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핑거
김윤영 지음 / 창비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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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운 작가를 만나는 것은 언제나 흥분이다. 이 흥분은 두 부류의 작가로 가름되며 내게 각기 다른 농밀함을 갖게 한다.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는 유명작가의 그것보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그것에 나는 조금 더 경도된다. 유명작가는 이미 많은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적잖은 형용사로 수식된다. 반면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는 부담스러운 형용문구에 비교적 덜 노출된다. 그렇기 때문에 텍스트 외적에서 오는 호도와 선입견에서 자유롭다. 요컨대 편견없는 명징한 시각으로 작가와 텍스트를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나는 신선한 작가와의 첫 만남을 예찬한다.

  더욱이 텍스트 자체가 수준급이라면 첫만남이라는 작은 수고는 곧바로 책읽기의 보람과 희열로 치환된다. 응당 그 작가가 이전에 쏟아냈던 작품들의 제목을 훑어보게 된다. 그리고 읽어야만 하는 또 다른 수고로움이 의무화된다. 1998년 제 1회 창비신인소설상으로 등단한 김윤영과의 만남이 내겐 그랬다.

  김윤영의 최신 소설집 『그린핑거』는 생각지도 못한 만족을 내게 안겨주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창비에서 보내준 이 얇은 단편소설집은 '김윤영'이라는 브랜드가 어떤 것인지를 내게 처음으로 소개한다. 본래 단편을 좋아하지 않는 내게 짧은 서사도 이렇게 쓸 수 있구나, 하는 선입견의 파괴를 선사했다. 정말 잘 쓴 깔끔한 소설집이다.

  총 일곱 개의 단편이 실려있다. 표제작 「그린핑거」와 「전망 좋은 집」은 별도의 독립된 단편이다. 나머지 다섯 편은 '내게 아주 특별한 연인'이라는 테마로 엮어진 연작 연애담들이다. 작가는 잘 다듬어진 일곱 편의 단편을 통해 동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독특한 사랑과 내적 감수성을 섬세하고 감각적인 필치로 그려냈다.

  표제작 「그린핑거」는 단연 돋보이는 단편이다. 주인공 써니는 '그린 핑거'라는 찬사를 받을 만큼 정원을 잘 다루는 여인이다. 하지만 그녀에게 식물을 다루는 것과 근본적인 자의식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것은 별개의 역량인 듯보인다. 선천적 얼굴 기형으로 태어난 그녀의 콤플렉스는 성공적인 수술 이후에도 사그라들지 않는다. 남편이 기형에 대한 압박감으로 아이 갖는 것을 꺼림을 알게 된 그녀는 남편과 소원해진다. 한 여성의 자기부정이 날카롭게 잘 드러났다.

  연작의 구성으로 이어진 다섯 편의 연애 단편들 또한 모두 읽어볼 만 하다. 각 단편은 하나의 독립된 단편이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 앞선 단편의 한 인물이 다음 단편의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다. 이러한 피카레스크식 구성은 각 단편을 동일한 주제로 엮으면서 동시에 독립성을 잃지 않게 한다. 물론 각 단편들의 완성도 또한 나무랄 데 없이 깔끔하다.

  「블루오션 경제학」은 연애학에 주식과 투자의 개념을 차용했다. 「모네의 정원으로」는 다른 단편보다는 조금 긴 호흡으로 연애에 '그림'과 '경제'의 키워드를 대입했다. 다섯 편의 단편 모두 주인공 화자는 여성이다. 최근에 읽은 비슷한 소재의 일본소설인, 작가의 이름을 거론하기도 민망한 싸구려 연애 이야기와는 수준을 달리한다. 동시대 여성들의 각기 다른 다양한 연애담을 통하여 여성의 내밀한 심리묘사와 자의식 탐구가 돋보이는 소설집이다.

  여성이기에 쓰지 못하는 소설이 있는 반면 여성이기에 가능한 소설이 있다. 『그린핑거』에서 김윤영의 문학적 브랜드는 잘 드러난다. '단편'이라는 서사 장르가 무엇이며,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작가 김윤영은 깔끔하게 입증했다. 본래 나는 단편을 즐겨 읽지 않는다. 단편소설은 대체적으로 서사가 가볍다. 단편이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 또한 내게는 거북하다. 하지만 김윤영의 단편은 매력적이다. 동시대적 감수성을 전면에 배치하지만 칙릿이라는 한국 여류문학의 클리셰에 함몰되지는 않는다. 메시지가 간명하며 글이 매끄럽다. 기술력 또한 탄탄하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반성할 줄 아는 작가란 말을 듣고 싶다고 고백한다. 텍스트에 대한 겸손이 잘 묻어있는 고백이다. 이에 한 권의 소설집으로 그녀의 매력에 경도된 미천한 독자는 그녀에게 한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단편의 벽을 넘어 장편의 바다에 진입해줄 것을 말이다. 장편은 단편과는 다른 세계다. 지금보다 훨씬 긴 호흡으로 그녀의 텍스트를 궁구하고 싶다. 그때야 비로소 나는 김윤영을 100%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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