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천연기념물 제조가
조대호 지음 / 아름다운사람들 / 2010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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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소설을 왜 읽는가. 이 질문에 대해 사람들은 가지각색의 답변을 늘어놓을 것이다. 하지만 다양한 답변들은 대부분 큰 두 가지의 본류로 정리된다. 그것은 바로 '재미'와 '감동'이다.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으로 인간을 탐구하는 산문문학의 한 장르이다. 이유 없이 만들어진 소설은 없다. 모든 소설은 작가의 의식과 가치관을 담은 허구의 이야기이다. 독자는 픽션의 세계를 통해 현실을 보다 냉정하게 바라보고 인간을 입체적으로 성찰할 수 있게 된다. 그 과정에서 좋은 소설은 독자에게 반드시 재미와 감동을 선사한다.

  나에게 소설을 왜 읽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없이 말할 준비가 되어 있다. 내면적으로는 인간에 대한 성찰을 위해서고 외연적으로는 재미와 감동을 위해서다. 그렇기에 나는 재미와 감동(교훈)을 함께 주는 소설을 좋아한다. 잘 쓰여진 소설은 현실을 적절히 비틀어서 세계의 변혁을 요구한다. 소설 창조의 목적은 결국 인간인 것인데 좋은 소설은 독자로 하여금 인간의 본성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심미안의 지혜를 이끌어낸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소설을 읽는다.

  한국소설에 애착이 많은 편이다. 최근 한국문학에 흥미를 잃은 독자들이 많은 듯하다. 한국소설의 매력이 외국의 것들에 비해 객관적으로 부족함이 많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난 한국소설을 멀리하고 싶지 않다. 자국인의 정서로 가공된 상상력을 자국어로 전개해나가는 한국소설에 녹록지 않은 연대와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팔구십 년대의 후일담 문학을 넘어서 한국소설도 이제는 다양한 소재와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참신한 변화를 이뤄가고 있다. 난 믿는다. 한국어의 위대함과 한국문학의 진보를.

  한국소설을 두루 읽다 보면 가끔씩 놀랄 때가 있다. 출간은 됐지만 유명세가 없어 서점 구석에 쳐박혀 있는 보석과 같은 소설을 만났을 때가 그렇다. 그럴 때 리뷰어의 숨은 가빠진다. 수없이 많은 책들 가운데 옥석을 구분하여 이웃에게 양서를 소개하는 의무가 리뷰어에게 있기 때문이다. 프로든 아마추어든 리뷰어의 역할은 책을 선택하고 소개하는 일이다. 좋은 소설은 재미와 감동을 주는 소설이라고 했던가. 어느덧 가빠진 숨을 몰아내고 리뷰어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마음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쓴다.

  반가운 소설을 만났다. 간만에 시간의 속도를 잊은 채 읽었다. 소설 『천연기념물 제조가』는 매력적인 제목 이상으로 나에게 흥미진진한 재미와 가볍지 않은 교훈을 선사했다. 85년생 소설가 조대호는 첫 작품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탄탄한 구성으로 매력적인 장편소설을 완성시켰다. 장편소설은 그 형태적 특징으로 인해 독자로 하여금 작품 속 인물과 사건을 더욱 깊이있게 들여다보게 한다. 단편보다 훨씬 긴 호흡을 요구하기 때문에 독자는 이야기를 총체적으로 들여다보고 소설의 메시지를 살피게 된다. 이러한 구조론적인 관점에서 소설 『천연기념물 제조가』는 흠을 찾아볼 수 없는 매우 잘 쓰여진 소설이다.

  작가는 꽤 무거운 주제를 도저하고 엄숙한 방식에서 벗어나 매우 흥미로운 서사로 만들어냈다. 주인공 신관우가 겪는 믿기 힘든 경험을 통해 인간과 자연 사이의 오묘한 관계를 소름 돋는 픽션으로 그려냈다. 제목 '천연기념물 제조가'는 말 그대로 천연기념물을 제조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소설 속에서 '진벽회'라는 단체로 명명된다. 소설을 읽다 보면 그들이 어떤 일을 하는 단체인지 알게 되는데 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충격적이다. 그들은 TV드라마 <아이리스>, <아테나>와 같이 국적과 민족을 초월하는 비밀조직이다. 무엇보다 인간이 파괴한 자연을 되살리기 위해 어떤 행동도 서슴지 않는 무서운 집단이다. 소설 『천연기념물 제조가』는 바로 그들의 이야기다.

  소설 속에서 진벽회는 매우 무서운 집단으로 존재한다. 그들은 인간 자체를 증오하고 불신한다. 인간의 이기심과 악한 본성이 자연의 질서를 훼손해왔고 이를 복원할 능력이 인간 스스로에게 내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인간을 불신하기 때문에 그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들은 지구상 곳곳에 은밀한 형태로 숨어 임무를 수행한다. 자연을 보호하기 위해 어떤 개체를 멸종시키기도 하고 그것을 방해하는 다른 개체를 살상하기도 한다. 이 괴기한 진벽회의 행위는 엽기를 넘어서는 근원적인 무서움에까지 닿아 있다. 그 무서움은 바로 인간의 진본眞本에 대한 질문이다.

  인간을 제외한 지구상의 모든 동물은 딱 생존을 위해서만 움직인다. 생존은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존재를 규정한다. 하지만 인간만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생존 이외의 것을 추구하는 욕심을 위해 이성理性을 작동시킨다.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어준 그 위대한 이성으로 인해 오히려 인간은 '악마'가 되었다. 그렇다면 인간은 자연과 결코 양립할 수 없는 것인가. 인간이 자랑스럽게 발전시켜온 과학기술의 편리성이 애초의 우주 자연의 순환성과 전쟁을 벌이고 있는 엄연한 현실에서 인간은 인간 스스로 자연의 본래성을 회복할 수 있는 것일까. 과연 인간에게 그만한 자정능력이 있는 걸까. 작가는 이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내리지 않는다. 인간을 멸종시킴으로써 자연을 지킬 수 있다는 진벽회와 인간의 본성 속에 지켜낼 수 있는 힘과 희망이 있다는 신관우의 대결을 암시하는 것으로 소설의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결국 작가는 자신이 고민했던 부분, 즉 소설의 결론을 독자에게 토스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작가의 의도는 본인의 메시지에 대해 깊게 경청하고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은밀한 외침을 독자에게 호소하는 장치가 된다. 환경에 대한 위기의식은 비단 어제오늘의 경고가 아니다. 국제사회 곳곳에서 환경파괴에 대한 염려와 예방을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들이 눈에 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이 위기를 대하는 경각警覺의 밀도이다. 앞서 언급했지만 인간이 위대한 것은 이성을 지닌 존재라는데 있다. 오직 인간만이 갖고 있는 고결하고 고등한 이성을 어떻게 사용하는가에 따라 인간은 천사가 될 수도 있고 악마가 될 수도 있다. 인간의 순전한 이성이 현실인식의 디테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고도의 경각으로 세계 변혁의 원동이 된다면, 그렇다면, 인간에게는 분명 희망이 있을 것이다.

  에드워드 카의 말대로 인간의 정신문명은 반드시 진보한다. 그리고 그 진보에 대한 믿음은 어떤 자동적인 또는 불가피한 진행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인간 능력의 계속적 발전에 대한 믿음에 연유한다. 어쩌면 지구상 대부분의 인간들은 유전자 속에 태생적으로 그것을 인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만 경각하고 행동하지 않을 뿐. 작가 또한 그 일말의 희망과 기대 가운데 펜을 들었던 게 아닐까. 그리고 자신의 소설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짐으로써 심각한 지구병에 대한 경종을 울리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소설이 좋은 것은 그것이 허구의 세계라는 데 있다. 허구는 사실의 참혹한 단면을 효과적으로 인식하게 한다. 현실을 벗어난 세계이기 때문에 독자는 '만약'을 상정하고 현실을 보다 냉정하게 들여다보게 된다. 더 나아가 독자는 문제의 단면을 인식하고 인지함으로써 세계에 대한 태도를 설정하고 견지하게 된다. 소설의 힘이 바로 여기에 있다. 소설이 상정한 허구가 엄연한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지나친 가정법 위에서 독자는 당혹하고 심장을 두근거리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소설적 사고의 긴요성이다.

  서평을 정리하자.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소설가 조대호의 『천연기념물 제조가』는 재미와 감동을 두루 갖춘 잘 쓴 소설이다. 모처럼 좋은 소설을 만나 고개를 주억거렸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작가는 다음 작품으로 빈민 아동들을 위한 소설을 집필 중이라고 한다. 완벽하지 않은 인간의 이기심과 무관심으로 야기된 지구상 곳곳의 어두운 문제들을 파헤치는 작가의 기백이 멋지다. 벌써부터 다음 작품이 기다려진다. 지금보다 더 진보된 상상력과 진지함으로 우리세계의 암연暗然을 밝혀주길 소망한다. 괴테는 말했다. 작가는 여든의 나이에도 소년의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것을. 소설가 조대호의 순수한 초심이 변질되지 않기를 바라며 그의 펜 끝에서 세계의 변혁이 추동되기를 응원한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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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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