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
박준 글.사진 / 넥서스BOOKS / 2006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에게는 누구에게나 콤플렉스가 있다. 내게도 응당 콤플렉스는 적지 않다. 그중 하나가 여행의 문외한이다. 서른의 나이를 넘으면서도 여행의 경험은 일천하다. 이십대의 젊은 시절, 나는 여행에 진중한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 일상을 벗어남으로써 참다운 나를 관찰하는 귀한 작업을 한낱 '노는 것'으로 가치 격하시켰다. 또한 돈과 시간의 여유를 우선 전제하며 여행의 실행을 재단하기도 했다. 여행에 관한 내 몰이해는 이십대의 시절을 졸업했음에도 여권에 스탬프 한 번 찍지 못한 현재상을 만들어놓았다. 아.. 부끄럽도다..

  이러한 내 여행 콤플렉스는 책을 통해 보완하고 있다. 나는 책과 여행의 공통점에 주목한다. 책읽기의 종국은 인간 성찰로 귀결된다. 여행의 깊은 맛은 다양한 인간 탐구에 있다고 한다. 요컨대 책과 여행의 공통점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존재가치인 '인간'에 대한 성찰과 탐구를 기반한다는 점이다. 내가 여행의 결핍을 책의 보완으로 치환시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기에 여행에세이는 내가 즐겨 읽는 분야이다. 잘 다듬어진 한 권의 여행기를 통해 내가 있던 자리를 떠나 내가 있던 자리를 보는 고결한 탐구에 간접적으로 동참케 된다. 소외된 자들을 향한 한비야의 눈물이 내 눈물이 되고, 지역성보다 인간성에 주목하는 오소희의 여행 철학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아나운서라는 명함을 버리고 무작정 떠났던 손미나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여행! 믿건대,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으면서도 아무나 할 수 없는 경외스러운 행위리라.

  『On the Road -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은 2005년에 EBS를 통해 방영된 장기여행자들의 다큐멘터리 <On the Road>를 책으로 출간한 버전이다. 여행 프리랜서 박준은 여행자들의 천국이라 불리우는 태국의 카오산 로드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취재했다. 박준 자신의 여행기라기보다 여행지에서의 시공간을 함께 한 다른 이들의 목소리다. 지구 곳곳에서 온 다양한 인간상들의 모습이 인터뷰 속에 잘 배어 있다.

  저자는 많은 사람들을 취재했다. 인종, 지역, 국적, 성별, 연령이 각기 다른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각각의 문화와 습속, 철학과 여행관을 풍성히 들려준다. 쉰이 넘어 배낭 메고 떠난 부부가 있는가 하면, 태국에서 배타적인 유대인이면서 장기적으로 체류하는 기백있는 여자도 있다. 이메일 보내는 방법도 모를 정도로 탈속적인 스님이 있는가 하면, 학교를 자퇴하고 떠날 만큼 여행을 사랑하는 소녀가 있다. 

  저자의 취재는 '다양성'의 가치가 지구를 얼마나 풍성하게 하는지 여실히 드러낸다. 남녀와 노소를, 오대양과 육대주를 구분치 않는 저자의 취재 목적이 십분 이해된다. 60억의 인류는 각기 하나의 '원본'이다. 사본은 없다. 아무리 문화와 인종, 지역과 종교로 가름되었다곤 하지만 한 사람의 본질 속에 내재된 각각의 독특한 신의 성품을 외면할 수는 없다. 어쩌면 저자는 여행을 통해, 곧 수많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각기 다른 원본의 가치를 확인하고자 했던 것이리라.

  이 책이 조명하는 사람들은 전부 장기여행자들이다. 여름방학 동안 한두 달 유럽여행을 하는 건 이 책에 소개된 여행자들 앞에선 굼벵이 앞에서 주름잡는 격이다. 최소 1~2년은 기본이다. 계획없이 떠나왔으면서도 몇 년씩 머무를 수밖에 없는 그들네의 일탈성이 녹록지 않다. 그들은 왜 떠났을까. 왜 그토록 오랫동안 일탈하고 있는 걸까. 그런 용기와 힘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일상을 벗어던지고 '무조건' 떠나는 그들의 기백이 경외스럽다. 나는 절대 그러지 못하리라.

  책의 말미는 저자의 여행 예찬으로 갈무리된다. 저자는 말한다. 여행은 참을 수 없는 유혹이지만 중독은 아니라는 것을. 중독은 겸손을 배운다는 여행의 의미에 어긋난다는 것을. 그렇다. 여행은 인생의 다른 이름이다. 여행을 통해 인생의 집약을 조망하고, 자기 자신을 입체화하여 보다 객관적으로 천착하며, 그 가운데 겸손을 함양한다. 종내 자아를 웅숭깊게 궁구하는 힘이 여행의 본질 속에 숨겨져 있는 것이리라.

  추석이 지났다. 엄연한 가을이지만 날씨는 덥기만 하다. 하늘은 청명하다. 어딘가로 떠나기 좋은 환경이다. 창 밖의 일렁이는 나뭇잎은 내게 나오라고 유혹한다. 차에 가득한 기름도 내 일탈을 부채질 한다. 책장을 덮으며 나는 '또' 다짐한다. 이번 주말에는 반드시 어디론가 일탈하리라는 것을. 그리고 언젠간 그 지독한 콤플렉스의 고리를 끊어버릴 것임을.

 

Thanks to 수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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