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와 함께한 900일간의 소풍
왕일민.유현민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하나님께서 태초에 창조하신 아름다움과 순결함이 가득한 원초의 모습에서 벗어난 지 오래되었다. 아담의 원죄 이후, 인류는 계속해서 태초의 모습에서 변질되어 갔다. 이기주의와 물질만능사상, 교만과 위선의 팽배함.. 가난과 기근, 전쟁과 테러.. 자본주의 체제의 보편적 증가에 따른 인간경시문화.. 그리고 무엇보다 가정의 파괴에 따른 부모의 권위는 실추되었고.. 달라진 세상이 정상적인 것에 대해 자꾸만 다른 눈으로 보려고 하는 요상끔직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험악한 시대에 왕일민(王一民) 옹의 아름다운 일화는 무기력해지고 건조해진 이 세상의 효(孝)의 현실에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이 시대의 마지막 효자', '효자왕'이라는 강렬한 닉네임이 따라붙는 중국인 왕일민과 102세를 일기로 작고한 그의 어머니가 함께한 대륙종단여행을 담은 논픽션인 『어머니와 함께한 900일간의 소풍』을 읽었다. 책의 두께가 얇은 편이며 글씨밀도도 여유가 있는 부담없는 분량이어서 제헌절휴무를 앞둔 여유로움에 편승하여 단한번에 완독할 수 있었다.

 

 제목부터 솔깃하다. '어떻게 74세 아들과 99세 어머니가 그 연세에 900일동안 여행을 할 수 있지?'하는 의구심과 중국 전역에 큰 충격과 감동을 불러일으킨 소위 孝의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실화라는 점에 대한 기대심과 도전감이 믹서되어 첫장부터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어머니. 세상구경 가실래요?"

기나긴 여정은 74세의 아들의 이 한마디로부터 시작했다.

 99세의 어머니는 서장(西藏)에 가길 원했다. 서장이 어디인가? 히말라야와 에베레스트 같은 높은 산맥과 빙하로 이루어진 고원의 남쪽, 하늘과 가장 가까운 땅. 세계 최대, 최고의 고원인 티베트에서도 '세계의 지붕'이라고 불리는 곳이 아니던가? 두 모자가 사는 곳이 중국의 최북단 탑하(塔河)였으니 중국대륙의 끝에서 끝으로 여행을 떠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들은 이에 즉각 순종한다. 교통수단은 아들이 손수 만든 자전거수레였다. 동력은? 자전거니 응당 아들의 발이다. 이렇게해서 900일, 3만km에 걸친 두  모자의 여행은 시작되었다.

 

우리 살아가는 데에 눈물이 있어 행복한 웃음도 있는 것처럼, 사랑이 있어 이별도 있는 것처럼. 우리 가는 길에도 눈물이 있고 빗줄기 있지만 너른 들판과 가벼운 햇살과 살랑대는 바람이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우리 사는 일, 마음먹은 것처럼 쉽진 않지만, 그래서 더 살아볼 만한 게 세상 아닌가.   <책 내용중, p39>


 

 쉬운 여행은 결코 아니었다. 예상은 했지만 오직 페달을 밟는 것으로 그 넓은 종국대륙을 종단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기쁨과 행복감이 원동력되어 힘차게 페달을 밟는다. 수레 안에서 다양한 풍경과 사람들을 보며 기뻐하시는 어머님의 모습을 보면 이 세상의 주인이 된 것처럼 아들은 흐뭇했고 만족했다.

 

 동생이 있는 대도시 하얼빈을 지나 장춘, 심양, 진황, 북경, 석가장, 남경, 상해, 항주, 남창, 그리고 중국대륙의 최남단 해남에 이르기까지.. 폭우가 쏟아져 몸으로 다 받아낸 적도 있었고 잘 곳이 마땅치 않아 노숙을 하는 것도 다반사였다. 길을 잃어서 방황할 때도 있었고 어머님이 심하게 아파서 찢어지는 가슴을 억누르고 이성이 마비된 채 병원을 찾아 헤맨 적도 있었다. 언덕을 오르는 길을 만나 밧줄을 묶어 수레를 끄는 것이 절반이나 되었다. 포장되지 않는 도로나 산길을 지날 때면 덜컹거리는 수레때문에 어머님이 불편해하지 않으실까 몹시 마음에 걸리기도 하였다. 페달을 밟는 다리에 쥐가 나서 고통이 많았고 종종 발생하는 어머님의 불평과 원망이 속상할 때도 있었다. 어머님의 입맛이 없을 것을 걱정키도 했고 혹여나 긴 여정가운데 부족함은 없는 지 불편한 것은 없는 지 챙기는 것은 중요했다. 하지만 이러한 고난과 걱정은 중요하지 않았다. 오직 어머님만 행복하며 기쁠 수 있다면, 그것이 전부였다.


나에겐 어머니와 나의 여행이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가가 가장 중요했다. 어머니가 행복해하시는 모습이 내가 볼 수 있는 지상 최고의 행복이었고, 비록 한뎃잠을 자더라도 내게 가장 따뜻한 이불은 어머니의 행복이었으니, 그러니 나는 어머니가 행복해하시기만 한다면 세상 어디라도 좋았다.   <책 내용중, p110>

 

 

 어느새 여행 중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다. 북경에서 자전거수레를 타고 두 모자가 여행을 한다는 것이 흔치 않을 일이라며 세상에 알리고 싶다고 인터뷰를 한 여기자를 만난 이후부터다. 그 여기자는 그때의 취재를 다음날 뉴스방송에 보도했던 것이다. 방송을 통해 중국 전역으로 퍼진 이 아름다운 소풍은 자전거수레가 중국땅 가는 곳곳마다 그림을 그리는 동안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과 격려와 감동을 이끌어냈다.

 

 중국대륙의 최남단인 해남에 도착했다. 그 사이 아들은 많이 지쳤고 어머님도 쇠잔해지셨다. 여행을 떠난 지 1년여가 훨씬 지났고 긴 여정가운데 몸도 마음도 적지 않이 지쳐있었던 것이다. 계속해서 주변사람들은 서장까지는 무리라고 말렸고 어머님의 건강을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하였다. 그 조언을 받아들여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여태까지 온 풍경을 다시본다는 것은 어머님께서 무료해할 수 있으니 다른 길로 되돌아가 어머님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드릴 작정이었다. 어머님은 서장에 못간다는 아들의 솔직한 얘기에 섭섭해 하지 않으셨고 아들과 함께 여행하는 그 자체가 행복감이라고 위안해 주셨다. 어느덧 아들의 눈에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해남에서 출발해 다시 되돌아가는 소풍이 시작되었다. 세인들과 관심과 격려는 계속해서 늘어만 갔다.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자전거수레를 보면 손을 흔들면서 찾아와 격려해주고 호기심으로 이것저것을 물어보기도 했다. 그런 세인들의 과한 관심과 접근으로 인해 여행속도는 더디기만 했다.

 

 광주, 장사, 정주를 거쳐 청도에 다다르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방송제작진이 다큐멘터리 제작을 제안했다. 사양하였으나 세인들에게 좋은 귀감이 될 것이라는 거듭된 제안에 응하고 말았다. 일주일에 걸친 촬영이 끝나는동안 어머님의 기력은 더욱더 쇠잔해지셨다. 병원에게 링거를 맞고 있는 어머님의 모습을 보면 가슴이 아팠다.

 

방송국 제작진들과 주변 사람들이 더이상의 여행은 불가능하며 더욱이 어머님을 위해서도 이제 그만 중단해야 한다고 조언해주었다. 방송국에서 비행기를 대절해주었고 하얼빈까지 비행기를 타고 갈 수 있었다. 생전 처음으로 타는 비행기에 어머니와 아들은 어린 아이처럼 신기해했다.

 

 하일번에 도착하여 동생네 집에서 여독을 풀 수 있었다.

 



척박한 삶을 살아온 한낱 촌부에 지나지 않지만, 살면서 점점 크게 깨닫는 것은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왜 그렇게 살아오지 못했을까. 여행을 하면서 나는 순간순간 내게 주어지는 모든 것을 사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늙고 병든 사람뿐만 아니라 흙 한 줌, 구부러진 나무, 가느다란 햇빛, 모난 돌멩이 하나까지도 말이다. 그 무엇도 기대하지 않고 계산하거나 짐작하지 않고, 내 눈앞에 있는 존재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일. 그것이 내 남은 생의 힘이 되어줄 것이었다.   <책 내용중, p139>

 

 

 2003년 12월 30일 오후 3시.

어머니는 백세 살 생신을 이틀 남겨두고 조용히 떠나셨다. 그리고 몇몇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너무 슬펐고 죽도록 슬펐고 미치도록 슬펐다. 하지만 어머님의 유언은 잊지 않았다. 유골을 서장에 뿌려달라는 어머님의 유언.

 

 어머님의 유언을 실행키 위해 다시 소풍을 시작한다. 이번에도 소풍의 주인공은 아들과 어머니다. 수레에 어머님의 유해를 실은 채 서장자치구 라싸로 두 번째 여정을 떠나는 것이다. 

 하얼빈을 떠나 심양 북경, 석가장, 태원, 서안, 난주, 서녕을 거쳐 라싸에 도착한다. 유골을 서장에 뿌려달라는 어머님과의 약속을 아들은 충실히 지킨 것이다.

  

 

 이 지구상에서 세 번째로 넓은 중국대륙을 도화지 삼아 탑하에서 시작하여 하일번, 장춘, 심양, 진황, 북경, 석가장, 남경, 상해, 항주, 남창, 해남, 광주, 장사, 정주, 청도, 제남, 하얼빈, 심양, 북경, 석가장, 태원, 서안, 난주, 서녕을 거쳐 어머님이 원했던 영원한 종착지인 서장에 이르는 장장 4만km의 그림을 그렸던 아들과 어머니의 소풍은 孝의 정신이 희미해진 이 시대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항상 어머니를 주어로 하는 문장을 만들려했고 어머님이 원하는 것, 어머님이 기뻐하는 것, 어머님이 행복한 것이라면 무엇이든 실행할 수 밖에 없었던 그의 고결한 孝의 정신에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달라진 세상이 정상적인 나를 자꾸만 다른 눈으로 보려고 하는 것만 같았다. 내 행동이 그렇게 대단한 일인가? 우리의 여행이 그렇게 특별한 일인가? 기분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어머니가 기뻐하니 나도 기뻤다. <책 내용중, p75>

라고 고백하는 아들의 모습은 자신이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고 이를 다른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이 틀렸다는 것과 어머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그것이 孝의 본질이라는 점을 동시에 알려주고 있다.

 

 자전거수레의 페달을 밟으며 2년이 넘는 시간동안 40,000Km를 종단했다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저 孝의 수단일 뿐이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을 통해 어머니를 기쁘고 행복하게 하고자 하는 孝의 본질을 목적삼은 아들의 강단과 용기에 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뒤 거울을 내 가슴 앞에 비추어 보았다. 소름돋음을 느꼈다. 달라진 세상에 너무 자연스럽게 녹아있던 내 자신의 모습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내가 무엇을 해야할 지 생각했다. '말투', '설겆이', '집안청소', '효도여행' 등의 다양한 단어들이 내 머릿속에서 일렁였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깨달음은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는 孝의 본질이었다. 왕일민 옹이 보여준 孝에 대한 순수한 마음과 강단이 하나님의 십계명 5번과 융합되어 부모님에 대한 내 자신의 방향성을 정리해주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에 나 자신도 자전거수레 페달을 밟는 심정으로 어머니와 아버지를 수레에 태워 孝의 여행을 떠나보자는 도전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땅의 많은 자식들이여..

孝는 우리의 삶을, 우리의 가정을, 이 국가를, 이 지구를, 이 우주를 하나님이 만드신 본래 목적대로 되돌려 놓을 수 있는 가장 큰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두 그 위대하고 고결한 '孝'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기를 기도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한탄하고 불평한다. 그런 사람들은 자유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기 내면이 무정부 상태에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정말 자유로운 사람들은 자기 내면의 규칙과 법률을 쫓아간다. 그것이 참된 자유다.

내 몸과 정신과 삶이 자유로운 것은 이상이 아닌 현실 안에 목적을 두고 그 목적을 위해 살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우리의 여행은 자유로웠다.

<책 내용중, p167>

 

돌아보면, 인생이란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린 그저 하루살이에 불과하지 않은가. 아무리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에 허망함이 느껴진다고 해도 그런 것에 무게를 두고 괴로워하지 않을 것이다. 하루를 살다 가는 것을 감사히 여기고 하루를 살다 죽는 하루살이처럼 나는 자연의 흐름 안에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흘러갈 것이다. 그렇게 대자유인이 될 것이다.

<책 내용중, p234>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다윗의용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