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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니아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 스포일러 없음. 안심하고 읽어도 되는 서평임.
극작술에서 인과성의 질서는 매우 중요하다. 한 이야기 다음에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것과 한 이야기의 결과로써 다음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이다. 이는 영화에서나 소설에서나 마찬가지로 작용한다. 이야기가 잘 흐르는 듯하다가 인과관계가 전혀 없는 상황이 발생하거나 난데없는 인물이 등장하여 사건이 마무리 되면 관객과 독자는 어리둥절하기 마련이다. 최근 「디-워」 논쟁에서 문화평론가 진중권이 2,500년 전의 아리스토텔레스의 극작술에서부터 '데우스 엑스 마키나(deus ex machina)'라는 어려운 문구를 인용하면서까지 흥분한 것이 이해될 만하다. 원인과 결과의 질서가 상식 안에서 정리되어야 관객과 독자는 허무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이야기(story)와 플롯(plot)은 다른 개념이다. 이야기는 일정한 시간적 연속성에 의해서 정리되어 있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처럼 정리된 것은 아무런 흥미가 유발되지 않고 단순한 '흐름'에 지나지 않는다. 단순한 시간의 흐름 말이다. 흔히 접하는 일기나 신문의 기사같은 것, 바로 그러한 일반적인 흐름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플롯은 그 흐름 속에 끼어들어 앞뒤의 관계를 밝혀주는 구성원리가 된다. 즉 "왕이 죽고 여왕도 죽었다"라고 한다면 이것은 단순히 시간의 흐름만을 전제로 전달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하나의 사건만이 제시된 '스토리'에 해당된다. 하지만 "왕이 죽고 나서 여왕은 슬픔에 못 이겨 죽었다"고 하면 무언가 달라진다. 물론 여기서도 시간 순서는 있다. 왕이 죽고 여왕도 죽었다는 시간이 존재한다. 하지만 무엇 때문에 여왕이 죽었는지에 대한 원인과, 또 그래서 여왕이 죽었다는 결과가 확실히 존재함으로써 왕이 죽고 여왕이 죽었다는 시간순서를 압도하게 되는 것이다. 더 크게 부각되는 것이다. 이것을 플롯이라고 할 수 있다. 정리하자면 플롯은 한 사건의 이야기의 재구성에 작용하는 원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구성이 제법 탄탄한 영화나 연극, 문학이 제법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면서 재미있게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꽤 훌륭한 구성력을 갖춘 소설을 만났다. 온다 리쿠의 최신 출간작 『유지니아』를 읽었다. 쓰나미처럼 한국 도서계를 점령하고 있는 일본 문학의 거대함에 대해 새삼 새로울 것은 없다. 다만 온다 리쿠와 같이 짧은 시일에 한꺼번에 그리 많은 작품을 출간한 작가가 없다는 점이 흥미롭다. 지난 2년간 19편이 출간되었고, 더욱이 지난 한 달간 7편이 쏟아졌으니 봇물 터진다는 얘기가 여기에 쓰는 말일 것이다. 현재 온다 리쿠 소설은 하나의 존(zone)을 형성하여 두꺼운 매니아층을 거느리고 있을 정도다. 그 유명하고 위대한(?) 아줌마 작가와의 첫만남이 『유지니아』라는 미스테리 소설로 이뤄진 것이다.
'2006년 일본추리작가협회상'이라는 객관적인(?) 평가와 '노스텔지어의 마법사'라는 자극적인 문구가 책의 첫 장을 넘기는데 기대감과 흥분을 고조시킨다. 소설의 구성은 미스테리 소설답게 매우 복잡하다. 각 장이 바뀔 때마다 1인층과 3인층의 서술 시점이 교차되며 소설의 흐름을 이끌어간다. 또한 과거에서 현재로, 현재에서 과거로의 시공간 변화가 수시로 이뤄진다. 한 사건에 대한 다양한 인물들의 인터뷰 내용과 각 장의 인물들의 현재적 플롯이 교차되면서 탄탄한 구성을 보여주고 있다.
지방 재력가문인 아오사와 가의 잔칫집에서 일가족을 비롯해 친적과 이웃사람들까지 열일곱 명이 희생된 독살사건이 이 소설의 핵심사건이다. 현장에서 앞을 보지 못하는 소녀 아오사와 히사코만이 유일하게 화를 면한다(소설을 읽다보면 가정부도 한 명 살아남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현장에는 수수께끼 같은 편지가 남겨져 있다. “유지니아, 나의 유지니아. 나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 줄곧 외로운 여행을 해왔다.” 몇 달 뒤, 한 남자가 자신이 아오사와 가 독살 사건의 범인이라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한다. 결정적인 몇 가지 증거로 인해 사내가 범인이라는 결론이 내려지고 사건은 종결된다. 그러나 진범은 따로 있다는 의혹이 끊이지 않는다. 소설은 이미 밝혀진 범인 이외의 또 다른 진범이 있다는 것을 가정하며 마치 퍼즐을 맞춰나가는 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그 퍼즐이 하나 하나씩 맞춰질 때마다 명확하고 확실함이 아닌, 항상 2% 부족한 공간을 남겨놓는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간상들은 철저하게 과거에 얽매여있다. 20년 전의 사건의 영향 아래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인물들의 과거로의 회귀를 매우 뛰어난 감각으로 그려내고 있다. 각 인물들마다 동일한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이 전부 다르다. 다른 시각, 다른 관찰이 다양하게 펼쳐지고 소설의 흐름 속에서 새로운 사건과 진실이 하나씩 밝혀지면서 독자를 압도한다. 더욱이 저기압이 몰고오는 후텁지근하고 끈끈한 공기, 갑자기 불어닥치는 비바람, 숨이 멎을 듯 옥죄어드는 더위에 대한 묘사는 전율이 느껴질만큼 생생하다. 이러한 묘사는 무언가 명확하지 않고 베일에 가려져있는 듯한, 앞으로 완성될 퍼즐로 향하는 서사 전개와 좋은 궁합을 이루기도 한다.
이 소설은 고전적인 추리소설과는 맥을 달리한다. 작가는 범인이 누구인지, 범행동기가 무엇인지를 밝혀내는 것 이상의 숙제를 던져주고 있다. 사실 범인의 존재는 도입부에서부터 암시된다. 그 작은 암시가 소설의 서사구조가 완성되어가면서 보다 뚜렷하고 좁혀져가는 듯 보인다. 마지막 한 존재를 향해 밀려가는 소설의 흐름 속에서 결말은 시원함을 제공하지 못한다. 진범의 존재감, 범행의 동기, 편지가 의미하는 뜻에 대해 명쾌한 답변을 주지 않은 채, 작가는 오히려 독자들에게 그것에 대한 의무를 넘기고 있다. 무언가 시원한 한 방을 원했던 독자는 무언가 흐릿흐릿하고 몽환적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자신의 전두엽을 활발하게 작동시키는 것이다.
소설 속의 중심 화자 두 명은 어느 한 존재감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고 있다. 강렬하게 그 존재를 향해 몰입한다. 그들의 목마름은 소설의 서사가 완성되어가면서 더욱 확연해진다. 그 목마름의 본질은 호기심을 넘어선 연민으로 보이지만, 어쩌면 사랑의 감정이었을 지도 모른다. 왜 그랬을까, 하는 마음을 넘어선 마치 내 자신이 네가 되려고 하는 심정으로 강렬하게 갈구한다. 두 명의 인물, 즉 인터뷰를 진행하는 자와 당시 사건을 소설로 재탄생시킨 자의 시간성과 방향성은 철저하게 과거의 그 존재에 구속되어 있는 것이다.
과연 사실은 존재하는 것일까? 혹시 우리가 흔히 사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들이 "어느 한 방향에서 본 주관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과연 이 세상에 명확한 사실은 존재하는 걸까?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이 세상의 전부일까? 깊은 사색이 밀려온다.
복잡하면서 잘 짜여진 뛰어난 플롯과 흐릿하고 명확한 답이 없는 무의식적 세계가 잘 조합되어 서사의 훌륭한 구조를 이루고 있는 이 소설은 온다 리쿠라는 거대한 이름값에 대한 첫만남을 풍성한 만족감으로 채워주었다. 온다 리쿠의 다른 소설 속으로 침투하고 싶다. 그녀의 다른 소설들이 어떤 완성도와 무게감으로 읽힐 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의 일인칭 시점으로 진행되는 소설을 꺼리며 내내 한 사람의 시점에 갇히는 것이 자기에게 잘 맞지 않는다, 라는 온다 리쿠의 고백이 진실이라면 그 자체만으로 내가 그녀의 작품세계를 천착할 가치는 충분하다.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 더 나아가 그 탐구의 다각적인 시선과 다채로운 해석에 전적으로 내 독서기호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왠지 전작주의에 빠질 것 같다. 온다 리쿠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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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다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