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신 - 21세기를 사는 지혜 인터뷰 특강 시리즈 5
김용철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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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가지 면에서 인간은 동물보다 우월하다. 반면 여러가지 면에서 동물보다 못한 면도 있다. 인간이 유독 동물에 비해 많이 실행하는 부정적 행동 중 하나가 바로 '배신'이다. 인간과 배신은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과분의 관계다. 두 남녀의 소소한 실연에서부터 국가와 사회에서 자행되는 배신에 이르기까지 인류는 수없이 많은 배신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물론 동물 세계에서도 배신은 이루어진다. 하지만 인간 세계의 그것과는 빈도와 차원이 다르다. 과히 인간사는 배신의 역사이다.

  오늘날처럼 배신에 대해 많이 생각해본 적은 드문 것 같다. 전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의 비자금 문제를 폭로한 지도 어언 몇 달이 지났다. 정부는 국민을 속이면서까지 미국산 쇠고기를 강행 수입하려 했다. 수십 만의 촛불 인파는 수도 서울을 덮었고 대통령과 정부는 움찔했다. 어느 누구도 의심치 않았던 신자유주의 시장 논리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인하여 세계 경제에 배신을 때렸다. 금년에 불거진 국가와 사회에서의 다양한 배신의 형태를 바라보면서 국민들의 고개는 갸우뚱거렸고 마음은 불편했다.

  2004년부터 교양, 상상력, 거짓말, 자존심을 주제로 강연회를 주최했던 한겨레출판사에서 금년에는 배신을 주제로 선택했다. 매 해마다 깊은 통찰과 용기있는 지성의 목소리를 쏟아낸 지식인을 강사로 초빙하여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단면을 잘 조명해왔다. 매년 초에 진행되는 강연회에 나는 단 한 번 참석한 적이 없다. 게으름과 의지 부족이 부끄러울 뿐이다. 하지만 강연을 정리하여 출간된 책은 꼭 만나보고 있다.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책이기 때문이다.

  한겨레출판사의 『배신』은 다양한 코드로 배신의 성질과 의미를 궁구한 강연집이다. 배우 오지혜 씨의 재치있는 사회로 진행된 강연은 인문학을 위시하여 자연과학과 심리학, 사회학에 이르는 다양한 학문 코드로 배신을 천착한다. 사회자 오지혜의 매끄러운 진행은 단연 돋보인다. 청중의 날카로우면서도 유연성을 잃지 않는 수준 높은 질문 또한 인상깊다. 강연자의 성실하고 통찰력있는 답변도 훌륭하다.

  올초 삼성 비자금 사건을 폭로하며 배신(?)의 아이콘으로 등장한 김용철 변호사의 강연이 전면에 배치됐다. 삼성에 대한 자신의 배신과 국가와 사회에 대한 삼성의 배신을 대비시키며 논지를 이어갔다. 정혜신은 정신분석학적 관점에서 배신의 의미를 풀어냈다. 진중권의 날카롭고 기백있는 외침은 여전하다. 과학의 시각으로 배신의 정체성을 파헤친 정재승의 강의도 인상깊다. 정태인의 신자유주의와 한미FTA에 대한 반대 담론은 언제 읽어도 설득력을 지닌다. '21세기 시리즈'의 강연자로 첫 인연을 맺은 조국의 강연도 읽어볼 만하다. 한국 정치와 지식사회의 모순인 '폴리폐셔(polifessor)' 현상의 일그러짐을 법률가의 시각에서 잘 지적했다.

  정혜신이 얘기했듯이 개인의 배신에 대한 이해는 대부분 상대주의적 관점에서 발생한다. 인간의 행동은 에고이즘(egoism)을 기본적으로 전제한다. 내 행동은 동기부터 이해하고 타인의 행동은 현상을 중심으로 판단한다. 내가 당한 배신은 과대 해석하며, 내가 행한 배신은 무자각한다. 이러한 배신에 대한 몰이해와 역설적 행위는 보다 넓은 의미에서 배신을 천착할 수 있는 지혜를 차단시킨다. 김용철 변호사에 의해 폭로된 삼성 비자금 사건은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솔직히 따져보자. 탈법과 탈세를 일삼으며 거대한 비자금을 조성, 아들에게 거대 산업 자본을 물려주려 했던 국내 최고 기업의 행태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얼마나 큰 죄악인가를. 법률을 공부한 한 남자의 양심있는 고백이 한낱 조폭 의리로 둔갑한 해괴망측한 배신 논리로 재단되어야 하는지를. 김용철 변호사가 삼성을 배신했다면, 삼성은 '국가'와 '법률'과 '국민'과 '상식'을 배신했다. '삼성의 배신, 나의 배신'이라는 주제로 강연의 전면에 선 김용철 변호사의 용기와 기백에 박수를 보낸다.

  배신은 어감면에서 기본적으로 부정적 함의를 지닌다. 하지만 보다 통찰있게 배신의 의미를 궁구할 필요가 있다. 해서는 안 될 배신이 있고, 반드시 해야 할 배신이 있다. 우리는 반드시 해야 할 배신에 대해 용기있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 정의와 진리를 위해, 자유와 행복을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배신해야 하며 세계를 변혁해야 한다. 올바른 배신이 우리 사회에서 역동적으로 작동할 때 21세기를 사는 지혜로서 배신의 의미는 더욱 새롭게 재창조될 것이다. 이러한 사유의 시작을 여는 데 이 한 권의 인문학 서적은 자못 긴요하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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