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는 두 번 떠난다
요시다 슈이치 지음, 민경욱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일본소설을 좋아하지 않는다. 좋아하지 않기에 즐겨 읽지 않는다. 그나마 눈여겨 보는 작가가 몇 있는데, 그 중 한 명이 요시다 슈이치다. 남자 작가면서도 여자의 마음을 섬세히 그려내는 슈이치의 필치에 평소 잦은 공감을 갖곤 했다. 많은 독자들은 그의 뛰어난 동성적同性的 감수성이 잘 녹아든 문장을 통해 가슴을 일렁인다. 그러나..

  그의 신작 『여자는 두 번 떠난다』는 평소 그가 그렸던 '슈이치표' 연애 서사의 맥을 벗어나지 않는다. 총 11편의 단편을 담고 있는 이 소설은 스물을 갓 넘긴 남자들을 주인공으로 다양한 연애 이야기를 들려준다. 슈이치 특유의 촉촉한 문장과 섬세한 묘사는 여전하다. 하지만 전작에 이은 답습에 불과하다. 보다 새롭고, 아이러니하며, 사랑의 다른 원형을 찾고자 했던 기대는 밋밋한 텍스트 앞에서 초라해진다.

  한 작가의 문학 세계를 논하는 데 있어 작품 연대기를 살펴보는 것은 꽤 소중하다. 작가가 쏟아낸 텍스트의 시간적 배열을 통해 그의 문학적 진보는 물론 삶적 과거와 현재, 미래까지 유추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차원에서 요시다 슈이치의 『여자는 두 번 떠난다』는 밋밋한 텍스트다. 오히려 예전작 『7월 24일 거리』보다 한참 퇴보했다.

  슈이치는 여러 여성상을 소개한다. 각기 개성을 지닌 여성들의 특성과 그녀들에게 사랑의 감정을 발산하는 남자들의 순수한 감정을 결합시킨다. 하지만 전형성은 없고 각기 의미없는 아우성에 불과하다. 마음보다 몸이 우선하는 육체적 행위로서의 남녀 관계 설정, 각 인물의 고유한 개성을 외면한 삼류 드라마틱한 저차원적 단편 서사들, 행간의 의미는 짚어볼 필요조차 없는 일본소설 특유의 식상한 스토리텔링 등은 이 소설의 밋밋함을 선연히 보여주는 것들이다.

  문학은 인간을 바꾸기 어렵고, 세상을 변화시키기는 더욱 어렵다. 하지만 문학은 인간의 내면을 엿보고, 삶의 원형을 탐구하며, 참다운 인생을 질문한다. 그렇기에 세계를 변혁할 수 있는 동기부여를 도출한다. 유희와 교훈을 동시에 선사하지 못하더라도 문학은 최소한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매순간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한낱 청춘남녀의 연애담이라 할지라도 작가의 고민과 혼신이 담겨진 주관적 언론은 결코 가벼운 텍스트를 분출하지 않는다. 

  양질의 형편없는 활자를 이쁜 표지와 하드커버로 두르고, 유명 작가라는 이유만으로 비합리적 가격으로 책을 만드는 출판사가 밉다. 이런 경향은 일본소설에서 유독 많이 발견된다. 종이와 독자에 대한 예의가 결락된 출판사들의 행태는 씁쓸하다. 이런식으론 곤란하다. 싸구려 연애 담화를 읽을 만큼 독자의 시간은 넉넉치 않고 지갑은 두껍지 않다. 

  리뷰 쓰는 것도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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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별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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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한 시대를 풍미했던 역사적 위인을 텍스트로 만나는 것은 언제나 흥분이다. 나와 동시대를 살지 않았던 실존 인물을 만나기 위한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구전이며, 다른 하나는 활자이다. 두 가지의 묘미는 각기 독특하다. 하지만 엄밀성과 객관성에서 글이 말보다는 훨씬 고차원이다. 더욱이 말보다 글로 전달되는, 소위 '활자의 마력'에 가장 민감한 분야가 역사라는 점을 감지한다면 역사 인물을 활자로 만나는 것에 대한 흥분은 결코 녹록지 않다 하겠다.

  지난 몇 년간 한국문단은 역사소설의 범람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많은 역사물을 쏟아냈다. 김훈은 한국사 최대의 오욕의 역사를 특유의 강렬한 단문장의 문체로 그려냈다. 신경숙과 김탁환은 한 여인의 파란만장한 삶을 통해 굴곡진 근대사를 관통했다. 이정명은 조선시대 두 천재 화가의 삶을 발군의 상상력으로 빚어내 흥미를 유발시켰다. 심윤경은 화려하고 독특한 신라시대의 아우라를 멋지게 현대화하여 독자를 찾았다. 

  제 1회 세계문학상 수상자 김별아는 이러한 한국 역사소설의 책더미에 한 권을 더 보태고 있다. 그녀의 신작 장편소설 『백범』은 한국 근현대사 위인 중에서 국민들로부터 가장 큰 존경과 선망을 받는 백범 김구 선생의 삶을 그린 작품이다. 백범의 사랑과 가족애, 혁명가로서의 삶과 번민이 잘 담겨진 소설이다. 서사의 시종을 백범 자신의 1인칭 서술로 고백하는 문장들은 작가 자신의 목소리라 여겨질 정도로 생생하게 독자의 내면으로 잠입한다.

  이야기는 백범이 광복의 소식을 듣고 조국으로 향하는 김포행 비행기 이륙 장면으로 시작한다. 엔진 소리를 내며 출발하는 비행기 안에서 백범은 상념에 잠긴다. 오로지 조국을 위해 타국에서 갖은 고초를 견디며 기다렸던 이십육 년의 세월. 서슬퍼랜 일본 형사를 피해 도망다녔고, 각종 의거로 동지를 잃는 아픔을 감내했으며, 처자식에게 따뜻한 대접 한 번 하지 못한 지난 세월의 편린들을 반추하며 가슴을 일렁인다. 소설의 마지막, 비행기는 조국의 지면에 착륙한다. 비행기 차창 바깥으로 맑고 청량한 하늘을 쳐다보며 감상에 젖는 백범의 모습은 지난 이십육 년의 지난한 시간을 순간화하는 인상적 장면이다.

  이 소설의 특징은 인물 간의 대화로 주도하는 스토리텔링이 아닌 화자의 독백 서술로 서사를 이뤄간다는 점이다. 1인칭 시점의 작중화자 백범은 작가 자신의 분신과 일원화된다. 다시 말해서 백범의 고백이 곧 작가의 서술이며, 작가의 의지가 곧 작품 내 백범의 형상화가 된다. 요컨대 작가 김별아는 객관적 실재로서의 역사 안에서 발군의 상상력을 발휘하여 주관적 재창조로서의 인물 김구를 탄생시키고 있다. 

  김별아가 만들어낸 김구는 슬프다. 처연하고 구슬프다. 서사를 이끌어가는 기본 키워드는 '슬픔'이다. 소설의 모든 소제목은 공통적으로 '슬픔'이라는 단어를 포함한다. 각 장의 이야기를 주제적으로 내포하는 수식어구만 바뀔 뿐 슬픔은 계속되고 진화한다. 각 슬픔의 속성들은 다양하고 특별하다. 나라를 잃은 망국민으로서의 슬픔, 혁명가로서 감내해야만 하는 현실적 슬픔, 사랑하는 이들을 먼저 보내야 하는 슬픔 등 소설 속에서 고백되는 백범의 인간적 고뇌와 번민은 처연하기만 하다.

  무엇보다 슬픈 것은 조국을 잃은 채 일그러진 역사를 살아가야 하는 민족의 고통이다. 김별아의 문장은 짧고 강렬하게 그 시대의 아픔을 토로한다.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잔인무도한 일본제국주의의 악랄한 칼날 앞에 상처입고 죽어가야만 했던 우리 민족의 처절한 현실을 읽노라면 슬픔은 어느새 분노로 바뀌고 가슴은 한맺힌 야수의 발현으로 요동친다. 아.. 한민족 근대사 35년을 짓밝은 일본 제국주의의 망령이여.. 결코 잊을 수 없고, 또 잊어서도 안 되는 그 시대 우리 조상들의 상흔을 마음속 깊은 곳에 돋을새김한다. 

  나는 인간의 삶과 개성을 잘 그려낸 소설에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낸다. 문학은 인간을 탐구하고 해부한다. 인간의 존재감이 결락된 문학은 논할 수 없다. 그 어떤 장르의 소설이든 문학은 종내 인간이라는 거대한 카테고리 안으로 귀결되며 치환된다. 인간에 대한 탐구와 성찰을 엿보고, 텍스트 안에서 작가를 읽고, 작가적 상상력의 산물을 천착하며, 인물간의 긴장과 아이러니를 관찰하는 묘미. 내가 문학을 읽는 제 일의 연원이다.

  '김구'라는 한국 근현대사의 가장 웅숭깊은 아이콘을 '슬픔'이라는 키워드로 그려낸 『백범』은 누구에게나 일독을 권할 수 있는 소설이다. 작가 김별아가 그려낸 백범과 당시의 시대상황을 읽으며 내 자신을 돌아본다. 그 시대의 분노와 슬픔은 백년의 시간을 넘어 동일한 공간 위에 서 있는 내 가슴으로 안착된다. 그리고 곱씹는다. 청년이여, 세상을 포용하되 담대하라!, 는 백범 선생의 일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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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아이들 새로고침 (책콩 청소년)
로버트 스윈델스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08년 8월
평점 :
절판



『사라지는 아이들』은 가정의 파괴로 인한 청소년들의 방황과 번민을 그린 소설이다. 부모의 이혼 후 새아빠로부터 받는 학대와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가출하여 거리에 내앉게 된 소년 링크의 노숙 생활을 처연하게 그리고 있다. 런던 거리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한 소년의 구걸과 노숙의 삶을 매우 생생하게 담아낸 소설이다.

  이 소설은 자못 흥미로운 구성을 띠고 있다. 가출하여 홈리스의 삶을 살아가는 링크의 1인칭 시점과 거리의 부랑아를 대상으로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정신병자 쉘터의 1인칭 시점이 교차되고 반복되면서 서사를 이끌어간다. 만약 이 소설이 링크의 단선적 시점으로만 서사를 풀어갔다면 그리 힘있고 매력적인 소설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일기와 같은 링크의 이야기와 살인의 작업일지 형식으로 고백하는 쉘터의 이야기를 교차한 것은 서사의 생동감과 긴장감을 더욱 확장시키는 인상적인 구성이다.

  이러한 의도된 구성은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청소년 노숙과 이를 외면하는 사회적 시선과 대중의 태도에 대한 문제제기를 함의하는 장치가 된다. 전직 군인이었던 미치광이 살인범 쉘터의 광적인 살인 행위를 범죄자의 시각에서 그려냄으로써 극히 위험한 바깥의 시선에서 청소년의 방황을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내부에서 고백하는 암울함과 위험한 외부에서 바라보는 어두움이 교차되며 만들어내는 서사의 조화는 이 소설이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매우 잘 뒷받침하는 힘이 된다. 쉘터가 링크의 친구 게일에 의해 검거되는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확인하기까지 독자로부터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게 하는 탄탄한 구성이 돋보인다. 

  나는 이 소설에 별 다섯 개를 부여했다. 이러한 내 주관은 평소 가장 큰 관심을 갖고 있는 신념에 대한 내 의지이자 고백이며 꿈이자 희망의 표현이기도 하다. 나는 철저한 가정예찬론자이며, 결혼제도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기독교적 환경에서 자란 이유도 이유거니와 무엇보다 인간의 불완전한 유동성을 충분히 이해하는 데서부터 내 신념은 출발한다. 이를 풀이하기 위해서는 꽤나 긴 논설이 필요하다.

  인간은 매우 불완전한 종족이다. 사랑과 믿음, 꿈과 인내 등 인간의 모든 정신적 가치들은 나약한 인간상 앞에서 초라해진다. '결혼'이라는 계약은 좁은 의미로 남과 여가 만나서 하나의 가정을 이루는 것으로 정의된다. 좁은 의미에서의 결혼은 당사자들의 사랑이 식거나 문제가 생길 경우 이혼이라는 수단으로 정리하면 그만이다. 사실 작금의 세상에서 이혼은 흠이 아닐 정도로 대중적인 키워드가 되어 있다. 비단 OECD국가 중에서 가장 높은 이혼율을 자랑하는 한국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이미 전 세계적으로 이혼은 하나의 자연스러운 '계약 철회'의 의미로 수없이 이뤄지고 있다.

  결혼은 넓은 의미로 해석될 때만이 가정이라는 공동체가 가지는 강력한 힘을 증명할 수 있다. 결혼은, 다시 말해서 가정을 이루는 것은 사랑하는 남녀가 만나 하나가 되는 것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그것은 훗날의 세대를 창조하는 일이고, 아가페(agapē)를 실현할 수 있는 성스러운 기회의 장이며, 지구라는 공간의 주인을 다음 바톤자에게 물려주기 위한 고결한 패스 작업이다. 우리의 세대를 넘어 다음 세대를 창조하고 우리가 만들고 가꾼 시공간을 물려줌으로써 안정된 미래를 보증키 위한 수고와 열정이 결혼이라는 넓은 의미 속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의 가정을 이룬 남녀가 서로 간의 사랑의 열매로 얻는 다음 세대의 존재와 필요성을 인정할 때만이 결혼 제도의 긍정에 대한 힘은 탄력을 받는다. 실례로 수많은 미래학자와 민족연구가들은 현재의 세계를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민족으로 유대인을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소수민족 유대인은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미국 부의 55%를 차지하고 있고, 각 분야에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자들에게 수여되는 노벨상의 절반 이상을 독식하고 있으며, 세계의 정치는 물론 경제, 문화, 예술, 의학, 사회 등의 전 영역을 장악하고 있다. 미국 내 900만이 채 되지 않은 이들 민족이 어떻게 미국과 세계를 지배하는 집단으로 서나갈 수 있었을까. 유대인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에 대해 한결같은 목소리로 답을 낸다. 바로 유대민족만이 갖고 있는 특별한 가정상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유대인 부모들은 자녀들 앞에서 절대로 싸우지 않는다고 한다. 자녀들 앞에서 부부싸움을 하지 않는 원칙. 이 단순한 원칙이 유대인의 가정교육에 가장 중요한 제 일의 원칙이다. 어린 아이에게 부모가 대판 싸우는 광경은 전쟁터에서 가장 친한 전우가 바로 옆에서 죽는 공포감과 동일한 수준이라고 한다. 그 공포는 하루에 600회 정도 무의식적으로 반복되면서 아이의 마음을 비좁게 만든다고 한다. 그렇기에 부모의 싸움이 잦은 집에서 자라는 아이는 마음이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고 크고 다양한 것들을 가슴속에 품지 못하게 된다고 아동심리학자들은 얘기한다. 유대인이 다른 민족에 비해 유난히 위인의 출현이 잦은 이유가 바로 이러한 안정감 있는 가정적 환경에 기반한다는 학자들의 연구는 고개를 주억거리게 하는데 충분하다.

  소위 가정이 파괴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부모의 이혼으로 인한 편부모 가정의 증가와 신자유주의 경제 논리의 세계적 확대로 인한 물질만능주의의 만연은 이 시대의 청소년들을 어둡고 굴곡진 곳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확대 증산되는 경향을 보이면서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현재 세대로부터 바톤을 이어 받아 지구를 경작하고 운영해야 할 젊은 세대들의 방황과 요동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찢어질 듯한 안타까움이 밀려온다.

  가정이 안정될 때 사회는 행복하고 국가는 번영한다고 믿는다. 이 땅의 청소년들은 그 자체로서 고결하고 존귀한 존재이다. 그들이 어떠한 꿈을 갖고, 얼마만큼의 안정감을 누리며, 어느 정도의 농밀함으로 사랑과 관심을 받는가에 따라 지구의 미래는 결정된다. 이러한 사유는 곧바로 우리의 책임과 의무로까지 연장된다. 우리는 윗세대들로부터 넘겨받은 지구를 잘 가꾸고 운영하여 아랫세대에 넘겨줘야 할 의무를 갖고 있다. 우리의 다음 바톤자들이 지구라는 공간을 더욱 아름답고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그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며 결코 녹록지 않은 사랑으로 보듬어야 한다.

  부모가 서로 싸우지 않을 때, 탄탄한 안정감으로 흔들리지 않는 가정이 될 때, 세상에서의 고민과 아픔을 가정 안에서 치유하고 회복할 수 있을 때 이 땅의 청소년들은 정신이 건강해지고, 가슴이 확장되며, 작은 천국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그러한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미래라면 아무런 걱정없이 눈을 감을 수 있는 축복이 우리에게 주어지지 않을까. 아랫세대의 행복은 곧 우리의 축복이며, 그것은 바로 안정된 가정이라는 전제를 담보할 때만이 제대로 실현될 수 있는 행복의 공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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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누구인지 몰라도 괜찮아 - 참 나를 찾는 진정한 용기
파올라 마스트로콜라 지음, 윤수정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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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소 기독교적 관점으로 서평을 썼음.


오래전 비행기를 처음 탈 때의 경험을 떠올린다. 세상에 태어난 후 가장 먼 거리에서 인간을 바라보게 되었다. 비행기 차창 바깥으로 보이는 인간의 모습은 미세한 모래알과 같이 희미하고 작은 존재였다. 나는 생각했다. 비행기에서 보이는 인간의 모습이 이렇게 작고 보잘 것 없는데 만약 인류보다 훨씬 뛰어난 과학문명을 갖고 있는 외계가 있다면 그들의 세계에서 바라보는 지구인들의 아우라는 어떨까. 또한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신이 계시다면, 지구라는 자그만 행성에 살고 있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크기가 어떻게 사유되실까. 당시 비행기에서의 내 경험은 인간이 영장임에도 불구하고 이 거대한 우주와 자연 앞에서 극히 미세하고 누추한 존재일 수밖에 없음을 고백하게 하면서 인간과 자아를 보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겸손하게 천착하는 계기가 되었다.

  드넓은 우주 속에서 작디 작기만 한 인간의 '크기'는 당연히 겸손할 수밖에 없는 자연적 의무를 안겨준다. 현미경이 아닌 망원경의 시각으로 인간의 존재성을 탐구할 때 깨닫게 되는 이러한 사유는 신 앞에서, 대자연 앞에서, 다른 인간들 앞에서 겸손해야만 하는 근원적 질문을 명료하게 제시한다. 고만고만한 존재들끼리 지구라는 작은 공간 안에서 부디끼며 펼치는 기싸움과 정력 낭비를 바라보고 있는 신의 눈망울에는 과연 얼마만큼의 눈물이 고여 있을까.

  "나는 누구인가."
  어리둥절하면서도 유의미한 질문이며, 한 인간의 일생에서 한 번 이상 고민해보지 않을 수 없는 명제이기도 하다. 지구상 모든 청소년들의 시기에는 근본적으로 동일한 번민과 고독의 시간을 갖는다. 각 나라마다의 문화와 습속과 교육 환경이 천차만별이라 할지라도 십대의 나이를 관통할 때만이 겪는 의문과 호기심은 인류의 창조적 유전자 속에 공통적으로 내재된 신의 흔적이다. 나는 어디서 왔고, 도대체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아야 하고, 미래가 어떻게 될지에 대한 인간 스스로의 존재론적 질문들은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사유의 실타래를 엉키면서 세계를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인간은 다른 어떤 종족보다 힘과 권력에 경도된 특징을 갖고 있는 듯하다. 인류사는 전쟁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하고 있으며, 정치는 이미 인류에게 가장 밀접한 키워드가 되어 있다. 타자보다 더 나은 평가를 받길 원하는 상대적 우월 의식, 다스리고 명령하길 원하는 권력과 권위에 대한 인간의 태생적 호기심, 이기利己를 위해 소원하며 힘쓰는 인간의 보편적 자아상 등은 인간이 힘과 권위에 대해 얼마나 큰 집착을 갖고 있는지를 방증한다.

  왜 인간들은 극히 시각적인 부문을 강조하며 살아갈까. 60억 인류는 뭉뚱그려진 객체들이 아니라 각기 하나의 소중한 주체이다. 단 한 존재도 동일한 유사성을 성립하지 못하는 고유함으로 설계되었다. 하지만 인간 스스로 창조의 소중한 원리인 다양성의 가치를 배리한다. 눈에 보이는 몇몇 시각적 카테고리 안에서만 특별함의 의미를 부여하고, '다름(different)'과 '틀림(wrong)'의 정의를 혼동하는 인간의 오류와 모순은 인류가 공존함으로써만이 얻을 수 있는 강력한 힘을 약하게 하는 원흉이 된다.

  과연 사랑의 본질은 무엇일까. 이미 지구는 '사랑'이라는 단어의 인간의 무차별한 남용으로 인한 가치 저질화 현상으로 심한 정신적 몸살을 앓고 있다. 사랑이 아니면서 사랑이라 포장된 거짓 사랑의 범람으로 인간은 번민하고 지구는 쓸쓸하다. 신이 설계한 사랑의 신성적 DNA 구조를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자는 얼마나 될까. 그리고 그 설계도대로 '행'하는 자는 또 얼마일까. 어쩌면 현생 인류가 겪는 고통의 절반 이상은 지구상의 수많은 사랑의 실타래 속에서 신의 요구하는 수준의 아가페(agapē)의 발현을 실행치 못하는 데서 오는 게 아닐까.

  유럽 문단과 대중의 사랑을 농밀하게 받고 있는 이탈리아 작가 파울로 마스트로콜라는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하는 우화 『내가 누구인지 몰라도 괜찮아』를 통해 삶과 자아에 대한 통찰을 훈훈하고 섬세한 필치로 그려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노란 깃털의 오리의 모험을 통해 앞서 언급한 인간의 고독과 사랑, 권력과 명예, 연약함과 결핍 등 삶의 근본적 주제들을 관통한다.

  자신을 품어 주었던 슬리퍼를 엄마로 알고, 잃어버린 엄마를 찾기 위해 긴 여정을 떠나는 오리의 모험을 통해 인간에 대한 다양한 문제제기를 시도하는 작가의 맛깔난 필력이 돋보인다. 일관된 대화체 구성과 왕왕 등장하는 무게감 있는 아포리즘이 조화를 이루며 삶과 자아에 대한 따뜻한 문장을 완성시킨다.

  이야기의 말미, 사막의 고통을 인내하며 그곳에서 친구가 되는 두더지를 통한 깨달음으로 자신이 날개가 있음을 인식하고 하늘을 향한 날개짓으로 떠올라 세상을 조망하는 오리의 모습은 자아를 찾는 용기가 어떻게 실현되는지를 극히 아름답게 그려낸 명장면이다. 내가 누구인지 명징화되는 것을 거부할 때 비로소 내가 누구인지를 성찰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를 도출하면서 진정한 자아 찾기의 지혜를 따뜻하게 교훈한다.

  인간으로 살아갈 때 경험하는 수많은 질문과 번민, 인간의 지난한 오류와 모순, 나 자신으로 사는 것에 대한 다양한 역설 등. 이러한 사유를 통해 깨닫고 성찰할 수 있는 게 단 한 가지라도 있을 때 이 책을 읽은 보람은 증명된다. 유익하고 재미있으며 깊이있고 많은 생각을 유도하는, 참으로 따뜻하면서도 힘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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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저리 클럽
최인호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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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30년을 반추한다. 어머니 뱃속을 나와 서른이라는 나이에 당도할 때까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의 흐름에서 나는 다양한 성장을 이루어왔다. 엄마의 젖가슴에서 자연스럽게 손을 뗄 시기가 있었고, 키가 한 해에 10센티가 넘게 자란 적이 있었으며, 소프라노톤 목소리가 굵은 중저음으로 바뀔 시기가 있었고, 상대방에게 말하기 전에 한두 번 이상 꼽씹는 습관이 생기기 시작한 시기도 있었다. 지난 삼십 년간 겪었던 수많은 경험들과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는 현재의 모습으로까지 자라왔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가장 많은 성장을 이룬 시기를 나는 중고등학생 시절이라고 고백하는데에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다. 그 시절 나는 정말 많이 '성장'했다. 내가 누군지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고, 부모라는 존재에 대한 깊이있는 성찰이 최초로 시도된 시기였으며, 지구에 나 외에 다른 사람들이 있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를 깨닫는 시기였다. 현재의 내 성격과 사회성은 바로 그 시절에 뿌리를 두고 있다. 아.. 아름다웠던 내 십대 시절의 편린들이여..

  그 시절 함께 머리를 맞대고 난해한 수학문제를 풀고, 흙먼지 날리는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찼던 내 친구들. 야한 외국잡지를 돌려보기 위해 순서를 정하고,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여인의 사진만 봐도 가슴을 두근거렸던 그 시절. 학업에 대한 부모의 기대치와 엄연한 현실적 수준 사이에서 발생되는 번민과 스트레스로 하루하루 지난한 시간을 지내야 했던 바로 그 시절을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좋다', '나쁘다' 등의 단어로 재단할 수 없는 질풍노도의 그 시절은 존재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고결하다.

  최인호의 신작 장편소설 『머저리 클럽』은 바로 그 시절 그 아이들의 초상이다. '질풍노도', '사춘기', '주변인' 등 수많은 사회적 철학적 용어로 대변되는 십대 시절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성장소설이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을 살아야 했던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사춘기 고등학생들의 이야기가 흥미있게 펼쳐진다. 작가 최인호는 유머러스한 문체와 깊이있는 문장을 적절히 섞어가며 청소년 시절의 성장담을 매우 유쾌하게 그려냈다.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작중 화자 동순이를 포함하여 철수, 동혁, 문수, 영구, 영민이가 머저리 클럽의 클럽원들이다. 이들은 학창시절에 동일한 목적과 활력있는 우정으로 사춘기의 소중한 삶을 채워나간다. 기질과 성정이 각기 다른 여섯 명의 고등학생들이 뿜어내는 우정과 사랑, 꿈과 성장, 번민과 성찰의 생명력 있는 성장드라마는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 땅의 청소년들과 그 때의 추억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모든 성인들의 가슴을 일렁이게 한다. 

  사춘기 시절에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해봤을 흥분되는 추억이 있다. 그것은 바로 '첫사랑'이다. 사랑을 논하기에는 어린 나이였지만 누군가에게 호감이 가고, 가슴을 두근거리며, 밤잠을 설치고, 설레임을 감내해야만 했던 그 시절의 짜릿함은 어느 누구나 경험했을 아름다운 추억이리라. 소설 속에서 각 인물들마다 다양하게 발현되는 이성에 대한 순수하고 투명한 열정의 방향성을 보고 있노라면 그 시절의 내 모습을 바라보는 것 같아 훈훈한 공감이 발산된다.

  무엇보다 사춘기 시절의 가장 큰 아이콘은 자아에 대한 설익은 탐구일 것이다. '대학 입시'라는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키워드를 갖고 있는 한국 고등학생들의 공통된 목표의식은 자아성찰의 가장 순수한 시기를 비효율적으로 낭비하는 안타까움에 내몰리고 있다. 소설 속에서 문수가 일상을 일탈하여 자신만의 시공간을 통해 내면을 성찰하는 행위는 자아에 대한 강렬한 호기심이 발산되는 청소년기의 표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모습이리라.

  소설의 말미는 고등학교 졸업식으로 끝맺음된다. '끝'은 '시작'을 담보할 때만이 그 의미를 집대성한다. 인간은 종말을 노래하고 종말을 찬미한다. 하지만 근원적으로 '끝'이란 없다. 끝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 겨울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것은 새로운 봄이 있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라는 작은 세계를 넘어 보다 크고 넓은 우주로 그들은 '이동'되어질 뿐이다. 도도히 흐르는 강의 종국이 바다라는 넓은 세계와 마주치는 것과 같이.

  최근 한국 문단에서 성장소설이 새로운 키워드로 대두되고 있다. 해외 문학에서는 불멸의 고전부터 현대문학까지 어린 시절의 성장담을 찬란하게 그리곤 했지만 국내에서는 철저히 외면되어 왔던 게 사실이다. 근자에 들어서야 비로소 소재가 되고 있다. 김형경, 공지영, 황석영, 최인호 등. 그들이 창조해내는 그 시절 그 아이들의 추억 어린 초상은 내 마음속에 깊은 공감과 잔잔한 향수로 잘 저장되었다. 성장소설의 묘미는 바로 여기에 있는 게 아닐까. 최인호의 신작 『머저리 클럽』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특별하고 소중한 시절의 표상들을 무난하게 잘 담아냈다. 유쾌하고 흥미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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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Dav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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