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라, 내일은 없는 것처럼 소희와 JB, 사람을 만나다 남미편 1
오소희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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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작가가 있다. 보통 독자가 작가를 좋아하게 되는 과정은 고만고만하다. 처음에는 작가의 텍스트에 매료된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게 되면 작가 자체를 사랑하는 경향을 띤다. 한 작가를 오랫동안 탐구하고 사랑하다 보면 어느덧 그 작가와 그의 텍스트가 한 지점에서 합일되고 응축되는, 그리하여 자기 가슴속에 아로새겨지는 귀결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왠만해서는 이별할 수 없는 지독한 사랑이 시작되고야 만다.

에세이작가 오소희는 나에게 그런 존재다. 어느덧 그는 나에게 농밀한 존재가 되어 있다. 나는 그를 통해 내 젊은 시절을 가득 채웠던 대작가의 숨결을 읽었다. 오소희는 톨스토이다. 사랑을 말하기 때문이다. 오소희는 괴테다. 지독하게 사랑을 말하기 때문이다. 오소희는 하루키다. 사랑을 말해도 '너무' 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오소희는 사랑 예찬론자다. 내가 그를 사랑하는 첫 번째 이유다.

오소희는 나에게 항시 '신비로움'을 견지한다. '신비롭다'는 말은 "시간이 가진 권력을 이겨낸다"는 내밀한 속성을 함의한다. 신비롭기 위해서는 '과거·현재·미래'가 동일한 시간대로 통합되고 유지될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을 견디고 무료를 초월하며 실존을 관리하는 자존감은 신비로움을 발현해내는 필수불가결한 전제이다. 오소희는 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현재라는 단 하나의 시간대로 통합시키는 신비로운 작가인 것이다. 그것이 내가 그를 사랑하는 두 번째 이유다.

사랑을 예찬하고 신비를 견지하는 작가 오소희의 신간이 출시됐다. 그의 신간소식은 언제나 나를 들뜨게 했(한)다. 이번에는 남미다.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는지 이번 신간은 두 권으로 구성됐다. <안아라, 내일은 없는 것처럼>은 그 시리즈의 첫 번째다. 이 책은 '페루-볼리비아-브라질-콜롬비아'로 이어지는 남미 여행기다. 역시 아들 중빈과 함께 했다. 세 살이었던 중빈이는 이 책에서 열 살이 되었다. 벌써 7년의 시간이 흘렀다.

남미를 여행지로 삼은 저자의 선택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간 다뤄왔던 나라들을 보라. 터키, 라오스, 아프리카는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여행지가 아니다. 지금까지 저자가 보여준 세계여행의 동선은 그의 여행포인트를 잘 집약한다. 저자에게 여행지의 네임벨류는 비본질에 속한다. 오히려 그것을 거부한다. 대중의 시선이 잘 미치지 않는 곳, 인기 여행지가 되기에 부족한 곳이 저자의 목적지가 된다. 저자가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는 피로할 때였다. 일상에서 더 낮아지기 힘들어 자신의 직립을 피로하게 느낄 때 비로소 떠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여행철학은 남미가 가진 본질적인 매력이 무엇인지를 은밀하게 암시한다.

신간 <안아라, 내일은 없는 것처럼>은 저자 특유의 문체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전작과는 다른 힘이 느껴지는 책이다. 전작들은 저자의 주관적 관조를 바탕으로 인간과 세계를 읽어내는 재미가 중심이 됐다. 반면 이 책은 객관적 사실에 의거한 각 나라와 역사에 대한 서술을 이례적으로 많이 할당했다. 즉 남미국가들이 갖는 고유성, 역사성, 연계성을 적절한 분량으로 제시함으로써 여행의 에피소드와 사람들을 관찰하며 추출한 기존방식의 이야깃거리를 보다 긴밀하고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저자의 이러한 시도는 남미에 생소한 독자에게 나름의 정보를 제공함과 동시에 그곳을 더욱 치밀하게 쳐다보게 하는 장치가 된다. 잉카의 중흥과 몰락, 스페인과 포르투칼의 정복사, 남미의 독립영웅 볼리바르, 페드로 2세와 룰라의 브라질 개혁 등 곳곳에 배치된 짤막한 역사 서술은 독자의 남미 탐구를 견인하는 안내서의 역할을 한다. 각 나라를 이동할 때마다 현재의 남미를 일군 역사적 사실에 대해 짧지만 요점적으로 정리했다. 독자는 저자의 자상한 배려로 인해 남미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저자의 발자취를 더욱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된다.

저자가 탐색한 남미의 삶은 한국의 그것과는 많이 대조적이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맨살을 그대로 내보이는 남미인의 모습은 겉치레를 중시하는 한국인의 유전자와는 조화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경직'의 한국적 삶은 '이완'의 남미적 삶과는 다르다. 하지만 서로의 장단을 논하기 앞서 저자는 매우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그것은 바로 '행복'이다. 속도와 정보, 경쟁과 효율의 논리에 휩싸인 한국식 신자유주의는 세계 1위의 자살률로 대변되는 불행복한 현재상의 원인이다. 그러나 한국보다 훨씬 도태된 경제력을 가진 남미국가의 느리고 이완된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월등히 높은 행복지수의 동기가 된다. 이 대극적 차이에서 저자는 진정한 행복의 원형을 반추한다. 서울에서의 경직됨이 새삼 화두가 될 만큼 남미는 저자에게 이완됨의 극치를 보여주며 평안을 선사한 것이다.

저자는 또 사랑에 빠졌다. 매 여행지마다 저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장소가 있었다. 터키의 올림포스가 그랬다. 남미 또한 저자를 사랑에 빠지게 만든 장소가 있다. 그곳은 세계문화유산인 페루의 마추픽추도 아니고, 세계에서 가장 웅장한 폭포 이구아수도 아니다. 또한 브라질의 아이콘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도 아니고, 지구의 밀림 아마존도 아니다. 그곳은, 다름 아닌 콜롬비아 외곽의 작은 마을 '빌라 데 레이바'이다. 본래 사랑에 빠지면 호기심은 증폭된다. 장소를 사랑한 자는 그곳의 모든 특징을 발견하고 싶고 모든 길을 탐험하고 싶다. 조용하고 한적하며 아늑한 도시 외곽의 작은 마을에서 저자는 녹록지 않은 사랑에 빠진 자기자신의 모습을 직시한다. 마치 사랑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 자인 듯, 끝내 눈물을 떨구며 상념에 잠기는 저자의 지독한 사랑이 멋지다.

저자의 사랑타령은 결국 책의 제목으로 회귀하게 만든다. 제목의 의미를 사유했다. '안아라, 내일은 없는 것처럼'은 멋진 문구다. 여기서 방점은 '안아라'에 있지 않고 '내일은 없는 것처럼'에 있다. 현재의 충실을 역설하는 제목의 의미는 사랑의 원형적 기작을 암시한다. 사랑은 본래적으로 현재형이다. 과거는 지나간 것이다. 미래는 오지 않은 것이다. 과거와 미래는 교만한 시간대다. 오직 현재만이 겸손하다. 바로 지금 안아야 한다. 인간 삶의 유한성에 대한 인식은 더욱 '지금'의 중요성을 각인시킨다. 결국 책 제목 '안아라, 내일은 없는 것처럼'은 작가 오소희의 사랑에 대한 실존적 세계관을 과히 집약적으로 담아낸 명문장이다.

책을 덮은 후 다시 생각했다. 나와 오소희 사이의 거리를. 다시 이 서평의 서두로 간단히 돌아갔다. 그렇다. 나에게 오소희는 언제나 사랑스럽고 신비스러운, 여전히 그런 작가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내가 그를 너무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흐뭇한 마음으로 다음 권 <그러므로 떠남은 언제나 옳다>로 손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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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말 아침, 오랜만에 작가 오소희와 문자를 주고 받았다. 간만에 성사된 안부의 동기는 그의 신간이 출간된다는 반가운 소식에 기인한 것이었다. 항시 그의 새로운 책이 출간될 때마다 가장 먼저 구독해서 후기를 남기곤 했다. '가장 먼저'라는 속도 권력은 한 작가를 사랑하는 내 나름의 독특한 방식이었던 것이다.

 

   고백컨대, 오소희는 내 이십대의 마지막을 '서른'이라는 엄연히 다른 세계로 아름답게 연결해준 작가이다. 내 스무시절의 말미는 사랑의 '결핍'과 '과잉'이라는 양극단 사이에서 둥개고 허우적거린 시기였다. 그때 오소희는 나에게 사랑의 본질과 결혼의 의미를 토닥거렸다. 나는 그의 텍스트 속에서 '괴테'와 '톨스토이'와 '하루키'를 보았다. 그의 에세이는 과거에 사랑을 논했던 모든 고전과 인문학이 현대적 감성으로 합일되는 것을 이루어냈다. 작가의 혼잣말 수준을 넘어 자신과 타자와 우주에 노크하며 그에 적확한 반응을 얻어내는 힘이 그의 에세이 속에는 오롯하게 담겨있는 것이다.

 

   나는 그와 여러번 사석에서 만났다. 그때마다 일관되게 나에게 주문했던 그의 조언은 당시 베일 속에 가려져 있던 '내 사랑의 원형'을 뚜렷하게 각인하는 데 일조했다. 그 각인의 반복적 반추는 곧 내 첫사랑을 부활시켰고 그 사랑은 결국 결혼이라는 의식을 통해 '가족'으로 완성되었다.

 

   작가가 가진 힘은 실로 강력하다. 텍스트의 힘은 시대를 뚫고 의식을 전환시킨다. 평론가 하스미 시게이코는 동시대 비평가의 임무를 "시대를 선도해가는 작가를 죽이는 것"으로 규정한다. 개소리와 같은 시게이코의 말을 인용하는 게 웃기지만 그의 말을 독자를 주어로 패러디하면 의외로 멋진 문장이 완성된다. "동시대 독자의 임무는 시대를 선도해가는 작가를 살리는 것이다". 그렇다. 결국 작품은 독자의 머리와 가슴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며칠이 지나면 내 딸은 세 살이 된다. 오소희의 처녀작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겠지>는 세 살배기 아들과 터키를 여행하며 기록한 여행수기다. 당시 결혼 전에 읽은 책임에도 불구하고 벌벌 떨면서 몇 시간만에 읽었던 기억을 떠올린다. 그렇다면 그 책이 가진 본래성과 나의 시간적 현재성이 일치하는 며칠 후, 나는 그 책을 다시 읽어야만 하는 행복한 의무감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그렇다. 나는 작가 오소희를 사랑해도 너무 사랑했던 것이다.

 

   흐뭇한 마음으로 서점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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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적들 - 전원책의 좌파 비판
전원책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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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전원책이 처음 내 눈에 띈 건 텔레비전 토론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군가산점제를 주제로 한 토론에서 상대 여성패널을 높은 식견과 탄탄한 논리로 꾸짖는 모습은 참으로 볼만했다. 당시 그는 대한민국 젊은 남성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이후 그는 정치·사회를 주제로 한 텔레비전 토론에 자주 등장하며 건강한 보수의 입장을 대변했다. 말빨있고 순발력 넘치는 진보논객들이 활기를 띨 때 전원책의 존재는 보수의 입장에서는 오랜 갈증을 푸는 한 모금의 물과 같은 것이었다. 진중권과 유시민을 상대할 수 있는 보수논객이 있다는 것은 즐겁고 흥미로운 일이었다.

전원책의 프로필을 훑으면서 놀란 게 하나 있다. 그가 시인(詩人)이라는 사실이다. 자기 자신조차 '본업은 시인, 생업은 변호사'라 일컬을 정도로 시인에 대한 자존감이 확실한 사람이다. 실제로 그는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고 신춘문예로 재등단했다. 이미 두 권의 시집을 내기도 했다. 텔레비전에서 봐왔던 그의 이미지는 보수논객으로서의 냉철하면서도 비타협적인 신념주의자로 각인되어 왔다. 그런 그가 언어의 정점이자 언어를 넘어선 세계를 창조해내는 시인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놀랄 만했다. 그 외 집필한 몇몇 저서의 존재는, 그가 마냥 대중적 인기에 함몰된 '말만 하는 지식인'은 아니겠다, 하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전원책 변호사의 『자유의 적들』은 보수주의자로서 좌파를 비판한 책이다. 4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분량은 탄탄한 펙트와 흥미로운 소재를 풍성하게 담아냈다. 저자는 다양한 소재와 개성있는 논리로 좌파를 꾸짖는다. 일방적이고 비논리적인 비난에 함몰되지 않고 풍성하고 깊이있는 역사적·철학적 재료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다듬고 논리를 펼치는 저자의 내공은 인상적이다. 저자가 비판하는 대상은 꽤 폭넓다. 좌파의 원류인 마르크스를 위시하여 기독교와 20세기의 과학사(科學史)까지 건드릴 정도로 광범위하다.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강점은 저자의 폭넓은 인문학적 식견에 있다. 책 곳곳을 채우고 있는 다양한 철학자의 사상과 그에 대한 저자의 주관은 책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또한 문학사를 풍성하게 수놓았던 대작가의 이름도 수시로 거론된다. 그야말로 지식의 잡동사니라 할 만하다. 즉 저자는 '좌파 비판'이라는 책의 본질을 증명하기 위해 정치와 사회를 넘어서는 다양한 좌파적 카테고리를 향해 밀도있고 입체적인 파상공세를 퍼붓고 있는 것이다.

비판의 칼날이 닿는 범위는 폭넓고 수위는 가차없다. 좌파를 비판한 책이기 때문에 좌파의 본령이자 원류인 마르크스는 저자에 의해 갈기갈기 찢어진다. 또한 실존주의의 거장 사르트르를 강도높게 비난한다. 인류가 낳은 가장 위대한 소설가 톨스토이도 혼쭐이 난다. 한미(韓美) 전직 대통령들도 예외는 아니다. 수많은 지식인, 철학자, 작가, 정치인, 언론인 등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공격대상은 다양하다. 공세수위 또한 상당히 높아서 '씹는 맛'의 희열만으로 책장은 쉽게 넘어간다. 저자는 특히 마르크스와 사르트르에 대해 한맺힌 분노를 뿜어내는데, 그들을 인류의 절대악으로 규정한다.

마르크스를 신랄하게 짓밟는 저자의 논거는 대부분 어렵지 않게 수용될 수 있는 것들이다.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중 하나는 '기존질서에 대한 폭력적 전복'이다. 마르크스의 의도와는 별개로 그의 사상을 추종하고 영향받은 독재자들에 의해 인류의 고통과 질곡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피할 길이 없다. 그 어떤 면죄부를 끌어다 놓더라도 '집단화의 폐착'으로 귀결된 '혁명을 위한 불가피한 폭력'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카를 마르크스에게 있다. 지식인에게 '해석'의 의무보다 '변혁'의 역할을 강조했던 마르크스의 전언은 결국 자신을 꾸짖고 굴절시키는 '자기부정'이 되고 있다. 저자가 마르크스와 사르트르에게 퍼붓는 강도높은 질타의 당위성은 보혁(保革)의 이념을 초월하는 보다 궁극적인 가치의 선상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간 한국의 지식사회에서 보수에 대한 진보의 비판은 양질(良質)의 콘덴츠가 나름 잘 생산되어 왔다. 하지만 그 반대의 입장은 빈약했던 게 사실이다. 양적으로 적었을 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싸구려가 많았다. 대형서점의 정치·사회 코너를 한바퀴 돌면 이를 확연히 체감할 수 있다. 우리사회에서 논리가 전제된 보수지식인의 폭과 영향력이 얼마나 초라해왔는지를 인식하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다. 이런 배경에서 이 책은 단연 눈에 띈다.

물론 이 책의 한계가 없는 건 아니다. 저자의 역사적·철학적 식견이 잘 버무러져 좌파를 해부해고 재단한 점은 충분한 설득력을 띤다. 일방적인 비난이 아니라 오랜 기간 연구하고 입장을 정리한 저자의 준비성 또한 돋보인다. 하지만 수없이 많은 소재를 건드리면서 책 전체를 응집하는 구심력은 다소 부족하다. 책의 구성뼈대가 되는 26개의 소재가 산만하게 흩어져 있어 초반에는 흥미있게 책장이 넘어가다가도 중반을 넘기면서는 주제성을 잃은 엉성한 곁가지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다소 난삽한 것이다. 구심력을 잃게 되면 자연스럽게 원심력이 작동하는 법이다. 충분히 흥미로우면서도 전체적인 힘은 떨어지는 완료성의 미흡이 이 책의 한계다.

저자는 많은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많은 얘기를 하기 위해 배치된 많은 소재와 그에 따른 불필요한 논거가 너무 많이 사용됐다. 그것이 저자의 주장이 응집력을 잃고 난삽하게 흩어지며 '좌파 비판'이라는 책의 본질을 흐려지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본질에 이탈한 여러 소재를 난잡한 병렬식 구도로 풀이하기보다 큰 틀의 몇몇 주제를 세우고 그 안에서 논지를 전개하며 유기성을 갖췄다면 보다 힘있는 책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대통령 선거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지지율 1%도 안되는 모후보의 사퇴로 본격적인 보수와 진보의 양자대결이 되었다. 그들이 진짜 보수인지 진짜 진보인지는 차후의 문제로 넘기자.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기 이전에 '정직'과 '정의'와 '상식'의 전제가 필요하다. 그 전제는 절대조건이다. 보수도 좋고 진보도 좋다. 궁극적으로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 자체의 문제인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전원책의 좌파 비판 『자유의 적들』은 한국사회의 굴곡된 이념주의의 자화상을 '동전의 앞뒷면적' 차원에서 응시하게 하는, 흥미롭지만 힘은 부족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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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연기를 훔쳐라 - 배우지망생에게 전하는 신현준의 연기노트
신현준 지음 / 한국슈타이너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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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예인의 책 출간을 즐겁게 보지 않는 편이다. 연예인이라는 네임벨류에 편승해 책 한 권 팔아보고자 하는 교묘한 상술을 경계하기 때문이다. 물론 텍스트의 질이 우선이다. 연예인이냐 아니냐는 비본질에 속한다. 얼마나 훌륭한 책이냐가 본질인 것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간 읽어왔던 대부분의 연예인 책들을 곱씹어보면 씁쓸함 그 자체이다.

한 권의 책은 오직 책으로서 존재한다. 작가의 이력과 평판은 중요하지 않다. 책은 책이다. 유명한 사람이 썼다고 해서 텍스트의 권위가 우위에 있는 것이 아니며 유명작가의 신작이라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지금 내가 잡고 있는 텍스트의 현재상. 그것이 한 권의 책에 대한 유일한 평가기준이다.

이토록 나는 책 평가에 있어 단호한 편이다. 리뷰어로서 양심과 주관을 팔 순 없다. 하지만 이러한 책에 대한 내 신념도 가끔 굴곡될 때가 있다. 이는 철저히 내 개인적 성향에 기인하는데, 나는 좋아하는 사람에게 관대한 편이다. 대인관계는 물론 책읽기에서도 이러한 성향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신경숙의 소설은 다 좋고 오소희의 여행수기는 다 좋다. 책 평가에서 작가의 외연은 중요하지 않지만 작가를 향한 내 호감도는 여전히 종속적이다. 어찌할꼬. 이 궤변을.

배우 신현준을 좋아한다. 그렇기에 연예인의 책 출간을 곱지 않게 바라보면서도 그가 책을 출간한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찾아 읽곤 했다. 신현준의 신간 <배우, 연기를 훔쳐라>는 배우 지망생에게 전하는 신현준의 연기노트다. 책의 구성은 간명하다. 연기경력 20년이 넘는 중견배우로서 저자가 후배에게 들려주는 애정어린 조언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책 곳곳에서 배우로 살아가는 것의 고통과 자부심, 후배들을 향한 진실어린 애틋함이 잘 녹아 있다. 무엇보다 현재 방송연예과 교수로 재직중인 그의 이력을 증명하듯 연기와 배우에 대한 실재적이고 기술적인 조언들이 틈틈하게 잘 기록되어 있다.

저자는 '오디션', '감독과의 관계', '촬영기법', '인터뷰 스킬', '매니지먼트' 등 배우로서 숙지해야 할 여러요소들에 대해 설명한다. 곳곳에 자신의 경험담과 동료배우의 예를 언급하며 독자의 눈을 사로잡는다. 저자가 20년 동안 얼마나 많은 작품에 출연했는지 책 곳곳에서 확인된다. 또한 여러 배우들과 절친하게 지내는 저자의 인맥도 눈에 띈다. 배우로서의 프로의식을 확인하는 데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저자 신현준의 확고한 배우관, 연기관이 책 속에 잘 드러나 있다.

하지만 이 책의 한계 또한 곳곳에서 발견된다. 엄밀히 말해서 '한 권의 책'으로 평가하기에 함량미달인 부분이 많다. 메시지의 타겟을 배우 지망생에 한정하였기 때문에 독자층의 보편적 공감을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군데군데 설명해놓은 배우가 가져야 할 전문적인 기술 관련 내용은 좋다. 하지만 대부분의 글이 서점에 범람해 있는 자기계발서의 반복 정리된 수준에 머물러 있어 아쉽다. 저자의 진정성과 열정만으로 좋은 책이 될 수는 없다. 그가 배우로서 흘렸던 땀과 고통만큼이나 글쓰기도 많은 노력을 요구한다. 앞으로 꾸준히 책을 집필할 의사가 있다면 글쓰는 자로서의 역량과 밀도도 고민해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책의 막장을 덮은 후 배우라는 직업의 존재성에 대해 잠시 사유했다. 저자가 배우 지망생 후배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결코 새로운 것들이 아니다. '뚜렷한 목표의식'과 '예리하고 섬세한 감각', '철저한 자기관리'와 '변하지 않는 초심'은 비단 배우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직종과는 상관없이 일에 승리하고 사람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들이다. 어쩌면 배우라는 직업만큼 가장 '인간적인' 직업은 없을 것이다. 인간의 표정과 몸짓을 연구하고 내면과 행태를 천착하며 남이 직접 되어보는 게 바로 배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배우는 가장 적극적인 타인이며 가장 실재적인 인간학도다.

이런 면에서 책과 배우는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인간학이라는 측면에서 배우는 책과 가까울 수밖에 없다. 책과 배우의 공통분모는 인간탐구이다. 끊임없이 인간을 탐구하고 성찰하는 과정 속에서 책과 배우의 실존이 놓여 있다. 저자가 책 곳곳에서 독서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도 그 때문이리라. 책읽기가 인간을 성찰하는데 가장 건강하고 객관적인 방법이라는 데 이견을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배우로서 책이 가진 힘을 인정하고 그것을 사랑하며 후배들에게 장려하는 배우 신현준의 모습. 막장의 저자의 책 추천리스에 미소를 짓는다. 순전히 그것 때문에 별점 반 개를 더 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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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과 바다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8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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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먹는 걸 마냥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시간이 흘러갔다는 것이고 그만큼 잃어버릴 것이 많다는 것이며 삶의 끝으로 점점 가까이 다가선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보편적인 상식에서 사람들은 나이먹는 걸 꺼려하고 젊음을 갈망한다. 하지만 세상에서 영원한 것은 없다. 인간 또한 하나의 생명체로서 시간이 흐르면 늙는다. 그것이 우주의 이치이다.

나도 그랬다. 나이 스물아홉의 시절을 나는 선연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때는 서른이 되는 게 너무 싫었다. 젊음을 표상하는 스물을 졸업하기 싫었고 어감부터 부담스러웠던 서른의 입학에 소름을 돋았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결혼을 했고 아이까지 낳은 삼십대 중반의 나이가 되었지만 당시 서른을 절대악으로 규정하고 내면에서 샘솟는 현실 부정을 주체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이 얼마나 미련하고 부질없는 고민이었는지 모른다. 내 힘으로 어쩔수 없는 명확한 우주의 섭리에 대해 시위하고 반발한 것이 공허하고 부끄럽기만 하다. 본질은 '늙어가는 것'에 있지 않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늙는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늙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품위있고 매력있게 늙어갈 수 있는 것. 그것은 분명 신의 축복이다.

세계 문학사에서 가장 매력적인 노인을 만들어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다시 읽었다.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는 전형적인 헤밍웨이표 주인공으로서 강렬한 문체만큼이나 힘있는 인물이다. 망망대해에서 청새치와 사투를 벌이고 상어와 혈투를 벌이는 산티아고의 집념이야말로 늙음의 본질적인 기준은 나이가 아닌 정신의 문제임을 일깨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의 포인트를 한 노인(인간)의 불굴의 의지와 열정으로 잡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러한 일면적 감상은 헤밍웨이를 한없이 초라하게 만들 뿐이다. 주인공 산티아고가 지닌 근본적인 매력은 며칠동안 청새치와 씨름하고 그 청새치를 지키기 위해 상어떼와 사투를 벌이는 데 있지 않다. 산티아고의 진정한 위대함은 물고기와의 죽음을 건 혈투가 끝난 후 별일 없다는 듯 집에 가서 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 여유있게 커피를 마시는 데 있다. 강렬하고 지독한 삶의 순간순간 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고 다시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는 힘. 그것이 노인 산티아고가 가진 가장 강력한 힘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인생 여정 가운데 특별한 것에 경도되는 경우가 많다. 영화나 드라마 같은 삶을 동경하며 자기체면에 걸림으로써 비현실적 삶을 추구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특히 이러한 경향은 젊은이들에게서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삶의 몇몇 순간이 기적이 되고 이벤트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삶 전체를 기적으로 채우고자 하는 건 환상이자 탐욕이다. 그것은 기적의 본질에 무지한 이들의 일탈이다. 삶 전체를 송두리째 기적으로 인식하고 싶은 사람들의 망상이 결국 건강한 인생궤도를 이탈하게 만든다. 삶이란 그저 살아가는 것이다. 전적으로 평범한 것이다. 삶의 기적은 시간의 도도한 흐름 가운데 작동되는 일상성의 재발견이다. 결국 보편과 일관一貫이 진정한 삶의 기적을 완성시킨다. 산티아고가 가진 강인함은 바로 이러한 삶의 진리에 맞닿아 있다.

인간은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 라는 소설 속 명문장은 헤밍웨이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잘 말해준다. 인생의 무대 위에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과정과 결과를 만난다. 삶의 과정과 결과는 종속적으로 얽혀있기도 하지만 때로는 독립적인 영역으로 분리되기도 한다. 인과관계로 풀이될 수 없는 삶의 다양한 역동 속에서 인간은 끊임없이 고민하고 요동친다. "파괴는 있되 패배는 없다"는 말은 결국 정신적 가치의 승리를 웅변하는 것이다. 인간의 참된 승리는 정신의 세계에서 실현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설령 파괴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패배가 아닌 승리의 영역에 놓이게 되는 것이다.

나는 『노인과 바다』를 유독 젊은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사실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포기하는가. 그리고 결과만을 중시하는가. 학업이든 일이든 사랑이든 그 어떤 것이든 젊음의 가장 큰 힘은 도전과 모험으로 대변되는 과정의 영역에서 나오는 법이다. 최소한의 개척정신마저 결락된 젊음은 이미 죽은 젊음이다. 만약 『노인과 바다』의 주인공 산티아고가 젊은 사람이었다면 소설의 감동은 반감되었을 것이다. 노인이었기 때문에 헤밍웨이의 메시지가 독자에게 보다 강렬하게 다가갈 수 있었다. 노인임에도 불구하고 젊음의 본질을 가장 명확하고 적확하게 그리고 생동감 있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이 이 소설을 탐독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양한 자아 가운데 자신의 진본을 찾아헤매는 이땅의 젊은이들에게 고전 『노인과 바다』를 아낌없이 추천한다.

작년까지 헤밍웨이의 작품은 검증되지 않은 번역본들로 적지 않이 쏟아져 왔다. 올해부터는 사후 50년 저작권법이 풀리면서 역량있는 번역가와 권위있는 출판사에서 본격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그간 영미문학을 많이 번역해온 김욱동 교수의 번역은 여전히 깔끔하다. 번역자로서 김욱동 교수의 장점은 자신의 번역이 절대적이지 않음을 인정하는 데 있다. 평소 빠른 개역이 이를 증명한다. 그가 3년을 준비했다는 민음사판 『노인과 바다』 번역은 부족함이 없을 만큼 깔끔했다. 헤밍웨이 특유의 강건체를 무난하게 번역한 느낌이다. 문장의 호흡을 짧게 처리하고 문체의 건조함을 잘 살렸다. 성실한 각주와 해설작업 또한 훌륭한 부분이다. 문제없는 번역이다.

서평을 정리하자. 『노인과 바다』는 강력한 소설이다. 주인공의 매력과 특유의 강건한 문체는 독자의 눈을 떼지 못하게 하고 명확한 주제의식과 강인한 흡입력은 독자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다. 고전은 역시 고전이다. 또한 헤밍웨이는 역시 헤밍웨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는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소설이다.

 

 

 

 

Written By David

http://blog.naver.com/gilsa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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