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 - 21세기를 사는 지혜 인터뷰 특강 시리즈 5
김용철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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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가지 면에서 인간은 동물보다 우월하다. 반면 여러가지 면에서 동물보다 못한 면도 있다. 인간이 유독 동물에 비해 많이 실행하는 부정적 행동 중 하나가 바로 '배신'이다. 인간과 배신은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과분의 관계다. 두 남녀의 소소한 실연에서부터 국가와 사회에서 자행되는 배신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수없이 많은 배신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물론 동물 세계에서도 배신은 이루어진다. 하지만 인간 세계의 그것과는 빈도와 차원이 다르다. 과히 인간사는 배신의 역사이다.

  오늘날처럼 배신에 대해 많이 생각해본 적은 드문 것 같다. 전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의 비자금 문제를 폭로한 지도 어언 몇 달이 지났다. 정부는 국민을 속이면서까지 미국산 쇠고기를 강행 수입하려 했다. 수십 만의 촛불 인파는 수도 서울을 덮었고 대통령과 정부는 움찔했다. 어느 누구도 의심치 않았던 신자유주의 시장 논리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하여 세계 경제에 배신을 때렸다. 금년에 불거진 국가와 사회에서의 다양한 배신의 형태를 바라보면서 국민들의 고개는 갸우뚱거렸고 마음은 불편했다.

  2004년부터 교양, 상상력, 거짓말, 자존심을 주제로 강연회를 주최했던 한겨레출판사에서 금년에는 배신을 주제로 선택했다. 매 해마다 깊은 통찰과 용기있는 지성의 목소리를 쏟아낸 지식인을 강사로 초빙하여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을 잘 조명해왔다. 매년 초에 진행되는 강연회에 나는 단 한 번 참석한 적이 없다. 게으름과 의지 부족이 부끄러울 뿐이다. 하지만 강연을 정리하여 출간된 책은 꼭 만나보고 있다.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책이기 때문이다.

  한겨레출판사의 『배신』은 다양한 코드로 배신의 성질과 의미를 궁구한 강연집이다. 배우 오지혜 씨의 재치있는 사회로 진행된 강연은 인문학을 위시하여 자연과학과 심리학, 사회학에 이르는 다양한 학문 코드로 배신을 천착한다. 사회자 오지혜의 매끄러운 진행은 단연 돋보인다. 청중의 날카로우면서도 유연성을 잃지 않는 수준 높은 질문 또한 인상깊다. 강연자의 성실하고 통찰력있는 답변도 훌륭하다.

  올초 삼성 비자금 사건을 폭로하며 배신(?)의 아이콘으로 등장한 김용철 변호사의 강연이 전면에 배치됐다. 삼성에 대한 자신의 배신과 국가와 사회에 대한 삼성의 배신을 대비시키며 논지를 이어갔다. 정혜신은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배신의 의미를 풀어냈다. 진중권의 날카롭고 기백있는 외침은 여전하다. 과학의 시각으로 배신의 정체성을 파헤친 정재승의 강의도 인상깊다. 정태인의 신자유주의와 한미FTA에 대한 반대 담론은 언제 읽어도 설득력을 지닌다. '21세기 시리즈'의 강연자로 첫 인연을 맺은 조국의 강연도 읽어볼 만하다. 한국 정치와 지식사회의 모순인 '폴리폐셔(polifessor)' 현상의 일그러짐을 법률가의 시각에서 잘 지적했다.

  정혜신이 얘기했듯이 개인의 배신에 대한 이해는 대부분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발생한다. 인간의 행동은 에고이즘(egoism)을 기본적으로 전제한다. 내 행동은 동기부터 이해하고 타인의 행동은 현상을 중심으로 판단한다. 내가 당한 배신은 과대 해석하며, 내가 행한 배신은 무자각한다. 이러한 배신에 대한 몰이해와 역설적 행위는 보다 넓은 의미에서 배신을 천착할 수 있는 지혜를 차단시킨다. 김용철 변호사에 의해 폭로된 삼성 비자금 사건은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솔직히 따져보자. 탈법과 탈세를 일삼으며 거대한 비자금을 조성, 아들에게 거대 산업 자본을 물려주려 했던 국내 최고 기업의 행태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얼마나 큰 죄악인가를. 법률을 공부한 한 남자의 양심있는 고백이 한낱 조폭 의리로 둔갑한 해괴망측한 배신 논리로 재단되어야 하는지를.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을 배신했다면, 삼성은 '국가'와 '법률'과 '국민'과 '상식'을 배신했다. '삼성의 배신, 나의 배신'이라는 주제로 강연의 전면에 선 김용철 변호사의 용기와 기백에 박수를 보낸다.

  배신은 어감면에서 기본적으로 부정적 함의를 지닌다. 하지만 보다 통찰있게 배신의 의미를 궁구할 필요가 있다. 해서는 안 될 배신이 있고, 반드시 해야 할 배신이 있다. 우리는 반드시 해야 할 배신에 대해 용기있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정의와 진리를 위해, 자유와 행복을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배신해야 하며 세계를 변혁해야 한다. 올바른 배신이 우리 사회에서 역동적으로 작동할 때 21세기를 사는 지혜로서 배신의 의미는 더욱 새롭게 재창조될 것이다. 이러한 사유의 시작을 여는 데 이 한 권의 인문학 서적은 자못 긴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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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 핑거
김윤영 지음 / 창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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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작가를 만나는 것은 언제나 흥분이다. 이 흥분은 두 부류의 작가로 가름되며 내게 각기 다른 농밀함을 갖게 한다.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는 유명작가의 그것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그것에 나는 조금 더 경도된다. 유명작가는 이미 많은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적잖은 형용사로 수식된다. 반면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는 부담스러운 형용문구에 비교적 덜 노출된다. 그렇기 때문에 텍스트 외적에서 오는 호도와 선입견에서 자유롭다. 요컨대 편견없는 명징한 시각으로 작가와 텍스트를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신선한 작가와의 첫 만남을 예찬한다.

  더욱이 텍스트 자체가 수준급이라면 첫만남이라는 작은 수고는 곧바로 책읽기의 보람과 희열로 치환된다. 응당 그 작가가 이전에 쏟아냈던 작품들의 제목을 훑어보게 된다. 그리고 읽어야만 하는 또 다른 수고로움이 의무화된다. 1998년 제 1회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한 김윤영과의 만남이 내겐 그랬다.

  김윤영의 최신 소설집 『그린핑거』는 생각지도 못한 만족을 내게 안겨주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창비에서 보내준 이 얇은 단편소설집은 '김윤영'이라는 브랜드가 어떤 것인지를 내게 처음으로 소개한다. 본래 단편을 좋아하지 않는 내게 짧은 서사도 이렇게 쓸 수 있구나, 하는 선입견의 파괴를 선사했다. 정말 잘 쓴 깔끔한 소설집이다.

  총 일곱 개의 단편이 실려있다. 표제작 「그린핑거」와 「전망 좋은 집」은 별도의 독립된 단편이다. 나머지 다섯 편은 '내게 아주 특별한 연인'이라는 테마로 엮어진 연작 연애담들이다. 작가는 잘 다듬어진 일곱 편의 단편을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독특한 사랑과 내적 감수성을 섬세하고 감각적인 필치로 그려냈다.

  표제작 「그린핑거」는 단연 돋보이는 단편이다. 주인공 써니는 '그린 핑거'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정원을 잘 다루는 여인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식물을 다루는 것과 근본적인 자의식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것은 별개의 역량인 듯보인다. 선천적 얼굴 기형으로 태어난 그녀의 콤플렉스는 성공적인 수술 이후에도 사그라들지 않는다. 남편이 기형에 대한 압박감으로 아이 갖는 것을 꺼림을 알게 된 그녀는 남편과 소원해진다. 한 여성의 자기부정이 날카롭게 잘 드러났다.

  연작의 구성으로 이어진 다섯 편의 연애 단편들 또한 모두 읽어볼 만 하다. 각 단편은 하나의 독립된 단편이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앞선 단편의 한 인물이 다음 단편의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 이러한 피카레스크식 구성은 각 단편을 동일한 주제로 엮으면서 동시에 독립성을 잃지 않게 한다. 물론 각 단편들의 완성도 또한 나무랄 데 없이 깔끔하다.

  「블루오션 경제학」은 연애학에 주식과 투자의 개념을 차용했다. 「모네의 정원으로」는 다른 단편보다는 조금 긴 호흡으로 연애에 '그림'과 '경제'의 키워드를 대입했다. 다섯 편의 단편 모두 주인공 화자는 여성이다. 최근에 읽은 비슷한 소재의 일본소설인, 작가의 이름을 거론하기도 민망한 싸구려 연애 이야기와는 수준을 달리한다. 동시대 여성들의 각기 다른 다양한 연애담을 통하여 여성의 내밀한 심리묘사와 자의식 탐구가 돋보이는 소설집이다.

  여성이기에 쓰지 못하는 소설이 있는 반면 여성이기에 가능한 소설이 있다. 『그린핑거』에서 김윤영의 문학적 브랜드는 잘 드러난다. '단편'이라는 서사 장르가 무엇이며,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작가 김윤영은 깔끔하게 입증했다. 본래 나는 단편을 즐겨 읽지 않는다. 단편소설은 대체적으로 서사가 가볍다. 단편이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 또한 내게는 거북하다. 하지만 김윤영의 단편은 매력적이다. 동시대적 감수성을 전면에 배치하지만 칙릿이라는 한국 여류문학의 클리셰에 함몰되지는 않는다. 메시지가 간명하며 글이 매끄럽다. 기술력 또한 탄탄하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반성할 줄 아는 작가란 말을 듣고 싶다고 고백한다. 텍스트에 대한 겸손이 잘 묻어있는 고백이다. 이에 한 권의 소설집으로 그녀의 매력에 경도된 미천한 독자는 그녀에게 한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단편의 벽을 넘어 장편의 바다에 진입해줄 것을 말이다. 장편은 단편과는 다른 세계다. 지금보다 훨씬 긴 호흡으로 그녀의 텍스트를 궁구하고 싶다. 그때야 비로소 나는 김윤영을 100%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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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박준 글.사진 / 넥서스BOOKS / 200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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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콤플렉스가 있다. 내게도 응당 콤플렉스는 적지 않다. 그중 하나가 여행의 문외한이다. 서른의 나이를 넘으면서도 여행의 경험은 일천하다. 이십대의 젊은 시절, 나는 여행에 진중한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 일상을 벗어남으로써 참다운 나를 관찰하는 귀한 작업을 한낱 '노는 것'으로 가치 격하시켰다. 또한 돈과 시간의 여유를 우선 전제하며 여행의 실행을 재단하기도 했다. 여행에 관한 내 몰이해는 이십대의 시절을 졸업했음에도 여권에 스탬프 한 번 찍지 못한 현재상을 만들어놓았다. 아.. 부끄럽도다..

  이러한 내 여행 콤플렉스는 책을 통해 보완하고 있다. 나는 책과 여행의 공통점에 주목한다. 책읽기의 종국은 인간 성찰로 귀결된다. 여행의 깊은 맛은 다양한 인간 탐구에 있다고 한다. 요컨대 책과 여행의 공통점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치인 '인간'에 대한 성찰과 탐구를 기반한다는 점이다. 내가 여행의 결핍을 책의 보완으로 치환시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기에 여행에세이는 내가 즐겨 읽는 분야이다. 잘 다듬어진 한 권의 여행기를 통해 내가 있던 자리를 떠나 내가 있던 자리를 보는 고결한 탐구에 간접적으로 동참케 된다. 소외된 자들을 향한 한비야의 눈물이 내 눈물이 되고, 지역성보다 인간성에 주목하는 오소희의 여행 철학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아나운서라는 명함을 버리고 무작정 떠났던 손미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여행! 믿건대,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으면서도 아무나 할 수 없는 경외스러운 행위리라.

  『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은 2005년에 EBS를 통해 방영된 장기여행자들의 다큐멘터리 <On the Road>를 책으로 출간한 버전이다. 여행 프리랜서 박준은 여행자들의 천국이라 불리우는 태국의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취재했다. 박준 자신의 여행기라기보다 여행지에서의 시공간을 함께 한 다른 이들의 목소리다. 지구 곳곳에서 온 다양한 인간상들의 모습이 인터뷰 속에 잘 배어 있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을 취재했다. 인종, 지역, 국적, 성별, 연령이 각기 다른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각각의 문화와 습속, 철학과 여행관을 풍성히 들려준다. 쉰이 넘어 배낭 메고 떠난 부부가 있는가 하면, 태국에서 배타적인 유대인이면서 장기적으로 체류하는 기백있는 여자도 있다. 이메일 보내는 방법도 모를 정도로 탈속적인 스님이 있는가 하면, 학교를 자퇴하고 떠날 만큼 여행을 사랑하는 소녀가 있다. 

  저자의 취재는 '다양성'의 가치가 지구를 얼마나 풍성하게 하는지 여실히 드러낸다. 남녀와 노소를, 오대양과 육대주를 구분치 않는 저자의 취재 목적이 십분 이해된다. 60억의 인류는 각기 하나의 '원본'이다. 사본은 없다. 아무리 문화와 인종, 지역과 종교로 가름되었다곤 하지만 한 사람의 본질 속에 내재된 각각의 독특한 신의 성품을 외면할 수는 없다. 어쩌면 저자는 여행을 통해, 곧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각기 다른 원본의 가치를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리라.

  이 책이 조명하는 사람들은 전부 장기여행자들이다. 여름방학 동안 한두 달 유럽여행을 하는 건 이 책에 소개된 여행자들 앞에선 굼벵이 앞에서 주름잡는 격이다. 최소 1~2년은 기본이다. 계획없이 떠나왔으면서도 몇 년씩 머무를 수밖에 없는 그들네의 일탈성이 녹록지 않다. 그들은 왜 떠났을까. 왜 그토록 오랫동안 일탈하고 있는 걸까. 그런 용기와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일상을 벗어던지고 '무조건' 떠나는 그들의 기백이 경외스럽다. 나는 절대 그러지 못하리라.

  책의 말미는 저자의 여행 예찬으로 갈무리된다. 저자는 말한다. 여행은 참을 수 없는 유혹이지만 중독은 아니라는 것을. 중독은 겸손을 배운다는 여행의 의미에 어긋난다는 것을. 그렇다. 여행은 인생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을 통해 인생의 집약을 조망하고, 자기 자신을 입체화하여 보다 객관적으로 천착하며, 그 가운데 겸손을 함양한다. 종내 자아를 웅숭깊게 궁구하는 힘이 여행의 본질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이리라.

  추석이 지났다. 엄연한 가을이지만 날씨는 덥기만 하다. 하늘은 청명하다. 어딘가로 떠나기 좋은 환경이다. 창 밖의 일렁이는 나뭇잎은 내게 나오라고 유혹한다. 차에 가득한 기름도 내 일탈을 부채질 한다. 책장을 덮으며 나는 '또' 다짐한다. 이번 주말에는 반드시 어디론가 일탈하리라는 것을. 그리고 언젠간 그 지독한 콤플렉스의 고리를 끊어버릴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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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5
이권우 지음 / 그린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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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읽기를 사랑한다. 찬탄하며 경외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타자의 지혜를 내 가슴속에 품는 것이며, 남의 머리를 차용하여 내 사유를 비트는 일이다. 러셀이 고백했듯이 사랑의 갈망, 지식의 탐구, 인류의 고통에 대한 연민은 모두 독서를 통해 해소된다. 믿건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새로운 우주와의 조우이자, 내 자신이 그 우주 속으로 귀속된다는 것의 다른 이름이리라.

  나는 책읽기의 가장 우선적인 목적으로 인간에 대한 탐구를 꼽는다. 책을 통해 작가를 만나고, 작가가 만들어낸 가공인을 만나며, 그것을 거울 삼아 내 자신을 만난다. 모든 책은, 특히 문학은 궁극적으로 인간에 대한 성찰로 귀결된다. 인간의 존재성은 그 어떤 지식과 정보보다 우선한다. 내가 지적 탐구로서의 책읽기를 거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인간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이러한 인문학적 책읽기의 웅숭깊은 가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하겠다.

  인류사의 수많은 지성들 또한 책읽기를 통해 지적 화두를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 고민들이 하나의 결과물로 합치된 것이 바로 고전이다. 고전에는 시대와 인간에 대한 사색과 열정이 담겨있다. 또한 당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피를 토하는 지성의 고민들이 돋을새김되어 있다. 고전을 읽으며 우리는 맞닥트린 현실적 난제를 풀이하기 위한 해결책을 모색한다. 요컨대 책읽기는 시대와 문화와 공간을 뛰어넘는 최고도의 지적 소통이자 희망의 통로이다.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는 책읽기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인문서다. 왜 책을 읽어야 하고, 또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명료하게 역설한다. 저자 이권우 씨는 스스로 도서평론가라 칭할 만큼 책에 대한 사랑이 녹록지 않다. 책벌레의 한 사람으로서 죽어도 읽지 않는 우리 시대의 고민을 공론화하면서 책읽기의 필요성과 방법에 대해 논지한다.

  우선 저자는 왜 읽어야 하는지를 언급한다. 21세기는 영상문화의 범람으로 문자문화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대중들은 읽는 것보다는 보는 것, 쓰는 것보다는 느끼는 것에 열광한다. 그렇기에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높은 의식 수준은 점점 요원해져만 간다. 저자는 이러한 문화적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책읽기는 더욱 긴요하며 우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책읽기의 논거들은 다양하고 공감적이다. 이를 정리하면 이렇다. 지식과 교양을 쌓는 데 도움이 되고 참된 인간이 되는 길을 열어보이며 정서적 안정을 얻고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우며, 시간 죽이기에 그만인 데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 는 것이다. 책읽기에 대한 내재적 동기뿐만 아니라 외재적인 면을 동시에 담고 있는 훌륭한 풀이가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해 책읽기는 인간의 외적 성장은 물론 내적인 성장까지 담보하는 훌륭한 '행위'인 것이다.

  다음으로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얘기한다. 이 파트가 자못 실용적이며 고개가 주억거리는데, 정리하면 세 가지다. 천천히 읽어야 하고, 깊고 겹쳐서 읽어야 하며, 읽은 후 토론하고 글쓰기로 정리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의 논지는 내 책읽기 철학과 완전히 합치된다. 먼저 책읽기의 속도를 보자. 독서는 다독일 때 가장 위험하다. 다독은 책읽기의 빠른 속도를 전제하기 마련인데, 이는 책을 '읽는' 것이 아닌 '보는' 차원으로 하향화시킨다. 가슴으로 책을 읽는 사람은 결코 빠른 속도가 나올 수 없다. 무조건 느려야 한다. 천천히, 쉼표 하나 놓치지 않고 진중히 읽을 때만이 비판적 안목이 고양되고, 활자를 거울 삼아 자아를 덧대어 삶의 의미를 질문할 수 있다.

  깊이 읽고 겹쳐 읽는 것은 지식과 교양을 폭넓고 깊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깊게 읽는다는 것은 한 분야의 책을 두루 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비슷한 소재와 주제를 담고 있는 분야의 책을 여러권 동시에 읽게 되면 편견과 선입견이 사라진 균형있는 독서가 가능하다. 너무 한 쪽에 치우치거나 일면적 지식의 함양만으로는 건강한 독서가 가능할 리 만무하다. 주제와 분야에 대한 다양성을 넓히는 일은 균형있고 건강한 독서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

  읽은 후 토론하고 글쓰는 것은 가장 긴요한 독서법이다. 동일한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마다 느낌과 호오는 천양지차다. 책은 지은이를 떠난 이후에는 철저히 독자의 것이 된다. 구입한 것이든 도서관에서 대여한 것이든 한 권의 책에 대한 주인은 응당 읽고 있는 사람이다. 활자에 대한 반응에는 정답이 없다. 내가 다르고 너가 다르다. 그렇기에 서로의 다양성을 확인하고 존중하며 토론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독서는 결국 독자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다.

  나는 독후감 쓰는 습관을 독서 완성의 고갱이라고 단언한다. 책을 읽은 후 내용을 요약하고 느낌을 갈무리함에 있어 글쓰기만큼 좋은 게 없다. 본래 언어학적인 측면에서 '쓰기'는 '읽기'의 결과이자 완성이다. 책읽기를 통해 얻은 지식과 정보의 편린들은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은채 일렁인다. 이를 제자리에 잡아주고 조립하며 정리하는 일이 필요하다. 독후감은 책읽기를 갈무리하는 데 가장 적확한 출력 방식이다. 서평쓰기의 쾌감은 지속적으로 '쓰는' 자만이 안다. 그것은 책읽기를 완성하는 가장 조화된 인과적 활동이며, 더 나아가 문자문화의 가치를 개인의 역량 속에서 발현시키는 위대한 작업이다.

  21세기를 '도상적 전회(iconic turn)'의 시대라고 한다. 사회의 주요한 소통매체가 문자에서 영상으로 바뀐다는 의미다. 하지만 영상과 문자는 매체의 성격이 전혀 다르다. 영상으로 문자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의 사유와 의식 자체가 언어로 구조화한 이상, 영상문화가 아무리 발달해도 그 바탕에서 문자 코드는 여전히 작동할 수밖에 없다. 문자문화의 흔적은 인류의 종말까지 인류사에 끊김없이 아로새겨질 것이다.

  문화와 사회가 아무리 바뀐다 해도 책읽기의 '고통'은 계속되어야 한다. 마르킨 루터는 말했다. 모든 위대한 책은 그 자체가 하나의 행동이며, 모든 위대한 행동은 그 자체가 한 권의 책이라는 것을. 책을 읽을 때 희망이 있다. 책읽기의 수고를 통해 세계는 변혁된다. 작게는 개인에서부터 크게는 사회와 국가에 이르기까지 책읽기의 의미와 가치는 끊임없이 장려되고 고양되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는 매우 요긴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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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 다 괜찮다 - 공지영이 당신에게 보내는 위로와 응원
공지영.지승호 지음 / 알마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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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단에서 공지영 만큼 아이러니한 위치에 서 있는 작가는 드물다. 출간하는 작품마다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기염을 토해내지만, 동시에 가장 많은 비판에 시달리고 있는 작가이기 때문이다. 공지영처럼 많은 사랑과 강렬한 비난을 동시에 받는 소설가는 찾기 힘들다. 근데 나는 이러한 아이러니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다. 우리 좀 더 솔직해져 보자. 소설가 공지영을 비난하는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혹 그녀의 화려한 이혼 경력이나, 자유분방하고 할 말을 하는 '쿨'한 성격, 쏟아내는 작품마다 얻는 상업적 성공 등이 공격의 목적이었던 것은 아닐까. 마냥 하릴없이 공지영을 비판하는 이들이여. 가슴에 손을 얹고 솔직하게 자문자답하자. 작가 공지영을 향해 날렸던 칼날의 본질이 무엇이었는지를. 그리고 다시 한 번 진중히 읽어보자. 공지영의 문장만을.

  문학적인 차원에서 공지영을 비난하는 이들이 가장 많이 내세우는 논거는 '가벼움'이다. 저울에 달면 무게가 많이 나가지 않을 것이라며 빈정거린다. 통속적이며, 혹은 감성적이고, 혹은 대중적이라며 이죽거린다. 비단 평단이 아니더라도 공지영 문학에 대한 냉소는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목도할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있는 게 있다. 가볍다고 공지영의 문장을 재단하는 이들이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을 품에 끼고 다니고, 요시모토 바나나에 열광하며,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로 밤을 지새운다는 사실이다. 그들이 말하는 가벼움과 무거움의 의미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소설가의 진보를 지지한다. 데뷔작의 화려함 이후 이를 증명치 못하는 허무한 연장 가운데 문단에서 사라지는 작가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렇기에 매작품마다 문학적 진화를 이룬 작가에게 독자는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있다. 자신의 최신작이 곧 최고의 작품이 되는 공식을 만들어내는 작가에게 나 또한 결코 녹록지 않은 갈채를 보내왔다. 그리고 이러한 방정식에 작가 공지영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사실 그렇다. 그녀가 7년여의 공백을 마감하고 선보인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필두로, 자전소설 『즐거운 나의 집』, 산문집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는 모두 높은 진보를 보여준 작품들이다. 문장의 무게와 사유의 진중성 , 독자와의 호흡과 흡입력, 고민의 차원과 작가로서의 기백 등 물이 오를대로 오른 일류작가의 면모를 가감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제 더이상 후일담과 페미니즘으로 함몰된 공주병 환자 공지영은 그 어디에도 존재치 않는다. 한국에서 가장 대중적이며 공감있는 소설을 쏟아내는 작가 공지영만이 있을 뿐이다.

  『괜찮다, 다 괜찮다』는 작가 공지영의 최신 텍스트다. 하지만 공지영이 창조한 활자가 아닌 공지영 그 자체를 조명하고 궁구한 텍스트라는 점에서 그녀의 작품 연대기에서 결락된다. 인터뷰어 지승호는 소설가 공지영의 단면을 구체적이고 생동감있게 추출했다. 그녀의 삶과 가족, 고민과 철학, 문학과 인간에 대한 사유가 잘 구체화되었다.

  사실 소설가를 객관적이고 입체적으로 만나기는 쉽지 않다. 대개 작품으로 만나기 마련인데, 이는 어디까지나 작가가 창조한 가공의 세계일 뿐이다. 작가에 대한 보다 직접적이며 투명한 천착은 가공의 텍스트가 아닌 진솔한 목소리에서 가능하다. 이런 차원에서 우리 시대에 가장 사랑받는 작가를 인터뷰로 직접 접촉하는 작업은 유의미하다. 공지영은 지승호와의
대담에서 자신이 쏟아낼 수 있는 최고도의 진솔한 내면을 고백하고 있다.

  지승호는 자신의 인터뷰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한다. 그는 이 책을 『즐거운 나의 집』,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에 이어 '위로 3부작'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피력한다. 첫 번째가 소설, 두 번째가 편지 형식이었다면 이 책은 공지영 자신의 목소리를 독자에게 직접 들려주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미 공지영의 두 권의 전작은 독자에게 따뜻한 공감과 훈훈한 위로를 전달했다. 이런 측면에서 이 한권의 인터뷰집을 '위로' 코드의 연장으로 놓겠다는 지승호의 의지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책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작가가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 어떤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지승호의 질문에 대한 공지영의 답이다. 공지영은 작가의 지속된 발전을 위해 '고통'과 '고독'과 '독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응당 고개가 주억거리는 고백이다. 인류사의 수많은 예술가의 태동에는 고통의 연단 과정이 있었고, 고독을 통한 사색의 담금질이 있었으며, 다른 사람의 머리로 생각하는 훈련이 항시 존재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가장 사랑받는 작가라는 그녀의 존재성은 이러한 세 가지 키워드가 내면 속에 용해되어 작용한 산물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외에도 공지영이 고통스러워했고, 환호했으며, 숙고했던 다양한 삶의 편린들이 소개된다. 그녀가 여태까지 만들어낸 텍스트에서는 확인할 수 없었던 수많은 경험과 일화들이 고백된다. 책의 구성 또한 흥미롭다. 그녀의 작품 연대기를 시대순이 아닌 의미순으로 배치하면서 이를 주제화하여 인터뷰를 실행한다. 그리고 마지막 두 장에서는 공지영 개인의 삶과 문학에 대한 구체적인 철학과 태도를 엿보기도 한다. 요컨대 이 책은 작가가 아닌 '인간' 공지영의  단면을 해부한 텍스트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승호의 인터뷰 방식에 마냥 박수를 쳐주기에는 아쉬움이 많다. 긍정코드와 부정코드가 함께 공존하는 소설가를 인터뷰하면서 너무 전자의 코드로만 일관했다. 공지영에 대한 지승호의 부정코드는 그녀의 일갈에 더 나아가지 못하고 소멸되는 형국이다. 인터뷰 이후 공지영과의 협의에서 편집되었을 가능성을 감안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균형감각이 부족하다는 면에서 아쉽다. 인터뷰의 핵심이 객관성과 입체성이라는 점을 주지한다면 이러한 지승호의 접근방식은 숙제로 남는다.

  우리시대 가장 사랑받는 작가 공지영의 과거와 현재, 논리와 이성, 삶과 사랑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괜찮다, 다 괜찮다』는 나름 유의미한 책이다. 소위 '공지영빠'에게 이 한 권의 인터뷰집은 소중한 텍스트가 될 것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한국 문단에서 공지영 만큼 기사거리를 몰고 다니는 아이콘도 흔치 않다. 공지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중 공감도'라는 키워드를 반드시 전제해야 한다. 그녀만큼 대중과 친밀하고, 대중에게 공감을 주며, 대중에게 위로를 보내는 소설가는 적어도 국내에서는 발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문학에서 '대중'의 의미가 마냥 나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작가 공지영의 긍정코드는 충분히 수긍되며 인정된다.

더 많이 사랑할까봐 두려워하지 말아라. 믿으려면 진심으로, 그러나 천천히 믿어라. 다만 그를 사랑하는 일이, 너를 사랑하는 일이 되어야 하고, 너의 성장의 방향과 일치해야 하고, 너의 일의 윤활유가 되어야 한다. 만일 그를 사랑하는 일이 너를 사랑하는 일을 방해하고 너의 성장을 해치고 너의 일을 막는다면 그건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네가 그의 노예로 들어가고 싶다는 선언을 하는 것이니까 말이야.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에서

  이런 문장을 만들어내는 그녀가 가벼운 소설가라 한다면 나는 한껏 그 가벼움을 즐기리라. 그리고 앞으로 계속해서 쏟아질 그녀의 활자로부터 위로와 응원을 누리리라.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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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0 19: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윗 2008-09-10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 책향기님, 정확한 지적이십니다. 어휘를 잘못 사용한 소인의 민망함이 하늘을 찌릅니다. 기분이 나쁠 리 만무하구요. 출장중에 올린 글이라 퇴고가 형편이 없습니다. 잘못된 것을 올바르게 지적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 오탈자 자주 검사해주시고, 그 외에도 미진한 부분이 있으면 가르쳐주십시오. 고맙습니다, 책향기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