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아라, 내일은 없는 것처럼 소희와 JB, 사람을 만나다 남미편 1
오소희 지음 / 북하우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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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작가가 있다. 보통 독자가 작가를 좋아하게 되는 과정은 고만고만하다. 처음에는 작가의 텍스트에 매료된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게 되면 작가 자체를 사랑하는 경향을 띤다. 한 작가를 오랫동안 탐구하고 사랑하다 보면 어느덧 그 작가와 그의 텍스트가 한 지점에서 합일되고 응축되는, 그리하여 자기 가슴속에 아로새겨지는 귀결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왠만해서는 이별할 수 없는 지독한 사랑이 시작되고야 만다.

에세이작가 오소희는 나에게 그런 존재다. 어느덧 그는 나에게 농밀한 존재가 되어 있다. 나는 그를 통해 내 젊은 시절을 가득 채웠던 대작가의 숨결을 읽었다. 오소희는 톨스토이다. 사랑을 말하기 때문이다. 오소희는 괴테다. 지독하게 사랑을 말하기 때문이다. 오소희는 하루키다. 사랑을 말해도 '너무' 말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오소희는 사랑 예찬론자다. 내가 그를 사랑하는 첫 번째 이유다.

오소희는 나에게 항시 '신비로움'을 견지한다. '신비롭다'는 말은 "시간이 가진 권력을 이겨낸다"는 내밀한 속성을 함의한다. 신비롭기 위해서는 '과거·현재·미래'가 동일한 시간대로 통합되고 유지될 수 있어야 한다. 시간을 견디고 무료를 초월하며 실존을 관리하는 자존감은 신비로움을 발현해내는 필수불가결한 전제이다. 오소희는 내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현재라는 단 하나의 시간대로 통합시키는 신비로운 작가인 것이다. 그것이 내가 그를 사랑하는 두 번째 이유다.

사랑을 예찬하고 신비를 견지하는 작가 오소희의 신간이 출시됐다. 그의 신간소식은 언제나 나를 들뜨게 했(한)다. 이번에는 남미다.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았는지 이번 신간은 두 권으로 구성됐다. <안아라, 내일은 없는 것처럼>은 그 시리즈의 첫 번째다. 이 책은 '페루-볼리비아-브라질-콜롬비아'로 이어지는 남미 여행기다. 역시 아들 중빈과 함께 했다. 세 살이었던 중빈이는 이 책에서 열 살이 되었다. 벌써 7년의 시간이 흘렀다.

남미를 여행지로 삼은 저자의 선택은 전혀 어색하지 않다. 그간 다뤄왔던 나라들을 보라. 터키, 라오스, 아프리카는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여행지가 아니다. 지금까지 저자가 보여준 세계여행의 동선은 그의 여행포인트를 잘 집약한다. 저자에게 여행지의 네임벨류는 비본질에 속한다. 오히려 그것을 거부한다. 대중의 시선이 잘 미치지 않는 곳, 인기 여행지가 되기에 부족한 곳이 저자의 목적지가 된다. 저자가 여행을 떠나고 싶을 때는 피로할 때였다. 일상에서 더 낮아지기 힘들어 자신의 직립을 피로하게 느낄 때 비로소 떠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저자의 여행철학은 남미가 가진 본질적인 매력이 무엇인지를 은밀하게 암시한다.

신간 <안아라, 내일은 없는 것처럼>은 저자 특유의 문체를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전작과는 다른 힘이 느껴지는 책이다. 전작들은 저자의 주관적 관조를 바탕으로 인간과 세계를 읽어내는 재미가 중심이 됐다. 반면 이 책은 객관적 사실에 의거한 각 나라와 역사에 대한 서술을 이례적으로 많이 할당했다. 즉 남미국가들이 갖는 고유성, 역사성, 연계성을 적절한 분량으로 제시함으로써 여행의 에피소드와 사람들을 관찰하며 추출한 기존방식의 이야깃거리를 보다 긴밀하고 입체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저자의 이러한 시도는 남미에 생소한 독자에게 나름의 정보를 제공함과 동시에 그곳을 더욱 치밀하게 쳐다보게 하는 장치가 된다. 잉카의 중흥과 몰락, 스페인과 포르투칼의 정복사, 남미의 독립영웅 볼리바르, 페드로 2세와 룰라의 브라질 개혁 등 곳곳에 배치된 짤막한 역사 서술은 독자의 남미 탐구를 견인하는 안내서의 역할을 한다. 각 나라를 이동할 때마다 현재의 남미를 일군 역사적 사실에 대해 짧지만 요점적으로 정리했다. 독자는 저자의 자상한 배려로 인해 남미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저자의 발자취를 더욱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게 된다.

저자가 탐색한 남미의 삶은 한국의 그것과는 많이 대조적이다. 자신의 감정에 충실하고 맨살을 그대로 내보이는 남미인의 모습은 겉치레를 중시하는 한국인의 유전자와는 조화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경직'의 한국적 삶은 '이완'의 남미적 삶과는 다르다. 하지만 서로의 장단을 논하기 앞서 저자는 매우 중요한 화두를 던진다. 그것은 바로 '행복'이다. 속도와 정보, 경쟁과 효율의 논리에 휩싸인 한국식 신자유주의는 세계 1위의 자살률로 대변되는 불행복한 현재상의 원인이다. 그러나 한국보다 훨씬 도태된 경제력을 가진 남미국가의 느리고 이완된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월등히 높은 행복지수의 동기가 된다. 이 대극적 차이에서 저자는 진정한 행복의 원형을 반추한다. 서울에서의 경직됨이 새삼 화두가 될 만큼 남미는 저자에게 이완됨의 극치를 보여주며 평안을 선사한 것이다.

저자는 또 사랑에 빠졌다. 매 여행지마다 저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장소가 있었다. 터키의 올림포스가 그랬다. 남미 또한 저자를 사랑에 빠지게 만든 장소가 있다. 그곳은 세계문화유산인 페루의 마추픽추도 아니고, 세계에서 가장 웅장한 폭포 이구아수도 아니다. 또한 브라질의 아이콘 리우데자네이루의 예수상도 아니고, 지구의 밀림 아마존도 아니다. 그곳은, 다름 아닌 콜롬비아 외곽의 작은 마을 '빌라 데 레이바'이다. 본래 사랑에 빠지면 호기심은 증폭된다. 장소를 사랑한 자는 그곳의 모든 특징을 발견하고 싶고 모든 길을 탐험하고 싶다. 조용하고 한적하며 아늑한 도시 외곽의 작은 마을에서 저자는 녹록지 않은 사랑에 빠진 자기자신의 모습을 직시한다. 마치 사랑하기 위해 여행을 떠난 자인 듯, 끝내 눈물을 떨구며 상념에 잠기는 저자의 지독한 사랑이 멋지다.

저자의 사랑타령은 결국 책의 제목으로 회귀하게 만든다. 제목의 의미를 사유했다. '안아라, 내일은 없는 것처럼'은 멋진 문구다. 여기서 방점은 '안아라'에 있지 않고 '내일은 없는 것처럼'에 있다. 현재의 충실을 역설하는 제목의 의미는 사랑의 원형적 기작을 암시한다. 사랑은 본래적으로 현재형이다. 과거는 지나간 것이다. 미래는 오지 않은 것이다. 과거와 미래는 교만한 시간대다. 오직 현재만이 겸손하다. 바로 지금 안아야 한다. 인간 삶의 유한성에 대한 인식은 더욱 '지금'의 중요성을 각인시킨다. 결국 책 제목 '안아라, 내일은 없는 것처럼'은 작가 오소희의 사랑에 대한 실존적 세계관을 과히 집약적으로 담아낸 명문장이다.

책을 덮은 후 다시 생각했다. 나와 오소희 사이의 거리를. 다시 이 서평의 서두로 간단히 돌아갔다. 그렇다. 나에게 오소희는 언제나 사랑스럽고 신비스러운, 여전히 그런 작가이다.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럴 것이다. 내가 그를 너무 사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흐뭇한 마음으로 다음 권 <그러므로 떠남은 언제나 옳다>로 손을 옮긴다.

 

 

 

 

 

 

 

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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