반에 걸친 다양한 정보와 사건들에 대해 가벼운 통독으로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책의 마지막장을 덮은 후 씁쓸한 아쉬움 한가지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아직 한국정치의 현대사에서 아름다운 전직 대통령 문화를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퇴임 이후 저술이나 강연, 인권운동, 재단설립 등의 활발한 활동을 통하여 국민들로부터 현직에 있을 때 못지 않은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지 않은가? 이미 200년 넘게 대통령제를 실시한 미국의 경우는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하더라도 청문회출석, 유배생활, 구속수감 등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의 불운한 현대사는 국민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이 오욕의 역사를 극복하여 우리도 미국 못지 않은 퇴임 후의 아름다운 전직 대통령 문화가 창출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대통령 개인은 물론, 국민이 행복할 길이며 더 나아가 먼 훗날 우리 다음 세대들이 학습하며 꿈을 키울 미래이기 때문이다.

 

 

박진 통역관의 이런 영어 실력에다 타고난 순발력은 YS의 좌충우돌식 언행을 적당히 커버함으로써 빛을 발했다. 따라서 YS와 박진 통역관이 등장하는 수많은 일화가 청와대 주변에 남아 있다.

가장 압권은 YS가 휘호로 즐겨 쓴 '大道無門(대도무문:정도를 걸으면 거리낄 것이 없다)'을 통역한 일이다.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이 휘호를 선물 받고 무슨 뜻이냐고 묻자 처음엔 " A freeway has no tollgate(고속도로에는 요금정산소가 없다)"라고 말했다. 위트였다. 그런데 클린턴 대통령이 웃음을 머금으면서도 고개를 갸우뚱하자 박진 통역관은 정색을 하고 "Righteousness overcomes all obstacles(정의로움은 모든 장애물을 극복한다)"라고 했다.

<책내용中, 130p>

 

사정이 이렇다 보니 TK는 자기들끼리도 편을 갈랐다. '성골 TK'니 '진골 TK'니 하는 말은 꽤 알려져 있다. TK들 사이에선 내부적으로 경북고를 나온 사람은 '광어 TK', 그냥 고향만 대구,경북이면 무늬만 TK라며 '도다리 TK'로 부르기도 했다.

<책내용中, 180p>

 

초대 이승만 전 대통령이 미국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유학생활을 할 때 당시 프린스턴 대학교 총장으로, 훗날 미국 28대 대통령이 된 우드로 윌슨을 스승으로 모셨던 것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다.

<책내용中, 188p>

 

이같은 노무현 대통령의 다변(多辯)이 결과적으로 정신건강 뿐아니라 육체건강에도 도움이 된다고 해석하는 참모도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음식을 가리지 않고 잘 먹는 편이다. 잡곡박에 된장, 미역, 북어, 사골곰국, 그리고 채소로 만든 담백한 나물류와 국물김치를 좋아한다. 입맛이 없을 때는 삼계탕을 찾는다. 그런데 식사량이 많으면서도 정상 체중을 유지하는 데 대해 이 참모는 '대통령이 섭취하는 칼로리의 많은 부분은 말을 하는 것으로 빠져 나가는 것이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어떤 자리에서나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함으로써 스트레스도 풀고 칼로리도 소모한다는 것이다.

<책내용中, 205p>

 

정치권 일각에선 역대 대통령을 외울 때 우스개 삼아 '이,윤,박,최,돌,물,깡'이라고 한다. 이승만, 윤보선, 박정희, 최규하 대통령까지는 성을 그대로 부르지만 그 다음부터는 별명이다. 즉 '전두환=돌', '노태우=물', '김영삼=깡'이다. 직전인 김대중 대통령과 현역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공인된' 별명은 아직 없다.

<책내용中, 272>

 

이낙연 의원이 들려준 다음과 같은 일화는 YS와 DJ의 성격 차이를 단적으로 읽을 수 있게 한다. 1987년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의 이름하 '호헌조치' 직후 두 김 씨가 만났다.

DJ: "직선제 개헌을 요구하는 백만 인 서명운동을 전개합시다."

YS: "백만이 뭐꼬? 천만으로 합시다."

DJ: "우리나라 인구가 몇 명인데 천만 명의 서명을 받는단 말이오."

YS: "누가 세어보나."

결국 두 사람은 직선제 개헌 1천만 명 서명운동을 벌였고, 이 운동이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서명한 국민이 몇 명인지는 아무도 세어보지 않았지만 1천만 명 서명운동은 대성공을 거뒀다.

나중에 DJ는 이낙연 의원에게 이 비화를 소개해 주면서 "그분(YS)의 그런 장점은 내가 도저히 따라가기 어렵다"고 말했다고 한다.

<책 내용中, 274p>

 

'3김 시대' 정치판을 취재한 기자들은 세 사람의 말 속에 담겨 있는 논리성은 다음과 같이 표현하기도 한다. "DJ의 말은 받아 적으면 그대로 가시체가 된다. YS의 말은 아무리 받아 적어도 나중엔 기사 쓸 것이 하나도 없다. JP(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말은 받아 적고 나서 무슨 뜻인지 한참 동안 사전을 뒤져봐야 한다."

<책내용中, 284>

 

따라서 지금까지 소개한 역대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정리해보면 '노무현= 실험형, 김대중= 실사구시형, 김영삼= 독선형, 노태우= 신중형, 전두환= 기분파형, 박정희= 분할통치형, 이승만= 궁정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책내용中, 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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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진 1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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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진』을 읽었다. 2/4분기 업무회의 관계로 부산본사에 내려가는 일정 外의 신경숙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걸어가는데 따른 장애물은 있지 않았다.
 

  죽도록 읽고 싶었던 책이었다. 읽기를 갈망했던 본질을 들추어 보면 기대심이 반이었고 의구심이 반이었다. 신경숙과 역사소설이라는 연결고리가 머리속에서 잘 정리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완독을 한 후 내 마음 속의 감성량이 충만함을 확인하였고 의구심은 산산이 부서졌고 기대감은 만족감으로 승화되었다.
 

  조선시대 말기 궁중 무희였던 여자, 리진의 일생을 담고 있는 소설이다. 역사소설이라고 하지만 리진을 향한 여러갈래의 사랑과 리진이 향하고 있는 한갈래의 사랑으로 엉켜있는 러브스토리라고 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프랑스 공사 콜랭을 위시하여 파리에서 리진 곁을 맴도는 홍종우, 한솥밥을 먹고 자란 오랍동생 강연, 그리고 한 궁녀의 아름다움에 시선을 주었던 국왕에 이르기까지.. 리진을 향한 남성들의 관심과 사랑이 이야기의 중요한 근간을 이루고 있다. 궁궐에서의 첫 만남 시 자신의 프랑스식 인사를 아무렇지도 않게 같은 언어로 되돌려주고 또 궁중의 연회에서 주인공 격인 무희로 등장하여 마음을 사로잡아버린 리진에 대한 조선의 초대 프랑스 공사 콜랭의 사랑.. 김옥균의 암살범이자 한말의 정객으로 프랑스 유학 생활을 하고 또 '춘향전'과 '심청전'을 프랑스어로 번역했던 홍종우.. 고아 출신으로 어렸을 적부터 리진과 남매처럼 성장하여 끝까지 리진 곁을 지켰던 실어증의 악사 강연.. 겉으로 표현되진 않지만 리진의 아름다운 미모에 눈길을 주었던 국왕 고종의 시선.. 

관리의 재촉으로 걸음을 빨리 옮기다가 뒤가 당기는 것 같아 콜랭이 뒤돌아보았을 때다. 콜랭과 마찬가지로 동시에 뒤를 돌아다보고 있던 궁녀의 눈과 콜랭의 눈이 한순간 마주쳤다. 궁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콜랭은 서 있는 그 자리에 붙박이는 듯했다. 궁녀의 깊고 검은 눈에 한껏 다정함이 묻어 있어서였다. 장난기 없이, 눌라움 없이, 구경하는 마음 없이, 이미 자신을 알고 있는 듯이 다정하게 바라보는 조선인의 눈을 콜랭은 처음 보았다. 그러나 콜랭이 오로지 그 다정함 때문에 그 자리에 붙박이는 듯했던 건아니다. 궁녀의 검은 눈과 마주치는 순간 콜랭은 예상치 않았던 옛 추억의 한 단락과 마주쳤다. 이미 잊혀졌다고 여겼던 얼굴 하나가, 궁녀의 반짝이는 검은 눈과 마주치는 순간 되살아났다. 급물살에 떠밀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1권, 107p>

 

  소설의 전반부는 리진에 대한 콜랭의 관심과 사랑으로 시작하여 중반 이후까지 이야기의 뼈대로 서나가고 있다. 리진에 대한 강연의 사랑과 지나치게시리 민감성을 갖는 왕비의 관심은 이야기의 가지처럼 느껴질 정도로 콜랭과 리진의 로맨스는 강렬하고 아름답다.

  조선의 프랑스 초대 공사로 발령이 나서 국왕에게 처음으로 인사를 드리러 가는 도중 궁궐 금천교 위에서 처음으로 만난 리진에 한 순간에 반한 콜랭은 이후 알 수 없는 왕비의 전격적 지원에 힘입어 리진을 자신의 여자로 만드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리진에 대한 콜랭의 끊임없는 잘해줌과 이후 모국인 프랑스에까지 리진을 데려가서 하루하루 행복한 나날들을 보낸다.

  프랑스로 건너간 조선 최초의 궁중 무희라는 사실과 프랑스 작가 모파상과의 만남, 홍종우의 스토킹으로 이어지는 신경숙의 작가적 상상력이 결합되어 소설의 흥미진진함은 시간의 흐름을 망각하게 만든다.
 

콜랭이 나지막이 말했다.
- 사흘 동안 말이오. 조선에서 첫밤에 당신이 말했던 파리를 순서대로 돌아봅시다.
- 순서를 기억해요?
- 기억하오.
- 어디 말해봐요.
- 루브르..... 노트르담..... 볼로뉴 숲..... 카르티에 라탱 거리..... 오페라 극장..... 뤽상부르 공원..... 샹젤리제 거리..... 앵발리드..... 시테 섬.
콜랭은 조선에서의 그밤, 루브르에 데려가세요, 하던 리진의 슬픔과 체념 그리고 얼마간의 기대도 동시에 실려 있던 맑은 목소리가 되살아나 리진의 검은 머리를 빗질하듯 쓸어내렸다.
- 그걸 어떻게 차례로 외우고 있어요?
외워두려 애쓰지 않았다. 저절로 외워졌다. 사랑이란 그런 것인 모양이었다. 콜랭은 마치 날아가려는 새를 가두려는 것처럼 리진을 끌어안고 뺨과 입술과 목덜미와 가슴에 입을 맞추었다.
<2권, 58p>

 

  하지만 중후반 이후 불로뉴 숲을 다녀간 이후의 리진의 변화를 통해 소설의 흐름은 급반전된다. 파리 생활의 매너리즘에 따른 무료함이었을까? 조국에 대한 향수에서 오는 애국심의 발로였을까? 강연, 서씨, 왕비 등의 보고 싶은 이에 대한 순수한 그리움이었을까?
 

  이야기의 공간은 다시 조선으로 넘어간다. 한번 궁녀는 영원한 궁녀라 했던가? 조선으로 온 이상 자유로울 수 없는 궁녀라는 신분.. 더욱이 파리에서 리진에게 퇴짜를 맞은 홍종우의 간언으로 궁에서 리진을 바라보는 시선이 예사롭지 않다. 게다가 콜랭의 사랑도 예전같지 않다.
 

  인간은 영원히 변할 수 밖에 없는 존재인가? 인간의 사랑은 무한한 태양에너지와 같은 것이 아닌 유한할 수 밖에 없는 한 개의 전구나 형광등과 같은 것인가? 과히 일방적이라 할 수 있었던 리진에 대한 콜랭의 사랑의 에너지는 어느새 그 기운이 다한 것인가? 리진을 남기고 모로코로 떠나는 콜랭과 그를 따라 나서지 않은 리진..
 

  어렸을 때 만나 남매처럼 지냈던 강연은 평생 한 여인을 흠모하며 살아왔다. 리진에 대한 강연의 사랑은 콜랭의 그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리진의 목숨을 위해 손가락까지 절단해야 했던 사실을 뒤늦게 알고 리진이 오열하는 장면에서는 여느 슬픈 영화 못지 않은 가슴 뭉클함이 스며든다. 어느새 소설의 이야기 중심에 자리 잡았던 콜랭의 사랑은 저 뒤로 밀려나 있고 강연의 웅숭깊은 사랑의 무게감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듯 하다.
 

은방울.
어젯밤으로 나는..... 되었다. 모든 것이 되었어. 그러니 너는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잇는 학당은 세우려는 일을 이루었으면 한다. 홍종우 대감이 도와줄 거야. 어제 그를 만나 내 간절히 부탁했다. 예전에 어머니가 그랬듯이 이 집에서 글을 모르는 반촌의 아이들부터 글을 가르치는 것을 시작해봐도 좋을 거야. 곁에서 네 일을 도와주고 싶었다. 그러지 못하는 것이 가장 안타까울 뿐. 네가 어떤 처지에 놓여 있어도 네 곁에 있으려 했지만 바닷길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뿐이냐. 다시 조선에 돌아온 너를 지켜줄 힘도 없었다. 그것이 사무칠 뿐.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고작 대금을 불어주는 일뿐이었다.
은방울.
이보다 더 힘들었던 날들을 견주어 생각해보며 살아갈 힘을 얻길 고대한다. 한 가지, 어떤 이야기가 들려도 나를 찾아나서려고 하지 마라. 나는 청국에 가는 것이니. 나를 위해서는 아무 일도 하지 마라. 어렵겠지만 꼭 그렇게 해주어. 그것이 나를 위한 길이니. 나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려 들면들수록 나는 나빠질 뿐이니.
<2권, 260p>

 

  하지만.. 소설책을 덮는 순간.. 리진과 콜랭의 로맨스도.. 리진을 향한 해바라기 같은 강연의 사랑도.. 작가 신경숙이 독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목소리의 본질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밀려 온다. 수많은 이야기의 가지를 치면서 왕비(명성황후)에 대한 리진의 사랑과 연민이라는 이 소설의 뿌리를 목도한 것이다.
 

  사실 리진 자신은 궁궐을 떠나고 싶어하지 않았다. 궁중무희로서의 뛰어난 춤실력과 아름다운 용모를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발판으로 신분의 상승이나 외교관의 아내로서의 행복감을 동경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어렸을 때 처음 만나 고결하고 신비한 존재로 다가왔던 왕비에 대한 사랑과 연민을 가슴에 품고 있었고 그 곁에 있고 싶었던 것이 리진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왕비의 명에 따라 프랑스 공사관에 머물러 있을 때에도 그의 마음이 자신에게 지극정성인 콜랭에게 있었던 것도, 프랑스로 대변되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기대감을 향해 있던 것도 아니었다. 리진의 마음은 오로지 왕비가 있는 궁궐을 향해 있었을 뿐이었다. 그가 콜랭의 마음을 받아들인 것도 왕비의 의중을 파악하고 난 다음이었다.
 

"나는 개화된 세상에 나가보길 꿈꾸나 이 궁궐에서 한 발짝도 옮기지 못할 처지이니 네가 부럽구나." <1권, 28쪽> 
 

  리진은 프랑스에서 끊임없이 왕비에게 편지를 썼다. 새로운 세계에서의 경험과 사람들과의 만남을 세세하게 편지에 기록하여 왕비를 향해 말하고 있다. 리진이 프랑스에 있게된 이후로 소설의 각 장 첫 문구는 '중궁마마'로 시작하는 왕비를 향한 리진의 목소리로 일관되게 시작하고 있다. 조선에 온 이후에도 리진의 시선은 강연을 넘어 일관되게 궁궐을 향해 있다. 이 소설의 이야기 초점이 리진을 둘러싼 몇몇 남성들의 사랑과 관심이 아닌, 왕비를 향해 있는 리진의 방향성에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다.
 

  소설의 뒷부분에 묘사된, 이름하여 을미사변이라는 국가적 수치의 역사 현장을 신경숙은 매우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특히 여러장에 걸친 명성황후의 죽음은 그 긴장감과 서글픔, 두근거림과 분노의 감정을 동화시켜 불러일으키는 압권의 명장면이라 할 수 있다. 왕비의 죽음은 더이상 리진 자신의 존재가 필요 없음을 일깨워 주었다. 독이 발라진 불문사전의 종이 한조각 한조각을 먹음으로써 육체와 영혼이 분리된 리진의 마지막 장면의 배경은 역시 궁궐이었다. 콜랭과 강연의 리진에 대한 애모로 가려져 있던 왕비를 향한 리진의 방향성과 민감성이라는 이야기의 뿌리가 흙 밖으로 나오면서 짧지만 짧지 않았던 리진의 인생과 더불어 소설의 이야기는 종료된다.
 

  하드커버의 무거운 마지막 뒷장을 덮은 뒤 어쩌면 이 소설의 주인공은 리진이 아니라 왕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언제나 리진의 방향성은 궁궐을 향해 있었고 그녀의 눈과 귀를 포함한 모든 감각은 왕비의 것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작가 신경숙은 슬픔과 수치로 대변되는 한국의 전근대사를 리진이라는 궁중무희의 일생을 통해 관통하면서 명성황후라는 또다른 비운의 여성을 조명하고자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여하튼 수년만에 만난 신경숙의 장편소설은 '제너럴 셔먼호 사건'으로부터 시작하여 임오군란,을미사변을 거쳐 1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의 봉건사회에서 전근대사로 넘어가는 역사를 관통하는 동시에 한 여인의 일생을 통하여 또다른 여인을 조명하는 깊이 있는 인간에 대한 통찰을 그림으로써 읽는 이에게 배부른 양식을 제공하고 있다.
 

  강추한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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