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강 - 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 한홍구의 현대사 특강 1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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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들은 통탄했다. 노무현 前 대통령의 서거는 국민들에게 형언할 수 없는 충격과 슬픔을 안겨줬다. 역사적인 평가를 제대로 받지도 않은 상황에서 노 전 대통령은 비극적인 죽음을 선택했다. 왜 그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는가. 왜 죽을 수밖에 없었는가. 2009년 5월 노무현의 죽음은 한 개인의 죽음을 넘어 한국사회에 만연해 있는 비상식과 비정의의 현재상을 응축하여 표상하고 있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역동과 오욕이라는 두 가지 상치된 성질을 함께 이뤄왔다. 세계사에서 유래가 없는 빠른 속도의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은 한국인의 역동성을 잘 보여준다. 반면 그 역동성 이면에 존재했던 오욕과 파란의 역사는 국민을 힘들게 했고 대한민국을 곪게 했다. 여기서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그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이다. 다음 세대로서 이전 세대가 이뤄온 역사를 정확히 아는 지성은 반드시 필요하다. 진실의 힘은 크다. 과거의 진실을 제대로 알아야만이 현실을 정확히 직시하고 미래를 상식의 세계로 열 수 있기 때문이다.

  한겨레출판사의 『특강』은 한홍구 교수의 한국 현대사 강의를 책으로 담은 강연집이다. 시대순이 아닌 의미의 배열로 한국 현대사를 강의한다. 저자는 지난 수십년간 우리사회를 이해하는 데 주요한 8가지 키워드를 추출하여 열정적인 강의를 펼친다. 알고 있었지만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들, 전혀 모르고 있었던 세밀한 사건들에 대해 저자는 흥미있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첫 1강에서 저자는 뉴라이트와 역사 교과서 문제를 거론한다. 아직도 우리사회에서 두꺼운 층을 형성하고 있는 수구세력의 태동과 현실 인식이 어떠한지를 짚고 있다. 특히 16대 국회 말기에 제출되었던 친일진상규명 특별법이 누더기가 될 수밖에 없었던 속내를 소개한 대목은 강한 분노를 자아낸다. 35년간의 일제 식민지배를 받는 동안 얼마나 많은 국민들이 핍박을 받고 죽어나갔는가. 일본에 의한 한국의 식민지배는 이미 UN과 국제법상 불법으로 판명되었다. 과거의 수치스러운 역사에 대해 진상을 규명하자는 데 반대하는 수구세력들의 저의가 역겨울 뿐이다.

  이어서 저자는 한국 민주주의 현대사의 단면을 알 수 있는 아이콘들을 주제로 흥미있는 강연을 계속적으로 펼친다. 지난하기만 했던 간첩의 역사, 헌법 정신과 배치되는 민영화 정책, 일본 순사로부터 이어져 온 경찰 폭력의 역사, 거대 사교육 시장이 대변하는 일그러진 교육사, 촛불이 상징하는 직접 민주주의의 발현 등 한국 현대사를 천착키 위해 알아야 하는 쟁점들을 구체적이고 날카롭게 소개한다.

  저자가 진보주의 학자라는 점에서 한쪽에 치우친 논설을 할 것이라는 선입견은 버리는 게 좋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역사를 조망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fact)'이다. 여러 사건들과 몇몇 쟁점들에 대한 저자의 구체적인 사실 전달과 이를 뒷받침하는 적확한 논지 제시는 이 책의 무게감과 풍성함을 잘 보여주는 요건들이다. 또한 매 강의가 끝날 때마다 청중의 질문과 저자의 답변을 싣고 있어 강의 내용이 미처 다루지 못한 사각지대를 잘 보완한다.

  자유 민주주의를 헌법에 명시한 국가 중에서 한국인만큼 권력으로부터 집요하게 속아왔던 국민은 드물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북한이 개입한 빨갱이 폭동으로 알았던 적이 있었다. 평화의 댐을 건설하기 위해 초등학생들의 저금통이 뜯겨진 때가 있었다. 전두환을 국민과 국가를 사랑하는 위대한 지도자로 추앙했던 적도 있었다. 판매부수 1위를 다투는 두 신문사가 민족지로서 정의와 진실을 보도하는 언론으로 알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는 모두 '거짓'이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국민들은 속았고 어리석었다. 허탈했다. 몰랐던 만큼 고통스러웠고 어리석었던 만큼 손해봤다.

  앎의 크기는 곧 존재의 크기를 결정한다. 21세기 자본주의 시대에서 무지는 모럴 해저드에 버금가는 죄악이다. 아는 것이 힘이다. 앎이 곧 국력이다. 진실만이 곧 정의가 된다. 어쩌면 오욕과 분노로 점철된 대한민국의 근현대사는 진실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의롭지 못했고, 그렇기에 21세기 한국인들이 감내하는 대가의 무게는 더욱 큰 것일지 모른다. 노무현의 죽음은 바로 이러한 한국 현대사의 독소가 유도한 비극이다. 

  한국 현대사가 잉태했던 다양한 굴곡들은 주류라는 테두리 안에서 꾸준히 소급되어 왔다.  대한민국은 이제 더 이상 잘못된 주류에 편승하고 아첨해야만 승리하는 세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 땅의 젊은이들이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도 떳떳하게 정의와 진리를 말할 수 있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노무현 자신이 죽음으로써 말하고자 했던 가치의 본질이었으리라.

  나는 인간의 학습능력을 신뢰한다. 무지와 잘못된 선택으로 아픈 역사를 만들어냈던 실수와 어리석음을 재차 반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기대와 희망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라고 불리는 현명한 종족의 자존감을 회복하는 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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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09-07-03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윗님, 서평 때문에 결국 이 책을 사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