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적들 - 전원책의 좌파 비판
전원책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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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전원책이 처음 내 눈에 띈 건 텔레비전 토론프로그램을 통해서였다. 군가산점제를 주제로 한 토론에서 상대 여성패널을 높은 식견과 탄탄한 논리로 꾸짖는 모습은 참으로 볼만했다. 당시 그는 대한민국 젊은 남성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았다. 이후 그는 정치·사회를 주제로 한 텔레비전 토론에 자주 등장하며 건강한 보수의 입장을 대변했다. 말빨있고 순발력 넘치는 진보논객들이 활기를 띨 때 전원책의 존재는 보수의 입장에서는 오랜 갈증을 푸는 한 모금의 물과 같은 것이었다. 진중권과 유시민을 상대할 수 있는 보수논객이 있다는 것은 즐겁고 흥미로운 일이었다.

전원책의 프로필을 훑으면서 놀란 게 하나 있다. 그가 시인(詩人)이라는 사실이다. 자기 자신조차 '본업은 시인, 생업은 변호사'라 일컬을 정도로 시인에 대한 자존감이 확실한 사람이다. 실제로 그는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고 신춘문예로 재등단했다. 이미 두 권의 시집을 내기도 했다. 텔레비전에서 봐왔던 그의 이미지는 보수논객으로서의 냉철하면서도 비타협적인 신념주의자로 각인되어 왔다. 그런 그가 언어의 정점이자 언어를 넘어선 세계를 창조해내는 시인이라는 사실은 충분히 놀랄 만했다. 그 외 집필한 몇몇 저서의 존재는, 그가 마냥 대중적 인기에 함몰된 '말만 하는 지식인'은 아니겠다, 하는 기대감을 갖게 했다.

전원책 변호사의 『자유의 적들』은 보수주의자로서 좌파를 비판한 책이다. 400페이지가 넘는 두꺼운 분량은 탄탄한 펙트와 흥미로운 소재를 풍성하게 담아냈다. 저자는 다양한 소재와 개성있는 논리로 좌파를 꾸짖는다. 일방적이고 비논리적인 비난에 함몰되지 않고 풍성하고 깊이있는 역사적·철학적 재료를 통해 자신의 주장을 다듬고 논리를 펼치는 저자의 내공은 인상적이다. 저자가 비판하는 대상은 꽤 폭넓다. 좌파의 원류인 마르크스를 위시하여 기독교와 20세기의 과학사(科學史)까지 건드릴 정도로 광범위하다.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강점은 저자의 폭넓은 인문학적 식견에 있다. 책 곳곳을 채우고 있는 다양한 철학자의 사상과 그에 대한 저자의 주관은 책 읽는 재미를 배가시킨다. 또한 문학사를 풍성하게 수놓았던 대작가의 이름도 수시로 거론된다. 그야말로 지식의 잡동사니라 할 만하다. 즉 저자는 '좌파 비판'이라는 책의 본질을 증명하기 위해 정치와 사회를 넘어서는 다양한 좌파적 카테고리를 향해 밀도있고 입체적인 파상공세를 퍼붓고 있는 것이다.

비판의 칼날이 닿는 범위는 폭넓고 수위는 가차없다. 좌파를 비판한 책이기 때문에 좌파의 본령이자 원류인 마르크스는 저자에 의해 갈기갈기 찢어진다. 또한 실존주의의 거장 사르트르를 강도높게 비난한다. 인류가 낳은 가장 위대한 소설가 톨스토이도 혼쭐이 난다. 한미(韓美) 전직 대통령들도 예외는 아니다. 수많은 지식인, 철학자, 작가, 정치인, 언론인 등에 이르기까지 저자의 공격대상은 다양하다. 공세수위 또한 상당히 높아서 '씹는 맛'의 희열만으로 책장은 쉽게 넘어간다. 저자는 특히 마르크스와 사르트르에 대해 한맺힌 분노를 뿜어내는데, 그들을 인류의 절대악으로 규정한다.

마르크스를 신랄하게 짓밟는 저자의 논거는 대부분 어렵지 않게 수용될 수 있는 것들이다. 마르크스주의의 핵심 중 하나는 '기존질서에 대한 폭력적 전복'이다. 마르크스의 의도와는 별개로 그의 사상을 추종하고 영향받은 독재자들에 의해 인류의 고통과 질곡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피할 길이 없다. 그 어떤 면죄부를 끌어다 놓더라도 '집단화의 폐착'으로 귀결된 '혁명을 위한 불가피한 폭력'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카를 마르크스에게 있다. 지식인에게 '해석'의 의무보다 '변혁'의 역할을 강조했던 마르크스의 전언은 결국 자신을 꾸짖고 굴절시키는 '자기부정'이 되고 있다. 저자가 마르크스와 사르트르에게 퍼붓는 강도높은 질타의 당위성은 보혁(保革)의 이념을 초월하는 보다 궁극적인 가치의 선상에 놓여 있는 것이다.

그간 한국의 지식사회에서 보수에 대한 진보의 비판은 양질(良質)의 콘덴츠가 나름 잘 생산되어 왔다. 하지만 그 반대의 입장은 빈약했던 게 사실이다. 양적으로 적었을 뿐만 아니라 질적인 면에서도 싸구려가 많았다. 대형서점의 정치·사회 코너를 한바퀴 돌면 이를 확연히 체감할 수 있다. 우리사회에서 논리가 전제된 보수지식인의 폭과 영향력이 얼마나 초라해왔는지를 인식하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다. 이런 배경에서 이 책은 단연 눈에 띈다.

물론 이 책의 한계가 없는 건 아니다. 저자의 역사적·철학적 식견이 잘 버무러져 좌파를 해부해고 재단한 점은 충분한 설득력을 띤다. 일방적인 비난이 아니라 오랜 기간 연구하고 입장을 정리한 저자의 준비성 또한 돋보인다. 하지만 수없이 많은 소재를 건드리면서 책 전체를 응집하는 구심력은 다소 부족하다. 책의 구성뼈대가 되는 26개의 소재가 산만하게 흩어져 있어 초반에는 흥미있게 책장이 넘어가다가도 중반을 넘기면서는 주제성을 잃은 엉성한 곁가지들을 자주 만나게 된다. 다소 난삽한 것이다. 구심력을 잃게 되면 자연스럽게 원심력이 작동하는 법이다. 충분히 흥미로우면서도 전체적인 힘은 떨어지는 완료성의 미흡이 이 책의 한계다.

저자는 많은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많은 얘기를 하기 위해 배치된 많은 소재와 그에 따른 불필요한 논거가 너무 많이 사용됐다. 그것이 저자의 주장이 응집력을 잃고 난삽하게 흩어지며 '좌파 비판'이라는 책의 본질을 흐려지게 하는 원인으로 작용했다. 본질에 이탈한 여러 소재를 난잡한 병렬식 구도로 풀이하기보다 큰 틀의 몇몇 주제를 세우고 그 안에서 논지를 전개하며 유기성을 갖췄다면 보다 힘있는 책이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대통령 선거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지지율 1%도 안되는 모후보의 사퇴로 본격적인 보수와 진보의 양자대결이 되었다. 그들이 진짜 보수인지 진짜 진보인지는 차후의 문제로 넘기자. 중요한 것은 사람이다. 보수와 진보를 구분하기 이전에 '정직'과 '정의'와 '상식'의 전제가 필요하다. 그 전제는 절대조건이다. 보수도 좋고 진보도 좋다. 궁극적으로 그것을 '실행'하는 사람 자체의 문제인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전원책의 좌파 비판 『자유의 적들』은 한국사회의 굴곡된 이념주의의 자화상을 '동전의 앞뒷면적' 차원에서 응시하게 하는, 흥미롭지만 힘은 부족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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