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 인문학 인생역전 프로젝트 5
이권우 지음 / 그린비 / 200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읽기를 사랑한다. 찬탄하며 경외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타자의 지혜를 내 가슴속에 품는 것이며, 남의 머리를 차용하여 내 사유를 비트는 일이다. 러셀이 고백했듯이 사랑의 갈망, 지식의 탐구, 인류의 고통에 대한 연민은 모두 독서를 통해 해소된다. 믿건대, 책을 읽는다는 것은 새로운 우주와의 조우이자, 내 자신이 그 우주 속으로 귀속된다는 것의 다른 이름이리라.

  나는 책읽기의 가장 우선적인 목적으로 인간에 대한 탐구를 꼽는다. 책을 통해 작가를 만나고, 작가가 만들어낸 가공인을 만나며, 그것을 거울 삼아 내 자신을 만난다. 모든 책은, 특히 문학은 궁극적으로 인간에 대한 성찰로 귀결된다. 인간의 존재성은 그 어떤 지식과 정보보다 우선한다. 내가 지적 탐구로서의 책읽기를 거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 인간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 이러한 인문학적 책읽기의 웅숭깊은 가치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하겠다.

  인류사의 수많은 지성들 또한 책읽기를 통해 지적 화두를 치열하게 고민했다. 그 고민들이 하나의 결과물로 합치된 것이 바로 고전이다. 고전에는 시대와 인간에 대한 사색과 열정이 담겨있다. 또한 당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피를 토하는 지성의 고민들이 돋을새김되어 있다. 고전을 읽으며 우리는 맞닥트린 현실적 난제를 풀이하기 위한 해결책을 모색한다. 요컨대 책읽기는 시대와 문화와 공간을 뛰어넘는 최고도의 지적 소통이자 희망의 통로이다.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는 책읽기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인문서다. 왜 책을 읽어야 하고, 또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명료하게 역설한다. 저자 이권우 씨는 스스로 도서평론가라 칭할 만큼 책에 대한 사랑이 녹록지 않다. 책벌레의 한 사람으로서 죽어도 읽지 않는 우리 시대의 고민을 공론화하면서 책읽기의 필요성과 방법에 대해 논지한다.

  우선 저자는 왜 읽어야 하는지를 언급한다. 21세기는 영상문화의 범람으로 문자문화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대중들은 읽는 것보다는 보는 것, 쓰는 것보다는 느끼는 것에 열광한다. 그렇기에 책읽기와 글쓰기에 대한 높은 의식 수준은 점점 요원해져만 간다. 저자는 이러한 문화적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책읽기는 더욱 긴요하며 우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책읽기의 논거들은 다양하고 공감적이다. 이를 정리하면 이렇다. 지식과 교양을 쌓는 데 도움이 되고 참된 인간이 되는 길을 열어보이며 정서적 안정을 얻고 창의력과 상상력을 키우며, 시간 죽이기에 그만인 데다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게 된다, 는 것이다. 책읽기에 대한 내재적 동기뿐만 아니라 외재적인 면을 동시에 담고 있는 훌륭한 풀이가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해 책읽기는 인간의 외적 성장은 물론 내적인 성장까지 담보하는 훌륭한 '행위'인 것이다.

  다음으로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얘기한다. 이 파트가 자못 실용적이며 고개가 주억거리는데, 정리하면 세 가지다. 천천히 읽어야 하고, 깊고 겹쳐서 읽어야 하며, 읽은 후 토론하고 글쓰기로 정리하라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의 논지는 내 책읽기 철학과 완전히 합치된다. 먼저 책읽기의 속도를 보자. 독서는 다독일 때 가장 위험하다. 다독은 책읽기의 빠른 속도를 전제하기 마련인데, 이는 책을 '읽는' 것이 아닌 '보는' 차원으로 하향화시킨다. 가슴으로 책을 읽는 사람은 결코 빠른 속도가 나올 수 없다. 무조건 느려야 한다. 천천히, 쉼표 하나 놓치지 않고 진중히 읽을 때만이 비판적 안목이 고양되고, 활자를 거울 삼아 자아를 덧대어 삶의 의미를 질문할 수 있다.

  깊이 읽고 겹쳐 읽는 것은 지식과 교양을 폭넓고 깊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깊게 읽는다는 것은 한 분야의 책을 두루 읽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비슷한 소재와 주제를 담고 있는 분야의 책을 여러권 동시에 읽게 되면 편견과 선입견이 사라진 균형있는 독서가 가능하다. 너무 한 쪽에 치우치거나 일면적 지식의 함양만으로는 건강한 독서가 가능할 리 만무하다. 주제와 분야에 대한 다양성을 넓히는 일은 균형있고 건강한 독서를 위해서 꼭 필요하다.

  읽은 후 토론하고 글쓰는 것은 가장 긴요한 독서법이다. 동일한 책을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마다 느낌과 호오는 천양지차다. 책은 지은이를 떠난 이후에는 철저히 독자의 것이 된다. 구입한 것이든 도서관에서 대여한 것이든 한 권의 책에 대한 주인은 응당 읽고 있는 사람이다. 활자에 대한 반응에는 정답이 없다. 내가 다르고 너가 다르다. 그렇기에 서로의 다양성을 확인하고 존중하며 토론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독서는 결국 독자에 의해 완성되는 것이다.

  나는 독후감 쓰는 습관을 독서 완성의 고갱이라고 단언한다. 책을 읽은 후 내용을 요약하고 느낌을 갈무리함에 있어 글쓰기만큼 좋은 게 없다. 본래 언어학적인 측면에서 '쓰기'는 '읽기'의 결과이자 완성이다. 책읽기를 통해 얻은 지식과 정보의 편린들은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은채 일렁인다. 이를 제자리에 잡아주고 조립하며 정리하는 일이 필요하다. 독후감은 책읽기를 갈무리하는 데 가장 적확한 출력 방식이다. 서평쓰기의 쾌감은 지속적으로 '쓰는' 자만이 안다. 그것은 책읽기를 완성하는 가장 조화된 인과적 활동이며, 더 나아가 문자문화의 가치를 개인의 역량 속에서 발현시키는 위대한 작업이다.

  21세기를 '도상적 전회(iconic turn)'의 시대라고 한다. 사회의 주요한 소통매체가 문자에서 영상으로 바뀐다는 의미다. 하지만 영상과 문자는 매체의 성격이 전혀 다르다. 영상으로 문자를 완전히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인간의 사유와 의식 자체가 언어로 구조화한 이상, 영상문화가 아무리 발달해도 그 바탕에서 문자 코드는 여전히 작동할 수밖에 없다. 문자문화의 흔적은 인류의 종말까지 인류사에 끊김없이 아로새겨질 것이다.

  문화와 사회가 아무리 바뀐다 해도 책읽기의 '고통'은 계속되어야 한다. 마르킨 루터는 말했다. 모든 위대한 책은 그 자체가 하나의 행동이며, 모든 위대한 행동은 그 자체가 한 권의 책이라는 것을. 책을 읽을 때 희망이 있다. 책읽기의 수고를 통해 세계는 변혁된다. 작게는 개인에서부터 크게는 사회와 국가에 이르기까지 책읽기의 의미와 가치는 끊임없이 장려되고 고양되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책읽기의 달인, 호모 부커스』는 매우 요긴한 책이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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