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강 - 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 한홍구의 현대사 특강 1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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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들은 통탄했다. 노무현 前 대통령의 서거는 국민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충격과 슬픔을 안겨줬다. 역사적인 평가를 제대로 받지도 않은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은 비극적인 죽음을 선택했다. 왜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가.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가. 2009년 5월 노무현의 죽음은 한 개인의 죽음을 넘어 한국사회에 만연해 있는 비상식과 비정의의 현재상을 응축하여 표상하고 있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역동과 오욕이라는 두 가지 상치된 성질을 함께 이뤄왔다. 세계사에서 유래가 없는 빠른 속도의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은 한국인의 역동성을 잘 보여준다. 반면 그 역동성 이면에 존재했던 오욕과 파란의 역사는 국민을 힘들게 했고 대한민국을 곪게 했다. 여기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이다. 다음 세대로서 이전 세대가 이뤄온 역사를 정확히 아는 지성은 반드시 필요하다. 진실의 힘은 크다. 과거의 진실을 제대로 알아야만이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고 미래를 상식의 세계로 열 수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출판사의 『특강』은 한홍구 교수의 한국 현대사 강의를 책으로 담은 강연집이다. 시대순이 아닌 의미의 배열로 한국 현대사를 강의한다. 저자는 지난 수십년간 우리사회를 이해하는 데 주요한 8가지 키워드를 추출하여 열정적인 강의를 펼친다. 알고 있었지만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들, 전혀 모르고 있었던 세밀한 사건들에 대해 저자는 흥미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첫 1강에서 저자는 뉴라이트와 역사 교과서 문제를 거론한다. 아직도 우리사회에서 두꺼운 층을 형성하고 있는 수구세력의 태동과 현실 인식이 어떠한지를 짚고 있다. 특히 16대 국회 말기에 제출되었던 친일진상규명 특별법이 누더기가 될 수밖에 없었던 속내를 소개한 대목은 강한 분노를 자아낸다. 35년간의 일제 식민지배를 받는 동안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핍박을 받고 죽어나갔는가. 일본에 의한 한국의 식민지배는 이미 UN과 국제법상 불법으로 판명되었다. 과거의 수치스러운 역사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자는 데 반대하는 수구세력들의 저의가 역겨울 뿐이다.

  이어서 저자는 한국 민주주의 현대사의 단면을 알 수 있는 아이콘들을 주제로 흥미있는 강연을 계속적으로 펼친다. 지난하기만 했던 간첩의 역사, 헌법 정신과 배치되는 민영화 정책, 일본 순사로부터 이어져 온 경찰 폭력의 역사, 거대 사교육 시장이 대변하는 일그러진 교육사, 촛불이 상징하는 직접 민주주의의 발현 등 한국 현대사를 천착키 위해 알아야 하는 쟁점들을 구체적이고 날카롭게 소개한다.

  저자가 진보주의 학자라는 점에서 한쪽에 치우친 논설을 할 것이라는 선입견은 버리는 게 좋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역사를 조망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fact)'이다. 여러 사건들과 몇몇 쟁점들에 대한 저자의 구체적인 사실 전달과 이를 뒷받침하는 적확한 논지 제시는 이 책의 무게감과 풍성함을 잘 보여주는 요건들이다. 또한 매 강의가 끝날 때마다 청중의 질문과 저자의 답변을 싣고 있어 강의 내용이 미처 다루지 못한 사각지대를 잘 보완한다.

  자유 민주주의를 헌법에 명시한 국가 중에서 한국인만큼 권력으로부터 집요하게 속아왔던 국민은 드물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북한이 개입한 빨갱이 폭동으로 알았던 적이 있었다. 평화의 댐을 건설하기 위해 초등학생들의 저금통이 뜯겨진 때가 있었다. 전두환을 국민과 국가를 사랑하는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했던 적도 있었다. 판매부수 1위를 다투는 두 신문사가 민족지로서 정의와 진실을 보도하는 언론으로 알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는 모두 '거짓'이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국민들은 속았고 어리석었다. 허탈했다. 몰랐던 만큼 고통스러웠고 어리석었던 만큼 손해봤다.

  앎의 크기는 곧 존재의 크기를 결정한다. 21세기 자본주의 시대에서 무지는 모럴 해저드에 버금가는 죄악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 앎이 곧 국력이다. 진실만이 곧 정의가 된다. 어쩌면 오욕과 분노로 점철된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는 진실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의롭지 못했고, 그렇기에 21세기 한국인들이 감내하는 대가의 무게는 더욱 큰 것일지 모른다. 노무현의 죽음은 바로 이러한 한국 현대사의 독소가 유도한 비극이다. 

  한국 현대사가 잉태했던 다양한 굴곡들은 주류라는 테두리 안에서 꾸준히 소급되어 왔다.  대한민국은 이제 더 이상 잘못된 주류에 편승하고 아첨해야만 승리하는 세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도 떳떳하게 정의와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노무현 자신이 죽음으로써 말하고자 했던 가치의 본질이었으리라.

  나는 인간의 학습능력을 신뢰한다. 무지와 잘못된 선택으로 아픈 역사를 만들어냈던 실수와 어리석음을 재차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고 불리는 현명한 종족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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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09-07-03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윗님, 서평 때문에 결국 이 책을 사게 되네요^^
 
내 심장을 쏴라 - 2009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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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문학상은 1회 수상작부터 꾸준히 읽어오고 있다. 금년으로 다섯 번째를 맞이하는 세계문학상은 다른 문학상과는 다른 뚜렷한 개성이 있다. 무엇보다 텍스트의 '가독성'과 '재미'를 중시한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읽기에 부담없는 대중적인 소설들이 선정이 되어 왔다. 도발적인 소재와 개성있는 문체, 빠른 속도감과 흡입력 있는 서사를 갖춘 작품들이 세계문학상의 표적이 된다.

  1회 수상작 김별아의 『미실』은 여태까지 생각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여성상을 만들어냈다. 박현욱의 『아내가 결혼했다』는 보수적인 한국사회에 '비독점적 다자연애'를 질문함으로써 꽤 충격적인 도발을 시도했다. 신경진의 『슬롯』은 도박을 소재로 자본주의의 바다를 헤엄치는 인간의 정체성을 흥미있게 그려냈다. 백영옥의 『스타일』은 신세대 한국여성의 진화된 원형을 익살스럽게 담아냈다. 잘 읽히고, 흥미있고, 도발적이며, 신선하다는 점이 세계문학상 수상작들의 공통적 분모가 된다.

  제 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내 심장을 쏴라』는 제 1회 세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로 대중에게 낯설지 않은 소설가 정유정의 장편소설이다. 이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굉장히 재미있는 소설이지만 보다 '문학적'이라는 점에서 강한 매력을 지녔다. 요컨대 소설 『내 심장을 쏴라』는 재미와 무게를 함께 지닌 힘있고 감동적인 소설이다.

  이 소설은 폐쇄된 정신병원에서 만난 두 남자가 서로를 알아가면서 각자의 삶으로부터 교차되어 얻는 깨달음과 열정을 감동적으로 그렸다. 가위만 보면 공황장애를 일으키는 1인칭 화자 이수명과 그와 같은 날 정신병원에 입원한 시력장애인 유승민과의 첫 만남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첫 만남의 데면데면함이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를 이해하고 친밀한 우정으로 변화하기까지의 과정을 흥미있고 생동감있게 담았다. 

  수명과 승민은 삶을 대하는 태도가 상이한 인물이다. 수명이 내면 속으로 자신을 축소화한다면 승민은 외연을 향한 방향성에 집착함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한다. 수명과 승민 모두 과거의 비밀을 가슴에 품고 지낸다. 작가는 두 인물의 과거 트라우마와 이에 종속된 일상에서의 해소되지 않는 현실적 긴장감을 잘 그려냈다. 소설의 뒷부분으로 가면서 과거에 봉착되어 있던 수명과 승민의 내밀한 비밀은 밝혀진다. 남에 의해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의해 고백되어지고 깨달아진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소설의 앞부분은 서사의 진척이 다소 느리고 미지근한 몰입도를 보인다. 하지만 중반을 넘어 후반에 이르게 되면 지금까지 농밀하게 응축되었던 이야기들이 한 번에 터지면서 독자의 가독력을 최고조로 끌어올린다. 소설의 말미, 주인공 수명이 오랫동안 가슴 깊숙한 곳에 봉인해두었던 삶의 참된 진실을 인식하고 용기를 표출하는 장면, 그 순간은, 이 소설이 선사하는 가장 강렬한 울림이자 카타르시스다.

  이 소설의 핵심 키워드는 '자아'와 '자유'이다. 폐쇄된 정신병동이라는 외면의 벽을 탈출하려는 몸부림은 자아를 제대로 인식하고자 하는 내면의 열정과 닿아있다. 두 인물의 과거 아픔과 이에 구속된 일그러진 현재상은 자신의 인생에서 자아의 지정학적 위치를 잘못 두었을 때를 그대로 은유한다. 자아의 본질에 대한 성찰은 없고 비본질에 대한 집념과 고집만이 반복되고 있을 뿐이다. 자유를 간절히 소망하지만 정작 그 소망을 실현하기 위한 행동방식은 자아의 역동과는 거리가 먼 외적 환경의 파괴, 또는 내적 울림과의 단절에 불과하다. 

  이러한 두 인물의 자유 성취와 자아 성찰에 대한 공전轉 행태은 승민이 병원을 탈출하여 글라이더를 타고 하늘을 활공하는 바로 그 순간, 앎과 행복의 실현으로 급반전된다. 승민은 종내 죽는다. 하지만 그의 죽음은 소설의 마지막 수명이 정신병원을 퇴원하는 장면과 연결된다. 죽은 승민은 수명에게 질문한다. 너는 누구냐고. '새' 아니면 '비행기'냐고. 이에 대한 수명의 답은 단호하고 명확하다. 내 인생을 상대하러 나선 놈, 바로 '나'라는 것을.

  한 사람의 자유는 타자의 간섭이나 외부의 구속으로 조절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와 동시에 한 사람의 인생 또한 타자가 아닌 자아의 추동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생에 대한 강렬한 욕망은 언제나 자유의 문제에 부딪히게 된다. 내 인생을 '나'로서 사는 것은 명확한 진리다. 이 타협할 수 없는 절대명제 앞에 우리의 삶은 때때로 외부를 의식하고 타자에 주눅든다. 진정한 자유의 가치는 내가 내 삶의 주어로서 존재할 때 빛이 난다. 내 존재성은 누구도 욕망하지 못한다. 이에 동의한다면 자신있게 외칠 수 있을 것이다. 외부를 향해 가슴을 열어놓고 내 심장을 쏴보라고.

  서사를 풀어가는 능숙함과 재치있는 입담이 돋보인다. 순간순간의 감동이 녹아있고 시종 재미를 잃지 않는다. 정교하고 정제된 묘사와 독자의 호흡을 쥐었다 놨다 하는 작가의 내공이 훌륭하다. 내적 자유와 자아의 고찰에 번민하는 수많은 영혼들에게 이 한 권의 소설이 위로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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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본 친구가 좋다 - 한 발 다가서면 한 발 물러서는 일본 사람 엿보기
박종현 지음 / 시공사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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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편적으로 한국인은 일본을 싫어한다. 일본이라는 국가 자체뿐만 아니라 국민성과 문화와 스포츠에 이르기까지 거의 대부분을 싫어하고 배척한다. 35년간의 일제 식민지배라는 오욕의 근대사가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한국인의 유전자 속에 내재한 반일감정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는다. 솔직히 얘기하자. 우리들에게 일본은 무조건적으로 싫고 나쁘고 짜증나는 존재다.

  하나의 존재를 싫어하는 것과 그 존재의 크기를 가늠하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개념이다. 우리가 일본을 싫어한다고 해서 일본이 가지고 있는 실존적 크기는 줄어들지 않는다는 의미다. 대략 1세기 이전에 당했던 한과 설움을 21세기까지 연장하여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는 없다. 한국인이 아무리 씹고 또 씹어도 일본은 어디까지나 일본이다.

  일본을 제대로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과거사의 감정에 치우쳐 오직 부정코드로 읽기에는 존재의 크기가 너무 큰 나라가 일본이다. 세계 제 2위의 경제대국이자 수없이 많은 문화와 종교를 누리는 다양성의 국가다. 세계사에서 유일하게 원자폭탄을 맞은 나라이며 패전으로 국가 전체가 쑥대밭이 되었음에도 불과 수십년만에 지구상에서 가장 품질이 좋은 상품을 만드는 산업국가가 되었다. 80년대부터 세계 소비자들의 로망이 된 'Made In Japan'의 힘은 아직까지도 녹록하지 않다. 21세기에서도 일본의 존재감은 크기만 하다. 그렇기에 일본은 반드시 알고 느끼며 연구해야만 하는 아이콘이다.

  시공사의 『나는 일본 친구가 좋다』는 오랜 일본생활을 통해 일본인들을 직접 느끼고 소통한 저자 박종현 씨의 에세이다. '한 발 다가가면 한 발 물러서는 일본 사람 엿보기'라는 책표지 전면의 홍보문구는 이 책의 정체성을 잘 함축한다. 멀고 멀게만 느껴졌던, 무엇보다 온갖 부정적 편견으로 읽혀졌던 일본에 대한 진실된 단면을 담아냈다.

  이 책이 읽어볼 만한 이유는 일본에 대한 구체성을 매우 잘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인의 보편적 성향과 세대별 특징, 패션과 문화의 특이점, 한류 열풍과 쇼핑 스타일, 섹스와 불륜의 영역에까지 일본인의 특성을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한국인으로서는 언뜻 이해하기 힘든 그들만의 문화와 사고방식을 잘 풀어서 안내한 점이 이 책의 강점이다.

  책 속에서 가장 솔깃하게 읽힌 부분은 일본의 아이러니한 양면성에 있다.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일본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양면적 모습을 보인다. 백만 원이 넘는 명품 지갑을 갖고 다니는 사람이 식사비로 소소한 금액을 지불하며 몇백 원의 거스름돈을 반드시 챙긴다. 다이어트를 죽기살기로 하는 마른 민족이 식사 후에는 케이크로 대표되는 고칼로리 디저트를 줄서서라도 꼭 챙겨먹는다. 청소년이 학교 안에서 버젓이 '섹스'를 하는 것과 시험 중 '컨닝'을 하는 것을 동일한 처벌로 다스리는 나라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나라요 국민들이다.

  반면 일본은 배워야 할 점이 많은 국민성을 갖고 있는 나라다. 무엇보다 나는 그들네의 독서력에 주목한다. 일본인은 책을 좋아한다. 국가 전체가 책을 사랑하고 장려한다. 일본인은 정말 책을 많이 읽는다. 고독을 좋아하는 국민성을 대변이라도 하듯 그들은 읽고 또 읽는다. 일본에서는 지하철이나 커피숍에서 책읽는 사람들을 무수히 만날 수 있다고 한다. 현재 일본이 누리고 있는 문학의 번영과 권위는 책을 친구삼고 사랑하는 일본인들의 현재상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다. 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독서하는 일본'은 응당 부럽고 배워야 할 모습이다. 단언컨대, 독서력은 국력과 비례한다.

  시대가 많이 흘렀다. 21세기의 지구촌은 국가와 민족의 벽이 점점 희미해지는 '세계화'라는 대세를 관통하고 있다. 과거의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과거에 함몰되어 생산성 없는 일에 에너지를 낭비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앎이다. 일본을 제대로 알아야 그들을 정확히 비판할 수 있고 온전히 넘어설 수 있다. 앎조차도 무의미하다며 무조건적으로 일본을 배척하는 자들이 우리 내부에서 사라지지 않는다면 일본과의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질 것이다. 일본 속에 배어있는 문화와 습속을 편안하게 소개한 에세이임에도 이 책이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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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 모두 유죄
노희경 지음 / 김영사on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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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점에서 잠시 읽었던 기억이 있다. 유명 드라마 작가의 에세이라는 점에서 관심은 충분했다. 두껍지 않은 분량에서 사랑과 연애에 대한 작가 자신의 솔직하고 담백한 이야기를 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인이 보낸 책여행을 통해 다시 읽는다. 이번에는 진중하게 텍스트 속으로 몰입한다. 

  제목이 도발적이다. 작가는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를 모두 '유죄'로 규정한다. 다시 말해 언제 어디서나 항상 사랑하고 있는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지 않는 사람에게 모두 죄가 있다고 도발하는 작가의 외침이 흥미있다. 하지만 공감하진 못한다. 이에 대한 내 사견은 서평 말미에 다루기로 하자.

  책의 구성과 문체는 읽기에 편안하게 쓰여졌다. 작가는 장황하게 많은 문장을 사용하지 않는다. 드라마 작가답게 문장은 포근하다. 일러스트는 텍스트와 적절한 조화를 이룬다. 몇몇 페이지는 기름종이에 작가 자신의 필체로 쓴 글귀들을 배치하기도 했다. 할 말은 다 하면서 무언가 억제된 듯한 느낌이 문장 곳곳에 배어 있다. 작가는 시종 섬세하고 따뜻하고 예민한 문체로 사랑과 연애와 관계에 대해 애잔하게 풀어낸다.

  무엇보다 노희경 자신의 내밀한 고백들이 가슴에 와닿는다. 서로간에 상처와 치유의 주고받음으로 좋은 관계를 맺어오고 있는 탤런트 윤여정과 나문희에 대한 작가의 고백이 흥미롭다. 또한 한동안 증오했던 아버지에 대한 관계 회복의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지나간 사랑에 대한 회상, 가족을 향한 깊은 사랑, 친밀하고 섬세한 동료애 등이 노희경의 활자 속에서 애틋하고 편안하게 꿈틀거리고 있다.

  평소 드라마를 보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자면 TV를 거의 보지 않는다. 음악프로그램과 개그프로그램 몇 개를 인터넷으로 다운 받아 가끔 볼 뿐이다. 책을 좋아하고부터 TV와 멀어졌다. 왜 매일 동일한 시각에 결말이 뻔히 보이는 드라마를 보기 위해 TV 앞에 앉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금도 TV에 대한 내 극도의 반감은 결코 녹록지 않다. TV를 선택적 '악[, evil]'으로 분류하는 내 신념 속에 바보상자를 지탱케 하는 가장 강력한 아이콘 '드라마'가 존재한다.

  모든 드라마의 성공은 종국 시청률로 귀결된다. 한 편의 드라마가 갖는 교육적 성취와 구체적 현실성, 인생의 의미와 가치, 극적 완성도는 모두 시청률이라는 객관적 대중성 안에서 통합되고 조절된다. 한국의 인기있는 드라마는 모두 대중들의 요구에 의해 기획되고 재생산된다. 요컨대 한국 드라마의 작가와 연출자는 '대중'인 것이다.

  나는 노희경의 드라마를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녀의 드라마는 인기가 없다고 한다. 시청률과는 거리가 멀다고 한다. 항상 한 자릿수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대중이 원하는 요구와 일치하지 않는 이야기를 노희경은 지금 이 순간에도 꾸준히 창조하고 있다. 사랑이 가진 치유의 힘과 가족애, 인생의 진정성과 희망을 담은 메세지를 아름다운 위로의 언어로 뿜어내고 있다. 바로 이 대목에서 드라마에 대한 무조건적인 내 폄훼는 종지부를 찍는다. 드라마 작가 노희경의 고집과 열정이 지속되길 기대한다. 대중의 요구보다 자신의 철학과 신념에 기댄 작품들을 많이 창조해주기를 응원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책 제목에 대한 내 불편을 피력하자. 지금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라는 말에 나는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내 짧은 인생에 비추어 볼 때 사랑하지 '않는' 자가 아닌 사랑하지 '못하는' 자가 분명히 존재했기 때문이다. 타인의 사랑을 내 사랑의 카테고리 안에서 이해하려 했던 어리석은 시절이 있었다. 그땐 세상 모든 사랑이 동일하거나 엇비슷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실상 너의 사랑은 나의 사랑과는 완전히 분리된 우주에서 역동하는 것이었다. 당사자의 머리와 가슴이 아니고서는 절대로 이해될 수 없는 미묘하고 신비스러움은 이 세상 모든 사랑들의 공통된 본질이었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사랑하지 못하는 자들이 많다. 그들은 그들의 세계 안에서 인간과 호흡하며 사랑을 갈구한다. 사랑을 향한 방향성과 그것을 위한 최초의지야말로 무죄와 유죄를 판가름 하는 가장 적합한 기준이 아닐까. 사랑은 참으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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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반양장) 공지영이 들려주는 성서 속 인물 이야기
공지영 지음, 조광호 그림 / 오픈하우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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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날이다. 세상 모든 어린이들을 위한 날이다. 동시에 어른을 위한 날이기도 하다. 나는 매년 돌아오는 어린이날을 간절히 기다린다. 그 이유는 정갈하다. 한 시절 동심의 세계에서 거짓과 거리를 두고 오롯한 순수의 삶을 살았던 때를 기억해보기 위함이다. 나에게도 그 시절이 있었는가. 나도 순수할 때가 있었는가. 그 시절을 사유하며 세상의 온갖 찌든 때에 물든 내 서른살의 자화상을 목도한다.

  어린이날에 가장 좋은 선물은 무엇일까. 놀이동산 자유이용권, 유명한 일본 게임기기, 옷과 신발과 장난감 등. 어린이들은 자신이 갖고 누리고 싶은 것들을 머릿속에 그리며 어린이날을 간절히 기다린다. 어린이를 위한 수많은 선물들 중에 '책'이라는 것은 과연 인기가 있을까. 책을 통해 지혜를 얻고, 꿈과 상상력을 키우며, 다양성을 학습할 수 있다면 한 권의 책은 한 어린아이의 인생에 가장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어린이들이 읽어볼 만한 매우 좋은 책이 출간됐다. 우리시대 가장 사랑받는 소설가 공지영과 그리스도교의 경전 성서가 만났다. '공지영이 들려주는 성서 속 인물이야기 시리즈'는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을 아이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포근하고 교훈적인 문체로 재구성한 동화다. 나는 시리즈의 첫 편 『천사』를 손에 들었다.

  성경은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수준 높은 텍스트다. 성경은 인간의 본질과 한계, 인생의 가치와 의미를 웅숭깊게 담았다. 구약은 메시야가 오기 전까지의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를 다루고 있고,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업적, 사도들의 가르침과 복음 전파 등을 다루고 있다. 우주와 인간의 총체성을 충분하고 깊이있게 담아내고 있기에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불멸의 고전이 된 것이리라.

  첫 시리즈 『천사』는 제목 그대로 천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세상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존재했던 천사들의 신비한 이야기를 들여준다. 작가는 루시엘, 미카엘, 가브리엘, 라파엘의 대천사 4명을 전면에 배치하여 이야기를 풀어간다. 성경에 나오지 않는 이야기를 작가의 상상력으로 풀어냈음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이 보기에 전혀 낯설지 않게 읽혀진다. 성경의 핵심 포인트를 정확히 집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공지영이 전하는 천사들의 이야기는 두 가지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우선 대천사였던 루시퍼의 타락은 하나님 한 분과 하나님이 아닌 다른 모든 것들의 구분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명징히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천사든 인간이든 동물이든 모두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된 피조물이라는 점을 주지한다면 피조물로서의 본질과 의미를 자아 스스로 궁구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본분을 잊은 채 인기와 명성의 허울에 젖어 하나님을 배반했던 루시퍼의 요란한 삶은 심히 안쓰럽고 처량해 보인다. 하지만 내 자신의 모습 속에도 작은 루시퍼의 형상이 투영되어 있을지 모르는 일이리라. 어쩌면 '겸손'과 '교만'은 종이 한 장 차이일지 모른다. 둘 다 주어와 서술어는 동일하다. 내가 무언가를 자랑하는 것이다. 단지 목적어가 다를 뿐이다. '신' 아니면 '나'.

  또 하나의 메시지는 자아정체성에 대한 본질적 울림이다. 천사 중에 가장 작은 존재였던 미니멜은 자신의 왜소함과 초라함에 상처를 받아 우주에서 사라지고 싶어한다. 이러한 미니멜을 위로하기 위해 하나님은 직접 찾아가신다. 그의 아픔과 상처를 보듬는다. 다른 존재와의 '차이'가 곧 아름다움의 본질이라는 것을 미니멜에게 알려준다. 모든 아름다움은 그것이 다 다른 데서 오는 것이라며 미니멜을 위로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따뜻하게 읽힌다. 이는 내 자신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며 위안을 준다. 세상에 나는 단 하나의 존재이다. 우주에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내가 아름다운 것이다.

  작가 공지영은 자신의 동화가 기독교인뿐만 아니라 비기독교인에게도 읽히기를 소원한다. 프롤로그에서 작가는 이 책의 정체성을 어떤 종교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세상을 움직이는 데 기본이 된 인류의 문화 자산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고백한다. 이러한 작가의 의지는 이야기 속 용어와 문체에 그대로 드러난다. 종교적 느낌의 '하나님'이라는 호칭보다 대중적이고 친숙한 '하느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했다. 또한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카톨릭과 개신교가 함께 번역한 '공동 번역' 중 카톨릭용을 참고했다. 그만큼 많은 어린이들이 부담없이 읽기 위해 애쓴 흔적이 엿보인다.

  어렸을 때부터 무엇을 보고 느끼며 자라는가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순간성 놀이 몇 시간의 투자보다 깊은 울림을 던져주는 책 한 권의 경험이 더욱 소중한 나이가 있다. 책은 소중하다. 책의 힘은 강력하다. 러셀의 말처럼 책 속에는 '지식'과 '사랑'과 '연민'이 있다. 이 땅의 어린이들이 책을 벗삼아 지혜가 깊고 사랑이 풍성하며 연민을 지닌 훌륭한 동량으로 자라나길 기도한다. 그 희망을 꿈꾸는 수많은 책더미에 공지영의 성서 동화가 작게나마 보태지길 기대한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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