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천연기념물 제조가
조대호 지음 / 아름다운사람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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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소설을 왜 읽는가. 이 질문에 대해 사람들은 가지각색의 답변을 늘어놓을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답변들은 대부분 큰 두 가지의 본류로 정리된다. 그것은 바로 '재미'와 '감동'이다.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인간을 탐구하는 산문문학의 한 장르이다. 이유 없이 만들어진 소설은 없다. 모든 소설은 작가의 의식과 가치관을 담은 허구의 이야기이다. 독자는 픽션의 세계를 통해 현실을 보다 냉정하게 바라보고 인간을 입체적으로 성찰할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에서 좋은 소설은 독자에게 반드시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나에게 소설을 왜 읽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내면적으로는 인간에 대한 성찰을 위해서고 외연적으로는 재미와 감동을 위해서다. 그렇기에 나는 재미와 감동(교훈)을 함께 주는 소설을 좋아한다. 잘 쓰여진 소설은 현실을 적절히 비틀어서 세계의 변혁을 요구한다. 소설 창조의 목적은 결국 인간인 것인데 좋은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인간의 본성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심미안의 지혜를 이끌어낸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소설을 읽는다.

  한국소설에 애착이 많은 편이다. 최근 한국문학에 흥미를 잃은 독자들이 많은 듯하다. 한국소설의 매력이 외국의 것들에 비해 객관적으로 부족함이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난 한국소설을 멀리하고 싶지 않다. 자국인의 정서로 가공된 상상력을 자국어로 전개해나가는 한국소설에 녹록지 않은 연대와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팔구십 년대의 후일담 문학을 넘어서 한국소설도 이제는 다양한 소재와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참신한 변화를 이뤄가고 있다. 난 믿는다. 한국어의 위대함과 한국문학의 진보를.

  한국소설을 두루 읽다 보면 가끔씩 놀랄 때가 있다. 출간은 됐지만 유명세가 없어 서점 구석에 쳐박혀 있는 보석과 같은 소설을 만났을 때가 그렇다. 그럴 때 리뷰어의 숨은 가빠진다. 수없이 많은 책들 가운데 옥석을 구분하여 이웃에게 양서를 소개하는 의무가 리뷰어에게 있기 때문이다. 프로든 아마추어든 리뷰어의 역할은 책을 선택하고 소개하는 일이다. 좋은 소설은 재미와 감동을 주는 소설이라고 했던가. 어느덧 가빠진 숨을 몰아내고 리뷰어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마음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쓴다.

  반가운 소설을 만났다. 간만에 시간의 속도를 잊은 채 읽었다. 소설 『천연기념물 제조가』는 매력적인 제목 이상으로 나에게 흥미진진한 재미와 가볍지 않은 교훈을 선사했다. 85년생 소설가 조대호는 첫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탄탄한 구성으로 매력적인 장편소설을 완성시켰다. 장편소설은 그 형태적 특징으로 인해 독자로 하여금 작품 속 인물과 사건을 더욱 깊이있게 들여다보게 한다. 단편보다 훨씬 긴 호흡을 요구하기 때문에 독자는 이야기를 총체적으로 들여다보고 소설의 메시지를 살피게 된다. 이러한 구조론적인 관점에서 소설 『천연기념물 제조가』는 흠을 찾아볼 수 없는 매우 잘 쓰여진 소설이다.

  작가는 꽤 무거운 주제를 도저하고 엄숙한 방식에서 벗어나 매우 흥미로운 서사로 만들어냈다. 주인공 신관우가 겪는 믿기 힘든 경험을 통해 인간과 자연 사이의 오묘한 관계를 소름 돋는 픽션으로 그려냈다. 제목 '천연기념물 제조가'는 말 그대로 천연기념물을 제조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소설 속에서 '진벽회'라는 단체로 명명된다. 소설을 읽다 보면 그들이 어떤 일을 하는 단체인지 알게 되는데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충격적이다. 그들은 TV드라마 <아이리스>, <아테나>와 같이 국적과 민족을 초월하는 비밀조직이다. 무엇보다 인간이 파괴한 자연을 되살리기 위해 어떤 행동도 서슴지 않는 무서운 집단이다. 소설 『천연기념물 제조가』는 바로 그들의 이야기다.

  소설 속에서 진벽회는 매우 무서운 집단으로 존재한다. 그들은 인간 자체를 증오하고 불신한다. 인간의 이기심과 악한 본성이 자연의 질서를 훼손해왔고 이를 복원할 능력이 인간 스스로에게 내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을 불신하기 때문에 그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들은 지구상 곳곳에 은밀한 형태로 숨어 임무를 수행한다.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개체를 멸종시키기도 하고 그것을 방해하는 다른 개체를 살상하기도 한다. 이 괴기한 진벽회의 행위는 엽기를 넘어서는 근원적인 무서움에까지 닿아 있다. 그 무서움은 바로 인간의 진본眞本에 대한 질문이다.

  인간을 제외한 지구상의 모든 동물은 딱 생존을 위해서만 움직인다. 생존은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존재를 규정한다. 하지만 인간만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생존 이외의 것을 추구하는 욕심을 위해 이성理性을 작동시킨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어준 그 위대한 이성으로 인해 오히려 인간은 '악마'가 되었다. 그렇다면 인간은 자연과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인가. 인간이 자랑스럽게 발전시켜온 과학기술의 편리성이 애초의 우주 자연의 순환성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엄연한 현실에서 인간은 인간 스스로 자연의 본래성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일까. 과연 인간에게 그만한 자정능력이 있는 걸까. 작가는 이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내리지 않는다. 인간을 멸종시킴으로써 자연을 지킬 수 있다는 진벽회와 인간의 본성 속에 지켜낼 수 있는 힘과 희망이 있다는 신관우의 대결을 암시하는 것으로 소설의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결국 작가는 자신이 고민했던 부분, 즉 소설의 결론을 독자에게 토스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는 본인의 메시지에 대해 깊게 경청하고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은밀한 외침을 독자에게 호소하는 장치가 된다. 환경에 대한 위기의식은 비단 어제오늘의 경고가 아니다. 국제사회 곳곳에서 환경파괴에 대한 염려와 예방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들이 눈에 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이 위기를 대하는 경각警覺의 밀도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인간이 위대한 것은 이성을 지닌 존재라는데 있다. 오직 인간만이 갖고 있는 고결하고 고등한 이성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인간은 천사가 될 수도 있고 악마가 될 수도 있다. 인간의 순전한 이성이 현실인식의 디테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고도의 경각으로 세계 변혁의 원동이 된다면, 그렇다면, 인간에게는 분명 희망이 있을 것이다.

  에드워드 카의 말대로 인간의 정신문명은 반드시 진보한다. 그리고 그 진보에 대한 믿음은 어떤 자동적인 또는 불가피한 진행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인간 능력의 계속적 발전에 대한 믿음에 연유한다. 어쩌면 지구상 대부분의 인간들은 유전자 속에 태생적으로 그것을 인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경각하고 행동하지 않을 뿐. 작가 또한 그 일말의 희망과 기대 가운데 펜을 들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자신의 소설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짐으로써 심각한 지구병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소설이 좋은 것은 그것이 허구의 세계라는 데 있다. 허구는 사실의 참혹한 단면을 효과적으로 인식하게 한다. 현실을 벗어난 세계이기 때문에 독자는 '만약'을 상정하고 현실을 보다 냉정하게 들여다보게 된다. 더 나아가 독자는 문제의 단면을 인식하고 인지함으로써 세계에 대한 태도를 설정하고 견지하게 된다. 소설의 힘이 바로 여기에 있다. 소설이 상정한 허구가 엄연한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지나친 가정법 위에서 독자는 당혹하고 심장을 두근거리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소설적 사고의 긴요성이다.

  서평을 정리하자.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소설가 조대호의 『천연기념물 제조가』는 재미와 감동을 두루 갖춘 잘 쓴 소설이다. 모처럼 좋은 소설을 만나 고개를 주억거렸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작가는 다음 작품으로 빈민 아동들을 위한 소설을 집필 중이라고 한다. 완벽하지 않은 인간의 이기심과 무관심으로 야기된 지구상 곳곳의 어두운 문제들을 파헤치는 작가의 기백이 멋지다. 벌써부터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지금보다 더 진보된 상상력과 진지함으로 우리세계의 암연暗然을 밝혀주길 소망한다. 괴테는 말했다. 작가는 여든의 나이에도 소년의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소설가 조대호의 순수한 초심이 변질되지 않기를 바라며 그의 펜 끝에서 세계의 변혁이 추동되기를 응원한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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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어주는 책 북멘토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 지음 / 더블유북(W-Book)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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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이 풍성한 책읽기의 전제조건이 된다는 점에 이견을 달 사람은 드물 것이다.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책이 주는 지혜와 깨달음을 정교하고 입체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그렇기에 책쟁이들은 지금도 읽고 쓰고 생각하며 책을 벗삼는다.

  독서의 양질론을 제기할 때 삼다三多 외의 추가적인 방법들이 거론되곤 한다. 유명한 것은 정병기 교수가 설파한 '성의'와 '집중'이다. 피로 쓰라는 니체의 전언을 곱씹는 정 교수의 다섯 가지 덕목은 밀도있는 글쓰기의 전범이 된다. 나는 거기에 한가지를 더 추가하고자 한다. 보다 사회적인 요소가 필요하다. 책 읽는 인간 사이의 소통과 토론이 긴요하다. 바로 '함께' 읽는 것이다.

  여기서 함께 읽는다 함은 독서할 때의 시공간을 함께 하자는 뜻이 아니다. 다상량을 공유하자는 의미이다. 문장의 해석, 작가론, 책 추천, 책의 총체적 평가, 글쓰기론에 이르기까지 책읽기와 글쓰기의 전반적인 것들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누고 공감하자는 것이다. 인간 세계의 절대선인 '관용'과 '다양성'의 원리는 책읽기에서도 그 가치를 입증한다. 타자와의 소통을 통해 다양한 사유를 공유하고 내 생각과 해석이 정답이 아님을 자각함으로써 '함께' 읽는 책읽기가 주는 풍성한 지혜를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네이버 대표 북카페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하 '책좋사')은 함께 책읽기를 원하는 이들의 커뮤니티이다. 어느덧 회원수가 5만 명에 이르렀고 온라인상에서 가장 왕성한 활동을 하는 북카페로 성장했다. 나도 이곳을 통해 다양한 책쟁이들을 벗삼았다.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사람을 사귀었다. 고백컨대 다양한 사고와 가치관을 가진 다수 사람들과의 소통적 책읽기를 통해 나의 책읽기와 글쓰기는 예전보다 건강해졌고 발전해왔다.

  『책 읽어주는 책 북멘토』는 '책좋사'에서 활동하는 회원들의 북리뷰를 담은 서평집이다. 이 책에는 문학에서부터 인문, 과학, 경제, 사회, 역사, 자기계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다양한 리뷰어의 색채로 소개되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한 사람이 쓴 서평집이 아니라는 데 있다. 다수 회원들의 깔끔한 서평들을 엄선하여 담았다. 다양한 리뷰들을 훑어가다보면 서평을 쓴 리뷰어 특유의 사고와 필력을 확인하게 된다. 동일한 책임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개성으로 비틀고 꼬는 시각들이 이채롭다. 온라인상에서 낯익는 유명 리뷰어들의 닉네임을 확인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과히 다양한 책들의, 다양한 리뷰어들의, 다양한 다상량의 향연이자 축제라 할 만하다.

  책의 전체적인 구성과 도서 선정 부분도 손색이 없다. 문학과 비문학을 적절한 비중으로 나눠 실었다. 선정도서 대부분이 일반인들도 쉽게 접하고 읽을 수 있는 책이여서 다수 독자의 기호에 친밀하게 부응한다. 또한 글쓴이들이 프로가 아닌 순수 아마추어 리뷰어이기 때문에 리뷰마다 소박하고 진실된 관찰과 해석을 엿볼 수 있다. 전문적이지 않고 독자를 가르치려 들지 않기 때문에 담백한 맛이 있다. 이 모든 것이 소통하는 책읽기의 산물인 것이다.

  책은 반드시 소통하며 읽어야 한다. 그래야 독선적인 책읽기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어릴 때부터 방에 틀어박혀 고전만 팠던 이들의 상당수가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를 나는 적지 않이 봐왔다. 오프라인 독서모임에서도 혼자서 책만 읽는 이들의 좋지 않은 태도와 나쁜 습관을 종종 목도하게 된다. 어떤이는 인격적인 문제에까지 닿아있기도 하다. 책읽기가 나쁜 것이 아닐진대 왜 그들의 책읽기에는 사회적인 함몰현상이 발생하는 걸까. 그 이유는 바로 소통이 결락되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만이 책의 존재성을 모두 아우를 수 있다는 독선적이고 독단적인 교만함이 소통의 부재를 통해 발생한다. 그리고 점점 고립되어간다. 그렇기 때문에 다양성과 관용은 건강한 책읽기의 필수조건이다. 함께 읽어야만 하는 것이다.

  책 좀 읽는다고 자신감을 가진 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불편한 오해를 갖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내가 참'이라는 착각의 사고방식이다. 독서의 본질적인 목적은 지식을 축적하는데 있지 않다. 독서는 아카데미시즘(academicism)이 아니다. 독서는 내 머리가 남의 머리가 되어 세계의 다양성을 인식하는 일이다. 지극히 인간적인 행위인 것이다.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이야말로 책이 고민해왔던 존재론적 가치에 대한 유일한 답변이다. 그렇기에 독서는 불관용을 거부한다. 그리고 타인을 이해해야만 하는 인간 본연의 당위當爲를 유도한다. 사람이 책을 만들지만 결국 책이 사람을 만드는 것이다. 단언컨대 이것이 빠진 독서는 모두 죽은 독서다.

  여기서 서평집 『책 읽어주는 책 북멘토』의 강점이 재차 부각된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펼치는 다양한 생각과 해석이 이 책에는 오롯이 녹아 있다. 그 다양성의 힘이 이 책이 만들어진 근원적인 동기이자 책 고수들이 밀집해 있는 '책좋사'의 진정한 힘일 것이다. 다양성은 과잉되어야 하고 관용은 그 과잉을 포용할 수준이 되어야 한다. 그럴수록 지구는 더욱 건강해질 수 있다. 인간이 위대한 것은 모두 다른 소리를 내면서도 역사를 발전시켜왔다는 데 있다. 비록 전문적인 평론과 유려한 필치는 못 되더라도 각자의 사유 밀도로 빚어낸 글모음집이기에 『책 읽어주는 책 북멘토』는 충분히 풍성하다.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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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을 위로해줘
은희경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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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말 모시상식에서 은희경 작가를 처음으로 만났다. 평소 옷 잘 입고 개성있는 스타일을 가진 소설가라는 인식이 뇌리에 각인되어 있었다. 첫인상이 좋았다. 무엇보다 당찬 모습이 매력적이었다. 심사위원으로 단상에 오른 그는 자신을 '편견이 많은 소설가'라고 밝혔다. 편견이 많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상식적으로 편견은 좋지 못한 태도다. 사전에서는 편견을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으로 정의한다. 그의 고백을 들으며 난 의심했다.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는 생각이 많은 소설가를 내가 과연 좋아할 수 있을까.

  작가를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핵심은 바로 '텍스트'다. 말이나 사생활, 외모나 도덕성은 비본질적인 부분에 속한다. 일차적으로 작가는 좋은 작품을 만들어내야 한다. 물론 삶과 문학은 완전히 분리될 수 있는 별개의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글은 글쓴이의 인격과 특징을 반영한다. 작가의 삶과 세계관, 정신과 태도가 글 속에는 오롯이 담겨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데미안>을 통해 헤세의 세계관을 엿볼 수 있고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읽고 괴테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글은 곧 작가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데리다의 말처럼 텍스트 바깥은 없다. 텍스트가 곧 작가(저자)이다.

  은희경의 최신 장편소설 『소년을 위로해줘』는 나에게 은희경 문학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지점에 서 있는 텍스트다. 그간 각각 한 권의 단편과 장편만을 만났던, 무엇보다 그의 소설에 별다른 매력을 갖지 못했던 나로서는 이 흥미있는 제목의 장편소설을 맞이하는 반가움이 작지 않았던 것이다. 소설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 쓰게 되는 청춘의 이야기. 한국문단의 3대 여성작가이자 냉소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은희경이 말하는 청춘의 형태와 의미는 어떨지 자못 궁금한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게 된다.

  작가는 열입곱 살의 소년 강연우를 소설 전면에 배치한다. 이혼한 엄마와 사는 연우는 매사에 심드렁하고 삶에 질문이 많은 전형적인 사춘기 소년이다. 같은 고등학교에 배치된 독고태수와 이사온 집 주변을 맴도는 이채영이 연우와 관계를 형성하는 주요인물이다. 태수의 여동생 마루도 소설 속에서 매우 개성있는 인물로 등장한다. 이혼녀인 연우의 엄마 신민아와 엄마 애인 조재욱도 세 인물과 함께 이야기를 추동하는 중심인물로 자리한다.

  소설의 전체적인 내용은 간단하다. 주인공 연우가 엄마, 엄마 애인, 친구들과 관계를 형성하면서 갖게 되는 다양한 경험을 그렸다. 또한 그 과정을 통해 성장해가는 모습을 그렸다 . 문체는 딱딱하지 않은 대화체를 사용하여 사춘기 시절의 익살스러움과 설익음을 잘 표현했다. 작가는 온전한 산문체가 아닌 대화와 묘사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며 형식을 파괴하는 혁신적인 문체를 구사했다. 그럼으로써 청소년 시절의 역동을 살려냈다. 또한 소설에서 중요한 매개로 반복 재생되는 'G-그리핀'의 음악과 이를 실제적으로 독자에게 전달하기 위해 동봉된 음악CD는 소설의 전달력을 배가하려는 작가의 열정으로 기분좋게 수용된다.

  하지만 소설 초반의 흡입력을 견인하지 못하는 중후반의 진부한 이야기 전개와 기존 청춘소설의 틀을 깨지 못한 통속성은 아쉽다. 날개를 단 듯한 자유로운 문체의 매력을 제외하고는 등단 17년차의 소설가의 내공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소설 전체적으로 이야기의 흐름 및 분배가 안정적이지 못하고 등장인물의 개성 또한 획일적이다. 특히 주인공 연우의 절친인 태수의 죽음과 연우와 채영의 재회로 급마무리되는 소설의 말미는 매끄럽지 못한 산만한 종결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소설의 가장 중요한 메시지라 할 수 있는 '위로'의 감동이 크게 와 닿지 않는다는데 있다.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위로의 본질은 무엇일까. 가정의 불안정성, 현실에 대한 설익은 질문, 사랑한 대상의 상실과 재회는 이미 수없이 많은 청춘소설의 테마로 사용되었던 것들이다. 한 소년의 사춘기 시절을 수놓는 일련의 성장과정을 제삼자가 어떻게 어루만지고 위로할 수 있을까. 본질적으로 위로가 가능하기는 한 걸까. 혹 은희경이 오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이해理解'를 '위로慰勞'로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독자에게 그것을 권유하는 작가의 오해가 불편하다. 누군가의 청춘시절의 요동을 오롯하게 받아들일 수 있음은 위로가 아닌 이해의 선상에서만 가능하다. 어찌 위로할 수 있으랴. 그 시절의 부자연不自然과 비합리非合理를.

  주인공 연우가 겪는 어린 시절의 다양한 파노라마는 그 시기 누구나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한 것들이다. 인간은 누구나 경험하며 어른이 되어간다. 생물학적 나이보다 경험의 연륜이 어른의 의미에 더욱 적확히 닿아 있다. 기쁜 것이든 아픈 것이든 슬픈 것이든 그 어떤 형태의 경험이든 인간은 겪고 겪는 동안 깨닫고 성장해간다. 타자와의 다양한 관계맺기를 통해 기뻐하고 아파하며 슬퍼하는 연우의 고독을 나는 굳이 위로하고 싶지 않다. 그저 이해하고 침묵할 뿐이다. 적어도 인간의 성장만큼은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 흐름이 매우 인과적因果的으로 작동되는 영역이다. 사랑하고 아파하며 상실했던 만큼 미래는 더 자라있지 않을까. 그것을 기대하며 무언無言의 이해로 지켜보는 것. 그것이 청소년 혹은 청춘에 대한 진정한 위로가 아닐까.

  서평을 정리하자. 소설 『소년을 위로해줘』는 작가의 연차와 매력적인 책 제목 이상의 것을 보여주지 못한 작품이다. 그렇다고 해서 매우 실망스럽게 읽었다는 뜻은 아니다. 작가는 충분히 진지했고 소설은 적절히 유쾌했다. 단 감동을 주지 못했다는데 아쉬움이 있다. 물론 모든 소설이 감동을 줄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성장소설만큼은 감동이 필요하다. 그간 읽어왔던 대부분의 성장소설에서 꾸준한 감동을 받아왔던 내가 왜 은희경의 소설에는 반응하지 못하는 걸까. 나를 감동시키지 못한 작가 은희경. 이쯤해서 말하고 싶다. 은희경을 위로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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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울한 세상에 힘겨운 사람들에게 빛이 될 한 줄 글을 쓰라는 격려로 받겠다.


  제 35회 이상문학상李箱文學賞 수상자 공지영의 수상소감이다.

  소설가 공지영을 좋아하는 편이다. 평소 그녀의 소설을 꾸준히 탐독해왔다. 소설가로서 자신만의 확고한 아우라를 갖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988년 등단 이후 그녀가 한국문단에 쌓아올린 공을 나는 낮게 평가하지 않는다. 다수를 포용할 수 있는 이야기, 진지한 척 하지 않는 솔직함, 타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설득력, 난해하지 않은 단문장 등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녀의 책을 손에 들게 하는 매력적인 이유가 된다. 물론 한편에서는 가볍고 대중적이라는 이유로 돌을 던지기도 한다. 다수 평론가와 책 좀 읽는다는 독자들 사이에서 그녀는 가장 과대포장된 소설가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상복 없다는 그녀의 문학사도 새로 쓰여지게 됐다.

  인터넷 곳곳에서 공지영의 수상에 대해 조롱하는 글들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이상문학상의 권위가 실추 혹은 변질되었다느니, 실력에 의한 수상이 아닌 공로상에 불과하다느니, 하는 이죽거림이 심심치 않게 목도된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자신이 알고 느끼는 바를 주장하는 행위에 대해 뭐라 할 수는 없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논리의 수준이다. 논거가 빈곤하고 논설이 불성실하다. 이유와 논리가 결락된 채 공지영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포퓰리즘은 불관용의 극치다. 그 어떤 문학적 견해와 입장도 없이 성실한 소설가를 '그냥' 조롱하는 일은 곤란하다.

  주변에서 공지영을 싫어하는 이들을 수없이 봐왔다. 그런데 싫어하는 수준이 대부분 일차원적이고 조악한 편이다.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 주장에 대한 자신만의 콘덴츠를 갖고 있어야 한다. 물론 개성있고 확고한 문학적 주관으로 공지영 문학을 비판하는 이들이 간혹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부분이 평론가의 입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거나 논리가 빈약한 불관용의 카르텔에 편승하는 꼴에 불과한 수준이다. 이상문학상 수상과 관련된 적지 않은 조롱성 글들도 그 태도와 방법에서 예외는 아닌 것이다. 

  물론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해서 소설가 공지영의 문학적 성취가 절대적으로 증명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이상문학상이라고 해서 신이 세운 기준이 아니며 심사위원의 권위가 곧 문학적 가치판단의 절대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서로 다른 견해와 식견이 공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세계의 수많은 이슈들이 결코 다양성의 문제로만 환원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국내 최고 권위의 문학상을 거머쥔 그녀의 성취는 일부분 납득될 수 있다.

  문학은 무슨 '척' 하는 예술이 아니다. 문학이 세계를 구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세계 변혁의 동기를 부여한다. 조정래의 말대로 문학은 꼭 말해야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말해야 하는 것을 용기있게 말할 때에야 비로소 문학은 문학으로서의 기본적 존재가치를 입증시킬 수 있다. 그것을 풀어내는 방법론에 있어 비본질이 본질보다 우선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불필요한 에두름과 쓸데없는 점잖음으로 문학을 난해하고 도저한 예술로 외식화外飾化하는 행위는 지양되어야 한다. 쉬움과 가벼움은 동의어가 아니고 난해한 것과 깊이있는 것은 연관적이지 않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를 호도하여 세계의 실력있는 글쟁이들을 죽였던가. 문학을 '척' 하고 '체' 하는 사람의 기호에서 평범하고 일반적인 사람의 영역으로 확대 유도했다는 점은 소설가 공지영의 분명한 실력임을 인정하자.

  제작년 이맘때쯤 그녀와 나는 사석에서 소주 한 잔을 기울였었다. 심사위원과 수상자의 인연으로 회를 안주 삼아 밤새도록 삶과 인간과 문학을 논했던 당시의 술자리를 아직도 선연하게 기억하고 있다. 당시 그녀는 인간 존엄성의 각별한 인식과 소외된 계층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역설했다. 암울한 세상에 힘겨운 사람들에게 빛이 될 한 줄 글을 쓰겠다는 그녀의 포부를 나는 믿는다. 지구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폭력과 거짓의 <도가니>를 '발견'하고 '차단'하며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그녀의 글은 꼭 필요하다. 

  공지영 작가의 이상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등단시기를 감안하면 늦은 감이 있다. 작가는 태생적으로 보수保守가 될 수 없다. 작가는 무언가를 만드는 직업이다. 무엇을 만든다는 것은 세계에 없던 것을 삽입한다는 것이다. 추가와 수정은 변화를 의미하며 이는 바로 변혁으로 연결된다. 소설이라는 영역은 전개展開를 통해 의미와 가치를 추출해내는 문학이다. 소설가는 자신만의 고유 픽션세계를 창조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인간 삶의 다양한 형태를 성찰하게 하고 현실을 보다 냉정하게 천착할 수 있게 한다. 그것이 세계 변혁의 동기를 부여하는 문학의 순기능인 것이다.

  공지영의 비블리오그래피(bibliography)를 살펴 보면 꽤 많은 지점을 거쳐왔음을 알 수 있다. 작금의 지점까지 다다른 그녀에게 나는 작가로서의 가치있는 진보를 기대한다. 낮고 연약한 사람들에게 빛이 될 한 줄 글의 희망을 지지한다. 공지영은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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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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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 버리기 연습 생각 버리기 연습 1
코이케 류노스케 지음, 유윤한 옮김 / 21세기북스 / 2010년 9월
평점 :
절판


  책을 고를 때 속지 말아야 할 두 가지 항목이 있다. 하나는 '책 제목'이고 다른 하나는 '베스트셀러'이다. 매력적인 책 제목에 속아 책값을 낭비했던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또한 베스트셀러라고 무작정 구입했다가 끝까지 읽지 못하고 책장을 덮었던 기억도 있을 것이다. 모든 선택과 결정은 언제나 신중해야 한다. 책 선택도 예외가 아닌 것이다.

  장하준의 신간과 코엘료의 장편과 함께 베스트셀러권에 안착해 있는『생각 버리기 연습』은 매력적인 책 제목이 이유가 되어 내 손에 들어온 책이다. 생각하지 않고 오감으로 느끼면 어지러운 마음이 서서히 사라진다는 솔깃한 문장을 책표지 전면에 배치한 이 책은 일본 동경대 스님의 휴뇌법을 담았다. 지나치게 많은 생각은 인간을 힘들게 하기 때문에 쓸데없는 생각을 버리고 집중력을 고양시킴으로써 번뇌를 극복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일견 타당하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책제목의 매력을 풀어내지 못하는 초라한 텍스트를 확인하게 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생각 버리기 연습』은 시중에 범람해 있는 자기계발서와의 차이를 찾아보기 힘든 책이다. 책의 구성은 간명하다. 1장은 생각이 왜 병이 되는지를 개괄한다. 2장은 말하기, 듣기 등을 위시한 여덟가지 영역에서 몸과 마음을 어떻게 조종해야 하는지 설명한다. 마지막 3장에서는 "뇌와 마음의 신비로운 관계"를 주제로 인터뷰를 했던 저자의 대담을 실었다. 전체적으로 잘 짜여진 듯 보이지만 실상 내용은 깊이가 없고 풍성하지 못하다. 

  탐욕과 이기를 버리고 타인과 적극적으로 소통함으로써 행복해질 수 있다는 말은 지겹게 들어온 조언이다. 심신心身이 건강하여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누가 모르는가. 여덟가지 영역에서 풀이한 삶의 교훈들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왕왕 소개되는 불교의 가르침도 깊이 없이 인용의 형태로만 가볍게 다뤄질 뿐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말, 어디서나 읽을 수 있는 내용을 '휴뇌법'이라는 명명으로 포장한 작가와 출판사의 트릭이 놀랍다. 제목만 그럴듯하다. 속빈 강정이 따로 없다.

  책을 좀 읽는다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계발서를 멀리 하는 편이다. 독서를 깊고 넓게 하다 보면 계발서와 멀어져 있는 자기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누구나 알고 있는 엇비슷한 내용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눈과 머리는 피로하다. 인간 삶의 원리는 간단하다. 알지 못해서 안하는 게 아니라 하지 않아서 못하는 것이다. 사람의 고유특성과 외부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천편일률적으로 교훈하듯이 씌어진 자기계발서의 일차원성은 책의 가치를 떨어뜨린다. 

  서평을 정리하자. 베스트셀러 『생각 버리기 연습』은 여러모로 밋밋한 책이다. 하지만 얻은 게 아주 없지는 않다. 이 책을 통해 얻은 것은 진정으로 '연습'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깨달음이다. 내가 정작 연습해야 할 것은 '생각 버리기'가 아니라 '책 고르기'이다. 건설적인 생각은 다다익선이다. 양서를 고르기 위한 내공을 위해서라도 생각은 지금보다 더 많이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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