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세상에 힘겨운 사람들에게 빛이 될 한 줄 글을 쓰라는 격려로 받겠다.


  제 35회 이상문학상李箱文學賞 수상자 공지영의 수상소감이다.

  소설가 공지영을 좋아하는 편이다. 평소 그녀의 소설을 꾸준히 탐독해왔다. 소설가로서 자신만의 확고한 아우라를 갖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988년 등단 이후 그녀가 한국문단에 쌓아올린 공을 나는 낮게 평가하지 않는다. 다수를 포용할 수 있는 이야기, 진지한 척 하지 않는 솔직함, 타자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설득력, 난해하지 않은 단문장 등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녀의 책을 손에 들게 하는 매력적인 이유가 된다. 물론 한편에서는 가볍고 대중적이라는 이유로 돌을 던지기도 한다. 다수 평론가와 책 좀 읽는다는 독자들 사이에서 그녀는 가장 과대포장된 소설가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에서 가장 권위있는 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상복 없다는 그녀의 문학사도 새로 쓰여지게 됐다.

  인터넷 곳곳에서 공지영의 수상에 대해 조롱하는 글들을 자주 발견하게 된다. 이상문학상의 권위가 실추 혹은 변질되었다느니, 실력에 의한 수상이 아닌 공로상에 불과하다느니, 하는 이죽거림이 심심치 않게 목도된다. 다원주의 사회에서 자신이 알고 느끼는 바를 주장하는 행위에 대해 뭐라 할 수는 없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논리의 수준이다. 논거가 빈곤하고 논설이 불성실하다. 이유와 논리가 결락된 채 공지영이기 때문에 안 된다는 포퓰리즘은 불관용의 극치다. 그 어떤 문학적 견해와 입장도 없이 성실한 소설가를 '그냥' 조롱하는 일은 곤란하다.

  주변에서 공지영을 싫어하는 이들을 수없이 봐왔다. 그런데 싫어하는 수준이 대부분 일차원적이고 조악한 편이다. 상대를 공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 주장에 대한 자신만의 콘덴츠를 갖고 있어야 한다. 물론 개성있고 확고한 문학적 주관으로 공지영 문학을 비판하는 이들이 간혹 있기는 하다. 그러나 대부분이 평론가의 입장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거나 논리가 빈약한 불관용의 카르텔에 편승하는 꼴에 불과한 수준이다. 이상문학상 수상과 관련된 적지 않은 조롱성 글들도 그 태도와 방법에서 예외는 아닌 것이다. 

  물론 이상문학상을 수상했다고 해서 소설가 공지영의 문학적 성취가 절대적으로 증명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이상문학상이라고 해서 신이 세운 기준이 아니며 심사위원의 권위가 곧 문학적 가치판단의 절대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서로 다른 견해와 식견이 공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만들어낸 세계의 수많은 이슈들이 결코 다양성의 문제로만 환원될 수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면 국내 최고 권위의 문학상을 거머쥔 그녀의 성취는 일부분 납득될 수 있다.

  문학은 무슨 '척' 하는 예술이 아니다. 문학이 세계를 구원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세계 변혁의 동기를 부여한다. 조정래의 말대로 문학은 꼭 말해야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말해야 하는 것을 용기있게 말할 때에야 비로소 문학은 문학으로서의 기본적 존재가치를 입증시킬 수 있다. 그것을 풀어내는 방법론에 있어 비본질이 본질보다 우선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불필요한 에두름과 쓸데없는 점잖음으로 문학을 난해하고 도저한 예술로 외식화外飾化하는 행위는 지양되어야 한다. 쉬움과 가벼움은 동의어가 아니고 난해한 것과 깊이있는 것은 연관적이지 않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를 호도하여 세계의 실력있는 글쟁이들을 죽였던가. 문학을 '척' 하고 '체' 하는 사람의 기호에서 평범하고 일반적인 사람의 영역으로 확대 유도했다는 점은 소설가 공지영의 분명한 실력임을 인정하자.

  제작년 이맘때쯤 그녀와 나는 사석에서 소주 한 잔을 기울였었다. 심사위원과 수상자의 인연으로 회를 안주 삼아 밤새도록 삶과 인간과 문학을 논했던 당시의 술자리를 아직도 선연하게 기억하고 있다. 당시 그녀는 인간 존엄성의 각별한 인식과 소외된 계층에 대한 뜨거운 애정을 역설했다. 암울한 세상에 힘겨운 사람들에게 빛이 될 한 줄 글을 쓰겠다는 그녀의 포부를 나는 믿는다. 지구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폭력과 거짓의 <도가니>를 '발견'하고 '차단'하며 '치유'하기 위해서라도 그녀의 글은 꼭 필요하다. 

  공지영 작가의 이상문학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등단시기를 감안하면 늦은 감이 있다. 작가는 태생적으로 보수保守가 될 수 없다. 작가는 무언가를 만드는 직업이다. 무엇을 만든다는 것은 세계에 없던 것을 삽입한다는 것이다. 추가와 수정은 변화를 의미하며 이는 바로 변혁으로 연결된다. 소설이라는 영역은 전개展開를 통해 의미와 가치를 추출해내는 문학이다. 소설가는 자신만의 고유 픽션세계를 창조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인간 삶의 다양한 형태를 성찰하게 하고 현실을 보다 냉정하게 천착할 수 있게 한다. 그것이 세계 변혁의 동기를 부여하는 문학의 순기능인 것이다.

  공지영의 비블리오그래피(bibliography)를 살펴 보면 꽤 많은 지점을 거쳐왔음을 알 수 있다. 작금의 지점까지 다다른 그녀에게 나는 작가로서의 가치있는 진보를 기대한다. 낮고 연약한 사람들에게 빛이 될 한 줄 글의 희망을 지지한다. 공지영은 우리에게 꼭 필요하다. 

 

 

   

 

 

http://blog.naver.com/gilsamo
Written By David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